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전봉석 2024. 3. 6. 04:11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롬 6:16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 146:5

 

 

섣불리 남의 고난을 두고 왈가왈부할 수 없다. 일견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법이라,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잠 18:8).” 소위 뒷담이라 하는 것이 그래서 한 소리에 부풀려져 개인의 상상이 모두의 망상이 되기도 한다. 고통 중에 있는 욥을 찾아와 위로하는 저의 친구들은 고마우나 그 말의 쓰임에 있어 바른 말이 옳은 소리는 아니었다.

 

그런 가운데 우리가 주께 매인 바 되어 말씀으로 굳건하게 서는 일은 귀하였다. 오늘 말씀은 우리가 어찌 됨인지, 새로워진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하고 강한 어조로 말씀하신다(1-3).

 

하나님의 은혜는 그 어떤 값으로도 감당할 수 없는 값어치의 가치여서,

 

그들의 생명을 속량하는 값이

너무 엄청나서

영원히 마련하지 못할 것임이니라

(시 49:8).

 

이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하나님은 그의 아들 독생자를 죽여 우리를 죄에서 살리신 은혜이다. 이 은혜를 가벼이 여길 때 우린 늘 싼 은혜만 바라며 산다. 고작 이 땅에서의 성공과 건강과 형통함을 바라는 정도여서 그 이상의 말씀은 받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히 6:4-6).”

 

이에 우리는 더 나은 것을 바라며 주를 의지한다. 동생 일로 마음이 무거워서였는지 며칠 몸이 아프고 난 뒤 동생과 통화를 했다. 목소리가 의연해지고 그 각오 또한 새로웠다. 오히려 저들을 저주하거나 원망하지 않기를 가족들에게 부탁하고, 항소를 하되 있는 그대로, 주신 상황 가운데서 주를 신뢰하는 것으로였다. 이는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눅 12:6).”

 

모든 걸 다 아시는 주 앞에서 우리가 무슨 수를 쓰고 어떤 요령을 부린다한들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나?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벧후 2:20-21).” 하시는 말씀과 같이 우린 이미 의의 도를 안다. 이에 그 거룩한 명령으로 살아가면서 자칫 오늘의 이 형편에서 저들 모자가 당할 형벌에 대하여 도리어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래도 마음으로 낳은 아이라, 저 아이의 장래를 걱정하고 있는 모습이 참으로 귀하게 여겨졌다.

 

일의 결과는 우리가 알 수 없으나 우린 앞서 죄에 대하여 죽은 자들이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5:24, 6:14).” 이와 같은 고백이 내 것이 될 때 비로소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4-15).”

 

그러므로 말씀에 붙들려 산다는 것은 그의 약속을 받은 것으로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 23:19).” 그러므로 “우리는 필경 죽으리니 땅에 쏟아진 물을 다시 담지 못함 같을 것이오나 하나님은 생명을 빼앗지 아니하시고 방책을 베푸사 내쫓긴 자가 하나님께 버린 자가 되지 아니하게 하시나이다(삼하 14:14).” 곧 우리는 영생을 소망하는 자들이다. 고작 이 땅의 일로 주저앉아 말씀을 저버릴 수 없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우리는 그만한 능력이 안 되는 것에 감사하였다. 형편이 되고 능력도 갖추었다면 되갚아줄 마음으로 더 큰 로펌에서 더 어마어마한 조직력으로 맞서 저들을 응징하고 앙갚음하여 본때를 보이듯 보복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린 가진 게 없다. 또한 그렇게까지 공격하고 우리가 나서 싸워야 할 싸움이 아니다. 곧 이는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세상 권세 잡은 자의 권세 또한 하나님이 그리 두신 바, 우린 다만 주의 뜻을 살펴 주를 신뢰함으로 이미 승리하신 싸움의 승전가가 되어야 한다.

 

며칠사이 동생은 마음을 추스르고 주께 모두 맡기었다. 이는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롬 6:4).” 그러므로 우린 이제 그리스도처럼 살 뿐이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5).” 주와 연합하였다는 것은,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골 3:10).”

 

곧 오늘이 오늘의 일로 판가름 나는 것이 아님을,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 여전히 우린 육을 입고 살면서 건강을 잃기도 하고, 실패와 낙심도 당하나, 우리가 이제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6).” 고로 오늘의 일에 연연하는 마음을 다잡고 주만 바라는 것, 주의 뜻으로 사는 일은 부활을 사는 일이었으니,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40).”

 

하여 오늘을 살지만 우리는 영원한 내일에서 사는 사람들이었으니,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그 앞에 서게 하실 줄을 아노라(고후 4:14).” 하여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이 놀라운 말씀으로의 초대는 귀하다. 곧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 2:12).”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아, 이 말씀이 귀하다. 새 힘을 더하신다. 주의 것이면 모든 결과가 주의 손에 달린 것인데, 일련의 상황과 형편으로 끌려 다니듯 살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이와 같은 시간을 지나 하나님이 맡기시고자 하는 더 큰 사역을 기대하며,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세상이 아무리 어쩌고, 사람들이 모두 어떻다 해도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4).” 이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골 3:1-3).”

 

한층 단단해진 목소리와 마음가짐으로 현실을 받아내고 있는 동생의 믿음이 귀하였다. 가족들이 모두 한 마음으로 주를 신뢰하며 의지하는 것도, 우리가 살아서 사는 동안에 주를 인정함으로 얻는 평안으로 감사하였다. 세상 그 무엇도 우릴 무너뜨릴 수 없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롬 6:8-9).” 이는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잠 24:16).”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고후 13:4).”

 

우린 하나님의 능력으로 산다. 우리의 노력과 의지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고로 주께 살아 있는 삶은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롬 6:10-11).” 오늘 이 말씀이 나로 또한 무엇에 죽고 무엇으로 살아 있는지를 알게 하신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엡 5:14).”

 

이와 같이 아침에 나를 말씀으로 찾아오시는 주께 영광을 올리며,

 

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

(119:133).

 

하는 기도를 주께 올린다. 이는 전적으로 말씀으로 붙들린 기도이다. 곧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열매를 맺게 하고 또 너희 열매가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요 15:16).” 그렇다면 오늘의 이 모든 일 가운데서 우리가 바라고 구해야 할 것은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고후 5:15).”

 

우리가 다시는 나 자신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해 사는 것이었으니,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9).” 그렇다면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10).” 주가 어찌 이 모든 일을 다루시고 그 결과로 이루고자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4:13-14).” 이로써 오늘도 한 걸음 더 앞으로 나아간다. 분명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그리하여,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

(146:1-2, 5).

 

고로,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

(7, 1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