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전봉석 2023. 2. 6. 05:24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잠언 30:5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시편 70:4



나의 부족함을 인정한다는 것, 마치 짐승과 같아서 우둔하기 이를 데 없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비하면 짐승이라 내게는 사람의 총명이 있지 아니하니라(2).” 겸손함으로 주 앞에 사는 일, 함부로 나대며 안다고 여기는 거짓 선지자와 이방의 현자와 비교할 때 스스로를 낮추는 일은 지혜의 으뜸이 되는 것 같다. 자신을 티끌과 같다고 한 아브라함이나 “아브라함이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창 18:27).” 젖 뗀 아이와 같이 주를 의지하였던 다윗과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의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영혼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시 131:2).

스스로 작은 아이라 칭하며 지혜를 구하였던 솔로몬과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버지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왕상 3:7).” 자신을 가리켜 만삭되지 못하고 난 자 같은, 죄인 중의 괴수라 하였던 바울을 생각하면,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고전 15:8, 딤전 1:15).” 주 앞에서 섰을 때 자신의 추함과 부족함을 아뢰는 것은 당연하였다.

모든 게 하나님께 받은 것임을 인정하게 되는 것, 내 것이라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을 알고,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고전 4:7).” 그 우둔함을 인정하는 자로 서는 일,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 8:26).” 곧 나는 오늘도 이처럼 주 앞에 앉을 수 있는 것조차 주의 영이 함께 하심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

세례요한의 칭송과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마 3:11).” 이와 같은 저의 고백은 단지 도식적인 수사가 아니었다. 주를 인정하는 것,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12).” 이것이 단지 신앙고백이 아니라 전부인 것을, 하여 베드로는 그 앞에 엎드려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눅 5:8).” 곧 이를 인정하는 것이 사람의 성품으로가 아니라 계시와 은총에 의한 것임을 알게 한다.

오늘 잠언, 아굴의 고백도 그러하여서 “나는 지혜를 배우지 못하였고 또 거룩하신 자를 아는 지식이 없거니와 하늘에 올라갔다가 내려온 자가 누구인지, 바람을 그 장중에 모은 자가 누구인지, 물을 옷에 싼 자가 누구인지, 땅의 모든 끝을 정한 자가 누구인지,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 그의 아들의 이름이 무엇인지 너는 아느냐(3-4).” 하나님에 대하여 감히 알 수도 말할 수도 없는 것을 인정하는 데서 저의 지혜를 느끼게 한다. 이 비밀한 것,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냐(렘 23:18).” 이는 내가 알아도 알 수 없고 표현할 수 없는 것으로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출 19:18-19).” 이와 같은 경우 우린 이를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멸망하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그들의 말이 헐어 버리라 헐어 버리라
그 기초까지 헐어 버리라 하였나이다
멸망할 딸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복이 있으리로다
(135:6-7).

이를 우린 살면서 저들의 강변에 앉아 운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1).

이 땅을 살며 우리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그 연약함을 인정하는 데서 주를 경배하는 언어가 가능하지 않을까?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쟀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접시 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언덕들을 달아 보았으랴(사 40:12).” 우린 아무 것도 모르면서 마치 전부를 아는 것처럼 얼마나 남의 일에 혹은 자신에 대해 함부로 말하고 뭐라 일러 스스로를 드러내곤 하는지.

우리가 아는 바다는 고여 있는 물이 아니라 표층수, 중강수, 심층수, 저층수 4중 구조로 이루어져 그 심층의 물도 100년을 주기로 순환하는 거대한 물줄기와 같은 순환구조를 가졌다고 어느 해양연구에서 본 것 같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도 감히 알 수 없고 그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사 45:15).” 이를 우리가 어찌 다 안다 할 수 있을까? 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다만 그의 존귀와 권능을 경배하는 것 뿐,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어떤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이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권능을 돌릴지어다 아멘(딤전 6:16).”

이에 따른 성경의 이르심은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사 55:8-9).” 이를 묵상하면 할수록 하나님 앞에 더욱 겸손하여서 그의 은총의 결과로 살아가는 것임을,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상속자로 세우시고 또 그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히 1:2).” 이 놀라운 세계를 오늘 아굴은 다음과 같이 아뢴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잠 30:5).”

이처럼 말씀을 대하다 보면 저절로 내가 어떤 존재이고 단 한 시도 주가 아니면 살 수가 없는 존재임을 인정하게 되는,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 이처럼 말씀 앞에서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자가 없나이다(눅 10:22).” 하시는 주의 말씀 앞에 설 때 나는 틀렸고, 내가 틀렸다는 것이 참으로 다행한 일이여서, 더러는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로 순화하여 서로를 인정하는 데 중심을 두지만, 틀렸다. 틀린 건 죽었다 깨어나도 틀린 것이지 다른 게 아니다. 이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7-19).”

이와 같은 말씀들로 나는 벅차다. 일련의 상황과 그 되는 것을 보면서 주의 살아계심을 인정하게 되는 일,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70:4).

오늘 나는 내가 주 앞에 이와 같은 마음이어서 참 다행이다. 늘 짐승만도 못한 자임을 알 때면 내 안의 나와 나 밖의 내가 서로 얼마나 다르고 가증한지를 주께 아뢰게 되면서, 아굴과 같이 나도 구한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7).” 저는 아뢰기를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8).” 이는 누구보다 내 자신을 내가 잘 알기 때문이라,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9).” 나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누굴 욕하고 어떤 일을 두고 뭐라 하다가도 나 역시 다를 게 없는 것을 인정하게 되면서,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119:105).

말씀 앞에 엎드린다.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요일 1:5).” 아주 가끔은 주목받지 못하는 생이어서 기쁘고, 자칫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하여 두려워도 한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그런 나를 지키시고 또 지키심을 알리는 말씀 앞에서, 이를 전하는 자로 설 때 더욱 송구할 따름이었다. 어제 시편 121편을 가지고 말씀을 전하면서 그러한 나로 부끄러웠고 그 부끄러움으로 오히려 감사하였다. 더는 내가 아무 것도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주를 바랄 수밖에 없는 현실이어서 말이다.

그런 내게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하실 때면 목이 메어 눈물이 먼저 돈다. 그러한데도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신 31:6).” 하는 말씀이 모두 내 것이 된 것에 나는 더 바랄 것이 없다.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삼상 25:29).”

이 말씀을 내 것으로 가지고 살 수 있다는 것, 오늘 아굴은 그러할 수 없는 자들을 두고 경계한다. “스스로 깨끗한 자로 여기면서도 자기의 더러운 것을 씻지 아니하는 무리가 있느니라(12).” 그리 알고 살았던 날이 있어서 나는 더욱 염치가 없다. 하나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18:30).

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고 또 감사한 일인지를.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렘 17:9).” 내가 그러하였고 그러하며 그럴 수밖에 없는 데서 절망하고 있을 때,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나는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들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119:18-19).

이 고백이 내 것이 된 것을 감사하며,

하나님이여 나를 건지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나의 영혼을 찾는 자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하게 하시며
나의 상함을 기뻐하는 자들이
뒤로 물러가 수모를 당하게 하소서
(70:1-2).

이처럼 주의 말씀으로 숨을 수 있는 자이어서 이제는 걱정이 없다. 그리하여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왕상 18:37-38).” 송구하지만 나는 나를 위해 설교를 하고 묵상을 하고 누구를 위해 기도를 한다. 나는 나의 일을 두고 주께 아룀으로 교회를 섬긴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시오며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행 4:39:40).” 주 앞에 엎드리는 이유,

주를 찾는 모든 자들이
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들이
항상 말하기를
하나님은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4).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하나님이여 속히 내게 임하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니
여호와여 지체하지 마소서
(5).

오직 주께로만 아뢸 수 있는 나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