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
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
잠언 24:2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며 그의 행하심을 깊이 생각하리로다
시편 64:9
우리가 주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의 행하심을 깊이 생각할수록 경이롭고 기이하여 두려워할 줄 아는 것이다. 이것이 즐거워서 그에게 피한다. 이를 자랑한다. 이것으로 지혜가 내 영혼에 이와 같은 줄을 알게 한다. 우리 안의 지혜는 우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것과 같아서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곧 지혜가 구원으로, “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14).” 오늘 잠언의 정의다. 하여,
의인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하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는
다 자랑하리로다
(시 64:10).
우리가 주를 사랑한다는 것은 악함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않는 것으로 그들과 함께 하지 않는 일이다. 오늘 잠언은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1).” 하고 권고한다. 저들이 잘 됨은 공중의 권세 잡은 영의 일로,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엡 2:2).” 보면 사는 날 동안 형통하고 무난한 길은 사탄과 결탁하는 것이다. 악을 악이라 여기지 않고 오히려 이를 따르며 자기 이익을 구함으로, “이 후에는 내가 너희와 말을 많이 하지 아니하리니 이 세상의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그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요 14:30).” 곧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이는 교묘하게 내 안에도 살고 많은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살기도 한다. 이를 잠깐이라고 여기기에는 생이 참 길고 모진 것 같다. “악인이 이긴다는 자랑도 잠시요 경건하지 못한 자의 즐거움도 잠깐이니라(욥 20:5).” 하여 나는 이를 보고 느낄 때면 두려워하며 주의 도우심을 구한다. 저는 우리의 상대가 아니다. 하여,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37:7-9).
엄연히 우린 아직 끝나지 않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다. 이로써 회개는 주를 믿는다는 것이고 믿음은 우리로 자신의 죄악을 인정하고 아뢰게 한다. 회개는 자신의 죄를 직면하는 동시에 이를 사하여 주신 하나님을 무조건적으로 신뢰하는 일이다. 회개는 인정하는 일이면서 동시에 결단하는 일이다. 회개는 돌이킴으로 실천하게 한다. 곧 지혜란 불빛을 찾는 게 아니라 불빛이 비치는 길을 따라 가는 일이다. 이는 성경이 가르치는 바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였으니(마 3:2).”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속이는 혀에서 내 생명을 건져 주소서
너 속이는 혀여 무엇을 네게 주며
무엇을 네게 더할꼬
(120:2-3).
이를 바울의 통회함으로 들으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자신의 어쩔 수 없음을 애통해하는 것으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이로써 우리는 주를 신뢰하고 의지하며 나아간다. 신뢰는 내가 틀렸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얻는 기쁨의 능력이다.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들에 대하여 “우리는 수치 중에 눕겠고 우리의 치욕이 우리를 덮을 것이니 이는 우리와 우리 조상들이 청년의 때로부터 오늘까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렘 3:25).” 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쉽지 않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일이 선행될 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를 수 있다. ‘더는 청소년 사역을 하지 않겠다.’는 동생의 말에 나는 가슴이 아팠다. 뭐라 이르고 싶은 말은 많은데 그대로 삼켰다. 우리가 견고히 설 수 있는 곳을 우리가 정할 수 없다. 오늘 잠언의 말이다. “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하게 되며(3).” 이에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 7:24).” 그러하기까지 고되고 힘든 상황이 어찌 없을까?
여기서 ‘집’은 우리 몸이고,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벧후 1:4).” ‘인생’이고, “그대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높이라 잊지 말지니라 인생이 그의 일을 찬송하였느니라(욥 36:24).” ‘국가’이기도 하다. “이제 야곱의 집에 대하여 얼굴을 가리시는 여호와를 나는 기다리며 그를 바라보리라(사 8:17).” 이에 지혜와 명철은 그리스도를 지칭하며 저를 앎으로 우리 ‘집’은 바로 선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125:1).
곧 무엇을 신뢰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회개에 따른 문제로 믿음에서 비롯되는 일이다. 시편 121편을 가지고 설교원고를 준비하며 묵상하다 ‘지키신다’는 표현이 거듭 여섯 번이나 나오고 있는 것을 알았다. 주를 신뢰한다는 것은 내가 틀렸다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는 일이다. 완벽한 실현은 그 주관자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일이다. 이에 우린 감당할 수 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이는 나를 지키시는 자가 있기 때문이다. 신뢰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121:3, 5-6).
순간 어려웠던 마음이 안도한다. 다행이다. 내가 옳다고 여기며 살았던 시간들이 틀렸다는 것이 이처럼 다행이다. 주가 옳으시다. 그리하여 ‘지키시는 이가, 지키시는 이는, 지키시는 이시라. 지켜, 지키리로다. 지키리로다.’ 성전을 향해 올라가는 노래 두 번째의 찬송은 온통 나는 지키시고 지키신다는 것을 신뢰하게 한다. 아, 그래서 욥은 하나님이 나를 죽이실 것이고, 내게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 앞에서 그를 신뢰함으로 나의 행위를 아뢴다고 하였구나! “그가 나를 죽이시리니 내가 희망이 없노라 그러나 그의 앞에서 내 행위를 아뢰리라(욥 13:15).” 이 말도 안 되는 놀라움이 내 안에 시작하신 ‘착한 일’이면서도 지혜이고 명철이었다. 고로 내가 이룬 것이 아니라는 데서 한 번 더 다행이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이는 다급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사 28:16).”
하여 내가 말씀으로 채운다. 오늘 잠언의 말이다. “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4).” ‘방들’은 그때마다 생겨나는 공허함이나 허무함으로 ‘이제 더는 청소년 사역 안 해. 애들이 무서워.’ 하는 동생의 말에 나는 저의 비워진 방을 보았고 이를 채우시려는 말씀을 생각하였다. 곧 예수로 가득해지게 하시려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그리하여 주를 경외하게 하시려고 “다만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며 내 모든 명령을 지켜서 그들과 그 자손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하노라(신 5:29).” 이와 같은 의도로 하나님은 비워내신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121:8).
이 한 구절을 놓고 마음이 든든하다. 늘 나는 참 다행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롬 1:16).” 그래서 부끄러울 게 없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16).” 시쳇말로 누구보다 든든하다는 것,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겔 36:25-26).” 그러니 참 다행이란 말밖에 달리 표현할 게 내게는 없다.
무슨 일이 생기고, 어디가 아프고, 또 마음이 어려워서 견딜 수 없을 때, “너를 치려고 제조된 모든 연장이 쓸모가 없을 것이라 일어나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모든 혀는 네게 정죄를 당하리니 이는 여호와의 종들의 기업이요 이는 그들이 내게서 얻은 공의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사 54:17).” 그러니 이보다 더 다행한 일이 어디 있겠나? 내가 틀렸다는 것, 헛살고, 잘못된 길을 걸어왔는데도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눅 15:20).” 내 아버지의 사랑이 참으로 귀하다. 그러할 때,
“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13).”
나는 무어라 말씀드려야 할지, 여전히 눈물만 고이는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2:7).
그리 얼싸안고 하시는 말씀이,
내게 구하라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8).
이 무한한 사랑으로 나는 당당히 서서 “나의 대적이여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말지어다 나는 엎드러질지라도 일어날 것이요 어두운 데에 앉을지라도 여호와께서 나의 빛이 되실 것임이로다(미 7:8).” 아, 이 놀라운 은총을 받았음을 알고,
하나님이여
내가 근심하는 소리를 들으시고
원수의 두려움에서
나의 생명을 보존하소서
(64:1).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하고 두리번거리던 것을 멈추고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 12:2-3).” 그래서 나는 참 다행이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27:1).
더는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하고 여기저기 도움이 될 산들을 찾을 필요없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121:2).
그러니 더 꿀릴 게 뭐 있겠나?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여
하나님의 일을 선포하며
그의 행하심을 깊이 생각하리로다
(64:9).
반드시 오리라. 온 세상이 주를 인정하는 것이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9).” 이제 나는 주를 자랑하고 저를 사랑함으로 자랑한다.
의인은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그에게 피하리니
마음이 정직한 자는
다 자랑하리로다
(1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