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속량하신 내 영혼이 즐거워하리이다
그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항복을 받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가드와 그 동네를 빼앗고 또 모압을 치매 모압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대상 18:1-2
내가 주를 찬양할 때에 나의 입술이 기뻐 외치며 주께서 속량하신 내 영혼이 즐거워하리이다
시 71:23
다윗이 서쪽 블레셋을 정복하고 동쪽 모압을 정복한다. 북쪽 소바와 아람을 정복하고 남쪽 에돔을 정복한다. 행정을 정비하고 국가의 기틀을 확립한다. 오늘 본문은 사무엘하 8장 1-18절과 병행을 이룬다. 오늘 본문의 주요핵심은 주를 의지할 때 모든 승리가 이어진다. 다윗의 이러한 주변국 정리와 행정 정비를 바탕으로 솔로몬 시대에는 평화가 이어진다.
여기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1절 서두에 시작하는 ‘이 후에’라는 표현인데, 이는 성경의 의도적인 구조다. 앞서 17장에서 하나님이 다윗과 맺으신 언약을 주목하게 한다. 그런데 실은 이와 같은 정복과 성공이 하나님의 약속 이전에 있었던 일이다. 그럼 왜 ‘이 후에’를 넣어 우리로 하나님의 언약과 정복의 성공이 이루어진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일까? 이는 역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같은 언약의 보증은 앞서 선행하였으므로, 모든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가신 것은 하나님의 언약에 따른 근거로 알게 한다. 곧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때 그 결과는 앞서 이미 성행되고 있었음을, 승리의 삶은 오늘에 갑자기 일어난 게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로 살아간다는 것은 내가 어리석고 부족할 때에부터 하나님은 이미 하나님 되심으로 우리를 돌보시고 어떻게 행하시고 함께 하셨는가를 더욱 확신하게 한다. 즉 그래서 그때 그런 일이 있었구나, 하는. 영적으로 수많은 대적과 그에 따른 함정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노릴 때에도 주는 나보다 먼저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고 계셨다는 사실을 말이다. 바울은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8-10).” 우리의 처지가 이 지경일 때도 주는 함께 하셨고 우리를 돌보셨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다가 뒤늦게 알게 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러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으리이다
(44:5).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56:4).
세상의 모든 결국은 주의 승리로 이미 완성되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3-4).” 이와 같은 사실은 믿음이 없이는 알 수 없고 주의 영이 아니면 그저 운이나 우연으로밖에 이해할 수가 없다.
“… 이 땅 모든 백성아 스스로 굳세게 하여 일할지어다 내가 너희와 함께 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학 2:4).”
우리로 모두 주 앞에 승복하게 하시려고 앞서 주님은 함께 하셨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10-11).” 이를 나의 날들로 돌아보면 그때는 몰랐다. 나는 주를 멀리하고 마음에 상처를 안고 스스로 맞서 싸우며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 모든 게 주의 은혜였다. 두 아이를 키우면서 또는 더 어릴 때 나는 여러 환경에서 배회하고 있을 때도 주는 어김없이 늘 거기에 계셨다.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여러 번 있었고, 그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이제 보니 모두 주의 은혜였다.
이를 오늘 시편으로 보면, 이처럼 과거와 미래를 조망하며 노년의 구원을 간구하게 된다. 실은 어제그제 아내는 장모로 인해 속상해하였다. 그리 말하고 주의를 당부하는데도 집안일을 하고 추석 쇨 준비를 하느라 당장 큰 수술을 앞두고 있는 몸인데 조바심과 걱정을 더하신 것이다. 어제는 아내가 거의 울부짖듯이 싸우다 내게 전화를 하였다. 나는 어머니를 설득하여 추석 쇠고 일찍 우리 집으로 오시라고 말하였다. 누가 곁에 있어 거의 종일 돌봐야 하는데 이를 할 수 있는 처지들이 아니니까 서로가 어려운 것이다. 어머니께 다녀온 아내에게 사람이 아이에서 어른이 되었다가 도로 아이가 되어 세상을 떠난다는 말을 풀어서 말하였다.
우리의 노후는 누구도 의연할 수 없다. 앞서 말씀을 중심에 두고 그 삶을 주께 맡김으로 의뢰하는 것은 평소에 이뤄지는 훈련으로 가능하다. 오늘 시편 5절로 16절은 과거의 구원 체험을 바탕으로 노년인 현재의 위기를 주께 아뢰고 구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소망을 알게 한다. 이때 불의한 자들의 위협은 노년에 닥치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인 위기를 암시한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가 영원히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소서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나를 풀어 주시며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
주는 내가 항상 피하여
숨을 바위가 되소서
주께서 나를 구원하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이심이니이다
(1-3).
오늘 시편은 작가 미상으로 돼 있으나 다윗의 시로 읽히는 것은 위 내용이 시편 31편 1-3절과 같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산성이 되소서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
(31:1-3).
곧 우리의 구할 것은 주의 구원이다. 우리로 주께 피하여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심은 하나님만이 우리의 구원의 산성이 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서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사 25:8).” 그러므로 다윗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25:2-3).
이러한 간구와 주를 바람은 앞서 신앙 안에서 믿음으로 이를 승리하는 삶의 발판으로 삼는 자의 복이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사 12:2).” 하여 오늘 시편은 이어 주께 간구한다.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악인의 손 곧 불의한 자와
흉악한 자의 장중에서 피하게 하소서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내가 어릴 때부터 신뢰한 이시라
(4-5).
내가 주를 멀리하고 살 때는 알지 못했으나 주는 앞서 나와의 언약을 지키셨다. 곧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앞서 이루고 계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죽을 자가 죽는 것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겔 18:31-32).” 하나님의 뜻은 우리 모두가 돌이켜 주께로 나아오는 것이다. 심지어 죽을 자가 죽는 것도 주는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 3:13).”
노년의 때에 더는 자신의 의지대로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생각이나 마음이 예전 같지 않을 때 그 외로움은 과연 어떠할까? 나는 장모의 그런저런 모습에서 우리의 어쩔 수 없음을 보게 된다. 평생을 우린 무엇을 의지하며 살았던가? 그것으로 노년을 맞이하고 견디다가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것인데,
내가 모태에서부터
주를 의지하였으며
나의 어머니의 배에서부터
주께서 나를 택하셨사오니
나는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6).
이는 역설적으로 내가 주를 알지 못할 때부터 주가 나를 아셨고 붙드셨고 세우셔서 오늘에 이르게 하신 것임을 밝혀준다. 고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이와 같은 찬송과 경배로 산다는 게 얼마나 귀하고 큰 것인지. 어찌 나 같은죄인을 그처럼 사랑하시고 생각하시는 것인지,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그 은혜가 크면 클수록 이와 같은 말씀은 실제 나의 삶을 주도한다.
나는 무리에게
이상한 징조 같이 되었사오나
주는 나의 견고한 피난처시오니
주를 찬송함과
주께 영광 돌림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리이다
(7-8).
즉 나를 에워싸는 모든 현상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은 확신뿐이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뒤늦게 주의 참 사랑을 알고 오늘을 살면서 예전에 내가 미처 주를 멀리하며 살았던 때에도 주는 한결같으셨다는 데서 더욱 주의 기이한 사랑을 알게 된다. 곧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나와 언약이 있기 전부터 하나님은 이를 더욱 알게 하시려고 나를 돌보시고 이끌어주셨다. 그러므로 이제,
늙을 때에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나를 떠나지 마소서
(9).
누구나 맞이하게 될 노년의 때를 두고 우리로 준비하게 하신다. 내 영혼이 이제 주의 사랑을 맛보아 알았다면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결코 나를 떠나시지 않으실 것임을 확신하면서,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 하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
(12, 14).
노년의 생을 다하고 있는 부모님과 장모님의 삶을 보면서 나는 무엇으로 그 시기를 맞이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된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은 엄청난 실력이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이러한 신앙은 마음먹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13).” 오히려 어려운 때를 감사함으로 받을 수 있는 비결은 이처럼 주를 알고 주의 은혜를 더욱 실감하면 할수록 그에 따른 믿음의 서앙도 이루어지는 것이다.
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공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
(15).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확신한다. 매순간이 주의 돌보심 안에 있었다. 하면 앞으로도 그러할 것을 믿는다. 그럴 때 측량할 수 없는 주의 은혜를 나는 종일 전하며 살 수 있겠나?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내가 주 여호와의
능하신 행적을 가지고 오겠사오며
주의 공의만 전하겠나이다
(16).
나의 삶에서 이를 증표로 삼아,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하였나이다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발이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력을 장래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17-18).
노년에도 여전히 우린 주의 맡기신 사명을 다함으로 생을 완주한다.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은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이라(히 6:18).” 곧 내가 주의 능하신 행적을 찾아가지고 돌아올 것이다. 이처럼 묵상글을 쓰다 문득 떠올리게 되는 나의 부끄러웠던 시절조차 그 가운데 주의 사랑이 가득하였다. 주의 은혜가 아니었으면 오늘의 나는 의미가 없을 것이지만 이를 알지 못할 때도 주의 능하신 행적은 나의 일생에 가득하였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 4:20-22).” 그러므로
내가 주를 찬양할 때에
나의 입술이 기뻐 외치며
주께서 속량하신
내 영혼이 즐거워하리이다
(23).
곧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살며 사랑하며 배운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7).” 우리로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부터 함께 하셨음을 알게 한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그러므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3-4).” 그리하여
나의 혀도 종일토록
주의 의를 작은 소리로 읊조리오리니
나를 모해하려 하던 자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함이니이다
(2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