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

전봉석 2024. 1. 22. 05:32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요 11:21, 32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

시 104:31

 

 

우린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알지 못한다. 당장 눈앞에 사랑하는 이가 죽었다. 이구동성으로 ‘만일 ~하였더라면’ 하며 탄식한다. 그러나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4).” 이와 같은 말씀 앞에 우리의 이해는 한계가 있다.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13).”

 

이를 알기까지 우리는 수많은 가정법 ‘만일 ~하였더라면’ 하는 생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마르다도 마리아도 다르지 않았다.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면서 ‘주께서 (만일) 여기 계셨더라면’ 하고, 또 “마리아가 …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만일)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하는 탄식과 아쉬움을 생명의 주를 앞에 모시고 하고 있다(21, 32).

 

우리의 한계란 여기까지여서 ‘바로 그 땅’이어서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 땅의 속성은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 이러한 가운데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여서 평안하다(1:2). 이에 하나님은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2:7).” 하여 우리에게 명하신 바,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1:28).” 바로 그 땅에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려야 한다.

 

우리의 속성, 의심과 후회와 상상으로 ‘만일 ~하였더라면’ 하고 탄식하는 그 한계에서 벗어나 생령으로서 우리가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려야 할 자신으로 산다. 본래 우리의 본질은 무가치한 그 자체였으니, 마치 마른 뼈가 그러했을까?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모든 뼈에게 대언하여 이르기를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하고) 주 여호와께서 이 뼈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생기를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하신 후에) <너희 위에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또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하셨다 하라(겔 37:2-6).”

 

이와 같아서 오늘 우리의 날은 마른 뼈와 같이 메마른 영혼으로 살아갈 때, ‘힘줄을 두고 살을 입히고 가죽으로 덮고 너희 속에 생기를 넣으리니 너희가 살아나리라.’ 하심은 하나님이시었다. 말씀이 우리로 이를 알게 하신다. 그러하기까지 오늘 본문에서의 제자들도 주와 함께 하면서도 알지 못하여, “제자들이 이르되 주여 잠들었으면 낫겠나이다 하더라(요 11:12).” 우리의 지혜로는 이와 같은 말씀을 이해할 수 없어,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 그들은 잠들어 쉬는 것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생각하는지라(13).” 더러는 오해와 착각 속에서도 주를 따른다.

 

그렇게 믿는 믿음은 황량하게 메마른 영혼 같아서 늘 그 바라는 게 이 땅의 복락에 있어서 그저 사는 데 급급하다. 피조물의 세계란 그러하여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산다는 일을 오늘 시편에서 먼저 답을 찾으면,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

(시 104:31).

 

이렇듯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도무지 현실적으로나 피부로는 느낄 수 없다. 그럼에도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 바로 그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 하실 때 이는 우리의 일희일비하는 일상으로는 감당하기가 어렵다. 어찌하여 오늘 우리에게 이와 같이 일을 두시는지, 더러는 내가 원하지 않는 일로 고통 중에 놓여있게 하시는지, 그럴 때면 알 수 없어서 ‘만일 ~하였더라면’ 하는 식으로 현재 예수를 앞에 모시고도 예전으로 되돌리며 가정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돌아오는 목요일 동생의 재판을 앞두고도, 요 며칠 날씨 탓인지 허리를 가누기 어려울 정도로 끙끙거리고 힘에 겨워하면서도 나는 무심히 ‘만일 ~하였더라면’ 하면서 투덜거리듯 주님 앞에서 입을 삐죽거린다. 다들 그 놈의 돈 때문에 스스로를 속이거나 남에게 미안해하면서도, 어떤 일을 계획하였다가 뜻하지 않은 결과로 못마땅하다는 듯 주의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그러니 주의 인자하심이 무궁하심과 그의 긍휼하심이 아니었으면 우린 대체 언제 죽어 사라져도 마땅할 ‘마른 뼈’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그러한 우리를 재창조하시는, 새로운 조성의 과정에서 오늘의 죽음 같은 고통까지도 허용하시는 것이었으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요 4:34).” 그러니 오늘 우리는 어떠한지?

 

육체로 사는 동안은 본성에 좌지우지될 수밖에 없겠지만 하나님은 영이시니,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갈 5:16-17).” 곧 우리로 말씀은 이끄시는 바, 성령을 따라 행하라! 명령하신다. 왜냐하면 육체로는 성령을 거스를 수밖에 없어서 이 둘이 내 안에서 서로 싸운다. 이 싸움은 이미 정해진 결과여서,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이미 이기시었다. 우리로 주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하신다. 비록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나 담대할 이유가 있었다. 이는 우리가 맺을 열매로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나는 그럴 수 없으나 나는 그리 될 것이란 것을,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24).” 그러므로 우리의 ‘만일’은,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25-26).” 성령으로 살면 된다.

 

성령으로 산다하는 것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는 증인이 될 것이다! 나는 노구(老軀)를 이끌고 살고 있는 부모님과 장모와 점점 겉사람은 낡아져가는 이 나이의 우리들을 두고 기도하기를 우리의 남은 생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산 증거가 되기를 간구한다. 물론 고통은 고통스럽고 두려움은 두렵다. 괴로움은 괴로울 수밖에 없고 불안은 늘 불안하다. 이를 없이 해주는 마술은 없다. 이를 아시면서도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요 11:5-6).” 계시는 오늘 예수님의 처사는 다소 서럽기도 하다. 단걸음에 갔으면 하룻길로도 충분하였을 텐데, 아니! 그런 소식을 들으시고도 이틀을 더 여유를 부리신단 말인가?

 

이를 지혜자는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전 3:2-4).” 다 때가 있었다는 것인데, 그 때란 “내가 거기 있지 아니한 것을 너희를 위하여 기뻐하노니 그러나 그에게로 가자 하시니(요 11:15).” 알다가도 모를 말씀인데, 어찌 거기 계시지 않은 것을 기뻐하시는가? “이는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무엇을?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4).”

 

바로 이 놀라운 사실, 오늘의 나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으니 곧 그리스도의 영광을 받게 하려 하심인데, 오늘 날 이 땅의 모든 세력이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러할 때에도 엄연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하심을 알게 하려 하시려고(고후 4:4), 이로써 우리 영혼이 날로 성장하여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16).” 그런데 실제 우리가 바람은 속사람이 낡아지더라도 겉사람은 날로 새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으니!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로 새 피조물이 되게 하심이다. 우리를 새롭게 조성하심은 우리의 사랑과 관심과 목표와 꿈이 온통…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5-16).” 그러므로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롬 8:19-20).” 곧 오늘 우리들뿐 아니라 온 우주의 모든 피조물은 우리들, ‘하나님의 아들들’을 기다린다. 고로 허무한 데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요 11:40).” 그리하여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19:1).

 

이 순간을 위하여,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시고,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요 11:40-42).” 기도하신 후에,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일,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44).” 다시 말해, 죽은 자를 향하여 ‘나오라’ 하실 때에 저가 스스로 나오게 하시려고, 이 순간에 하나님의 영광이 온 천하에 알게 하시려고!

 

이를 두고도 누구는 믿고, 누구는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할고 선동한다(42, 49). 그러니 각자 알아서 선택할 일이겠으나 우리로서는 이 감격의 순간을 믿음으로 내 안에 끊임없이 생겨나는 가정법, ‘만일 ~하였더라면’ 하는 헛된 바람과 싸운다. 이로써 우리는 오늘도 ‘땅에 충만하여, 정복하고, 다스린다.’ 이는 자신이면서 동시에 나를 둘러싸는 온갖 그럴 수없는 숱한 여지를 두고 벌이는 영적 전쟁이다. 그러므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는 심히 위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로 옷 입으셨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하신 일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주께서 지혜로

그들을 다 지으셨으니

주께서 지으신 것들이 땅에 가득하니이다

(104:1, 24).

 

이는,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여호와의 영광이 영원히 계속할지며

여호와는 자신께서 행하시는

일들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리로다

(30-31).

 

우리는 이를 믿음으로,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나의 기도를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

(33-3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