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생명의 경계를 듣는 귀

전봉석 2023. 1. 22. 04:26


생명의 경계를 듣는 귀는 지혜로운 자 가운데에 있느니라
잠언 15:31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시편 55:22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말의 힘이 크다. 말의 은혜는 은사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 3:6).” 이를 오늘 잠언에서 다루며 그 첫 마디가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1).” 하여 말 한 마디가 얼마나 큰 은사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말의 신중함은 삶을 흔든다.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전 5:2).”

이를 감추고 누룰 수 있는 말이 감사이다.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엡 5:4).” 욱, 하고 올라 튀어나오는 말에는 독이 있다. 이를 우려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일이다. 오늘 잠언은 그리 이른다. “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3).” 감찰하신다함은 주의 깊게 살핀다는 것으로 자세히 알고자 하심을 의미한다. 이는 우리가 주의 자녀이라 그렇고 그래서 더 집중하신다. 시인은 노래하기를,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시 139:7-8).

그 하나님의 영역은 충만하여서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9).” 이에 시인은 앞에서 노래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1-4).

모든 걸 다 아시는 주께서 인생을 보신다. 우리에게로 하감하신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되리라(눅 12:2-3).” 혼잣말처럼 한 것도 주는 다 듣고 알고 계신다.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살피시는도다
(33:13-14).

나는 이런저런 소식에 마음이 어려웠다. 누군 본의 아니게 욕심이 과하였다 파산할 위기에 놓이고, 누구는 무슨 일에 신경을 쓰다 몸이 점점 상하였다. 누구는 고아로 장애를 안고 사는 신세라 명절 때만 되면 힘들었고 하필 또 큰 수술 두 개를 혼자서 치러야 하는 데 속상했는지 술을 한 잔 하고 전화하였다. 나는 저들 소식에 우울하였고 무어라 위로하다 안타까움으로 주의 긍휼하심을 바라였다. 엎친 데 덮치고 설상가상이라더니 모두가 어지러운 날이었다. 우리가 노인을 공경하는 데는 이러한 모든 세월을 지나왔기 때문이다.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9:32).”

주를 경외함이란 세월의 무심함을 아는 까닭이다. 그러므로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 6:1-3).” 우리의 보물은 주를 경외함으로 모든 수용이 다 감사하다.

의인의 적은 소유가
악인의 풍부함보다 낫도다
(37:16).

이를 잠언으로 다시 새기면, “의인의 집에는 많은 보물이 있어도 악인의 소득은 고통이 되느니라(6).” 그러므로 “고난 받는 자는 그 날이 다 험악하나 마음이 즐거운 자는 항상 잔치하느니라(15).” 그러니 “가산이 적어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크게 부하고 번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곧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16, 17).”겉으로 보기엔 멀쩡한데 온전한 가정을 만나기가 어렵다. 그 속의 어둠을 누가 알아줄까? 하여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16:8).” 이를 시인의 노래로는,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139:17).

그러므로 “만일 갚을 것이 네게 없으면 네 누운 침상도 빼앗길 것이라 네가 어찌 그리하겠느냐(잠 22:27).” 삶의 혹독한 현실 앞에서 나는 주를 바란다.

나의 때가 얼마나 짧은지 기억하소서
주께서 모든 사람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창조하셨는지요
(89:47).

이를 안다면 허투루 말하고 함부로 그 말로 서로를 찌르며 살지 않을 텐데. 서로에 대한 공경이 사라지만 말의 공격이 선제 타격을 가한다.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버지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버지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말 1:6).”

설날 아침 평소처럼 일찍 올라와 말씀 앞에 앉는다. 아무래도 설 당일이라 예배에 못 온다는 문자가 연이어 들어와 있었다. 우리에게 두신 날을 살면서 허탄한 시간과 말의 허비가 얼마나 아까울 따름인지.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사 29:13).” 누가 무슨 일로 마음이 어려워 호소할 때 주의 말씀으로 위로한들 들을 귀 없음은 허사일 뿐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이와 같은 말씀이 내 마음에 있어 나로 하여금 어린아이와 같이 주를 바랄 수만 있다면… 이에 “…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막 9:50).” 더욱이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 4:6).” 나는 의도하든 못하든 말을 듣고 말을 해야 하는 순간에 주께 구한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나에게 두시는 본분에 있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14-15).”

누구와의 대화에게 속상함으로인지 한탄어린 심정으로인지 술 한 잔 걸치고 이어지는 저의 속내가 나는 아프게 들렸다.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없어 주의 이름만을 되뇌었다. 사는 게 지옥이다. 다들 죽지 못해 사는 듯 그 어려움을 호소할 때면 내가 지레 답답하여 안정제를 몰래 삼키면서도 주를 찾는다. 아내의 중첩되는 피로감은 짜증으로 이어지고 노인은 미안함으로 숨을 몰아쉰다. 나로서는 저들 사이에서 어렵다. 누구의 말에 내가 눌린다.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부르고 말씀을 되뇌일 때,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네가 믿느냐? 하고 물으실 때 나는 왜 종종 주저하게 되는 것일까?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139:17).

앞서 수를 읽지 못할 때는 손에 돌을 든 채 내려놓지도 못하고 놓을 자리도 찾지 못한다. 그러할 때,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19:105).

말씀 앞에 앉아 이처럼 가만히 주를 바라는 일,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 (요 6:63).” 이런저런 사정으로 주일 예배를 못 드리게 됐다는 말이 어느 훗날 어쩌다 주의 날을 알지 못하였노라, 하지 않기를. 모든 게 때가 있으나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나는 저들의 어쩔 수 없음이 때로는 무겁게 다가온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눅 17:26).” 짧고 두려운 경고의 말씀이다. 그 모든 어쩔 수 없음에 대하여,

하나님이여 내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서
내게 굽히사 응답하소서
내가 근심으로
편하지 못하여 탄식하오니
이는 원수의 소리와
악인의 압제 때문이라
그들이 죄악을 내게 더하며
노하여 나를 핍박하나이다
(55:1-3).

삶이 우리를 이처럼 속일지라도,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창 28:15).” 이를 그저 남의 말로 받으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내게 더하신 말씀이라. 그러할 때 나는 주께 호소한다.

내가 간구할 때에 숨지 마소서
내게 굽히사 응답하소서

이어서,

내 마음이 내 속에서
심히 아파하며
사망의 위험이 내게 이르렀도다
두려움과 떨림이 내게 이르고
공포가 나를 덮었도다
(4-5).

아흔을 바라보는 노모는 문득 돌아보니 자신의 세월이 다 흘렀노라, 깊은 시선을 두고 나를 바라본다. 나는 장모에게 위로하기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사 43:2-3).” 구스는 스바의 아비요, 스바는 술취함이란 뜻이다(창 10:6-20). 스바는 지명으로 미디안 지역 어디쯤이다. 구스는 에디오피아로 ‘검다’는 뜻으로 모세가 노년에 구스 여인을 아내를 맞은 일도 있다(삼하 18:21-23).

애굽을 나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나를 대신하여… 선택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나는 감사하고 귀히 여긴다. 이는 부모의 사랑과 같다.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103:13-14).

때론 힘에 겨워 도망치고 싶을 때,

나는 말하기를
만일 내게 비둘기 같이 날개가 있다면
날아가서 편히 쉬리로다
내가 멀리 날아가서
광야에 머무르리로다 (셀라)
(55:6-7).

그러나 나의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을 앎으로,

내가 나의 피난처로 속히 가서
폭풍과 광풍을 피하리라 하였도다
(8).

그때에,

나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여호와께서 나를 구원하시리로다
(16).

이 놀라운 확신으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나는 무력하고 쓸모없는 내게 자신들의 감당하기 힘든 일을 호소하던 이들에게 이와 같은 말씀으로 대신 전할 뿐이다. 그리함으로,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22).

나는 이 사실을 확신한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 때론 직접 말로 해줄 수 없는 저에게 나는 속으로 되뇌며 주께 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여 주께서 그들로
파멸의 웅덩이에 빠지게 하시리이다
피를 흘리게 하며 속이는 자들은
그들의 날의 반도 살지 못할 것이나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2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