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전봉석 2023. 1. 17. 04:55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

잠언 10:9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시편 50:15

 

 

 

주변소리에 흔들리지 않는 것, 우리의 지혜란 그러하여서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출 15:26).” 이를 붙들고 바로 가는 길이 성도의 길이겠다. “우리가 그 명령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신 6:25).”

 

그게 그렇기는 한데 돈이 끼어들고 여자가 또는 출세가 어떤 일확천금이 주어지면 그릇 행하기 마련이다. 누가 여차저차 하여 4억을 손에 쥐었다. 일을 알뜰하게 살려 꾸렸으면 좋았을 걸,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 살 집 한 채 마련하고 말았으면 좋았을 걸 그걸 돌려 한 채 더, 또 한 채 하다 네 채를 가지면서 돈이 돈을 필요로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몇 년 사이 가진 것보다 갚아야 할 빚이 늘어 그야말로 평생을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모양이다. 또한 신기한 것이 가질 땐 남을 돌아볼 줄 모르다 잃고 나니 어디 도울 이 없나 싶은 것인데….

 

또 한 이는 영화 같은 일이 생겼다. 어릴 때 일본으로 떠난 모친이 부유한 미망인이 되어 돌아왔다. 정확히 얼마를 주었는지 모겠지만, 모친은 자신의 미안함을 돈으로 상쇄하려 했던 것인데, 저는 앞서 나름 성실한 가장이었다. 낮에는 모 중견기업 직원으로, 저녁에는 어디 배달부로 일하며 성실하게 살던 사람이 졸지에 부자가 된 것이다. 뜬금없이 크게 요식업을 한다 하더니, 보란 듯 수십 억대의 아파트를 차지하고 들어가고, 고급 자동차로 바꿔 타고 다닌다 했다. 채 십 년이 안 돼 저의 소식은 난감하여서 이혼 당하고, 두 아이는 어디 고시원에 사네 본인도 무슨 여관을 전전긍긍하네 하며 돈이 돈을 삼켜버린 것이다.

 

이게 참, 오늘의 모습이어서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 3:1-5).” 어느 것도 아니라 할 수 있는 게 없다.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 7:24).” 오늘 지혜자도 말한다.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기쁘게 하거니와 미련한 아들은 어미의 근심이니라(잠 10:1).” 이를 말하며 “불의의 재물은 무익하여도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느니라(2).” 하고 일깨우나 듣는 이가 적다.

 

앞서도 보았듯이 잠언은 말하길,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4:23).” 이게 그렇게 어렵다. 인생은 소유가 아니라 쓰임에서 판가름 난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성경은 누누이 강조하며 우리의 필경에 대해 경고한다. 필경(畢竟), 끝장에 가서는 후회해도 소용없을 때가 오는데 그땐 이미 늦는다. 이와 같은 말씀이 들리고 누군가 말하여줄 때가 아직은 기회다. “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잠 19:20).” 듣자, 부디 귀 기울여 듣자. 때가 지나 필경 더는 돌이킬 수 없는 날이 올 텐데,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 34:9-10).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의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37:25).

 

이를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게 복이다. 누구의 어떤 사연을 들으면서 말도 안 되는 그런 일이 실제 우리 주변에 의외로 많다는 데 놀란다. 전조가 있는데 그런 자들은 있을 땐 모른다. 남을 하찮이 여기고 자기보다 못한 이를 돌아볼 마음이 없다. 오늘 잠언은 “손을 게으르게 놀리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자는 부하게 되느니라(4).” 그러니 이 당연한 말씀이 사는 데 따른 일에서는 그리 어려운가보다. 성경은 주목하시길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또 하나의 증세는 있는 것으로 감사를 잃었을 때 영락없다. 신세한탄이 그래서 자신을 허문다.

 

성경은 경고하시길,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살후 3:10).” 그렇게 하여 선한 충고는 그 어떤 양약보다 귀하다. “미련한 자는 자기 행위를 바른 줄로 여기나 지혜로운 자는 권고를 듣느니라(잠 12:15).” 말씀은 틀린 게 없다. 몇 번째 지금 두어 시간 이상씩 통화를 하여도 소용없는 사람에게서 나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느낀다. “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13:10).” 자칫 말이 길어지다 싸움이 나겠다. “훈계를 저버리는 자에게는 궁핍과 수욕이 이르거니와 경계를 받는 자는 존영을 받느니라(18).” 우리의 존영은 말씀에 듣는 것이다.

 

스며드는 일, 그 귀한 것을 알고 더는 놓지 않으려 으르렁거리며 놓치지 않는 사자와 같이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큰 사자나 젊은 사자가 자기의 먹이를 움키고 으르렁거릴 때에 그것을 치려고 여러 목자를 불러 왔다 할지라도 그것이 그들의 소리로 말미암아 놀라지 아니할 것이요 그들의 떠듦으로 말미암아 굴복하지 아니할 것이라 이와 같이 나 여호와가 강림하여 시온 산과 그 언덕에서 싸울 것이라(사 31:4).” 말씀 묵상이란 바로 이와 같아서 좋은 것을 알고 이를 물고 놓지 않는다. 또는 비둘기와 같이 구구거리며 연신 먹잇감을 쪼아대는 것과 같다. “나는 제비 같이, 학 같이 지저귀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내 눈이 쇠하도록 앙망하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압제를 받사오니 나의 중보가 되옵소서(38:18).”

 

듣지 않는 것, 도무지 스며들지 않는 것에 대하여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전 9:10).” 더는 없다. 에서가 아비 이삭을 향해 부르짖는다. “에서가 그의 아버지의 말을 듣고 소리 내어 울며 아버지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게 축복하소서 내게도 그리하소서… 또 이르되 아버지께서 나를 위하여 빌 복을 남기지 아니하셨나이까(창 27:34, 36).” 필경 우리는 그와 같은 때를 맞는다. 한데도 듣지 않을 때는 “그들은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행하는 곳에는 정의가 없으며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무릇 이 길을 밟는 자는 평강을 알지 못하느니라(59:8).”

 

이를 두려워할 줄 아는 것, “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계명을 받거니와 입이 미련한 자는 멸망하리라(8).” 오늘 잠언은 이렇게 강조하고 있다. 해서 “바른 길로 행하는 자는 걸음이 평안하려니와 굽은 길로 행하는 자는 드러나리라(9).” 그러는 동안 저들은 마치 천하를 다 얻은 듯 신났을 텐데, “눈짓하는 자는 근심을 끼치고 입이 미련한 자는 멸망하느니라(10).” 어찌 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길을 가면서 저토록 무모할 수 있을까? 누가 말하였다. 자신은 5년치 계획, 10년치 계획을 세우고 산다면서 오늘을 두고 내일 일을 꿈꾸었다. 뭐라 덧붙일까 하다 말이 길어져 그만두었다.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약 5:20).”

 

“여호와의 도가 정직한 자에게는 산성이요 행악하는 자에게는 멸망이니라(잠 10:29).”

 

부디 말씀 가운데 나로 거하게 하시기를.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빌 1:27-28).” 이에 오늘 시편도 일러,

 

전능하신 이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사

해 돋는 데서부터 지는 데까지

세상을 부르셨도다

(50:1).

 

이를 들을 수 있는 귀가 복되다. 행여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고전 10:10-11).” 원망은 부러움에서 오고, 시기는 저의 것을 탐한다. 있는 것에 감사하지 못할 때 이는 영락없이 찾아와 자신을 어지럽힌다.

 

온전히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나님이 빛을 비추셨도다

우리 하나님이 오사 잠잠하지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삼키는 불이 있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2-3).

 

이에,

 

하나님이 자기의 백성을 판결하시려고

위 하늘과 아래 땅에 선포하여 이르시되

나의 성도들을 내 앞에 모으라

그들은 제사로 나와 언약한 이들이니라 하시도다

(4-5).

 

한데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사 1:5-6).” 죄가 죄를 부른다.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네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14-15).

 

시편은 주의 음성을 들려주고 있다. 고로 “네 평생에 너를 능히 대적할 자가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니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수 1:5-6).” 부디 말씀 앞에 바로 서기를. 자칫 하나님을 잘 안다고 함부로 속단하지 말아야 할 것은,

 

네가 이 일을 행하여도

내가 잠잠하였더니

네가 나를 너와 같은 줄로 생각하였도다

그러나 내가 너를 책망하여

네 죄를 네 눈 앞에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시는도다

(21).

 

고로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 3:7).” 오늘 우리를 여기 두심이다. 주의 인내하심과 기다리심을 알자.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사 30:18).” 오늘을 둘러볼 때,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벧전 3:20).” 그때와 같아서 같이 주께 아멘, 할 자가 점점 드물다. 오늘 시편은 경고와 은혜의 말씀을 동시에 두신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너희여

이제 이를 생각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너희를 찢으리니

건질 자 없으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22-2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