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음이더라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을 위하여 유다 멸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에게 항상 등불을 주겠다고 말씀하셨음이더라
왕하 8:19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니 그가 스스로 자랑하기를 자기의 죄악은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함이로다
시 36:1-2
죄가 사무쳐 켜켜이 쌓인다. 악이 악으로 대물림하고 죄가 죄로 이어져 악을 낳는다. 그런 가운데서 주의 돌보심은 그의 인자와 성실하심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사람을 공경하여 저를 위해 방을 꾸미고 기거하게 하였던, 그로 인하여 아들을 얻었다 죽었던 아이가 살리심을 받았던 수넴 여인에게 앞으로 있을 7년간의 기근을 피해 블레셋 땅에서 안전히 우거하게 한다(1-2). 하고 저가 다시 돌아왔을 때 그의 고향에서 저의 전토와 그간의 소출까지 반환받도록 한다(3-6).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공경한 데 따른 축복은 남다르다.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 10:41-42).”
곧 엘리사를 공궤하였던 수넴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말에 순종하는 것을 보며,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이와 같은 삶의 실천이 얼마나 큰 축복으로 되돌아오는가를 보여준다. 곧 주의 사람이 기도할 때에 하늘 문이 열리고 주의 은혜가 막힘이 없이 부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곧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사 59:9-11).” 곧 주의 약속의 말씀이시다.
그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그에게 응답하리라
그들이 환난 당할 때에
내가 그와 함께 하여
그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내가 그를 장수하게 함으로
그를 만족하게 하며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도다
(91:15).
살면서 드는 생각은 늘 현실적인 문제에 얽매이기 쉬우나 이를 통해 우린 기도한다. 기도함으로 주의 성실하심과 인자하심이 우리 삶을 다스리신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요 14:18).” 때론 어려운 가운데서도,
주를 찾는 자는
다 주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주께서는 나를 생각하시오니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라
나의 하나님이여 지체하지 마소서
(40:16-17).
이와 같은 기도가 내 것으로 산다는 일, 그리하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후 2:16-17).”
곧 오늘 본문의 수넴 여인을 남다르게 건사하시는 까닭은 저가 주의 사람을 위하고 섬김을 아시고 그에 따른 무궁하신 하나님의 은총인 것을 안다(4:8-10). 곧 저의 헌신과 봉사는 순종으로 이어졌고 그 삶의 열매로 돌려졌다. 이는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1).” 믿는 자의 교본과 같은 진리다. 나아가 우리 몸을 산 제물로 드리는 영적 예배가 되는 삶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이는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말미암아 넘쳤느니라(고후 9:12).” 그러므로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사 11:6-9).” 실제 우리 삶으로의 체험이 된다.
이어지는 악의 굴레와 권력 다툼으로 죽고 죽이고, 악이 악을 꿰며 서로 연결되는 것을 보면서 그와 무관하였던 수넴 여인의 은혜의 삶이 복되다. 세상이 아무리 지지고 볶고 난장판을 이룬다 해도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악이 득세하고 세상이 날 뛴다 해도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곳에서 우린 별도의 보호하심을 받는다(21:1-22:5).
곧 “우리는 우리 조상들과 같이 주님 앞에서 이방 나그네와 거류민들이라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나이다(대상 29:15).” 그러나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고후 5:1).” 오늘도 수넴 여인을 두고 주의 사람 엘리사가 알리고, 7년의 기근이 끝난 뒤에는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이를 증언하면서 저를 대언하고 살피고 모든 것을 보존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예수님이 우릴 위해 기도하심이었다. “내가 그들을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그들은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요 17:9).” 그러므로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딤전 2:5-6).” 이와 같은 말씀 앞에서 으쓱하고 새 힘을 얻는 것이 귀하다. 심지어는 우리의 죽음 너머 영존하시는 심판장 하나님 앞에 섰을 때도,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곧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히 9:15).”
그러므로 우리가 오늘을 살면서 믿고 신뢰하면서 증거를 가지고 산다는 일은 참으로 복되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1-12).” 다른 무슨 증거가 더 필요할까? 육으로가 아니라 영으로 뿐이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어제는 약속대로 사모가 아이를 데려 왔었고, 아이는 내가 우려하고 생각하였던 게 무색할 정도로 지극히 정상이었다. 나의 이 묵상글을 어쩌면 읽고 있을 사모에게 어제 못 다한 말을 덧붙인다면, 문제는 아이가 아니라 부모였다. 자신들의 문제를 바로 알고 주 앞에 자복하고 집중하지 않으면 실제 우려했던 그 이상의 결과도 각오해야 할 것 같다. 아이는 다 듣고 보고 나름 판단하고 옳고 그름을 알고 있었다. 거짓말처럼 한 시간 반 가까이 아이와 나는 묻고 답하였다. 그의 어휘와 표현력은 그 나이에 최상이었다. 바라보는 시각 또한 어린아이가 같이 순수하였다. 스스로도 아는 문제 하나, 아이가 게임에 전념하는 것은 아빠가 그러해서다. 둘째, 약속을 유야무야 지키지 않는 것은 엄마가 그러해서다. 여러 이야기가 가운데 단적인 예이지만 저들이 사는 모습을 고스란히 아이가 답습하고 있었다. 비록 말은 어눌하고 조금 늦된 듯 하나 걱정할 게 없어보였다.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일일이 관여하고 간섭하는 것보다 주께 맡김으로 해도 끝이 없는, 개미지옥은 형국을 벗어나야 한다.
모름지기 자기에게 주신 바 각자의 하나님과 그를 섬김으로 나아가는 주의 권능이 필요할 거였다. 여기서 문득 생각나는 것이 우리의 거듭남은 ‘물과 성령으로 인하여 가능하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여기서 더러는 ‘물과 성령으로’ 난다는 것을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는 일로, 지극히 종교적인 행위로 국한지어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의미가 아니다. 우선은 이어지는 말씀이 그런 내용이 아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6-7).”
물과 성령을 세례로 국한지어 중생의 조건으로 삼는 것은 너무 편협적이다.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15).” 세례는 하나의 종교적 행위로 그 의미가 중요한 것은, 이 또한 물과 성령으로가 아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 28:19).” 그렇다면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하신 말씀은 세례로 국한 지어 물을 상징하고, 성령을 추상적인-마음의 동요로 우리가 확신하고 고백하는 정도로 받으면 곤란하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은 결코 물세례 따위로 그 관문을 삼을 게 아니다.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이때 중요한 것은 다음 구절에 나온다(겔 36:24).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25).” 곧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의 첫째는 ‘맑은 물’ 곧 ‘주의 십자가의 보혈로 흘리신 피’로 우리를 정결하게 하심이었다. 그리고 이어서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26).”
새 영, 주의 영, 성령, 곧 하나님이 직접 우리 안에 거하시길 원한다. 이때 새 마음은 굳은 마음을 제거한다. 굳은 마음은 우리의 학습된 무기력과 완고한 자기 고집으로 이는 마치 굳은살과 같다. 찔러서 아프지 않고 잘라내도 필요치 않은 살이다. 그와 같이 굳은 마음, 아이에 대한 병적인 요소들을 떼어내야 한다. 심리학에서도 분리과정이라 해서 때론 답답하고 미덥지 않고 불안 불안하여도 그를 두어 그도 세상과 맞서 자기 하나님을 부르게 해야 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왜곡된 자식 사랑은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를 가로막는다.
이어지는 에스겔서의 말씀을 더하면, 그리하여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27).” 전에 그처럼 말씀이 어렵고 불편하고 막연하고 어렵기만 하던 것이 이제는 나의 양식이 된다. 주의 길을 가는 데 있어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28).” 이 무궁한 은총을 어찌 다 알 수 있을까? 오늘의 삶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들어가 영원히 누릴 영생의 본향으로이다. 우리로 거기에 거주하게 하시고 나는 주의 백성이 되고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신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25-26).” 곧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말씀하신 후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하신 말씀도 이에 연결이 된다(요 3:3, 5).
이는 곧 완전히 새로운 마음으로의 전환이다. 가령 어제 나와 만나고 내가 뭐라 해서, 그 말을 듣고 어떻게 좀 개선하여 고치고 살 그럴 문제가 아니다. 하자보수 정도의 공사가 아니라 아예 헐고 새로 지어져야 하는 집과 같다. 이때의 ‘용서와 씻김’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2-30).” 이를 삶으로 보고 듣고 느낄 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14).
나는 오늘 본문 하반부에서 이어지는 나머지 군상들의 또 그러그러한 죄악의 연결에 대해서는 지긋지긋하다. 저때의 이야기로 끝난 게 아니라 오늘에도 여전하여서 말이다. 이 땅의 모든 끝이 이르기까지 계속 될 일인데, 그런 가운데서도 ‘수넴 여인’과 같이 주의 은총 아래 거하는, 오늘 우리로 거듭나게 하심으로 주의 자녀 삼으신 데 감사와 영광을 올릴 뿐이다. 그러므로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니
그가 스스로 자랑하기를
자기의 죄악은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함이로다
(36:1-2).
그러니 저런 상태에 대해서는 뭐라 말을 한들. 비통히 여겨 뭐라 권면이라도 하려 하면 싸우자고 덤빌 것은 뻔하여,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죄악과 속임이라
그는 지혜와 선행을 그쳤도다
그는 그의 침상에서 죄악을 꾀하며
스스로 악한 길에 서고
악을 거절하지 아니하는도다
(3-4).
오히려 우린 그와 같은 사실, 오늘의 이 현상을 보며 두려워할 줄 앎으로 더욱 주를 신뢰하는 것이다. 저들은 본질적으로 우리가 상대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이로 말미암아 불꽃이 그루터기를 삼킴 같이, 마른 풀이 불 속에 떨어짐 같이 그들의 뿌리가 썩겠고 꽃이 티끌처럼 날리리니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멸시하였음이라(사 5:24).” 그러니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말 1:6).”
스스로 옳다고 자긍하는 데는 별 수 없다.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지라도 내가 거기에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옵 1:4).” 하여
이 사람은 하나님을
자기 힘으로 삼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 재물의 풍부함을 의지하며
자기의 악으로 스스로
든든하게 하던 자라 하리로다
(52:7).
그러니 그런 일과 그런 자들은 우리를 위한 경고판이다. 위험을 알리는 신호 같다. 지옥은 정작 지옥에 갈 자들은 관심도 없다. 이를 두려워할 줄 아는 자는 천국을 갈 자들뿐이다. 하여 “또 사람에게 말씀하셨도다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욥 28:28).” 악을 보고 우린 선을 배운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은 우리를 위한 본보기 같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 참 희한할 정도로 “그들은 악을 행하지 못하면 자지 못하며 사람을 넘어뜨리지 못하면 잠이 오지 아니하며 불의의 떡을 먹으며 강포의 술을 마심이니라(4:16-17).” 어떻게 저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은 것도 서슴지 않는다. 저들은 매일 “그들이 침상에서 죄를 꾀하며 악을 꾸미고 날이 밝으면 그 손에 힘이 있으므로 그것을 행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차지하니 그들이 남자와 그의 집과 사람과 그의 산업을 강탈하도다(미 2:1-2).”
그 어떤 경고도 저들에겐 우스울 따름인데 우린 이를 보고 두려움으로 주를 더욱 바란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시나이다
(5-6).
그러니 어찌 보면 악을 악한 날에 쓰시기 위함이란 말씀을 알겠다. “내가 넘치는 진노로 내 얼굴을 네게서 잠시 가렸으나 영원한 자비로 너를 긍휼히 여기리라 네 구속자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느니라(사 54:8).” 우린 그 어둠 가운데서 빛을 본다.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애 3:21-22).” 그러므로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23).” 이것이 복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8-9).
고로 우리로 거듭나야 한다 하신 주의 말씀이 전혀 이상한 게 아니다.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1-12).” 그러므로
주를 아는 자들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 베푸시며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주의 공의를 베푸소서
교만한 자의 발이
내게 이르지 못하게 하시며
악인들의 손이
나를 쫓아내지 못하게 하소서
(10-11).
우리의 의지는 말씀이다. 이는 하나님이시다. 악인들의 손과 발이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게 하실 것이다. 곧 저들에게는 영원한 영벌만이 기다릴 뿐인데, “너는 용서 없이 그를 죽이되 죽일 때에 네가 먼저 그에게 손을 대고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 그는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너를 꾀어 떠나게 하려 한 자이니 너는 돌로 쳐죽이라(신 13:9-10).” 그러므로 우린 악을 보고 배운다. 저들은 우리를 위한 표지다. “너희는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없도록 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여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음식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없도록 살피라(히 12:15-16).” 그러므로
악을 행하는 자들이
거기서 넘어졌으니
엎드러지고
다시 일어날 수 없으리이다
(1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