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그 날이 가깝도다 여호와의 날이 가깝도다 구름의 날일 것이요 여러 나라들의 때이리로다
에스겔 30:3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시편 86:11
애굽의 파멸을 ‘여호와의 날’로 규정한다. ‘그 날’이 가깝다는 것. 곧 ‘여호와의 날’이 가깝다. 그 날은 ‘구름의 날’이다. ‘여러 나라들의 때’이다. 이날에 우주적인 격변이 있을 것이다. 종말론적인 의미로 단지 애굽의 멸망과 주변국의 멸망으로 그칠 게 아니다. 이는 예표이다. 세상에 권세 잡은 자의 세력이 파멸되고, 하나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때가 이른다.
이를 총괄적으로 애굽의 파멸로 선언한다(겔 30:1-9). 애굽은 바벨론에 의해 황폐해질 것이다(10-19). 바로의 세력이 약화됨을 알리고(20-26), 이러한 일들 후에 하나님의 세계가 시작될 것이다. 곧 심판이 이루어진다(29-32장). 이 날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마 24:36).”
오늘 본문은 26장과 29장의 내용과 유사하다. 역사적인 정황도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으로 애굽의 무리들을 끊으리니(겔 30:10).” 하는 내용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왕들 중의 왕 곧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으로 하여금 북쪽에서 말과 병거와 기병과 군대와 백성의 큰 무리를 거느리고 와서 두로를 치게 할 때에(26:7).” 하는 부분이 유사하다. 이렇듯 ‘모든 저항을 철저히 분쇄하고 철저하게 파멸할 것을 강조하는 부분에서(11-18), “그가 들에 있는 너의 딸들을 칼로 죽이고 너를 치려고 사다리를 세우며 토성을 쌓으며 방패를 갖출 것이며(26:8).” 하는 내용과 같이 29장 9-15절에서 같은 내용으로 서술하였다.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하고 강조하시는 표현이 네 번 반복된다(6, 10, 13, 22). 더구나 “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하는 표현도 두 번 거듭 사용된다(1, 20). 이는 그만큼 주의 뜻을 전하며 주의 말씀으로 예언하는 것임을 밝힌다. 곧 이 심판의 목적이 하나님을 나타내는 데 목적이 있음을,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8, 25, 26).” 하고 연거푸 강조하는 것이다.
이로써 회개를 촉구하고 모든 흥망성쇠가 주께 있음을 알린다. 곧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심판이 집행될 것을 알게 하고 그 섭리와 역사를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무한한 의지와 능력을 소유하셨다.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창 14:19)”, “여호와는 모든 신보다 크시므로(출 18:11)”, “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로되(신 10:14)”,
“여호와여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이 다 주께 속하였사오니 천지에 있는 것이 다 주의 것이로소이다 여호와여 주권도 주께 속하였사오니 주는 높으사 만물의 머리이심이니 이 부와 귀가 주께로 말미암고 또 주는 만물의 주재가 되사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모든 사람을 크게 하심과 강하게 하심이 주의 손에 있나이다(대상 29:11, 12).”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 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느 9:6).”
이와 같은 말씀을 찾아가며 직접 목격할 때에 마음이 묵직해진다.
“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그 진노하심에 땅이 진동하며 그 분노하심을 이방이 능히 당하지 못하느니라(렘 10:10).”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이심이라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행 17:24-2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딤전 1:17).”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 4:11).”
그들이 주의 나라의 영광을 말하며
주의 업적을 일러서
주의 업적과 주의 나라의 위엄 있는 영광을
인생들에게 알게 하리이다
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
(시 145:11-13).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나는 뭐라 나의 말로 정리하는 것보다 이처럼 말씀을 찾아 직접 보는 것이 유익하다. 이를 보고, 느낌으로 그치는 감동이 아니라, 이로 사는 게 더 중요하겠다. 이를 바울은 ‘토기장이와 토기’의 비유를 사용하여 나의 날들에 대한 역사에서 하나님의 고유한 주권을 알게 하기도 하였다.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만일 하나님이 그의 진노를 보이시고 그의 능력을 알게 하고자 하사 멸하기로 준비된 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또한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에 대하여 그 영광의 풍성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 무슨 말을 하리요(롬 9:19-23).”
이와 같은 말씀 앞에 가만히 멈추어 나로 그 말씀에 하나 되게 하는 것, 이를 오늘 시편으로 확인하면,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一心)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86:11).
말씀과 나의 마음이 하나 되어, 삶의 중심을 이루는 것. 이는 ‘여호와의 날’에 앞서 우리로 그날을 예비하게 하려 하심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히 10:5).” 이를 앎으로 심판의 도래와 심판의 집행과 하나님의 뜻을 대비한다. 세상는 이에 아무 도움이 될 수 없다. “보라 네가 애굽을 믿는도다 그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은 것이라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손이 찔리리니 애굽 왕 바로는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사 36:6).”
어제도 나눈 바, ‘애굽’ 곧 세상을 의지하는 일은 갈대 지팡에 몸을 의지하다 손이 찔리고 옆구리가 찔릴 따름이다. “애굽은 본래 이스라엘 족속에게 갈대 지팡이라 그들이 너를 손으로 잡은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어깨를 찢었고 그들이 너를 의지한즉 네가 부러져서 그들의 모든 허리가 흔들리게 하였느니라(겔 29:6-7).” 여기서 한 번 더 확인하게 되는 것은 누구보다 하나님은 스스로 질투의 하나님이심을 밝히셨다.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출 20:5, 34:14).”
곧 오늘 우리가 왜 세상을 더 사랑하고 의지하는 것에 하나님이 그토록 진노하시는가를 알 수 있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영원히 노하시리이까
주의 질투가 불붙듯 하시리이까
(79:5).
고로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켜지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주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라(습 1:18).” 이와 같은 말씀 앞에서 내가 주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는지, 무엇을 귀하게 여기며 살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특히 오늘 14-18절에 언급되는 도시들 놉, 바드로스, 소안, 노, 신, 아웬 등의 도시들은 우상들의 본거지였다. 우상은 한 마디로 하나님 외에 더 귀히 여기는 모든 것을 말한다. 때론 자식에 대하여 또는 자신에 대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욱 사랑하는 모든 것이 우상이다. 이에 “너는 그들이 조각한 신상들을 불사르고 그것에 입힌 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며 취하지 말라 네가 그것으로 말미암아 올무에 걸릴까 하노니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것임이니라(신 7:25).”
이는 은유다. 비유이고 상징이며 사실이다. 오늘도 선민들의 주변국들 가운데 일곱 번째로 애굽의 멸망을 다룬다. 저들의 심판은 스스로 자신들을 신격화한 것도 있지만 주의 백성들이 저들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였기 때문이다. 저들이야 이방국가들로 각자의 신과 그 신상을 섬기는 것이야 그렇다 해도, 이를 알면서 자신의 지혜로 주변국과의 우호적인 관계를 위해 천 명의 처첩을 두었던 솔로몬의 결정적인 죄악은 저들의 신들을 들여오는 것까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인지. 하나님 없는 인생은 허탄하여 온갖 합당치 못한 일을 행하게 되고 급기야 사망에 이르게 될 뿐이다.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그들이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고 하나님께서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을 옳다 하느니라(롬 1:28-32).”
이를 하나하나 곱씹으며 읽으면 오늘 우리의 생활에서 너무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어서 소름이 끼친다. 나 또한 그 가운데서 자유롭지 못한 것을 인정하게 된다. 결국 자신의 힘을 믿고 살면 멸망은 필연적이다(7절). 하나님은 반드시 악을 제거하신다(10,11절). 우리 안의 사사로운 우상이 의외로 많다(13-18절). 그것 때문에 우린 자주 하나님의 뜻을 망각하고 산다.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있다고 여겨지기까지 한다. 말씀으로 우린 영적 교훈을 얻고 통찰함으로 자신을 자꾸 단련해야 한다. 이에 오늘 시편에서 예수님이 가르치신 축복의 통로(마 5장 산상수훈)를 확인하게 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
여호와여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주의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
(86:1).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4-5).”
나는 경건하오니 내 영혼을 보존하소서
내 주 하나님이여
주를 의지하는 종을 구원하소서
주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종일 주께 부르짖나이다
(2-3).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 5:6-7).”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
(4-5).
그러므로,
여호와여 나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내가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6-7).
곧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8-10).”
나는 이와 같은 연관성이 말씀과 생활이 얼마나 밀접한가를 일깨운다고 확신하다. 내 삶에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 해도 내게 무슨 이익이 있을까? 그리하여 아뢰는 것이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
(11).
일심(一心) 곧 나의 생활이 말씀과 하나 되게 하심으로 말씀으로 살고, 말씀이 삶이 되게 하시기를.
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오리니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하심이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스올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
(12-13).
이 확실한 확신으로 산다는 것은 그 어떤 축복보다, 또 다른 특혜보다 은혜였던 것을 고백하며,
은총의 표적을 내게 보이소서
그러면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 보고 부끄러워하오리니
여호와여 주는 나를 돕고
위로하시는 이시니이다
(1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