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전봉석 2023. 6. 8. 04:59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자손은 그의 선조가 그들에게 명령한 그 명령을 지켜 행하나 이 백성은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도다
예레미야 35:16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시편 35:28
 
 
 
예루살렘 함락 직전에 레갑의 사람들 이야기가 들어간 것은 의외다. 이들은 미디안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후손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모세를 따라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었다.  레갑 사람들의 신실함과 유다의 불순종을 대조함으로 축복이 어디에 머무는지를 알게 한다. 저들은 선조 요나답의 유훈을 받들어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집을 짓거나 땅을 소유하지 않는 유목민으로 항상 장막에서 살았다. 그런 그들이 바벨론의 침공을 피해 예루살렘 안에 머물게 된다.
 
상대적으로 하나님의 거듭된 권유와 훈계에도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방자하게 사는 유다의 불순종을 드러낸다. 이에 하나님께서 레갑 사람들에 대하여 ‘영원한 견인의 축복’ 곧 하나님 앞에 설 사람이 그들 가운데서 끊어지지 않게 하시는 축복을 받는다. 이처럼 선조 요나답의 유훈도 받아들어 섬기는데, 요나답은 예후 왕 때 바알과 아세라 신상을 섬기는 선지자들을 선멸하는데 앞장선 인물이다(왕하 10:15-20). 이에 선조 요나답의 유훈을 받드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명령을 하찮게 여기는 유다 민족과 대조를 이루며 신앙의 모범이 되게 하신다.
 
하나님의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4-6).” 이 귀한 은혜를 받은 자들로 우린 과연 어떠한지를 되새기게 된다.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여호와여 나를 살피시고 시험하사
내 뜻과 내 양심을 단련하소서
(시 26:1-2).
 
하는 다윗의 기도가 생생하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로 산다는 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마 6:1-2).” 한데 우린 본능적으로 누가 알아주길, 오늘의 나를 인정하고 존중하길 얼마나 바라며 살고 있는지.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고후 10:18).”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인정받는 자로 산다는 일은 더러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 일이 되기도 한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 이어지는 말씀에서 빛과 소금으로 산다는 일이 얼마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거북하고 부담스러운 존재인지. 빛은 어둠의 저항을 받고 소금은 부패와 싱거움의 저항을 받는다. 세상에서 달가워할 리 없다. 전에는 우리도 어둠이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
 
실제 가리고 덮고 숨기고 살았던 시간이 길다. 그런 가운데 오늘 말씀에서 작은 유혹에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엄청난 용기였다. 심지어 목숨을 걸고 지키며 사는 삶이란,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 당장 죽을 게 분명한데도 굴할 수 없는 것.
 
조금은 나은 형편이 될 수 있는데도 그 유혹을 뿌리치기란,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창 39:10).” 아차, 하는 순간 쉬운 길로 들어서기 십상인데,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은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고전 15:33-34).” 이는 늘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소린데,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는 예민하게 굴며 너는 어느 쪽이냐? 하고 묻고 주의하면서도 실상 신앙에서는 흐리멍덩하여 싱거운 맛으로 사는 신앙이 얼마나 흔한지.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1-22).”
 
그러려면 말씀을 생명처럼 지키며 사는 사람이아야 하는데, 오늘 레갑 사람들에게 예레미야는 일부러 포도주를 권하였다. 그러나 저들은 선조의 말에 따라 이를 거절하였다. 오늘 본문 5-7절, “내가 레갑 사람들의 후손들 앞에 포도주가 가득한 종지와 술잔을 놓고 마시라 권하매 그들이 이르되 우리는 포도주를 마시지 아니하겠노라 레갑의 아들 우리 선조 요나답이 우리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너희와 너희 자손은 영원히 포도주를 마시지 말며 너희가 집도 짓지 말며 파종도 하지 말며 포도원을 소유하지도 말고 너희는 평생 동안 장막에 살아라 그리하면 너희가 머물러 사는 땅에서 너희 생명이 길리라 하였으므로.” 사소한 듯하나 이와 같은 철저함이 우리로 주 앞에 온전히 서게 한다. 결국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
 
말씀이 우리 가운데 역사한다는 것,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 8:6-8).” 여전히 육에 속해 살면서 육신의 생각보다 영의 일을 더 생각하며 산다는 것은 세상적인 관점으로는 뜬구름 잡는 소리 같다. 허황되기까지 하다. 그래서들 적당히 광신적이지 않게, 너무 몰입하지 않으려 거리를 두는 것처럼 신앙을 경계하는 경우도 있는 듯하다.
 
하나님은 수고하신다. 오늘 13절,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는 가서 유다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내 말을 들으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겠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어 15절, “내가 내 종 모든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고 끊임없이 보내며 이르기를 너희는 이제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켜 행위를 고치고 다른 신을 따라 그를 섬기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가 너희와 너희 선조에게 준 이 땅에 살리라 하여도 너희가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며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한데 상대적으로 레갑 사람들은 그 선조의 말에 따라 저처럼 철저하게 자신들을 주의하는 것에 대하여, 의도적으로 곧 예루살렘의 멸망을 앞두고 이 이야기를 삽입하신 것이다.
 
이 일이 어디 한두 번이었던가? “그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과 그 거하시는 곳을 아끼사 부지런히 그의 사신들을 그 백성에게 보내어 이르셨으나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사신들을 비웃고 그의 말씀을 멸시하며 그의 선지자를 욕하여 여호와의 진노를 그의 백성에게 미치게 하여 회복할 수 없게 하였으므로(대하 36:15-16).” 저들의 멸망은 자초한 것이다. 그 영혼이 주를 잃은 것도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나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겔 33:31).”
 
다른 생각,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교회를 다니고 나름 헌신과 헌금과 ‘자기를 불사르게 내어준다’ 해도, 그에 따른 바람이 세상에 있다면 다른 여느 신을 섬기거나 우상을 숭배하는 일이나 뭐가 다를까? 누구의 선교여행(?)에 대해 뭐라 하려는 게 아니다. 각자 몇 백씩 들여 선교라는 명분 아래 떠나는 단기사역(?)에 대해 나는 그리 좋다고 할 수 없다. 안 하는 것보다 낫다고 할 수 있으나 안 하는 것보다 단단하게 자기만족으로 끝날 수도 있다. 누가 어느 선교사를 도왔다. 어느 가정을 생각하여 자신은 수고하고 애썼다. 한데 저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고마워하는 것 같지 않아 마음이 상했다. 오히려 다음의 어떤 태도가 오해를 가져왔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차라리 안 하니만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쉽지 않다. 사람에게 인정 받으려하는 마음은 인지상정이라, 또한 자기만족을 구가하여 살고자 하는 것이야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도 있겠는데….
 
하나님은 그 마음이 항상 자기의 백성에게 향해 계신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호 11:8).” 하나님은 우리로 세상에 본을 삼고자 하신다. 오늘 레갑의 사람들을 빗대어 “레갑의 아들 요나답의 자손은 그의 선조가 그들에게 명령한 그 명령을 지켜 행하나 이 백성은 내게 순종하지 아니하도다(렘 35:16).” 그때에 하나님의 심정이 어떠하셨겠나?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완전히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너희가 우리를 부분적으로 알았으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고후 1:13-14).”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5-6).”
 
이에 오늘 시편은 다윗의 간절함이 친밀함으로 주께 호소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호와여 나와 다투는 자와 다투시고
나와 싸우는 자와 싸우소서

 
그들을 바람 앞에 겨와 같게 하시고
여호와의 천사가 그들을 몰아내게 하소서
(1, 5).
 
그리 요구하고 바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신뢰하기 때문이다. 시편의 세계는 그처럼 놀라운 것이어서,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너는 나를 밀쳐 넘어뜨리려 하였으나
여호와께서는 나를 도우셨도다
(118:6, 13).
 
하나님은 언제나 내 편이시라는 것,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신 1:30).” 오늘에도 나보다 앞서 나의 모든 일을 치리하고 다스리시는 분이시다. 저는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골 2:14-15).” 하여 더는 죄책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심으로 자유하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즐거워함이여
그의 구원을 기뻐하리로다
(9).
 
오늘 시편은 그리하여 오늘의 어떤 일 앞에서도 굴하지 않게 하신다.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 여러 어려움이 우릴 둘러싸고 고단하게 할 때,
 
부당하게 나의 원수된 자가
나로 말미암아 기뻐하지 못하게 하시며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들이
서로 눈짓하지 못하게 하소서
(19).
 
우린 주께 아뢴다. 이를 고하여 주의 사랑을 바란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약 2:5).” 다들 어떠하다 해도 나는 주를 바랄 것은,
 
나의 의를 즐거워하는 자들이
기꺼이 노래 부르고 즐거워하게 하시며
그의 종의 평안함을 기뻐하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는 말을
그들이 항상 말하게 하소서
(27).
 
궁극적으로 나의 사는 날 동안 나로 하여금 주의 이야기가 되게 하시기를. 이에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하신 것을 받기 위함이라(히 10:36).” 하여,
 
나의 혀가 주의 의를 말하며
종일토록 주를 찬송하리이다
(2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