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15편 /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221211 주일
시편 115편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시 115:11, 15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너희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로다
들어가는 말
신앙을 바로 간직하려 할 때 ‘영적침체’는 아주 사소한 이유로 시작된다. 여기에는 외적인 요인과 내적인 요인이 있다. 외적인 요인은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하는 식으로 우리 곁의 사람과 그 주변 환경으로 인하여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내게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도다(시 42:3, 10).” 하고 공격하는 것이다. 내적인 요인은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모든 파도와 물결이 나를 휩쓸었나이다(3, 7).” 곧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은 고통과 슬픔에 빠지는 경우들을 생각하면 된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가 몸부림쳐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에게 선포해야 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5).” 하고 욥과 같이, 실망하여 하는 말은 바람에 날아가는 말과 같다고 여겨야 한다. “너희가 남의 말을 꾸짖을 생각을 하나 실망한 자의 말은 바람에 날아가느니라(욥 6:26).” 다윗도 이를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하였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시 1:4).” 고로 염려의 무게는 그만큼 무가치하다.
한데 이를 선뜻 못하는 이유가 ‘대부분의 불행은 자신에게 선포하기보다 자신의 말을 듣기 때문이다.’라고 한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의 설교와 같다. 그러다보니 잠에서 깨면서부터 우린 자신에게 선포하기 보다 자신의 염려와 근심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이 일을 어쩌지?’ 하는 걱정의 소리가 아침부터 우리 영혼을 짓누르는 것이다. 그럴 때,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하고 선포해야 한다(시 42:11).
이를 오늘 본문에 앞서 살핀 것은 <우리가 영적인 침체를 겪을 때, 자신의 영혼을 다루어야 하는 여섯 가지 방법>을 먼저 살펴보고, 이것이 오늘 주제이면서 핵심 말씀인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너희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로다(115:11, 15).”의 밑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첫째,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잊지 않고 계시다는 사실을 분명히 믿고 의지해야 한다고 선포해야 한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시 42:8).”
둘째, 절망 중에 오히려 우리는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선포해야 한다.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심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6).”
셋째, 인생의 ‘밤’이 찾아왔을 때 오히려 우리는 주를 찬송하고 기도해야 할 기회라는 사실을 선포해야 한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의 인자하심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의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8).”
넷째, 자신의 속에서 말하고자 하는 변명과 억울한 소리를 듣기보다 그러한 자신에게 하나님께 소망이 있음을 선포해야 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5).”
다섯째, 그동안 우리가 살아오는 시간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어떻게 함께 하셨는가를 묵상하며 주의 인자하심을 기억해야 한다고 선포해야 한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4).”
여섯째, 영적인 침체 속에서도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시는 힘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사실을 은혜로 알고 이를 선포해야 한다.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1-2).”
곧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잠 24:16).” 이 차이를 분명히 알고 우린 이를 우리 자신에게 선포함으로 영적침체를 툭툭, 털고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수시로 찾아오는 심리적 괴로움과 갈등은 건강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그때마다 우리 감정은 양분된다. 그때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一心)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시 86:11).” 두 개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전심으로 주를 바라야 한다. “내가 전심(全心)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119:10).”
모든 믿음의 사람들은 영적침체를 겪는다. 천하의 이사야 선지자는 그럴 때, “여호와여 그들이 환난 중에 주를 앙모하였사오며 주의 징벌이 그들에게 임할 때에 그들이 간절히 주께 기도하였나이다(사 26:16).” 곧 기도부터 하기를 바랐다. 바울은 ‘우리 안에 착한 일’ 곧 구원을 시작하신 이를 떠올렸다.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다윗은 그때마다 주께 피한다고 하였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아오는 모든 자들에게서 나를 구원하여 내소서(시 7:1).” 베드로는 말씀만을 의지하였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 6:68).” 솔로몬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 29:25).”
그리하여 ‘인내로 얻는 산 소망’으로 우리는 영원히 누릴 천국을 바라고 나아간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3-4).” 곧 우리 삶의 터전은 이 땅이 전부가 아니다. 영적침체로 신앙이 가라앉을 때 속수무책으로 가만 있을 게 아니라, 기도하고 주께 피하며 말씀으로 선포해야 한다.
본문 이해
오늘 시편도 할렐 시다. 하나님께 영광의 올리는 절기 찬송의 시 가운데 세 번째 시편이다. 시적 배경은 정확하지 않다. 다만 유다가 앗수르 산헤립의 침공으로부터 구원받는 사건(사 36-37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 당시의 히스기야 왕이 쓴 시가 아닐까 추측한다.
오늘 시는 다섯 부분으로 나뉜다. 1연(1-2절)은 세상이 하나님을 모독하지 못하도록 주의 영광을 입증해 주실 것을 간구한다. 2연(3-8절)은 우상들과 달리 실재하시는 하나님을 선포한다. 3연(9-13절)은 하나님만 의뢰하는 것이 복인 것을 선포한다. 4연(14-15절)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선민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신다고 축도한다. 5연(16-18절)은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시인은 영원히 하나님을 찬양할 것을 선언한다.
시적구성에 따라 오늘 나누는 말씀의 줄기도 <다섯 가지의 선포>로 하여, 영적침체가 왔을 때 우리 자신에게 외쳤던 것처럼 세상을 향해 당당히 선포하고 나아가야 하는 것을 알게 된다.
1.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당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영광을 입증하실 것이다(1-2).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 어찌하여 뭇 나라가 그들의 하나님이 이제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리이까(115:1-2).”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상의 땅이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동시에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는 시대이다. 바알은 시리아의 ‘남신’이다. ‘소유자’란 뜻이다. 천후와 풍요를 다스린다. 아스다롯은 가나안의 신들 중에 가장 선호하는 신으로 아스타르테, 아쉬타르 등 앗수르와 그리스에서도 사랑 받는 여신이다. 신화에 따르면 엘 신과 아세라 신이 결혼하여 낳은 자녀가 바알과 아스다롯이다. 바알은 여동생들 중 가장 아리따운 아스다롯을 사랑하였다.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그리스 사람들은 저를 사랑의 여신 ‘아프로디테’라 하였고, 로마 사람들은 ‘비너스’라 하였다. 저는 파괴의 신이기도 하여서 바알 신전에서 아스다롯을 함께 제사하며 섹스와 광란의 제단으로 음란의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오늘도 다를 게 없다. 가령 스타벅스 엠블러 로고는 바다의 여신 사이렌이다. 사이렌의 긴 머리와 두 개의 꼬리가 심벌이다. 사이렌의 소리가 영혼을 매혹하는 힘을 가졌다고 알려져 있다. 아무렇지 않게 방심하는 사이 문화와 세계화와 화합이란 차원에서 우린 ‘아무 생각없이’ 이를 수용하고 즐긴다. 우리 영혼을 허약한 체질로 만드는 것은 스스럼없이 물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 55:8).” 이와 같은 말씀에 신중해야 한다. 바울은 우리의 가장 큰 실수는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3).” 여기에 무심(無心)할 때 영적침체는 찾아온다.
2. 우상은 허상이라는 사실과 하나님은 실재이시다 하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3-8).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3).”
오늘 시편은 우상의 실체를 우리에게 알게 한다(4-7). ①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다. 물질과 탐욕의 신이다. ②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다. 이를 예술적 가치로 높이지만, 허구이고 허상을 바탕으로 한다. ③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한다. 실체가 없다. ④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 청맹과니와 같이 눈뜬장님으로 보이지가 않는다. 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 아무리 경고하고 큰 소리로 다급하게 불러도 듣지를 않는다. ⑥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한다. 느낌은 그때뿐이어서 바람에 날리는 향기 같다. ⑦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한다. 죽어라 일을 하는데 손에 쥐는 게 없다. ⑧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한다. 열심을 다해 달렸는데 제자리다. ⑨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한다(4-7). 모양만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찬송도 기도도 실체적 감사도 없다. ⑩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8).” 의도하고 만든 이나 아무 생각 없이 따른 자들이나 그들이 당도하는 지점은 같은 곳이다.
그래서 오늘 시인은 완곡한 것이다. “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는 하등에 쓸모없는 존재인 것을 알고,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1).” 하고 간구함으로 주가 인정하는 것이 우리의 의가 되는 것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롬 3:22).” 이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어보면,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겔 36:22).”
그러므로 우리의 영적침체는 자연발생적이면서 무심함에서 오는 우리 영혼의 안이함을 알리는 몸살과 같다. 곧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3).” 이에 우리는 하등에 쓸모없는 나약한 존재인 것을 인정하면서 이 영적침체에 빠진 우리 영혼에 선포해야 한다. “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시 115:3).”
3. 하나님만 의지함으로 우리에게 도움과 방패는 하나님의 신령한 복을 받는 것임을 선포해야 한다(9-13).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9).”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주를 의지하는 힘’이 필요하다. 조금만 둘러봐도 우상 아닌 것이 없다. 그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도움이시고, 우리의 방패가 되시는 ‘하나님의 복’이 필요한데, 그러려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11).” 이 복을 주시되 주를 경외하는 모든 자들에게 더하신다. 곧 바라기만 하면, “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을 막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리로다(13).”
4. 하나님은 누구보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신다(14-15절). “여호와께서 너희를 곧 너희와 너희의 자손을 더욱 번창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14).”
저는 누구신가? 천지를 지으신 이시다. 우리의 모든 소망과 바람은 주의 장중에 있다. 그러므로 “너희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로다(15).” ‘받을 것이다’, ‘받아야 한다’가 아닌 ‘받는 자로다.’
5.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사람들이다(16-18). “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사람에게 주셨도다(16).”
우리가 살았으면 산 자의 증거가 나타나야 한다. 의기소침하고 무감각하여 영적무기력증에 머물면 사탄에게 틈을 주는 셈이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엡 4:27).” 그럴 때 놀랍게도 그럴듯한 성공과 형통함으로 사는 게 훨씬 수월하게 잘 풀리는 것 같다. 곧 영적침체가 길어지면 말씀과 기도는 잃고, 온갖 권모술수가 는다. 찬양과 송축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자신의 만족을 채운다. 그리하여 “죽은 자들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로 내려가는 자들은 아무도 찬양하지 못하리로다(17).” 이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주를 경외하는 자들은 주를 찬송하는데 익숙하여진다. “우리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송축하리로다 할렐루야(18).” 그러니까 점점 좋아하는 게 바뀌어서, 아이 앞에 놓인 ‘막대사탕’과 ‘다이몬드’의 가치와 같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11).” 하면 오늘,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나오는 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신을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렘 23:24).”
날로 우상이 가득하여 활개 치는 세상에서 주가 물으신다.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결국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115:8).” 우리는 만들지 않았다고 방심할 문제가 아니다. 아무렇지 않게 소비할 때… 그 회사가 이단인지, 혹여 의도적으로 우상을 숭배하는 기업인지, 사탄을 숭상하는 나라인지… 현대 사회에 그런 것을 뭐 그리 일일이 신경 쓰며 사는가? 하고 무심할 때 우리의 영적침체는 우리 몸도 그런 것처럼 그러다 흐트러진 자세 때문에 디스크가 터지고, 위가 상하고 간이 망가지는 것이다. 그런 신호가 왔을 때 자세를 바로 하고 섭생을 고루하듯 우리 영혼에도 선포해야 하는 것이다!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 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삿 5:31).” 그리하여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2).” 이는 누가 지어낸 허상이거나 꾸며낸 허구가 아니다. 이를 위하여 우린 구하고 바라고 선포해야 한다. 이를 네 가지로 정리하고 마치겠다.
첫째, 성령의 능력을 구하고, 이를 우리 영혼에도 선포해야 한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롬 15:13).”
둘째, 부자가 되려고 너무 애쓰지 말고, 그에 따른 심각한 문제점을 우리 영혼에 선포해야 한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9-10).”
셋째,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몸에 익혀야 하고, 이를 날마다 실천하며 선포해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넷째, 영적침체에서 벗어나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고, 이를 우리 영혼에 명령하고 선포해야 한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8-1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