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전봉석 2023. 5. 21. 05:31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

예레미야 17:14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시편 17:7

 

 

 

말씀으로 계시고, 말씀으로 천지를 만드시고, 말씀으로 우리 가운데 계신 이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렘 1:5).” 말씀을 허투루 다루면 사역은 끝이다. 죄는 수치의 증거로 오늘 본문은 “유다의 죄는 금강석 끝 철필로 기록되되 그들의 마음 판과 그들의 제단 뿔에 새겨졌거늘(1).” 하고 그 죄에 대한 기록이 지워지지 않음을 알린다. 이를 토대로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4).”

 

이와 같은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두려워할 줄 아는 것이 힘이다. 능력이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가까운 훗날 우린 모두 주 앞에 선다. 모든 죄를 용서하시나 의도적이고 알면서도 지은 죄에 대해서 물으신다.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 주리라(계 2:23).”

 

하나님의 선민으로 유다는 우상을 숭배하였다. 오늘 2절, “그들의 자녀가 높은 언덕 위 푸른 나무 곁에 있는 그 제단들과 아세라들을 생각하도다.” 이를 하나님이 얼마나 싫어하시는지는 늘 말씀하셨던 터, 어떤 어려움 앞에서 혹은 유혹으로 인하여 우린 너무 쉽게 마음을 내어주곤 하였다. 이에 하박국은 “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그럴 수 있는 권세와 권능은 주로 인함이다.

 

결국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하여 우리가 불의하게 얻은 것은 결국 “들에 있는 나의 산아 네 온 영토의 죄로 말미암아 내가 네 재산과 네 모든 보물과 산당들로 노략을 당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 준 네 기업에서 네 손을 뗄 것이며 또 내가 너로 하여금 너의 알지 못하는 땅에서 네 원수를 섬기게 하리니 이는 너희가 내 노를 맹렬하게 하여 영원히 타는 불을 일으켰음이라(렘 17:3-4).” 이와 같은 날들이 오늘로도 이어졌다.

 

이를 알았던 욥은 그와 같은 어려움에서도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욥 1:21).” 이로써 말로 죄를 짓지 않을 수 있었다. “이 모든 일에 욥이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22).”

 

곧 주 앞에서 산다는 것은 여호와를 의뢰한다는 일이었다. 상대적으로 주를 떠난 자는 저주를 받는다. 오늘 5, 6절에 나온다. 하나님은 결국 우리 마음을 살피시는 분이시다.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6).” 이어서,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7).”

 

모든 말씀의 기본이다.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8).” 이를 아는 우리로서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10-11).” 이와 같은 말씀 앞에 자신을 늘 점검하게 된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

(시 73:25).

 

이 놀라운 앎,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리라(잠 29:25).” 결국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자신을 포함해서겠다. 더 살고자 하고 애써 그 사는 일에 연연하는 것보다 무서운 올무는 없다. 바울의 표현처럼 ‘사나 죽으나 주의 것’으로 살 수만 있다면…. 사람들의 시선과 또는 저들처럼 살고자 하는 욕망이 우리로 덫에 걸리게 한다. 그러나,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시온 산이 흔들리지 아니하고

영원히 있음 같도다

(125:1).

 

이 든든함,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 하실 때에 그 말씀 앞에 아멘, 하는 것. 아이는 직장에 들어가고 6월에 있을 시험까지 준비하면서 마음이 어려웠던 모양이다. 나는 저에게 이르길 고등학교에서 대학으로 진학할 때도, 대학에서 진로를 선택하고 군대를 지원할 때도 우린 늘 두려움이 앞섰고 안 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먼저였으나 그때마다 주가 앞에 서 계셨던 것을. 그러므로 주께 맡기고, 내려놓음으로 나는 다만 충실할 뿐, 결과는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는 것뿐.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마 7:24-25).”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결국 주추를 반석 위에 놓는 일로,

 

여호와는 살아 계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18:46, 19:14).

 

곧 하나님으로 산다는 것은 “영화로우신 보좌여 시작부터 높이 계시며 우리의 성소이시며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12-13).” 오늘 본문이 이끄는 곳이다. 우리가 살면서 때론 어려움이, 더는 내가 어찌 해야 할지 모르는 때에 봉착했을 때에도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14).” 이 놀라운 고백이 우리 입에서도 가능하였다. 하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히 6:14-15).”

 

세상은 줄 수 없고 알 수 없는 이 놀라운 진리를 붙들고 사는 사람들이다. 단지 오늘 이 부분의 본문이 예레미야 한 사람의 탄원이 아니라 우리가 살면서 주께 의뢰하는 것이었다. 이사야도 “내 백성이여 내게 주의하라 내 나라여 내게 귀를 기울이라 이는 율법이 내게서부터 나갈 것임이라 내가 내 공의를 만민의 빛으로 세우리라(사 51:4).” 이와 같은 세계에서 산다는 일. 안 믿는 자들의 눈에는 너무 몽상가 같은 소리로 추상적이고 마음의 위로 정도로 여기겠으나,

 

그는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33:5).

 

그 충만하심이 우리 일상에 말씀으로 함께 하신다는 사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내가 어릴 때부터 신뢰한 이시라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39:7, 71:5, 146:5).

 

시편의 세계는 이와 같이 하나였다. 오늘 예레미야도 “주는 내게 두려움이 되지 마옵소서 재앙의 날에 주는 나의 피난처시니이다(17).” 하고 고백하는 것도 이 세계에서 살기 때문이다. 이는 다윗도 같은 세계여서,

 

여호와여 의의 호소를 들으소서

나의 울부짖음에 주의하소서

거짓 되지 아니한 입술에서 나오는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소서

(17:1).

 

하고 오늘 주께 기도한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다는 것은 세상에서 정직하다는 것과는 다르다. 세상은 남이 모르면 된다. 그러므로 자신도 괜찮아, 하고 인정하면 되는 일이다. 그러나 주 앞에 우리가 정직하다는 것은 그럴 필요도 없는, 그러한 허물까지도 주 앞에 보여드리는 것으로,

 

주께서 나를 판단하시며

주의 눈으로 공평함을 살피소서

주께서 내 마음을 시험하시고

밤에 내게 오시어서 나를 감찰하셨으나

흠을 찾지 못하셨사오니 내가 결심하고

입으로 범죄하지 아니하리이다

(2-3).

 

어찌 흠이 없을 수 있겠나? 그러나 이것까지도 담대할 수 있는 것은 주께 아뢰고 낱낱이 드러내어 더는 숨기고 사는 게 없는 자유함으로,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행 3:19-20).” 그가 나의 모든 과거로부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에 저지를 죄까지도 담당하셨다. 저는 우리의 대언자이시다. 하나님은 더 이상 우릴 정죄하시지 못하신다. 이는 ‘저를 믿는 자는 구원을 받은 것’이기 때문에 우리를 부정하시면 자신을 부정하시는 일이 된다. 그러므로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그러므로 더는 죄와 상관없기를 우린 그 무엇보다 간절히 바라며 산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요일 1:9-10).” 이 놀라운 세계에 살면서 세상 사람들과 다를 게 없이 죄에 종노릇하고 여전히 그리 살고 있다면 이보다 더 우스꽝스런 일이 또 있을까?

 

나의 걸음이 주의 길을 굳게 지키고

실족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으므로

내가 불렀사오니 내게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

(5-6).

 

하나님이 응답하실 것을 분명히 알기 때문이다. 가령 동생은 여러 경우의 수를 두고 어찌할까, 하고 전화를 하였다. 그러면서도 우린 이미 알고 있었다.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을,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마 21:22).” 이미 끝난 이야기는 더 이상 할 필요 없다. 그럼에도 여전한 염려와 근심 때문인데, 이것으로 우린 죄를 짓는 게 아니라 주께 기도하며 더욱 주께로 나아가는 사람들이었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약 5:15).” 이에,

 

주께 피하는 자들을

그 일어나 치는 자들에게서

오른손으로 구원하시는

주여 주의 기이한 사랑을 나타내소서

(7).

 

우린 그 사랑을 덧입고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잠 3:5-6).” 이는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신뢰함이니이다(사 26:3).” 하면,

 

나를 눈동자 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감추사

내 앞에서 나를 압제하는 악인들과

나의 목숨을 노리는 원수들에게서

벗어나게 하소서

여호와여 이 세상에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분깃을 받은 사람들에게서

주의 손으로 나를 구하소서

그들은 주의 재물로 배를 채우고

자녀로 만족하고 그들의 남은 산업을

그들의 어린 아이들에게

물려 주는 자니이다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8-9, 14-1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