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고전 10:12, 3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 16:11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날과 나의 몸과 마음과 형편과 사정 가운데서 주를 인정하며 사는 일. 그리하여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나의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는 것. 더러는 힘에 겹고 마음은 어려워도 그래서도 주를 더욱 바라는 가운데서,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시 16:6-7).
이와 같은 찬송과 고백이 내 것으로 아멘, 할 수 있을 때가 은혜였다. 무엇보다 나는 나의 가까운 이들이 주를 사랑하는 것이 기쁘다. 한동안 우울감으로 마음이 어려웠던 친구가 지난 금요예배를 지나면서 괜찮아졌다고 했다. 어찌 그런가? 하고 물었더니 주를 인정하는 데서 오늘을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였다. 사는 날 동안 주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은혜이고 축복인지를 나이가 들어가면서 알 수 있겠다. 서로가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가는 동안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고 보살피신다는 사실을 서로가 고백하며 증거 할 수 있는 일,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1-32).”
자연스럽게 그 사이가 갈리는 것 같다. 예전에 그리 좋아하고 가까이하던 사람이나 일들이 멀어지는가 하면 더욱 가까워져서 서로가 말씀으로 삶으로 간증되고 찬송이 되는 사이,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 하여,
그들에게 만나를 비 같이 내려 먹이시며
하늘 양식을 그들에게 주셨나니
사람이 힘센 자의 떡을 먹었으며
그가 음식을 그들에게 충족히 주셨도다
(78:24-25).
월요일 아침, 막히는 출근길에서 저는 전화를 한다. 주일에 있었던 일과 말씀을 나눈다. 서로가 말씀을 나누면서 달라지는 사실은 하나님을 인정함으로 곁에 있는 자를 돕고자 하는 섬김이었다. 전에는 냉소적으로 무관심했던 사람에 대해 저들의 형편을 살피고 같이 의논하듯 저희를 두고 기도하게 된다. 어느 날 하나님은 저들 모녀의 이야기가 우리로 주의 도우심을 바라게 하는 창구가 되게 하셨다. 우리는 서로가 저희의 상한 영혼을 두고 기도제목을 삼는다. 이런 대화가 때로는 신기하고 기이하다.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고전 10:3-4).”
오늘 바울의 증거가 우리 입에서도 고백처럼 드려질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저는 나 때문이라 하고 나는 저의 덕분이라 하면서 서로가 기도로 말씀으로 응원이 된다는 것은,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6).” 앞서 간 성경의 믿음의 사람들이 본이 된다. 저들만큼 주의 사랑을 받은 민족이 또 어디 있었나? 그러나 저들만이 아니라 모두에게 들려주신 말씀인데도 누구는 은혜를 입었고 누구는 이를 돌아서 갔다. 저들은 말씀을 거부하였고 이들은 주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를 의로 여기셨다.
오늘도 이와 같아서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출 13:21-22).” 살면서 사는 동안에 우리가 이와 같이 주의 은혜를 체험하며 살 수 있다는 것,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23:2).
돌아보면 나보다 더 주의 특별하신 사랑 가운데 살았던 이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시절 그 순간들이 감사할 따름이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 고달프고 서러워서 죽기를 바라던 때도 있었는데, 나의 실의와 낙심이 주의 은혜를 더욱 가까이서 느끼게 하는 계기가 되어,
진실로 사람의 노여움은
주를 찬송하게 될 것이요
그 남은 노여움은
주께서 금하시리이다
(76:10).
나는 이 놀라운 찬송과 기도가 내 것이 되는 것에 감사하였다. 친구 또한 여러 곳이 아프고 힘들어서 강한 진통제를 늘 달고 산다. 사는 게 일이라, 하루가 지겨울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그것으로 주를 찬송한다. 그것으로 주를 기쁘시게 한다. 곧 주의 은혜의 빛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눅 1:79).”
저는 이제 매일 점심시간을 서둘러서 30분씩 성경공부를 한다. 일상과 성경은 하나여서 말씀에서 말씀으로 이어지는 날들이 감사할 뿐이다. 엊그제는 장례를 치르는 이에게 어떤 말로 위로를 건네야 하는가? 하고 물었다. 앞서 우린 죽은 자를 위한 기도나 저의 명복을 비는 것이 옳지 않은 것에 대해 말해주었다. 우리는 산 자의 땅에서 남은 자들을 위로하고 기도한다. 또는 아직 기회가 있을 때에 안 믿는 가족과 일가를 위해 복음을 전하고 그 삶이 증거가 되기를. 안 믿는 형님 가족과 하던 부모 제사나 명절 때 어찌해야 하는가 물어 예배 순서와 저가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간단한 원고를 주기도 했다.
이처럼 묻고 더욱 바로 알려고 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어떤 이는 스스로 아는 것으로 더는 알고자 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일러 함께 가자 권하여도 각자의 몫을 운운하며 자기 길로 간다. 함께 하지 않는 자는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고 여긴다. 다만 오늘 내 곁에 두시는 이, 더욱이 ‘아픈 이’들을 위해 같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자 한다. 우리에게 허락하신 자유가 행여 저들이 걸림이 될까 하여, 오늘 바울은 이를 주의하게 한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 저들을 대하면서 조심하는 것도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31).” 이에 우리는 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13).”
오늘 내게 두시는 이도 내가 감당할 수 있어서이고 행여 감당하기 어려울 때면 자연스럽게 주가 멀리하게 하신다. 신기하지만 그렇게 속 끓이고 애태워야 할 때가 있더니, 일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놓여나게 하실 때가 있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살전 4:1).”
한 사람을 주의 이름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한 영혼을 마주하는 일이어서 겉을 보고는 알 수 없다. 사람 겉만 보고 가까이하다 호되게 실망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벧전 2:16).” 오늘 나에게 부여하신 이 자유는 예전에 내가 추구하던 것과 확연히 다르다.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25).”
가까이는 친구에서부터 우연처럼 가장하고 맡기신 한 영혼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 여기까지 이르는 데 있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신 8:2).” 그땐 알지 못하던 것을 이젠 전하는 자로 세우셨다. 그릇 행하여 갔던 길에서 이제는 그곳에 있는 이로 돌이켜 주 앞에 오게 하신다.
어제 점심시간에 그런 내용으로 권면하였다. 성경을 알고자 할 때 주의할 것은 유튜브로 자기 좋을 대로 ‘자기 복음’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설교를 들을 때 말씀을 메모하고 이를 되새기기를. 안수집사나 장로나 때가 되어 교회가 부를 때 피하지 말 것을. 돈이 얼마가 들고 뭐가 어떻고, 남의 말에 부화뇌동하지 않도록.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잠 3:5-7).”
우리의 대화가 실질적이어서 어쩌면 더 흡수가 빠른지도 모르겠다. 주가 저를 이끄시는 것이 놀랍고도 확실하시다. 또는 누구의 거절과 거부반응이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을 정도로 스스로 안다, 알아서 하겠다, 하는 이들의 경우 내가 어찌할 수가 없다. 더러는 아픈 이들이라 다시 또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참고 기다리면서 주가 내게 행하셨을 그 은혜를 되새기게 된다. 그럴 때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 7:13-14).”
권면도 듣는 이의 것이고 덕이란 남을 위한 것이어서 우리로서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 10:23-24).” 하여 저들을 오늘 내가 마음에 두고 씨름하는 이 일이 복이었다. 노아에게는 함이 그러했을 것이고, 아브라함에게는 롯이 그러했을 것이고, 요셉에게는 형들이 그러했을 것이고… 저마다 끊어낼 수 없는 이들을 두고 주 앞에 애통해하다 그것이 값비싼 진주가 되는 것이었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엡 5:26-27).”
우리가 어찌 감히 주의 뜻을 다 알고, 그 섭리를 구별할 수 있다고 장담하겠나?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 주신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히 2:1-4).” 말씀이 곧 길이다. 우리의 기준이고 중심이다. 나는 이를 늘 강조하고 또 강요한다. 때론 억지로라도 말씀을 붙들고 씨름하기를.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 1:23).”
그러므로 헛된 생각이나 남의 말 따위로 자신의 기준을 흐트러뜨리지 않기를.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골 3:5-6).” 그래서도 나는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을 사랑한다. 나로 평안하게 하는 것을 귀히 여긴다. 나로 주께 더욱 엎드리게 하는 것을 감사한다. 결국 그것들로 인하여,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요일 2:15-16).”
그러므로 오늘도 시편으로 기도하고 찬송한다.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16:1-2).
이와 같은 고백이 내 것이 되어서,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3).
저들과 함께 주를 바라며 서로를 격려하고 함께 동행할 수 있는 것이 복이었다. 그러므로 오늘에서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나를 훈계하신 여호와를 송축할지라
밤마다 내 양심이 나를 교훈하도다
(6-7).
그러므로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8, 1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