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전봉석 2023. 1. 10. 05:10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잠언 3: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편 43:5



우리의 죄성은 수시로 우릴 죄로 이끈다. 죄된 우리의 성품은 우리로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하게 한다. 온전하지 못한 마음과 정성으로는 그릇된 길로 갈 수밖에 없다. 하나님 앞에서 온전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한다. 이를 오늘 잠언에서는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3-4).” 곧 우리가 우리 자신의 감사와 그 영혼의 소중함을 간직하며 사는 일이란,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빌 1:21-22).”

곧 오늘을 육신으로 사는 게 내 일이라면,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20).” 이것으로 오늘 우리 삶의 기쁨이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가를 알게 한다. 그러므로 이 말씀이 나를 살린다. “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잠 3:1).”

이는 우리로 주께 감사하고 주신 상황 가운데서 그 기쁨, 하나님을 간직하며 살 게 한다. 하나님의 기쁨과 즐거움은 이것이다. 곧 하나님으로 만족이 없으면 우리 안에 온전함도 없다. 이는 매우 역동적인 것이어서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고후 8:2).” 보면 있는 자들이 여유로라도 마음이 넓을 것 같은데 그렇지 못하고, 더 없는 처지에서 서로를 위하고 대하며 교회를 섬기는 자들이 많다. 그러므로 오직 우리 주만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9).” 하여 스스로 가난하여지는 삶에 대하여,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신 30:16).”

오늘 지혜서도 “그리하면 그것이 네가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3:2).” 곧 오늘을 사는 동안 이 육신을 입고 사는 동안이 평안하려면,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시 119:11).

말씀을 마음에 두어 마음으로 말씀이 그득차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고 이로써 복되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3).” 그래서 오늘 말씀은 이를 붙들게 하려고, “인자와 진리가 네게서 떠나지 말게 하고 그것을 네 목에 매며 네 마음판에 새기라(3:3).” 말씀을 목에 맨다. 마음에 새긴다. 마치 소속을 알리고 그 입장을 분명하게 하듯이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5).” 이를 성경은 누누이 강조하고 계시다.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신 6:8-9).”

온통 마음이 중심이 가 있는 곳, 그것이 우리로 영생을 누리게 하면서 동시에 오늘의 질을 알게 한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곧 우리로 오늘을 온전하게 함으로 주를 온전히 바라고 또 기쁘게 할 수 있다. 이를 위하여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6).” 하고 오늘 본문은 알게 하고 덧붙이기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를 윤택하게 하리라(7-8).”

요즘 내가 누구와 어떤 이야기로 어떤 주제를 가지고 자주 대하는가에 따라 그 삶이 달라지는 것 같다. 우선은 장모와의 생활에서 새삼 그 노년의 때에 주를 바라게 하는 힘이 평소 우리가 연단한 것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을 알겠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그 시절의 어려움과 억울함과 그 마음의 노여움을 안타까워한다. 그렇다고 자꾸 뒤를 돌아보며 남은 생을 다하게 할 수는 없다. 우리는 앞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고 나아가 영생을 사모하는 삶이어야 한다고 어젠 장모의 신세한탄을 가로막았다. 더욱이 예배 중에 이어지는 엉뚱한 회상을 막아야 했다. 자신의 과거를 돌아봄으로 말씀을 왜곡하고 정작 말씀이 하려는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막고 있다는 데서 안 되겠다 싶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이어지는 말을 강제로 끊었다. 온통 그 시절의 생각과 몸에 밴 습관이 남은 생을 어지럽게 할 수는 없었다.

사탄의 특징이 회상이다. 연신 경계하듯 뒤를 돌아본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아 2:5).” 저의 특징은 쓸데없는 말로 구구절절 시간을 끌게 한다. 당시 베데스다라 하는 못에 천사들로 물이 동하면 병든 자들이 그리로 들어갔다. 하루는 예수께서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를 발견하셨다. 그리고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하면 ‘네, 주님! 낫기를 바라나이다.’ 하면 될 말을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하면서 구구한 말들이 이어진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셨다(요 5:1-8).

굳이 이러저러하였다는 군더더기 같은 말들이 시간을 지체하게 한다. 단언하지만 그래서 노인들의 특징은 뒤를 돌아보며 구슬픈 가락에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시간으로 자신을 허비한다. 남은 날을 아끼며 더욱 주를 바라며 천국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는 것은 어떠하든지 주를 인정하고 주께 향하는 마음으로다. 한 노부부가 계셨다. 하나 있는 아들이 외국에서 공부하다 교통사고로 죽었다. 이를 수습하러 가는 길에 저들 부부는 두 손을 잡고 비행기 안에서 흥얼흥얼하며 찬송하였다.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맑은 가락이 울려나네
하늘 곡조가 언제나 흘러나와
내 영혼을 고이싸네
평화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네
그 사랑의 물결이 영원토록
내 영혼을 덮으소서

하는 찬송을 허밍으로 같이 흥얼거리고 있자 곁에 앉았던 한 젊은이가 그 모습이 참 보기 좋았던 모양이다. 당시는 저는 예수를 믿지 않았고 그 노래의 의미도 몰랐지만, 노부부가 나란히 앉아 손을 잡고 평화롭게 흥얼거리니까 물었다. ‘어디 좋은 곳으로 여행가시나 봐요?’ 이에 노인은 자신들이 가는 곳과 그 벌어진 일을 알리자 젊은이는 큰 충격을 받았다. 저는 사과하고 어떻게 그런 가운데서도 그리 평안하신가? 하고 물었을 때 노인은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알리고 주께서 아들을 평안한 곳으로 인도하셨음에 감사하였다. 후에 젊은이는 이 일이 충격적으로 각인되어 궁금하였고, 이를 알고자 하여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되었다.

오늘 지혜서의 교훈도 그러하여서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11-12).” 왜 슬픔이 없고 고통이 따르지 않겠나? 그런 가운데 주를 바란다는 것은 우리로 흥얼거리게 한다. 우리 귀를 핥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귀를 기울이게 한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빌 2:15-16).” 그러므로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화평하게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약 3:17-18).”

이에 우리는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 이에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하는 문제에 함몰되지 않게 자신을 다스려야 한다. 노인이니까, 어르신이니까 그러려니 하고 내버려둘 수만은 없다. 계속 했던 말 또 하고 했던 말 또 하면서도 그 때 일을 가슴에 새기듯 되풀이 하며 남은 생을 허비할 수는 없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얻은 이 말씀을 두고,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18).” 하고 단언하고 있다. 우리에게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우리로 알게 하신 이 놀라운 은혜가 있다. 우리의 판단이 우리로 눈멀게 해선 안 된다. 오늘 시인의 기도다.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하지 아니한 나라에 대하여
내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43:1).

수시로 나를 걸려 넘어뜨리는 것은 남이 아니라 나 자신이다. 하여 우린 시온을 그리며 앞으로 나가야 한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공의대로 나를 판단하사
그들이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소서
(35:24).

저들로 나를 넘어뜨리게 놓아두면 안 된다.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행 4:19).” 우리로 슬픔 대신 속량의 기쁨을 더하시기를.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사 35:10).” 개인적으로는 장모의 기구하였던 생을 안타까워한다. 그럴만하겠다, 하는 생각으로 한없이 이어지는 말을 끊지를 못하고 듣고 있다. 하나 마음이 안 좋다고 해서 그러려니 하며 두어서는 안 되었다. 이는,

주는 나의 힘이 되신
하나님이시거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억압으로 말미암아
슬프게 다니나이까
(43:2).

하는 이율배반적인 마음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맺힌 응어리는 풀어야 하고 깨야 한다. 아니면 누구처럼 다 죽어가는 어머니를 붙들고 왜 자신이 ‘국민학교’ 시절에 한 번도 따뜻하게 반겨주지 못했는가를 묻다 숨을 거두게 할 수는 없다. 저는 하필 또 사모로 평생을 주를 섬기며 신랑 목사와 함께 교회를 위하여 주의 영광을 위해 산다고 살았던 이였다. 한데 이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내게 말하며 여전히 숨을 거둔 어머니에 대해 서러움을 토로하는 저에게 나는 무엇이라 말을 할 수 있었겠나?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37:7).

그리하여,

진실로 사람의 노여움은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여움은
주께서 금하시리이다
(76:10).

이를 품에 안고 사는 일이란 스스로도 괴로우나 주를 온전히 바라지도 못하게 한다. 우리의 약속된 날들은 그렇지 않다.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사 55:12-13).”

곧,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그런즉 내가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3-4).

우리의 사명과 그 역할은 귀한 것이다. 이를 연마하고 연단해야 한다. 그래서 징계도 환난도 허용하신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살아가면서 우리에게 여러 모양의 슬픔과 응어리질 아픔이 있겠으나,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5-6).” 오늘 지혜서의 말씀처럼,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5).

오늘 시인의 고백은 하나다. 우리의 찬송은 하나가 되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