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에스라 10:1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시편 125:1
누가 날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그것으로 나의 영혼은 반응하게 되어 있다. 본문 에스라의 중보가 그 민족을 돌이켜 회개의 물결을 일게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한 알의 밀알’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이는 예수 그리스도이셨으며 앞서 에스라의 모습이기도 하였다. 주의 전 앞에서 울며 기도할 때에 스가냐를 대표한 많은 이들이 자신들도 그러할 것을 맹세한다. “이에 에스라가 일어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온 이스라엘에게 이 말대로 행하기를 맹세하게 하매 무리가 맹세하는지라(5).”
나는 종종 메모해둔 누구의 이름을 공허하게 부른다.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회의도 든다. 그러다 문득 누군가 날 위해 기도하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나는 있을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오금이 저린다. 기도라는 하나의 통로로 축복이 임하였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안 믿는 가족들 틈에서 홀로 외로이 기도하는 이를 나는 사랑한다. 어쩌면 나는 늘 기도와 믿음의 울타리 안에서도 그처럼 배회하였던 것을 생각하면 역으로 저의 외로운 사투에 나는 경이를 표한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 12:3).”
그때 저의 눈물은 반짝이는 별이 되고 참 노래가 된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19).” 우리 성도의 평생 일구어 가는 영혼의 밭이 그러하지 않을까? 눈물로 씨를 뿌리면 반드시 기쁨으로 그 수확을 거두리라하시는 말씀과 같이,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 126:6).
그러므로,
온 땅이여
여호와께 즐거운 찬송을 부를지어다
기쁨으로 여호와를 섬기며
노래하면서 그의 앞에 나아갈지어다
(100:1-2).
곧 우리의 눈물이 노래가 될 것이다. 고난은 때로 그와 같은 노래를 멈추게도 하지만 고난 중에 우리로 다시 견디고 일어서게 하는 것도 노래이다. 그러므로 고난은 노래를 낳는다. 그래서 우리의 찬양은 선하고 마땅하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147:1).
어찌 그런 상황에서 주를 찬송할 수 있을까? 당연히 우린 할 수 없으나 우리로 하여금 할 수 있게 하시는 이가 또한 함께 하심으로 이와 같은 불가능한 것이 가능하였다. 에스라 한 사람의 기도가 결국은 백성의 마음을 움직였고, 온 민족이 이방 여연과 그 가솔을 내보내고 자신들을 정결하게 하였다. 앞서 저들도 주 앞에 회개의 물결이 일었다. 고로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이 선하고 마땅하다. 하여 내 혀가 주를 말씀을 찬송한다.
주의 모든 계명들이 의로우므로
내 혀가 주의 말씀을 노래하리이다
(119:172).
우리 안에 주의 영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이와 같이 놀랍고도 기이하고, 조용하면서도 거칠게, 우리의 잠든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일이다. 성경의 공식은 간단하여서, 고난은 기도가 되고 즐거움은 찬송이 된다. “너희 중에 고난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 즐거워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찬송할지니라(약 5:13).” 지혜자도 이르기를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전 7:14).”
이를 바로 하지 못할 때 그야말로 기괴한 현상이 일어나는데, “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음 같고 소다 위에 식초를 부음 같으니라(잠 25:20).” 그러니 우리가 같이하지 못하는 슬픔보다 더 잔인한 일이 또 있을까? “그의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 2:9).” 하고 저는 떠난다. 그러나 성경은 일러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롬 12:15).”
곧 오늘 우리 사회의 일련의 참사를 보며 이에 남은 가족과 그 슬픔을 위로하지 못하는 자들의 괴리가 무섭다.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한 관료들의 모습에 환멸을 느끼기도 한다. 슬픔이 우리로 노래를 멈추게도 한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137:1-4).
그러나 그 노래가 또한 우리로 슬픔을 견디게 한다.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42:7-9).
슬픔이 우리로 하나님을 찾고 묻고 탄식하게 한다. 노래가 그치고 모든 게 끝장난 것처럼 괴롭기만 하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그를 위하여 애가를 지었으며 모든 노래하는 남자들과 여자들은 요시야를 슬피 노래하니 이스라엘에 규례가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며 그 가사는 애가 중에 기록되었더라(대하 35:25).” 곧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행 16:25-26).”
곧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슬픔과 노래가 함께 있다. 인생의 한 밤에 찬송이 드려진다. 내가 좋아하는 찬송 중에 <내 평생에 가는 길>이란 곡이 있다. 이 찬송은 호레이셔 게이츠 스패포드에 의해 지어졌다. 저는 사업가로 그의 공장은 번창하였고, 많은 교회 재단과 하나님의 일에 후원하였다. 그러다 저의 공장에 화재가 났고 많은 피해가 생겼다. 이를 잘 수습하여 어느 정도 안정을 되찾자, 저는 사랑하는 아내와 네 딸을 배에 태워 고향으로 보냈고, 재기에 성공하면 다시 부르기로 하였다. 그러나 저의 딸들과 아내를 태운 증기선이 여객선과 충돌하여 침몰하는 참사를 빚었다. 그때 그의 아내는 침몰하는 난간에 매달려 마지막 순간에도 남편을 위해 기도하였다. 후에 이 소식을 들은 스패포드는 슬픔을 딛고 찬송을 지었다.
내 평생에 가는길 순탄하여
늘 잔잔한 강 같든지
큰 풍파로 무섭고 어렵든지
나의 영혼은 늘 편하다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영혼 평안해
저 마귀는 우리를 삼키려고
입 벌리고 달려와도
예수는 우리의 대장되니
끝내 싸워서 이기리라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영혼 평안해
내 지은 죄 주홍빛 같더라도
주 예수께 다 아뢰면
그 십자가 피로써 다 씻으사
흰눈보다 정하리라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영혼 평안해
저 공중에 구름이 일어나며
큰 나팔이 울릴 때에
주 오셔서 세상을 심판해도
나의 영혼은 겁 없으리
내 영혼 평안해
내 영혼 내영혼 평안해
(새찬송가 413장).
이렇게 우리의 노래는 고난 뒤에 온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4).” 곧 우리의 모든 슬픔은 사라질 것이다. 모든 고난은 끝이 난다. 그 뒤에는 “그들이 새 노래를 불러 이르되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이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그들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들을 삼으셨으니 그들이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하더라(5:9-10).” 그리하여 우리는 담대함을 얻는다.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사 35:10).”
오늘 본문에서 이와 같은 고난과 슬픔을 기도와 찬송으로 이어가는 한 사람 에스라를 보면서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롬 5:18).” 이를 오늘 시인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125:1).
이와 같이 정의하고 있는 것이다. 슬픔과 불안이 우리를 흔들어 놓을 때 우리로 말씀은 찬송하게 한다. 곧 우리는 주를 의뢰하는 자들이다. 우리는 주가 계신 시온 산에서 요동하지 않는다. 산이 흔들려 바다에 빠질지라도,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46:2-3).
배가 뒤집힐 듯 바람이 불고 풍랑이 거세게 몰아친다 해도, “예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더니 제자들이 깨우며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죽게 된 것을 돌보지 아니하시나이까 하니(막 4:38).” 또한 모든 사람이 죽음의 공포에 질리는 순간에도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 27:24-25).” 우리는 믿음이 없어 주를 의심하지 않는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 4:20-22).” 곧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은 선하고 타당하다.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147:1).
이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 1:6-7).” 말씀 앞에 붙들려 말씀으로 노래한다는 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보호자이시기 때문이다.
산들이 예루살렘을 두름과 같이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두르시리로다
(125:2).
그러므로 “영원하신 하나님이 네 처소가 되시니 그의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에 있도다 그가 네 앞에서 대적을 쫓으시며 멸하라 하시도다(신 33:27).” 이와 같은 놀라운 은혜를 놓치지 않으려고 나는 새벽에 눈을 뜨면 성전으로 올라온다. 그리하여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불로 둘러싼 성곽이 되며 그 가운데에서 영광이 되리라(슥 2:5).” 그 하나님의 구원을 끊을 자는 없다.
악인의 규가 의인들의 땅에서는
그 권세를 누리지 못하리니
이는 의인들로 하여금
죄악에 손을 대지 아니하게 함이로다
(3).
주가 나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시기 때문이다.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보라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사 50:9).” 하여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빌 1:28).” 이와 같은 말씀으로 노래를 삼아 살 수 있는 것이 은혜이다.
여호와여 선한 자들과
마음이 정직한 자들에게 선대하소서
(4).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는 일, 죄가 우리를 더는 이끌어가지 못한다. 어떤 경우에도 돌이켜 회개의 자리로 불러 세우신다. 다시는 나를 빼앗기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살전 4:1).” 세상이 어떻고, 사회가 아무리 어떠하다 해도,
자기의 굽은 길로 치우치는 자들은
여호와께서 죄를 범하는 자들과 함께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스라엘에게는 평강이 있을지어다
(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