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께서 속량하신 내 영혼이 즐거워하리이다

전봉석 2023. 2. 7. 04:32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
잠언 31:30

내가 주를 찬양할 때에 나의 입술이 기뻐 외치며 주께서 속량하신 내 영혼이 즐거워하리이다
시편 71:23



신앙의 정도에 따라 부지런히 주를 바라는 정도도 다르다.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바라시는 게 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이를 위한 우리의 역할은 분명하여서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마 5:13-15).”

이와 같이 오늘 잠언은 아들 르무엘 왕에 대한 어머니의 충고이자 인생의 절제와 정의를 일깨우며 시작한다(1-9). 그리고 현숙한 여인을 소개하며 주를 경외함이 그 어떤 수고보다 귀하다는 것을 일깨운다(10-31). 우리가 주를 바라고 주어진 삶에 충실하다는 것은 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마땅한 의무이며 권리이다. 이는 말씀을 사모하고 바람으로 얻어진다.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성숙함을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살펴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딤전 4:15-16).” 이때 우리의 말씀은,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시 19:10-11).

이와 같이 말씀으로 그 가는 길을 밝히 안다는 것은 생을 헛되이 허비하지 않는다는 소리겠다. 오늘 잠언 3절, “네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며 왕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행하지 말지어다.” 허튼 일에 시간과 힘을 낭비하지 말 것은 우리로 자신을 ‘멸망시키는 일’이 되기 십상이어서 그렇다. 예수님은 재촉하셨다.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마 8:21-22).”

더하여 말씀하시길,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요 9:4).” 어떤 후회가 또한 아쉬움이 생의 끝 날에 찾아오면 낭패다. 더는 돌이킬 수 없는 때가 오는데, 요즘 내가 늙으신 장모를 보며 그러한 생각이 자주 든다. 마음 같아서는 대보름을 맞아 오곡밥과 나물을 직접 요리하고 싶은 것이나 예전처럼 자유롭게 어디든 나다닐 수 있을 것 같은데, 생각을 따르지 못하는 노구를 이끌고는 그 운신의 폭이 답답하기만 하다. 우리에게 이와 같은 날이 속히 오리니,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갈 5:24-26).” 오늘 우리에게 당부하는 것이다.

이에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32).” 그만큼 자신을 다스리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땐 몰랐는데 너무 지나고 난 후에야 이를 깨닫곤 한다. 철들자 망령난다고, 할 수 있는 때엔 무에 그리 정신이 팔려 살았었는지.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4:7).

이를 소중한 줄 알고 귀히 여기며 사는 것이 복되다. 이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 그런 거 보면 술이나 자신의 기호에 정신 팔려 허송세월하기가 끝이 없다. 오늘 잠언은 이를 극복하고 자신을 항상 깨어있게 하는 데 있어, “너는 말 못하는 자와 모든 고독한 자의 송사를 위하여 입을 열지니라(8).” 하고 우리의 할 일을 알게 한다. 모처럼 누가 연락을 주었다. 오래 된 사이로 나는 늘 저의 사연이 마음 아프다. 어쩌면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외면하려 드는 것은 아닌지… 혼자 살면서 온전치 못한 육신을 건사하며 사는 일이란 참 구슬픈 일이다. 다음 주 수요일에 허리 수술을 하는데, 열어보고 며칠 뒤에 엉덩이 고관절도 이어서 수술을 해야 하는 모양이다. 간병 병실을 예약은 해두었는지, 만에 하나 간병해줄 이는 있는지… 저와 말을 하다보면 나는 자꾸 잔소리를 하듯 뭐라 타박을 한다. 그래놓고는 그게 다 내가 못해서 하는 소리란 걸 인정한다. 그래도 감사한 게 저가 섬기는 교회에서 젊은 담임 목사 내외와 그 성도들이 합심하여 저를 돕는가보았다.

어떤 일 앞에서 나는 자꾸 미안하기만 하다. 그게 가족 간의 일이든지, 누구의 사연을 두고 드는 마음이든지, 미안함은 속상함으로 속상함은 죄의식으로까지 마음을 어렵게 할 때도 있다. 동생들의 사역에 있어서나 그 생활을 전해들을 때면… 또한 누구의 기도부탁에 그야말로 기도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을 때,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신 10:18).” 내가 받은 사랑을 갚을 길 없어 빚진 마음으로 산다. 바울은 그와 같은 심정으로,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롬 1:14).” 이는 어제 저녁 장모와 같이 나누었던 성경이다.

곧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 13:8).” 더욱이 난 늘 받기만 하는 것 같아서 사람에게나 하나님께도 송구하기만 할 따름인데,

그의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하나님이 고독한 자들은
가족과 함께 살게 하시며
갇힌 자들은 이끌어 내사
형통하게 하시느니라
오직 거역하는 자들의 거처는
메마른 땅이로다
(68:5-6).

이도저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마음으로 주의 이름만 부른다. 수술 전에 다시 통화하고 기도하자, 하고 저를 달래고 통화를 끊었다. 그리고 마음이 안 좋아 시무룩하였다. 누구를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일을 같이 짊어지는 것이다. 마음이 어려워서도 주를 바란다는 일이 은총이기도 하면서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35-36, 40).” 곧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는 말씀에서 나는 한 것이 없어 고개를 들 수 없다. 그때의 심정은,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계 2:4).” 그러할까 하여 나는 두렵다. 돌아보면 받은 게 참 많은데 갚을 길이 없어서….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내가 영원히
수치를 당하게 하지 마소서
주의 의로 나를 건지시며
나를 풀어 주시며
주의 귀를 내게 기울이사
나를 구원하소서
(71:1-2).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의지하였사오니
나를 부끄럽지 않게 하시고
나의 원수들이 나를 이겨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하소서
주를 바라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려니와
까닭 없이 속이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리이다
(25:2-3).

그래서였는지 일찍 눈을 떴다. 주 앞에 올라와 저를 생각한다. 마음의 어려움을 주께 아뢴다. 그럴 때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사 12:2).” 하여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말씀을 찬송하올지라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혈육을 가진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
(56:4).

이를 오늘 시편은,

주는 내가 항상 피하여 숨을
바위가 되소서
주께서 나를 구원하라 명령하셨으니
이는 주께서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이심이니이다
(71:3).

주가 아니시면 내가 어디로 숨을 수 있을까?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내가 어릴 때부터 신뢰한 이시라

나는 무리에게
이상한 징조 같이 되었사오나
주는 나의 견고한 피난처시오니
주를 찬송함과 주께 영광 돌림이
종일토록 내 입에 가득하리이다
(6, 7-8).

곧 나는 갚을 길도 도울 힘도 없어 주께로 도망치듯 올라와서 어려운 마음을 내려놓는다. 부디

늙을 때에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할 때에 나를 떠나지 마소서
(9).

내가 한 것이 없으니 면목이 없으나,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히 3:13).” 그래서도 주를 부르며,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 하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나는 항상 소망을 품고
주를 더욱더욱 찬송하리이다
(12, 14).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숨기지 않음으로 주가 하실 수 있다는 것을 전한다.

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공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
(15).

그리고는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또 비파로 주를 찬양하며
주의 성실을 찬양하리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주여
내가 수금으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22).

곧 나로 주를 찬송하게 하는 것은 내가 받은 은혜를 갚을 길 없어 속상한 마음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일 뿐.

내가 주를 찬양할 때에
나의 입술이 기뻐 외치며
주께서 속량하신
내 영혼이 즐거워하리이다
(23).

그렇게 하여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내 안에 이와 같은 마음을 남겨두시는 것도 그리하여 주를 더욱 바라고 의뢰하게 하심인 것을. 그렇게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이에,

나의 혀도 종일토록
주의 의를 작은 소리로 읊조리오리니
나를 모해하려 하던 자들이
수치와 무안을 당함이니이다
(2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