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하나님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에 두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리니라
대상 16:1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시 69:30-31
다윗이 예루살렘에 연약궤를 모시고 찬양대와 이를 섬기는 자들을 세운다. 저들로 감사와 찬양이 끊이지 않게 한다. 사무엘하 6:17-19절과 병행을 이루는 내용이다. “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그 준비한 자리에 그것을 두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니라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모든 백성 곧 온 이스라엘 무리에게 남녀를 막론하고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 한 덩이씩 나누어 주매 모든 백성이 각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비로소 찬송과 경배가 온전하여진다. 이는 하나님의 본래 목적으로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곧 우리는 창세전에 이미 예정하시고 택정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주를 찬송함은 모든 것이 그로 만족하고 감사하는 일이다.
내가 주를 찬양할 때에
나의 입술이 기뻐 외치며
주께서 속량하신
내 영혼이 즐거워하리이다
(시 71:23).
사는 동안 사느라 겪는 여러 어려움이 우리로 주를 바라게 하였다. 이를 온전히 알고 배우고 사랑하며 사는 것이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궁극적인 우리의 성숙이다. 오늘 시편은 이를 매우 담대하게 진술하고 있다.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69:31).
그러므로,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소서
(21:13).
주를 높일 수 있는 것은 주의 능력으로 하게 하시고, 주를 찬송하게 하시는 것은 주의 권능으로 가능하였다. 이에,
진실로 사람의 노여움은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여움은
주께서 금하시리이다
(76:10).
이 놀라운 사실 앞에 우린 주를 높이고 찬송한다.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예배할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심이로다
(99:9).
그것으로 우리가 주의 자녀인 것과 영원한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며 기뻐할 자임을 알게 된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19-21).” 이것이 우리의 기쁨이고 만족이고 축복이다. 어떠하든지 이것으로 작은 것에도 충성이 가능하게 된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눅 19:17).” 감사와 만족함이 없다면 고난을 이길 능력도 없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계 2:10).”
다윗은 오늘 본문에서 몇 가지 결행한다. ① 감사로 그의 이름을 불러 그의 행하신 일을 만민에게 알게 한다. “그 날에 다윗이 아삽과 그의 형제를 세워 ‘먼저’ 여호와께 감사하게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가 행하신 일을 만민 중에 알릴지어다(7-8).” 또한 ② 찬양하고 전한다.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고 그의 모든 기사를 전할지어다(9).” 이는 주를 자랑하는 것으로 그 마음의 즐거움이다. “그의 성호를 자랑하라 여호와를 구하는 자마다 마음이 즐거울지로다(10).”
이를 위해 ③ 주의 능력을 구하고, 이는 주의 얼굴을 항상 마주하는 것이다. “여호와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항상 그의 얼굴을 찾을지어다(11).” 주의 얼굴을 마주한다는 것은 주께서 나의 삶에 행하시는 일들로 주의 살아 역사하심을 아는 것이다. “그의 종 이스라엘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그의 행하신 기사와 그의 이적과 그의 입의 법도를 기억할지어다(12-13).” ④ 그럴 때 우린 주를 나의 하나님으로 알게 된다.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법도가 온 땅에 있도다(14).”
구체적으로 무엇에 대한 감사이고 찬송일까? 나는 종종 믿음의 친구들과 대화할 때면 죽어 마땅한 죄인을 이처럼 귀히 쓰시는 데 따른 황송함을 고백할 때가 있다.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애 3:22).” 이와 같은 말씀이 나의 삶을 압도할 때 주신 은혜로도 충분하여 그 감사가 차고 넘친다. 곧 이것이 우리의 능력이 된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다시 강조하고 또 바라봐도 모자람이 없는 것이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이다. 나 같은 자를 오히려 직분을 맡기심이니,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딤전 1:12-13).”
오늘 내일 강한 태풍이 한반도 남단 해역을 지나간다. 같은 태풍이라도 그의 오른 쪽에는 강한 바람이 그의 왼쪽에는 많은 비가 유입된다고 한다. 마치 때를 따라 불어오는 태풍과 같이 우리 삶은 저마다 우여곡절로 때론 강한 바람이 때론 하염없이 퍼붓는 빗줄기가 어떨 땐 큰 피해를 남기기도 하지만 이는 모두 ‘목적이 있는 것’으로 주의 역사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지으심을 받은 바, 나의 목적은 주를 찬송함이다.
처벌처벌 넘쳐날 땐 모른다. 적당하면 무디고 더디다. 그때는 감사가 일반적이고 대수롭지 않다. 같은 상황을 겪고도 누군 비로소 감사를 알고 주를 찬송하는데 누군 그것으로 주를 원망하고 멀리한다. 그 차이가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다만 “이러므로 여호와여 내가 모든 민족 중에서 주께 감사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리이다(삼하 22:50).” 이것으로 우린 주께 진정한 감사와 신령한 예배를 알게 된다. 일련의 사태가 태풍처럼 지나갔다.
동생은 부모님을 모시고 인천으로 왔다. 매달 첫 주일이기도 하였고 어쩌면 필리핀에 들어가기 전에 보는 마지막 얼굴일 수도 있다. 아버지는 시의적절하게 ‘교회론’으로 우리가 이뤄가는 교회의 의미를 설교하셨다. 동생은 오히려 자신을 공격한 아이 일로 아이엄마가 지레 늙어 병들 것이라 우려하였다. 모르지, 저가 그대로 물러나지 않고 더 크게 일을 벌일지도… 하지만 오늘의 이 모든 싸움은 혈과 육의 싸움이 아니다. 이는 우리 개인의 사명이면서 교회의 본분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설령 그렇다 해도,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고
그의 성실하심이 대대에 이르리로다
(100:4).
그리하여 다윗은 이어 명령하기를 “너희는 그의 언약 곧 천 대에 명령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할지어다(대상 16:15).” 이는 갑자기 세우신 명령이 아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이며, 이는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원한 언약이라(16-17).” 그러므로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선포할지어다(23).” 그것으로 “그의 영광을 모든 민족 중에, 그의 기이한 행적을 만민 중에 선포할지어다(24).” 우리의 삶과 사명은 밀접하고, 교회를 이루는 데는 개인적인 것과 공동체적인 것으로 ‘나’로 주의 성전이 되게 함과 ‘나와 너로’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곧 우리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가 드려지는 때를 살게 된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오늘 말씀 후반부의 내용은 그 하나하나가 우리 삶의 바탕을 이룬다. ① 찬양과 경외함으로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극진히 찬양할 것이요 모든 신보다 경외할 것임이여(25).” ② 창조주 하나님께 “만국의 모든 신은 헛것이나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도다(26).” ③ 영광과 권능을 돌림으로 “여러 나라의 종족들아 영광과 권능을 여호와께 돌릴지어다 여호와께 돌릴지어다(28).” ④ 이것으로 우리가 주의 나라에 들어가서,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에게 돌릴지어다 제물을 들고 그 앞에 들어갈지어다 아름답고 거룩한 것으로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29).” ⑤ 하여 우리의 결국은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여 만국 가운데에서 건져내시고 모으사 우리로 주의 거룩한 이름을 감사하며 주의 영광을 드높이게 하소서 할지어다(35).” 궁극적으로 우린 주의 자녀로서 아멘, 하고 주께 경배한다.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할지로다 하매 모든 백성이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양하였더라(36).”
때론 감당하기 어려운 어려움으로 허덕일 때도 있지만 오늘 시편은 ‘영장하는 소산님에 맞춘 노래’다. 이는 45편과 오늘 69편 시로 소산님 곧 백합화의 곡조-소산님에둣의 싱그러운 향기를 띈다. 고난의 깊은 수렁에서(1-4), 하나님을 향한 열심으로(5-12), 주께 호소하며(13-18), 우리 안의 분노를 주를 찬송하는 도구로 삼아(19-29), 선취적 신앙의 근거 곧 구원의 확신으로 찬양하고 있다. 결국 하나님을 바랄 때 여러 문제가 더는 문제로 나를 짓누를 수 없다.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물들이 내 영혼에까지 흘러 들어왔나이다
나는 설 곳이 없는 깊은 수렁에 빠지며
깊은 물에 들어가니 큰 물이 내게 넘치나이다
(1-2).
깊은 수렁, 깊은 물, 큰 물로 비유하는 생의 절망감 앞에서 우린 무엇으로 견디고 이겨낼 수 있을까?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정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랄지니라(호 12:6).” 이는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미 7:7).” 남에게는 그저 태평하고 안일하게 보이겠으나 우리로서는 주를 바람이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솔직히 이때는 누구의 조언도 어떤 이의 성공 비결도 소용없다. 위로도 격려도 성가실 따름이다. 오직 주께로만 마음을 기울여서,
내가 부르짖음으로 피곤하여
나의 목이 마르며
나의 하나님을 바라서
나의 눈이 쇠하였나이다
(3).
하면 이를 어찌 주가 외면하시겠나? 우리의 인내는 순종의 바탕이다. 주를 인정하는 자의 숨은 비결이다. 낙담은 우리로 포기하게 해도,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서 벗어난다 하느냐(사 40:27).” 주가 아니면 어디로 피할까?
주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
(86:3).
그러므로 예수님도 “예수께서 그들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눅 18:1).” 우리에게 가르치신다.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10:22).” 그러므로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벧전 5:9).” 어려움이 우리로 주의 길을 가게 한다. 아픈 게 살았다는 증거가 된다.
주 만군의 여호와여
주를 바라는 자들이 나를 인하여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를 찾는 자가 나로 말미암아
욕을 당하게 하지 마옵소서
(6).
곧 나의 사는 날들이 모든 이의 소금과 빛이 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의 산 증거가 되기를.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10-11).” 고로 일련의 사건에서도 주는 우리로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이를 통해 주를 의지하고 주께 모두 맡김으로 승복하는 것으로… 그 외에 감당하지 못할 것은 피할 길을 주심으로 해결하셨다. 여기서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이 놀라운 진리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선하시오니
내게 응답하시며
주의 많은 긍휼에 따라
내게로 돌이키소서
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서 숨기지 마소서
내가 환난 중에 있사오니
속히 내게 응답하소서
(16-17).
온 가족은 물론 주변에서 함께 믿음을 이루고 살아가는 공동체들에게 이번 일은 우리의 악함과 죄악 됨을 새삼 돌아보고 주께 감사하는 원동력은 형통함보다 환난 중이었음을 알게 하셨다. 하여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 29:13).” 하여 우리로 겸손을… 주를 인정함으로 찬송을…
내 영혼에게 가까이하사 구원하시며
내 원수로 말미암아 나를 속량하소서
…
오직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하나님이여 주의 구원으로 나를 높이소서
(18, 29).
그런데 그것으로 우리는,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30-31).
기쁨의 참 의미를 알게 하심이었다. 고로
천지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바다와 그 중의 모든 생물도 그리할지로다
(3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