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고후 1: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시 23:4
서로에게 위로하고 위로가 되어주는 우리의 사랑의 가치관을 두고 생각하게 한다. 이 사랑은 거저 주신 바 되나,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후 1:5).”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넘치는 위로이다. 이를 아가서의 노래로 들으면,
여자들 가운데에서 어여쁜 자야
네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갔는가
네 사랑하는 자가 어디로 돌아갔는가
우리가 너와 함께 찾으리라
내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으로 내려가
향기로운 꽃밭에 이르러서
동산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며
백합화를 꺾는구나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고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으며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그 양 떼를 먹이는도다
(아 6:1-3).
살면서 어쩌다 우린 사랑을 잃는다. 그때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다보면 안다. 고귀하고 존귀하였던 우리의 사랑의 위로를 뒤늦게야 깨닫는다. 살면서 사느라 잃었던 것을 다시 만날 수만 있다면, ‘나를 잉태한 이의 방으로 가기까지 놓지 아니할 것이다.’ 더는 잃지 않을 것이다.
누구를 보면서 어쩌다 그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대체 저의 결혼과 이혼이 어떤 고통으로 일그러졌기에 본인도 아이까지도 오늘에 이르러 저와 같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일까? 하고. 마치 모든 의욕을 상실한 사람 같은 이에게 나는 무엇으로 위로를 줄 수 있을까 하여 생각이 많다. 말씀은 우리에게 일러 우리가 사는 날 동안 우리 몸으로 우리가 드려야 하는 영적예배가 무엇인가를 알게 한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그러려니 오늘을 살면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2).”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의 선하심과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해야 하는데, 어쩌다 오늘에 이르러 저 지경이 되었는가? 하는 데 집중하기보다 그러므로 이제 더욱 그 남은 생애가 주를 바라고 섬길 수 있기를, 하여 그 마음에 구원의 기쁨을 다시 회복할 수만 있다면,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정하리이다
나의 죄를 씻어 주소서
내가 눈보다 희리이다
내게 즐겁고 기쁜 소리를 들려 주시사
주께서 꺾으신 뼈들도 즐거워하게 하소서
주의 얼굴을 내 죄에서 돌이키시고
내 모든 죄악을 지워 주소서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시 51:7-10).
이와 같은 참회와 탄식이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한다. 오늘 말씀은 그리하여 우리 하나님은 위로의 아버지시다. 환난 중에 우리를 위로하여 주신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고전 1:3-4).” 곧 우리로 오늘을 살게 하는 생의 원동력은 하나님의 위로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시고 우리는 그의 양이다.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사 40:11).” 그러므로 우리의 정체성을 바로 알린다.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1).” 이와 같은 말씀을 붙들고 살면서 우리 곁에 위로가 필요한 자에게 위로가 되는 삶이란, “이방들이여 너희는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먼 섬에 전파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을 흩으신 자가 그를 모으시고 목자가 그 양 떼에게 행함 같이 그를 지키시리로다(렘 31:10).”
그러므로 저가 어쩌다 저 지경에 이르렀는가? 하는 데서 그럼에도 오늘을 어찌 감사하며 주의 뜻을 회복할 수 있는가에 초점에 맞추어서, “양들의 큰 목자이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 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하게 하사 자기 뜻을 행하게 하시고 그 앞에 즐거운 것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가운데서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히 13:20-21).” 우리는 축복하고 또한 섬겨야 한다.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34:15).”
오늘도 이와 같이 함께 하시는 주께 나의 사명과 그 역할을 되새기며 주의 뜻을 찾는다. 아이엄마와 통화를 하고 아이의 근황을 묻고, 내가 어찌하면 저로 주를 사랑하는 데에 열과 성의를 다하게 할 수 있을까? 하여 내내 생각하였다. 아이를 위해서도 아이엄마가 위로를 받고 주의 뜻을 구하여야 한다. 이는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7, 19).”
먼저는 내가 굳건하고 부지런하기를. 저를 놓고 위로하며 주께 기도하기를 쉬지 않기를. 하여,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요 10:3).” 그러므로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고후 1:6).”
오늘 내게 두시는 나의 육체의 연약함과 그 마음의 짐으로 저의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아이는 반짝, 하고 약효가 있는 듯하였다가 도로 침울함의 끝에 서 있는 것 같다. 약의 용량을 늘리고 적응하여 1년, 그러고도 안 되면 다시 올리고 5년 관찰하다가 더는 진전이 없으면 평생을 그 약을 먹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아, 우리 어른들이 대체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자신들의 일그러진 사랑으로 다툼과 원망이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가된 셈이고, 그 부모가 그리 된 것이 자신들 때문이라고 투영한 아이들은 스스로의 성장을 멈춘 것이다. 그런 가운데 스스로 문제를 인식하고 병원을 찾고 약을 처방 받고 일상을 사는 아이를 응원하지는 못할망정 아이엄마는 여전히 아이 곁을 맴돌며 헬리콥터처럼 요란하다. 자기감정으로 아이를 짓누르고 있기는 여전한 것이다.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고후 1:7).”
우리의 잃어버린 사랑, 그 소망을 견고하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벧후 1:5-7).” 그럼에도 여전하다면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9).” 스스로를 보지 못하면서 자식 일에 언제까지 간섭하며 그 마음을 졸이느라 아이의 영혼을 짓누르기만 할 것인지.
우리 사랑은 격조가 있다. 이 사랑은 우리가 거저 받은 것이라 해서 아무렇게나 얻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러므로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고후 1:11).” 비록 오늘의 나의 사랑이 흩어지고 망가진 것 같으나 회복할 수 있다. 아가서의 노래다.
내 사랑아 너는 디르사 같이 어여쁘고,
예루살렘 같이 곱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하구나
네 눈이 나를 놀라게 하니
돌이켜 나를 보지 말라
네 머리털은 길르앗 산 기슭에 누운
염소 떼 같고
네 이는 목욕하고 나오는 암양 떼 같으니
쌍태를 가졌으며
새끼 없는 것은 하나도 없구나
(아 6:4-6).
나는 이 의미를 묵상하느라 운전을 하면서도 이를 무한반복으로 듣고 또 들으면서 되새긴다. 곧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고후 1:12).” 서로를 위하고 그 마음을 다하는 데 있어 이와 같이 하나님의 거룩함과 질실함으로 행할 수 있다면,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우리의 존재는 고귀하고 그 사랑은 존귀하였다.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니라.”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0, 11).” 내가 살면서 무엇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12).” 이를 오늘 본문에서도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완전히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너희가 우리를 부분적으로 알았으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고후 1:13-14).”
곧 우리의 역할과 그 사명은 분명하다.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고후 1:15, 18).” 주 앞에 순종하고 그 은혜로 감사하는 일이란, 우리의 사랑이 영성으로 통하였다는 사실이다. 이 땅의 흔한 그와 같은 사랑으로가 아니었다. 아가서는 노래한다.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왕비가 육십 명이요 후궁이 팔십 명이요 시녀가 무수하되
내 비둘기, 내 완전한 자는 하나뿐이로구나
그는 그의 어머니의 외딸이요
그 낳은 자가 귀중하게 여기는 자로구나
여자들이 그를 보고 복된 자라 하고
왕비와 후궁들도 그를 칭찬하는구나
(아 6:7-9).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사랑이었는데, 이 사랑을 잃어버리는 순간 삶이 곧 그와 그 아이가 뒤틀리고 삐뚤어져 외눈박이가 된 것이었다. 아,
아침 빛 같이 뚜렷하고
달 같이 아름답고 해 같이 맑고
깃발을 세운 군대 같이
당당한 여자가 누구인가
골짜기의 푸른 초목을 보려고
포도나무가 순이 났는가
석류나무가 꽃이 피었는가 알려고
내가 호도 동산으로 내려갔을 때에
부지중에 내 마음이 나를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에
이르게 하였구나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가 너를 보게 하라
너희가 어찌하여 마하나임에서
춤추는 것을 보는 것처럼
술람미 여자를 보려느냐
(10-13).
우리를 덮어버린 두꺼운 껍질 같은 자아를 깨야 한다. 그리하여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말 4:2).” 당장의 일을 결과로 놓지 않고, 소망을 잃지 않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고후 1:20).” 이를 위해 우리에게 성령으로 주셨다.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21-22).” 그러므로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24).”
오늘 아침도 말씀 앞에서 나를 돌아보고 내 곁의 한 영혼을 두고 주께 아뢴다. 아가서를 묵상하고 묵상하다 그 의미가 확장되면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23:1-3).
하시는 고백으로 나의 것을 삼는다. 주께서 이루시기를. 주가 함께 하실 것을.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4-5).
오늘은 비록 더디고 어려워서 힘에 겨우나 그것으로 주의 이름을 더욱 사모하여 소망하는 일이었으니,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