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롬 5:1-2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은 다 보호하시고 악인들은 다 멸하시리로다
시 145:20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을 누림으로 그 삶의 목적이 달라진다. 전에는 단지 이 땅의 평화를 원하고 살았으나 의롭다 하심으로 누리게 될 영원한 나라를 그리며 산다. 이는 곧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가능하다. 그러할 때 달라지는 것이 있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곧 우리가 함께 죄 가운데 있다 이제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다.” 이 은혜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것이다.
“그 때에 정의가 광야에 거하며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리니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사 32:17).”
지금은 사람에 의해 사람에 의한 사람으로 인해 어그러지고 깨지고 막무가내인 정의가 바로 설 것이다. 하여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눅 2:14).” 당장의 일로 부화뇌동하지 않기를. 어떤 어려움으로 오히려 주를 바라는 마음이 더욱 단단하여지기를. 이때 우리 안에 두시는 평안은 시공을 초월하고 현실의 문제를 능가한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이와 같은 말씀이 오늘 우리에겐 절실하다. 때로는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7-18).” 이 모든 일들로 우린 더욱 주를 바람이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화평은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았다.’ 나는 이제 이 말씀의 무게를 느낀다.
내가 어찌 이룬 일이면 어쩌다 또한 잃을 수도 있는 것이겠으나, 나로 인함이 아니요 그리스도로 인함이다. 저로 말미암아 오늘의 이 모든 사정과 형편이 나음을 입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5:20-21).” 부디 오늘에 겪는 일들로 하나님과의 화목이 더욱 깊어지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과 이어져 화목하심을 얻은 것인지,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6-18).”
이로써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20).” 곧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이 놀라운 과정이 우리로 주의 나라로 이끄신다.
이른 아침에 운전하고 올 때면 나는 주의 날을 꿈꾼다.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서 누리게 될 평안을 상상하곤 한다. 이때에 하나님의 성품으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하나님과 함께 누리게 될 영광은 소망으로 다가온다. 힘에 겨워 때론 쓰러지고 넘어지나 그럴 때도 주를 바라게 하심을 누리면서 말이다. 이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이 놀라운 변화를 사는 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벧전 1:3-4).”
이것으로 우린 누구를 다시 또 사랑한다. 이를 위해 친구는 먼 길을 달려와 아이에게 기타를 가르쳤다. 아이는 앞서 무슨 방송을 준비하느라 번잡스러웠고 요구가 많았다. 성가시고 귀찮은 일이지만 주의 이름으로 사랑한다는 일,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시 73:24-25).
그리하여,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
(26).
이와 같은 고백에 다다르기까지,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으니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
그들은 죽을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강건하며
사람들이 당하는 고난이 그들에게는 없고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도 그들에게는 없나니
…
(2-5)
저들은 주 없이도 형통하게 사는 것 같으나,
내가 어쩌면 이를 알까 하여 생각한즉
그것이 내게 심한 고통이 되었더니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
(16-17).
그럼에도 우리가 주의 성전에 이르러서야 아는 것은,
그들이 어찌하여 그리 갑자기 황폐되었는가
놀랄 정도로 그들은 전멸하였나이다
(19).
상상도 못할 때에 저들은 전멸하였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흔적도 없다. 이에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롬 5:5-6).” 우리는 확실한 뿌리를 내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23:4).
미처 몰랐을 때도 주의 안위하심이 나를 붙들고 계셨다. 환난이 어찌 즐거운 일이겠나만 그것으로도 우리가 찬송할 것은 ‘소망’ 때문이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것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9).” 하여 오늘의 어떤 어려움이 또한 환난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로 이끈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히 12:11).” 이에,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12-13).”
부디 오늘의 일이 내일의 기쁨이 되고 자랑이 될 것을. 이는 하나님의 사랑의 확증이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이 확실하고 분명한 사실 앞에서 “그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하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11).”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는 삶이란,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10).”
내가 아직 하나님과 원수 되어 살 때부터, 또한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20).” 오늘 이 말씀은 마치 마음이 어려워 몸이 아프고 몸이 아파서 의욕을 상실하고 있는 내게 일부러 들려주시는 것과 같이 시의적절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 4:17-18).” 이로써 영생을 더욱 바라게 한다.
하나님의 나라를 곁에 두고 사는 삶이란,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 1:2-4).” 오늘에는 당하나 그 일에 휘둘리지 않으며 주를 바라게 하심으로 주의 나라를 품고 살게 하심인데,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3).”
곧 오늘의 기쁨과 만족이 우선이 아니다. 그것으로 전부가 아니었다. 곧 광야 같은 세월 중에 비로소 생각한다. 고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신 8:2).” 이처럼 우리를 단련하심은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엡 3:13).” 이 일은 이미 예정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11-12).” 이로써 주께로 나아감이다.
나로 이 자리에, 이 시간을, 이와 같이 주를 바람으로 주 앞에 앉게 하심이 복되었다. 이는 곧 그리스도의 시간이 보증이 된다. 우리를 위한 구속의 십자가가 그 증거다. 하나님도 이를 부정하지 못하신다. 하여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이와 같이 확실하고 분명한 사실을 붙들고, 부디 오늘이 감사가 되고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곧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이 모든 게 주로 인한 것이면 또한 주로 인하여 해결될 것이니,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주가 이루신다. 주가 다스리신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 7:25).” 하여 오늘도,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로다
(145:2-3).
내가 알고 나와 함께 하셨던 이,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8).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여호와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것들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들이 주를 송축하리이다
(9-10).
결국,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은
다 보호하시고
악인들은 다 멸하시리로다
(19-20).
그리하여,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
모든 육체가 그의 거룩하신 이름을
영원히 송축할지로다
(2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