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9:8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시 31:23-24
하나님의 관심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다. 그의 백성들을 향한 그의 사랑은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의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신 33:3).”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복된 삶인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림으로 우상을 숭배하고 그릇된 길로 가기 시작하였다. 결국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리라(호 4:6).” 그러므로 호세아는 간절하게 전하였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 6:6).”
앞서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는 시대를 살았고, 곧이어 남유다도 멸망할 것을 예언하였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6:3).”
지혜의 왕이라 일컫는 솔로몬은 일찍이 저에게 주신 그 풍성하신 지혜로 세상 지식을 쌓는 데에 기력을 다하였다. 저로 인하여 왕국은 부강하였고 평화로웠으나 온갖 우상을 끌어들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혼탁하게 하였다. 후에 늙고 회개한 후에 보니 잠언과 전도서에 기록하고 있는 대로 모든 것이 허무할 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최고인데 그 지혜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 1:7).” 그런 뒤 주의 사랑을 바로 알면서 아가서를 썼다.
바울도 이를 받아,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빌 1:9-11).”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가 없이 하는 모든 선은 악하다. 심지어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3).” 그러므로 주전 755-710년을 살았던 호세아는 722년 앗수르에 의에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앞서 20여 명의 왕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보이는 세상의 우상을 섬기었다는 사실을 밝힌다. 우리의 우상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하나님을 대신하는 모든 피조물이다.
“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하시니라(호 1:5).” 하는 예언과 함께 결국 “내 백성이 나무에게 묻고 그 막대기는 그들에게 고하나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하였음이니라(4:12).” 이에 “바람이 그 날개로 그를 쌌나니 그들이 그 제물로 말미암아 부끄러운 일을 당하리라(19).” 그리하여 주전 722년에 북이스라엘은 멸망하였다. 그때 저들을 친 제국은 앗수르로 860-626년을 번영하다 소멸하였다.
호세아는 이후 자신이 죽고(710년) 난 뒤인 586년에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할 것도 예언하였다. 바벨론 제국은 626-539년에 번영하다 소멸한 제국이다.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호 6:4-5).”
결국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면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어 망한다. 이는 주를 경외하지 못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그것으로 우상을 삼으면서이다. 주를 경외함은 두려워할 줄 알고 섬김으로 예배한다. 우상은 눈에 안 보이는 하나님을 피조물로 대체하는 것으로 온갖 사물은 물론 사람으로도 이에 따른다. 우리가 주를 경외하는 일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에 따른 순종하는 것이다. 눈에 안 보이나 믿음으로 이를 알고, 주를 경외함으로, 세상을 우상으로 삼지 않는다. 곧 구약의 역사는 오늘을 사는 이 시대의 주의 자녀들에게도 반영된다.
우리가 주의 자녀로 살면서 그 가운데서 소수의 ‘남은 자들’로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도록 구별하신 자들이다. 앞서 에녹을 비롯하여 노아의 시대를 지나 아브라함으로 이어져 야곱으로 이스라엘이 구성되기까지 구약은 신약을 예표하고, 오늘 우리를 지목하여 부른다. 즉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하심은 오늘 나로 주의 것임을 확실히 한다.
이에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롬 2:28-29).” 그러므로 오늘에도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9:6-8).”
이를 볼 때,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갈 3:29).” 곧 여전하여서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빌 3:3).” 그러므로 오늘 바울은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9:8).”
이에 각 시대마다 하나님이 따로 ‘남은 자들’을 두셨다. 이를 직접적으로 거론하신 때는
첫째, 엘리야의 시대였다. 저는 주전 850년대를 살았다. 아무리 때가 어떻다 해도,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 19:18).” 하신 이 말씀을 바울이 받아서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 11:5).” 곧 저들은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하신 말씀으로 오늘에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한다(4).
오늘을 살면서 우리가 겪는 숱한 어려움에도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닌 것은 “그런즉 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 11:5).” 하신 말씀과 같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도 주를 경외하는 자들은 그 시대를 지탱하고, 우리들로 인하여 주의 이 시대의 주의 자녀들을 포기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다.
둘째는 엘리야의 시대였는데, 저는 주전 739-680년을 살았다. 분명 하나님은 ‘남겨두신 자들’이 있었고, 저는 이를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생존자를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으리로다(사 1:9).” 하고 분별하였다.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는 자기를 친 자를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 여호와를 진실하게 의지하리니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10:21-22).”
이와 같은 확신은 “그 날에 주께서 다시 그의 손을 펴사 그의 남은 백성을 앗수르와 애굽과 바드로스와 구스와 엘람과 시날과 하맛과 바다 섬들에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11:11).” 그러므로 “그 날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남은 자에게 영화로운 면류관이 되시며 아름다운 화관이 되실 것이라(28:5).” 하는 예언과 함께 통찰과 분별로 이를 기록하였다.
셋째는 주전 625-586년의 예레미야 때다. 분명 “내가 내 양 떼의 남은 것을 그 몰려 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잃어 버리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23:3-4).” 하신 주의 뜻을 저는 전하였다.
이어서 넷째는 주전 520년에서 480년까지 살았던 스가랴를 통하여 ‘남은 백성’이 있음을 알게 하셨다. “곧 평강의 씨앗을 얻을 것이라 포도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땅이 산물을 내며 하늘은 이슬을 내리리니 내가 이 남은 백성으로 이 모든 것을 누리게 하리라(슥 8:12).”
이는 결국 오늘도 같아서 주의 '남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주를 경외하는 지혜를 저버리고 사는 세상 속의 주의 자녀들로 다시금 주를 섬기도록 한다. 이로써 하나님을 대신하고 우상과 더불어 살고 있는 때에 우리로 ‘남은 자’의 사명을 이어가게 하신다. 어느 시대에나 비록 적은 수의 무리였다 해도 ‘남은 자들’은 있었다. 이들로 주의 뜻은 전하여져서 하나님의 백성들로 돌이켜 돌아오게 하셨다. 고로,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9:8).”
이와 같은 말씀을 따라가면서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오늘 나로 주 앞에 세우셨는가? 하는 그 목적과 이유는 선명해진다. 단지 이 땅을 이롭게 하고 모두의 안녕과 평화를 위하여, 해서 나빠지는 세상을 덜 나빠지게 하려는 게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세상은 나쁜 게 아니라 나빠야 하고, 더욱 더 나빠져서 예수의 재림이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로 알게 해야 한다. 가령 사람들이 악하다. 여러 악법이 만들어지고 이를 사람들은 선진화 된 것이라고 선호한다. 성정체성은 모호해지고, 교회마다 그 입장도 천차만별이라 저마다 성경을 운운하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는 멀어진다.
사람들은 악하여져 자신의 악함으로 스스로도 주체가 안 돼 여느 시대보다 정신적인 질환을 많이 앓는 시대를 살고 있다. 우울증과 불안은 현대인의 필수이고, 점점 더 정신과적인 질환은 우리 영혼을 잠식하여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혜의 틀을 흔들어댄다.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구별이 어렵고, 저마다의 지향하는 그 삶이 서로가 다를 게 없다. 이에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성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하게 하시리니 너희가 모든 일에 넉넉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그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고후 9:10-11).” 이로써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고후 9:6).”
이 원리와 주를 경외하는 지식는 무관하지 않다. 바울은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 3:8-9).” 곧 저의 이 간절함이 오늘 우리에게도 전하여지는 것이 이 시대에 ‘남은 자’의 숨겨진 지식은 이어지고 있다. 이에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로 말미암아 넘쳤느니라(고전 9:12).”
오늘 내게 두신 일이, 그 직분이 어떠하든지 나로 주 앞에 서게 하고 한 영혼으로 주를 바라며 나의 날을 주 앞에 내어드림으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이 놀랍고도 기이한 고백이 이제는 내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후 9:15).” 하면서,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
(시 31:1).
오직 주를 바람으로,
내가 나의 영을 주의 손에 부탁하나이다
진리의 하나님 여호와여 나를 속량하셨나이다
(5).
이에,
나의 앞날이 주의 손에 있사오니
내 원수들과 나를 핍박하는 자들의 손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5).
이는,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와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진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하게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강하고 담대하라
(23-24),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