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그를 찬양할지어다

전봉석 2022. 11. 26. 05:07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에스더 10:3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 데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시편 148:1

 

 

단편으로 그려진 에스더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숨김없이 드러낸다. 하나님은 약속하신 것을 지키시며, 복을 주기 위해 떠나지 않으실 것이고, 주를 경외하는 마음을 우리에게 더하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우리를 이 땅에 두셨다. 이를 예레미야의 진술로 들어보면,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기 위하여 그들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는 영원한 언약을 그들에게 세우고 나를 경외함을 그들의 마음에 두어 나를 떠나지 않게 하고 내가 기쁨으로 그들에게 복을 주되 분명히 나의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이 땅에 심으리라(렘 32:40-41).”

 

이를 에스더서에서 밝히는 부림절과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로 사탄의 그 어떤 음모와 술수에서도 건지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 곧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고난의 과정을 통해 진정한 영광이 드러난다. 이에 우리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히 12:2).” 이를 위해 흔들리지 않는 영광을 얻으셨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9-11).”

 

그러므로 우린 이와 같은 말씀 한 편을 읽고 묵상하면 어떤 고난을 통하여 우리가 장차 받을 영광을 상상하고 소망하게 된다.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그래서 어려움이 닥칠 때 또한 소망으로 기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벧전 1:6).” 이는 모두 성경의 약속으로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

 

우리가 세상 그 무엇을 바라지 않고 오직 주만 바람으로 나아가는 것은 그것이 우리에게 가져다 줄 놀라운 역사를 알기 때문이다. 이러한 말씀과 성경의 약속을 통해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7-18).” 그러므로 우린 오히려 즐거워할 수 있다.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 4:13-14).”

 

곧 오늘 우리의 비천함과 고귀함은 하나로 본문에서 모르드개가 얻은 영광은 장차 우리가 받을 영광을 상상하게 한다.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에 10:3).” 우리를 마치 세상의 구경거리로 내주신 것 같을 때가 있다. 닥치는 여러 어려움이 주를 믿는다 하고 주의 일을 한다고 하는 사람이 당하는 모습으로 때론 저들의 멸시와 조롱을 받게도 하신다.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고전 4:9).”

 

더 나아가 견디기 힘든 현실을 감당하게도 하신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 4:8-10).” 그러나 그러한 숨은 의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심으로 이로써 우리의 영광이 되게 하려 하심이다. 이를 통해 복을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신다.’ 우리 안에 주를 경외하는 마음을 두어 떠나지 않게 하셨다. 이 놀라우신 섭리를 알게 하는 성경이 단편 에스더서의 주제다.

 

그리하여 오늘 우리는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9-10).” 스스로도 자신의 이와 같은 능력, 하나님이 더하시는 은혜를 안다면,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약 2:5).”

 

곧 나 같은 자로 오늘 이처럼 말씀을 가까이 하게 하시고 주가 함께 하심을 삶으로 알게 하심도 ‘복 있는 사람’의 증거다.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 하여 내가 주 앞에서 온전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이러한 말씀 가운데 나를 세우심이 복이었다. 육신이 고단하고 삶이 더러 어려움으로 힘겹게 할지라도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전 10:33).”

 

이를 오늘 시편으로 그대로 옮겨보면,

 

할렐루야

하늘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며

높은 데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148:1).

 

찬송은 불현듯 일어나는 기쁨 같다. 울컥, 하고 솟구치는 감사의 눈물이기도 하다. 곧 내가 이 땅을 살면서 가장 고상하게 잘할 수 있는 한 가지는 찬송이었다. 앞서 147편에서도,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

(147:1).

 

마땅하다는 것,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135:3).

 

이에 우리가 시편을 산다는 일은 ‘그럴 수 없는 중에’ 찬송과 감사를 알게 되는 일이다. 이를 베드로는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어째서 그럴 수 있고 그래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곧 나는 택하신 족속이다.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다. 나는 주가 거하시는 거룩한 나라다. 저의 소유다. 나로 어두운 데서 불러내신 것은 이를 위해 죽으심으로 빛으로 불러내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다. 하여,

 

그의 모든 천사여 찬양하며

모든 군대여 그를 찬양할지어다

(2).

 

우리는 물론 천사와 군사도 그를 찬양하고,

 

해와 달아 그를 찬양하며

밝은 별들아 다 그를 찬양할지어다

하늘의 하늘도 그를 찬양하며

하늘 위에 있는 물들도

그를 찬양할지어다

(3-4).

 

이 땅의 모든 삼라만상 주가 만드신 것들은 다 주를 찬송하게 지음을 받았다. 곧 우리는 모두 예배자들이다.

 

보라

밤에 여호와의 성전에 서 있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134편 전문).

 

이는 산 것들의 의무이면서 권리고 영광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150:6).

 

그리하여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19-20).” 오늘은 어디가 불편하고 어디가 아파고 어떤 일로 고달프고 마음이 어렵다 해도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6-17).” 이것이 우리에게 더하신 사명이었다.

 

그것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함은

그가 명령하시므로 지음을 받았음이로다

(5).

 

고로,

 

그가 또 그것들을 영원히 세우시고

폐하지 못할 명령을 정하셨도다

(6).

 

우리에게 맡기신 사역에는 반드시 하나님이 정하신 바 그 세우신 약속을 결코 폐하심이 없다. 이에.

 

너희 용들과 바다여

땅에서 여호와를 찬양하라

불과 우박과 눈과 안개와

그의 말씀을 따르는 광풍이며

산들과 모든 작은 산과

과수와 모든 백향목이며

짐승과 모든 가축과

기는 것과 나는 새며

세상의 왕들과 모든 백성들과

고관들과 땅의 모든 재판관들이며

총각과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아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할지어다

그의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뛰어나심이로다

(7-13).

 

전 우주적인 이 역사 앞에 굳이 이를 외면하고 부정하며 사는 일이 더 고될 것이다. 사느라 사는데 그 삶이 그 지옥 같은 이유도 그래서이다. 이에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이다(대상 29:11).” 이 모든 것, 그 모든 상황들이 주의 것임을 알면,

 

여호와여 주의 능력으로

높임을 받으소서

우리가 주의 권능을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소서

(21:13).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었다. 나름 수고하고 애쓰나 그 숨은 능력은 주의 은혜였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 17:4-5).” 하면 믿는 우리 모두는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1).”

 

그러할 때 “기약이 이르면 하나님이 그의 나타나심을 보이시리니 하나님은 복되시고 유일하신 주권자이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딤전 6:15-16).” 그리하여,

 

그가 그의 백성의 뿔을 높이셨으니

그는 모든 성도 곧 그를 가까이 하는 백성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 받을 이시로다

할렐루야

 

(148:1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