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스겔 36:23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시편 92:2-3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이다. 앞서 35장의 주제였던 에돔에 대한 심판을 먼저 다룬다(1-15절). 재차 조명하면서 이스라엘과 온 땅의 회복에 대해 말씀이 이른다. 나아가 메시야에까지 닿을 ‘종말론적인 구원’에 대한 전망을 보여준다. 이에 에돔과 이방 국가들에 대한 심판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땅과 백성의 회복’을 묘사하고 있다.
과거 이스라엘의 실패와 그럼에도 다시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주목하게 한다(16-38절). 궁극적인 완성의 땅, 하나님의 나라. 거기에 머물게 될 백성들의 회복은 어려운 현실 속에 희망적인 전망을 그려놓는다. 심판을 넘어선 하나님의 구원 사역, 처해 있는 상황이 포로 된 현실이라 해도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최종 구원의 완성을 소망하게 하고 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의해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데 있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그리 행하심이었다. “그들이 이른바 그 여러 나라에서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말미암아 더러워졌나니 곧 사람들이 그들을 가리켜 이르기를 이들은 여호와의 백성이라도 여호와의 땅에서 떠난 자라 하였음이라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이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내 거룩한 이름을 내가 아꼈노라(20-21).” 여기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나로 의의 길로 가도록 인도하시고 이를 감격하게 한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시 23:3).
이에 오늘 본문도 “그러므로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여러 나라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더럽혀진 이름 곧 너희가 그들 가운데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 내가 그들의 눈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여러 나라 사람이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2-23).” 이에 따른 하나님의 행하심이 소망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스라엘과 그의 땅이 하나님의 소유라는 사실. 에돔과 이방 국가들에 의해 침략을 받았지만 여전히 그 땅은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라는 사실, 당시 선지자들의 공통적인 증언이며 암울하였던 시절에도 저들로 하나님의 종말론적인 구원을 붙들게 하신 것이다. 이를 오늘 본문에서만 열 번씩이나 강조하고 있는데,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심을 확인할 수 있다. 2-7절에서만 ‘주 여호와께서 이 같이 말씀하시니라.’ 하는 표현이 예닐곱 번, 그리고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13, 22, 33, 37) 하며 강조하시는 부분이 연속된다.
이는 모든 회복의 주체가 여호와이심을 강조한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완성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회복과 그 땅의 회복에 대해서, 최종적이라 할 수 있는 선언이 이루어지는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26-27).” 곧 그들 속에 두실 주의 영으로 그 마음을 새롭게 하심은 굳어진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실 것을, 이에 주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1:1-2).
마치 누구와의 인연은 끊어질 듯 이어지고 이어지다 다시 잠잠하였을 때 어떤 사달이 나는 것을 목격한다. 얼마 전부터 그와 다시 연락이 닿았다. 어떤 수술을 앞두고 혼자 끙끙 앓는 모습이 서로의 입을 열었다. 수십 년 연락이 끊겼던 사이 저는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는 모 이단 교회에 사로잡혀 있었다. 저들의 친절과 관심, 배려와 사랑이 저로 그리 이끈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이게 아닌데, 하며 발을 빼지도 담그지도 못하고 있던 상태에 우연처럼 만났던 것이다. 그런저런 이야기 끝에 저가 섬기는 교회가 어떤 곳인가를 알고 나는 거칠게 저들의 이단성을 알렸다. 두 사람이 같이 왔는데 하나는 타교도임을 자처하며 귀를 닫았고, 저는 돌이켜 그 교회를 끊고 저가 사는 곳을 중심으로 여러 교회를 찾다 한 교회를 만났다. 주의 은혜였다.
교회에 적응하고 그 교회 담임목사와 성도들이 저를 품어주는 것을 보면서 나의 역할은 줄어들었다. 물론 그 사이 나는 거의 싸우듯이 저의 성적인 그릇된 삶과 온전치 못한 신앙, 하나님과의 관계보다 사람들로부터 얻고자 하는 위로와 친절에 대하여 꽤 오랜 시간을 전화로 또는 주말마다 만남으로 싸움 아닌 싸움으로 진을 뺐다. 더욱이 회사에서 좋아하는 여성이 어느 불교국가 여인으로 고국에는 아들과 남편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좋은 감정’에 이끌려 휘둘리는 것에 시달리듯 같은 말이 오래 되풀이 되었고 결국은 잘 끝이 났다. 이 또한 주의 은혜로 처리가 되었다.
이런 일에 시달리는 것은 영육간에 피곤한 일이다. 한동안 또 연락이 뜸하여 잘 지내는가 싶었는데, 이번에도 한 여성의 문제로 언쟁 아닌 언쟁이 붙었다. 저는 내가 뭐라 할 걸 알고 그 여성이 전에 다니던 모 이단 교회의 신도라는 것을 숨기고 있었다. 요 며칠 저의 이야기를 듣다 이상하다 싶더니 아니나 다를까 그런 문제였다. 남의 일을 구체적으로 나열할 수는 없지만 어제그제 몇 시간씩 저의 사연을 듣다 뭔가 느낌이 이상해서 물었더니 저는 아무 교회나 이름을 댔고, 하필 그게 어디 이단으로 검색되어 마음이 어려웠다. 희한한 일은 저도 몰랐다는 것이다. 둘러댄다고 아무 교회나 댄 것이 나로 마음 쓰이게 하였고, 실은 그게 거짓말이었다.
나는 가끔 저의 일을 떠맡듯 알게 될 때마다 어렵다. 어떤 실망이나 배신감 때문이 아니다. 저와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다? 신기할 정도로 마음이 어려워진다. 결국 이번에도 덫에 걸린 영혼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저의 마음이 힘들어보였다.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아닌 걸 알면서도 어찌 해보려니까 저는 저 대로 힘들밖에. 저의 사정이나 안타까움으로 마음이 더 쓰였다. 주말에 만나기로 했던 것이 이런저런 이유로 말이 길어졌다. 사탄이 틈을 노린다는 것, ‘돈과 사람’은 늘 어렵다. 특히 이성에 대한 마음은 이성을 잃는다. 저의 외로움을 알아서 나는 자꾸 슬펐다.
오늘 말씀 26절,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그리하지 않으시면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마음의 굳어진 자리가 물욕(物慾)과 성욕(性慾)이다. 이는 누가 말릴 수도 자신이 싸워 이길 수도 없다. 이를 알던 요셉은 거의 본능적으로 그 자리를 도망쳤다. 그 일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는 한이 있어도, 설득시키고 자신이 해결할 수 있는 그런 문제가 아니다. 천하의 다윗도 성욕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우리야의 아내인 것을 알면서도, 그 일을 저지른 뒤 이를 은폐하고자 우리야를 사지로 몰아 죽게하기까지, 저는 그래놓고 일 년 가까이 이 일을 철저히 외면하며 숨겼다. 그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나단 선지자를 보내셨을 때,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따라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주의 많은 긍휼을 따라
내 죄악을 지워 주소서
나의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나의 죄를 깨끗이 제하소서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51:1-3).
저는 이내 자복하였고 저 둘 사이의 첫 아이는 잃었다. 나는 어제 누구 일로 이런저런 말을 거들다 한나절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인간적으로는 안 됐고 불쌍하여 슬펐고, 입이 열 개라도 내가 뭐라 할 자격이 없어 부끄러웠으며, 그럼에도 말씀을 따라 저에게 말해야 하는 입장이어서 난감했다. 혼자인 저에게 사람의 유혹은 가장 큰 허점이다. 본인도 이 사실을 안다. 알면서도 마음은 어쩔 수 없어서 괴로워하는데, 나는 속상하였다. 그렇다고 나 또한 동조할 수는 없는 일이라… 나야말로 죄인 중에 괴수라! 나는 내가 속상하고 마음이 아파 못하겠다. 내가 찔리고 양심에 걸려 못하겠다. 나 같은 자로 어찌 그런 저의 일을 두고 말씀을 전하게 하시는지, 부끄러워서도 괴로웠다. 어찌어찌 뜻을 전하고 통화를 끊었는데 진이 빠진 듯 소파에 잠시 눕자 실신한듯 잠이 들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진정한 구원을 예언하시고 이를 이뤄 가신다. 땅을 회복시키시고(1-15), 에돔을 황무하게 하신다(10-15). 반복되는 단락인듯 하지만 그만큼 우리의 허물과 죄는 반복된다. 에돔에 대한 심판의 궁극적 목적은 이스라엘의 회복이다. 에돔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구원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나님은 스스로 하나님이심을 밝힌다. 에돔과 이방 국가들을 심판하심으로(1-7), 이스라엘의 땅을 회복함과 백성들의 번성(11)과 신분 회복(15)을 전제로 곧 그들의 땅은 ‘내 땅’이라는 사실과 저들은 결국 ‘내 백성’이라는 사실을 하나님은 확실히 하신다.
최초의 언약,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하신 약속을 지나, 출애굽 이후 시내 산의 언약에서,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5-6).” 이를 이루어,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 25:23).” 이에, “내가 너희를 기름진 땅에 인도하여 그것의 열매와 그것의 아름다운 것을 먹게 하였거늘 너희가 이리로 들어와서는 내 땅을 더럽히고 내 기업을 역겨운 것으로 만들었으며 제사장들은 여호와께서 어디 계시냐 말하지 아니하였으며 율법을 다루는 자들은 나를 알지 못하며 관리들도 나에게 반역하며 선지자들은 바알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무익한 것들을 따랐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다시 싸우고 너희 자손들과도 싸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2:7-9).”
하여 ‘새 영과 새 마음(26)’을 주심으로 오늘 말씀은 우리의 굳어진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더하실 것을 알게 한다. 하여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하신 이 말씀은 기가 막히게도 어제 저녁 가정예배로 드릴 때 같이 읽고 되새긴 한 구절의 말씀이다. 새삼 나의 고단했던 하루를 어루만지시는 것 같았다. 우리는 죄 문제가 해결되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성령이 우리 안에 임재하셨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2-4).” 결국 성도된 우리의 순종으로 이끄실 것이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그리하여 ‘믿음은 들음에서, 들음은 하나님 말씀’에 있다는 사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10:17).”
이는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8:21).” 이를 위해 오늘 말씀은 분명히 하신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6-27).”
이에,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을 알리며
밤마다 주의 성실하심을 베풂이 좋으니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주의 손이 행하신 일로 말미암아
내가 높이 외치리이다
(92:2-4).
그리하심으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 앞에 나를 굴복시키신다. 나의 날들을 돌아보며, 오늘에 이루시는 여러 상황 속에서 주의 일을 살피게 하신다. 살핌으로 놀라 고개를 숙여 주를 찬송하게 하신다.
여호와여 주께서 행하신 일이
어찌 그리 크신지요
주의 생각이 매우 깊으시니이다
…
여호와여 주는 영원토록
지존하시니이다
…
여호와의 정직하심과
나의 바위 되심과
그에게는 불의가 없음이 선포되리로다
(5, 8, 15).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