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전봉석 2023. 1. 2. 05:11

 

전능자를 우리가 찾을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정의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심이니라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를 경외하고 그는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모든 자를 무시하시느니라

욥기 37:23-24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시편 35:28

 

 

 

우린 자연발생적인 것에서 두려워 떨기도 한다. 엘리후도 “이로 말미암아 내 마음이 떨며 그 자리에서 흔들렸도다(1).” 하면서 거기서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음성 곧 그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똑똑히 들으라(2).” 곧 천둥소리를 하나님의 소리로 비유하거나 그처럼 인식하는 경우도 있다.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시 29:3-4).

 

실제 히브리인들은 그리 두려워하였다.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을 산 위 불 가운데, 구름 가운데, 흑암 가운데에서 큰 음성으로 너희 총회에 이르신 후에 더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그것을 두 돌판에 써서 내게 주셨느니라(신 5:22).” 자연과 함께 자연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은 가려지고 드러나서 이를 또 자연신으로 숭상하는 무지몽매한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그만큼 두렵고 떨리는 존재인 분이시나 더는 우리에게 ‘무서운 존재’가 아니시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롬 8:14-15).”

 

어떤 잘못으로 인하여 아이가 그 부모를 두려워하는 것처럼 우리도 죄로 인하여 두려워 떨 수 있다. 그 자체로는 순수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더는 죄로부터 해방된 자로서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6-18).” 이 놀라운 관계변화로 우리는 산다. 즉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20).”

 

고로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10).” 전에는 반목과 두려움 속에서 회피와 도망쳐 숨기 일쑤였다면 이제는 다르다. 그래서 엘리후는 2절에서 외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 곧 그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들으라 들으라(개역한글).” 전에는 그저 두려움과 공포의 의성어에 불과했던 천둥과 번개와 같은 존재였다면 이제는 두런두런 말씀드리고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이에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신 11:27).” 하여 우리의 복음은 들음에 있다.

 

주께서 나의 귀를 통하여 들리시기를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하시며

번제와 속죄제를 요구치 아니하신다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40:6, 51:17).

 

곧 하나님이 무얼 원하시는지….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일어나서 산 앞에서 쟁변하여 작은 산으로 네 목소리를 듣게 하라 하셨나니(미 6:1).” 나의 목소리, 내가 아뢰는 말씀, 호소하며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주는 기뻐하신다. 다만 그러기를 꺼려하는 것은 죄 때문이었다. 아,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신 32:6).” 이 놀라운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주의 한없는 사랑은 진가를 발휘하신다.

 

곧 하나님의 섭리, 그 놀라우신 숨은 의도를 알게 될 때,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5).” 곧 나 역시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자주 듣곤 하였던, ‘하나님은 너를 특별히 사랑하신다. 뜻이 계셔서 너를 지으셨다.’ 하는 말이 어느 훗날 오늘에 이르러는 지난날의 어떤 앙금도 노여움으로 담고 살지 않게 하였다. 상상 그 이상의 고단한 삶이었고 험난했던 시절이었다고 하나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롬 11:33).” 그래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성경으로도,

 

진실로 사람의 노여움은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여움은

주께서 금하시리이다

(76:10).

 

나는 이를 인정하고 체험하며 산다. 오늘에는 나의 공황? 불안? 어떤 우울이나 심리적인 불안정? 이런 것까지도 사랑하는 것은 이로써 한 영혼을 이해하고 받고 저를 두고 주 앞에 씨름할 수 있다. 내가 하는 게 아니어서, 그리 하시는 이의 그 자녀에 대한 불가항력적인 은혜이고 성도의 견인이다(칼빈의 5대교리 중에서). 이를 몸소 누리고 다른 이의 것으로 채울 수 있다는 게 이루어가야 할 성화이고 앞으로 누리게 될 영화가 아닐까? 가끔은 아주 더디게 조금씩은 앗? 하고 맛보곤 하는 경탄과 경이로움이 있다.

 

이를 자연이 알려주고 우리는 가끔 자연에게서 배운다. “그러므로 너희로 말미암아 하늘은 이슬을 그쳤고 땅은 산물을 그쳤으며 내가 이 땅과 산과 곡물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땅의 모든 소산과 사람과 가축과 손으로 수고하는 모든 일에 한재를 들게 하였느니라(학 1:10-11).” 우리가 주를 바라고 산다는 일은 자연에서 뿐 아니라 사람을 통하여도, 사회 사건과 연일 터지는 분쟁과 갈등 속에서도 알게 되는 것이다. 일찍이 예수님은 이를 알리시며,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마 24:5).” 점점 더 얼마나 많은 사이비종파들이 득세를 하고, 거기에 또 돈이 모이고 사람들이 몰려가곤 하는지…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6).” 어떻게 저런 꾐에 넘어갈 수 있지? 싶을 정도로 어처구니가 없는데 실상은 그만큼 다들 영혼들은 허해지는 것이다.

 

먹고 살만하고, 누리고 살 게 최첨단으로 화려한데 미국상류사회를 중심으로 열에 일곱은 수면제 없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열에 아홉은 알코올중독으로 술 없이는 대화도 잠도 이룰 수가 없다. 그렇게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7-8).” 이와 같은 말씀 앞에서도 ‘농담으로나’ 듣는 롯의 사위들 같은 사람들이 혼미하게 산다. 그런 가운데서도 우리는 안다.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신 29:29).”

 

여기서 엘리후의 조언대로 가만히 서서 묵상할 때이다. “… 이것을 듣고 가만히 서서 하나님의 오묘한 일을 깨달으라(14).” 점점 그럴 여유를 잃어가는 세상을 향한 말이다. 아이는 6월에 있을 회계사 2차 시험에 16일부터 연수를 시작으로 직장생활이 시작되는 것에 마음이 어려웠다. 저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그 모든 게 주의 뜻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그럴수록 묵상의 시간을 갖고 주와 함께 하고, 늘 저를 모시고 주신 삶에 충실하기를. 요셉과 오바댜와 다니엘과 그 친구들처럼, 이방나라에서 고위공직자로 살면서도 주를 경외하는 자로 흔들리지 않기를.

 

우린 다만 피조물로서 주의 것임을, 오늘 엘리후의 말처럼 “그대는 그를 도와 구름장들을 두들겨 넓게 만들어 녹여 부어 만든 거울 같이 단단하게 할 수 있겠느냐(18).” 우린 때로 우리가 찾을 수 없을 것 같으나 “전능자를 우리가 찾을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정의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심이니라(23).” 곧 오늘 나에게 맡기신 자리를 온전하게 지키지 못하면 다를 이로 대신 채우실 수도 있다. 아니, 길가의 돌이 떠들며 주를 증거하게 하실 수도 있다.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35:1).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가 상대하시는 세상이다. 주가 다 이겨놓으신 세상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우리는 다만 하나님과 화목함으로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잠 16:7).” 그러므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 5:18-19).” 우리에게 부탁하신 일,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의 구원을 기뻐하리로다

(9).

 

주어진 상황이 어떠하다 해도,

 

여호와여 주께서 이를 보셨사오니

잠잠하지 마옵소서

주여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22).

 

곧 그 하나님은 언제나 내 편이시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너는 나를 밀쳐 넘어뜨리려 하였으나

여호와께서는 나를 도우셨도다

(119:6, 13).

 

늘 저 하나님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심으로,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신 1:30).” 이는 오늘에도 동일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히 13:6).” 비록 나는 가진 것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나 “보라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냐 보라 그들은 다 옷과 같이 해어지며 좀이 그들을 먹으리라(사 50:9).” 주가 행하신다. 주로 하시게 하여, 주가 하실 때, 주는 기뻐 즐거워한다.

 

어떤 일이 헉, 하고 달려들 듯 암담할 때도 있지만… 그래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면, 이번 겨울은 부모님 댁에서 나야하겠나? 하고 걱정하였던 필리핀 동생네는 가족들이 들어오고 채 한 달도 안 돼 가까운 근처로 분가를 했다. 올 겨울만 다녀볼까, 하고 시작하였던 무슨 닭 공장에서도 외국인 노동자들과 한 달 전에 새로 들어온 전임 목사(?)의 출현은 기이하기까지 하다. 하나님이 어찌 하시려는 것일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을 한다. 막내 목사는 어디 부교역자 전임을 막으시더니, 웬 탈북자지원재단에서 사무국장일을 하게 되었다… 목사님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된 기독교단체라 하는데, 주중의 일이라 주말사역은 파트로 가능하다. 이건 또 뭐지? 싶어 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주목하게 된다. 그러는 동안 모든 게 다 적당하였고, 시의적절하였으며 안성맞춤이었고, 마치 처음부터 그러려고 그리 준비하였던 것처럼 일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는 경탄을 금치 못하겠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

 

나의 하나님, 나의 주여

떨치고 깨셔서 나를 공판하시며

나의 송사를 다스리소서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공의대로 나를 판단하사

그들이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소서

(23-24).

 

비록 마음은 졸리고 삶은 처량하여 걱정이 앞서고 있을 때도 우린 또한 주를 의뢰함으로, 의뢰하게 하시는 이의 강권하심에 두 손 들게 하신다. 하여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전 10:33).” 그렇듯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니!

 

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기꺼이 노래 부르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그의 종의 평안함을 기뻐하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는 말을

그들이 항상 말하게 하소서

(27).

 

그리하여,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2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