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에레미야 33:2-3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
시편 33:22
위로의 책이라 불릴 만한 내용이 30장부터 이어져 33장까지, 선민의 회복에 대해 전하고 있다. 예레미야가 아나돗의 밭을 매입한 것은 상징적인 행동으로 하나님이 선민을 회복시키시고 회복과 그 약속을 성취하시는 데 따른 말씀을 전하고 있다. 투옥 상태에 있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은 두 번째로 임하셔서 말씀하신다.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2-3).”
이어 4절 이하에 이어지는 선민 회복에 대한 말씀을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로 정의한다. 곧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그 모든 일을 행하실 것을. 영광스런 회복을 약속하시고 찬양과 제사가 재개될 것임을 알리신다. 특별히 유다에 대한 심판의 결과가 묘사되고 심판 이전의 온전하였던 날을 회복하게 하실 것을 보이신다.
“즐거워하는 소리, 기뻐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와 및 만군의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니 그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하는 소리와 여호와의 성전에 감사제를 드리는 자들의 소리가 다시 들리리니 이는 내가 이 땅의 포로를 돌려보내어 지난 날처럼 되게 할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1).”
이러한 내용으로 알 수 있듯이 고난의 자리는 하나님과 일대일로 마주하고 서는 자리다. 여전히 예레미야는 갇혀 있다. 그런 그와 나누시는 하나님과의 대화가 깊다. 이를 욥의 표현으로 바꾸면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욥 42:5).” 곧 어떤 고통을 지나는 동안 하나님과 멀리 있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점점 더 하나님과 마주하고 더욱 친밀하게 서게 된다. 하여 시편에서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시 119:71).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신앙이란 밋밋한 일상에서보다 다급하고 곤고할 때에 더욱 커지고 가까워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친구의 어떤 어려움, 그 두려움이 저로 하여금 주를 찾게 하였다. 동생의 어떤 곤란한 사정이 더욱 주께로 의지하고 주의 뜻을 바라게 하였다.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와 같은 큰 음성’이 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되어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계 1:9-10).”
친구는 성경을 읽고 더욱 알고자 하여 잠 자는 시간을 줄이고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일을 행하시는 분은 앞서 우리에게 그와 같은 사실을 알게 하신다. 하여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 4:20-22).” 고로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는 것,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
이 놀라운, 기도하는 자에게 응답하시고 주가 행하시는 크고 은밀한 일에 대하여 가르치시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이 은밀한 일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사 다니엘과 친구들이 바벨론의 다른 지혜자들과 함께 죽임을 당하지 않게 하시기를 그들로 하여금 구하게 하니라 이에 이 은밀한 것이 밤에 환상으로 다니엘에게 나타나 보이매 다니엘이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니라(단 2:18-19).”
‘이 은밀한 것이 밤에’ 보이고 우리로 주께만 의지하게 한다. 낚시터에 앉아 있는데 동생의 전화가 계속 들어왔다. 갑자기 혼자 1인실로 옮겨지고 모든 게 급박하게 돌아갈 때는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러다 그 모든 게 가장 좋은 방법으로 마무리 되었다. 즉 결핵 소견이 있어 급하게 병실을 옮겼던 것이고 그러는 동안 저 안에 다급한 심정으로 주를 찾았고, 양성인 경우를 상정하여 병원 측에서는 그리 신속하게 대처한 것이었고 그 과정에서 주님은 은밀하게 저를 다루셨던 것이다.
일련의 사태를 두고 보면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선민 유다를 두고 행하시는 일에 대하여, 우리로 기도하게 하시고 주의 뜻에 주의하게 하신다. 곧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우리로 기도하게 하시고 기도하는 것 이상으로 응답하심을 보게 된다. “내가 또 네가 구하지 아니한 부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왕들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왕상 3:13).” 앞서 다윗도 이와 같은 일을 경험하고 주를 경배하였다.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있을 먼 장래의 일까지도 말씀하셨나이다 주 여호와여 이것이 사람의 법이니이다(삼하 7:18-19).”
친구는 더욱 주를 바라며 말씀에 전념하면서 어디 선교를 나가기로 하였고, 그 일에 있어 덤덤하니 주의 인도하심을 바라였다. 곧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엡 3:21).” 이를 오늘 본문은 들려주고 알게 한다.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렘 33:9).” 이와 같이 아직 일이 벌어지기도 전에 그 일의 진행과 그 결과를 알려주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우리에게 향하신 특별한 계획을 본다.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로 주의 길을 갈게 하심이다. 일련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또는 달라지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주가 계회하신 일에 소망과 확신을, 나아가 찬송과 영광을 올리게 되었다.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저수지의 바람은 거의 돌풍과 다름없는 수준이었다. 그 와중에 친구와 나란히 앉아 우리의 하나님을 이야기하고 그의 말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기이하게 여겨지기까지 하였다. 우리가 주를 바란다는 일, 그러한 마음과 여건을 조성하시고 그리고 인도하심이 마냥 신기하기도 하였다. 점심을 같이 하고 오후께 일찍 돌아와 교회 안에서 주를 부르는 일과 그의 행하심에 대해 생각이 많았다. 일찍 귀가하여 초저녁에 잠이 들었다.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렘 33:16).”
하여 오늘 시편을 이어서 들어보면,
너희 의인들아 여호와를 즐거워하라
찬송은 정직한 자들이 마땅히 할 바로다
(33:1).
주를 바라고 찬양한다는 것에 대하여, “우리 하나님이여 이제 우리가 주께 감사하오며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찬양하나이다(대상 29:13).” 성경을 읽기 위해 읽기만 하는 것보다 이를 물고 뜯고 씹어서 삼켜 내 영혼의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한다고 친구에게 말해주었다. 성경 읽기가 단순히 기계적이어서는 안 되고, 선교여행이 단지 여행으로 그쳐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하여주다 그만두었다. 그러한 과정까지도 주가 함께 하심을. 우리로 주께 나아오게 하시는 데 있어 다양한 경로로 저의 형편과 사정에 맞도록,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17).”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아름답게 연주할지어다
(2-3).
이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바르게 익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누리게 될 영광스러운 삶일 거였다. 곧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시도다
그는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
(4-5).
나는 이와 같은 시편의 세계에서 천국을 그리워한다. 곧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그리하여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그를 경외할지어다
…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8, 11).
고로,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12).
오늘을 살며 내가 누리고 내 곁의 사람들이 하나 둘 이 놀라우신 은혜 아래 거하는 것을 볼 때면,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 1:16-17).” 나로 주의 것인 것을. 우리로 함께 주를 찬송하게 하시려고,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
우리 마음이 그를 즐거워함이여
우리가 그의 성호를 의지하였기 때문이로다
(20-21).
그러므로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
(2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