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밤이 되면 내 뼈가 쑤시니 나의 아픔이 쉬지 아니하는구나

전봉석 2022. 12. 26. 04:58


밤이 되면 내 뼈가 쑤시니 나의 아픔이 쉬지 아니하는구나 그가 큰 능력으로 나의 옷을 떨쳐 버리시며 나의 옷깃처럼 나를 휘어잡으시는구나
욥기 30:17-18

여호와는 그들의 힘이시요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이시로다
시편 28:8



욥의 후기 독백이다. 젊은 자들에게 조롱당하는 것에 탄식하는 내용으로 시작한다(1-8). 문득 우리의 늙음이 젊음의 웃음거리 같이 여겨진다. 이와 같은 비천함은 하나님에 의한 것임을(9-15). ‘인생의 사계절’ 중에 가을이 가고 겨울이 깊을수록 이와 같은 탄식과 절망은 정당한 것이 아닐까? 육체적 고통은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게 한다(16-19). 그리하여 하나님께 절규하는 것(20-24), 그 심경을 토로하며 누추한 모습으로 한탄하고 있다(20-31).

요즘 나는 늙으신 장모와 같이 살면서 ‘늙음과 죽음’은 준비가 필요하고 그에 따른 연습-받아들임이 요구되는 것이란 생각을 자주한다. 곧 아흔을 바라보면서도 뭐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 몸의 쇠약함으로 절망한다. 나는 장모가 오면서 수다스러워졌다. 같이 식사를 하고 저의 지난날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면서, 그런 나의 모습에 아내는 낯설어한다. 장모의 말은 더 어눌해지고 금세 잊기 일쑤다. 아내는 속상해서 그러는지 뭐라 다그치거나 잔소리를 하면 내가 더 듣기 싫다.

어제는 오후께 한참 늦게야 미장원이라며 연락이 왔다. 실은 어머니가 변비로 고통스러워하였고, 급기야 용변을 지리며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혹시 몰라 관장약을 사두었다. 집에 들어가기 전 아내와 잠깐 이야기했다. 우리는 모두 다 처음으로 산다. 각자의 지금은 처음이라, 때론 두렵고 낯설다. 우리가 쉰 끝자락을 바라보며 몸의 변화와 어떤 질병을 동행하듯 어머니도 저의 오늘이 처음이긴 마찬가지다. 우리는 죽음을 준비해야 하고 늙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에 따른 몸의 이상반응도 인정해야 한다. 순응이 없으면 거부감만 밀려와 반항기 아이와 같이 중년과 노년의 불안이 가중된다. 마음은 여전한데 몸은 저만치 뒤쳐지기만 하니 짜증만 인다.

아내를 뭐라 나무랄 생각은 없다. 어머니는 헌금봉투에 기도제목으로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기를 구하였다. 나는 이를 읽고 어떤 안타까움으로 주의 이름을 되뇌었더랬다. ‘복을 기대하였으나 화가 왔고, 광명을 기대하였으나 흑암이 왔다.’ 오늘 욥은 자신의 외로움을 주가 외면하시는가, 하고 저를 신뢰하던 마음이 흔들림을 호소한다. “이제는 내 생명이 내 속에서 녹으니 환난 날이 나를 사로잡음이라.” 심적으로 그러하고, “밤이 되면 내 뼈가 쑤시니 나의 아픔이 쉬지 아니하는구나.” 육체적으로도 다르지 않다(16, 17). 그러니 하나님께 호소한다. “그가 큰 능력으로 나의 옷을 떨쳐 버리시며 나의 옷깃처럼 나를 휘어잡으시는구나(18).”

우리가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이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은 일정부분 순응함으로 순종에 이른다. 아침에 성전에 나와 폴 투르니에의 <인생의 사계절>을 찾는데 누굴 주었나? 생각하다 한 권을 다시 주문했다.

밥상을 사이에 두고 장모는 자신의 협착증 수술을 어쩌면 좋겠는가, 물으셨다. 의사들도 분분하여 누군 수술을 권하고 누구는 연세를 거론하며 만류하였다. 어머니는 어떠신가? 하고 되물었더니 어떤 날은 좀 견딜만하고 어떤 날은 밤새 괴롭다고 하였다. 나는 어머니가 우리의 늙음은 병듦과 죽음을 받아들이는 시간이라고, 믿는 자는 죽음을 넘어 잠시 잠들었다 깨어나 주와 함께 하는 것이라 말해주었다. 그때 우리의 모습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젊고 고왔던 시절의 우리 모습 이상일 것이라 덧붙였다. 본인에게는 열다섯, 열여섯 시집오던 때가 가장 좋았노라 회상하였다. 이에 오늘 우리가 겪는 육체나 마음의 고통은 잠시 겪는 시간으로, 하나님을 더욱 간절하게 바라고 사모하는 시간이 되어줄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7-18).”

인생의 짙은 겨울을 지나면서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추위와 그 쓸쓸함을 마주해야 한다. 나무들은 마지막 잎사귀까지 모두 떨어뜨리고 심지어 자신들의 등껍질까지 바짝 말려 벗겨내면서까지 혹독한 겨울을 난다. 우리의 봄날은 곧 맞이하게 될 ‘보이지 않는 영생’이다. 이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 “하나님이 나를 진흙 가운데 던지셨고 나를 티끌과 재 같게 하셨구나(19).” 그러니 누구를 바라고 더욱 구하여야 할까? “내가 주께 부르짖으나 주께서 대답하지 아니하시오며 내가 섰사오나 주께서 나를 돌아보지 아니하시나이다(20).” 생의 막바지 고통에서 우린 종종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한다. 이는 결코 외면하심이 아니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합 2:3).”

나는 어머니께 장기기증과 시신기증 카드를 보여드렸다. “내가 아나이다 주께서 나를 죽게 하사 모든 생물을 위하여 정한 집으로 돌려보내시리이다(23).” 오늘 욥의 이러한 원리를 인정하면서 쓸 게 있으면 그리 남겨주고 가기로 했다고 말씀드렸다. 이를 무섭다고 하는 어머니에게 우리가 예수 재림의 때에 완전한 육신으로 다시 거듭날 텐데, 우리 영혼은 물론 육체도 완전함으로 주 앞에 모여 설 것임을 설명하였다. 이를 바울의 설교로 다시 들으면,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

우리가 사는 이유는 주를 더욱 나타내는 것으로, ‘이로 말미암아’ 저마다의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하는 것에서 오늘을 돌아보게 한다. 말씀이 나를 건드리고 나의 생활을 흔들지 않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어떤 날을 떠올리며 그때는 몰랐으나 이제는 말씀을 알게 되면서 주의 은혜를 확신하는 것과 같이, 장래 일이야 아직은 알 수 없지만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이를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지난날을 반추하여 주의 사랑이 내게 어떠하셨던가? 알면 알수록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하는 믿음은 더욱 굳건해지는 것이다(요일 3:2).

나는 장모 앞에 죽음을 준비하는 일과 늙음에 따른 여러 질병과 고통을 받아들임에 대하여… 어쩔 수 없는 일에 너무 마음을 두지 않는 것이 순응을 돕고 순종으로 이끌어준다고 설명하였다. 이를 말로 알리고 이해를 구하는 일은 어렵다. 주가 함께 하시길 바랐다. 식후에 어머니는 관장을 하였고, 아내는 어머니의 변을 받아냈다. 나는 오십견으로 진통제를 먹고 잤다. 이렇듯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중요한 것은 속사람으로 이는 앞서 보았던 사도 요한의 설교처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2-3).” 다시 붙들지만,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청소년 때에 장래를 준비하듯 우리는 이제 노년을 연습하며 장래의 일, 그 영생을 대비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이 넘어질 때에 어찌 손을 펴지 아니하며 재앙을 당할 때에 어찌 도움을 부르짖지 아니하리이까(욥 30:24).” 하며 우리의 마땅한 간구를 하나님께 아뢰며 간구한다. 그런데 도리어 “내가 복을 바랐더니 화가 왔고 광명을 기다렸더니 흑암이 왔구나(26).” 그러니 심적으로 어떠하겠나? “내 마음이 들끓어 고요함이 없구나 환난 날이 내게 임하였구나(27).” 주 앞에 흔들리는 자신을 가감 없이 표출한다. 아, “내 수금은 통곡이 되었고 내 피리는 애곡이 되었구나(31).” 이는 불신앙도 불순종도 아니다. 육신을 입고 사는 데 있어 우리의 어쩔 수 없음에 대하여 주의 긍휼하심을 바라는 것으로,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시 116:5).

어제의 설교와 오후에 있었던 일련의 소동과 오늘의 말씀이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의 것이었으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그러니 이와 같은 묵상에서 나의 이야기가 연관되고 내 곁의 이런저런 사람과 사건과 상황이 서로 뒤엉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도 말씀이었다. 삶과 말씀이 밀접한 이유다. 그것으로 하루를 살고, 누구의 일에 개입하고, 내 이야기에 적용하며, 설교가 되고, 삶이 되어 어느 훗날 하나님 앞에 모여 앉은 모세나 아브라함이나 다윗이나 바울이나 요한이나… 저들과 우린 주거니 받거니, 말하고 고백하고 함께 주를 찬양할 것이다.

이러한 세계를 나는 어제 장모에게 잘 전달한 것일까? 앞으로의 남은 일이겠다. 아내에게도 이를 말해주었다. 저의 고단함과 힘에 부치는 오늘의 어려움이 반드시 주 앞에서 나타날 것이다. 이를 위해 성육신을 입고 아기 예수로 오신 성탄절이었고, 우리는 ‘예수’로 인하여 ‘구원’을 받은 백성이다. 그렇게 우린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엡 2:4-5).” 이것이 결코 이 땅의 일로 그치는 게 아니었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6-7).” 하여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잠 14:32).” 곧 우리의 죽음도 소망인 것을.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28:6).

이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이를 앎으로 우린 가능하였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나는 비로소 누굴 부러워하거나 조바심내지 않는다. 주를 멀리하고 사는 동안에는 문단에 이름도 알리고 인정받는 사람으로 살기를, 누구처럼 지상의 번듯한 집 한 채 가지고, 넉넉하게 때론 여유롭게 살기를 꿈꾸고 이를 위해 바동거리며 살았으나, “…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전 1:2-3).” 전원생활을 꿈꾸며 비로소 장만한 어느 산자락 기슭에서 이제 유유자적하려는가? 했더니 난데없는 구강암은 또 뭐람? 평생 한 직장에 매여 악착같이 가족 수대로 집 칸 마련하고 퇴임하여 세계여행을 꿈꾸던 것이 집값폭락과 금리인상으로 졸지에 어디서 막노동이라도 해야 할 신세이니…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하며 강물은 어느 곳으로 흐르든지 그리로 연하여 흐르느니라(6-7).”

거기서 알게 되는 사실,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
(7).

오늘 시인은 복음의 진리를 알게 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하여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 고로

여호와는 그들의 힘이시요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이시로다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
(8-9).

하는 기도로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사 26:3).” 하면 이제,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시 55:2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