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전봉석 2024. 4. 15. 05:13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 1:10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시 36:9

 

 

우리의 신앙은 말씀을 바탕으로 신앙적 교리에 세워진다. 이를 위한 사도들의 복음과 바울의 변론과 어거스틴을 비롯하여 많은 믿음의 사람들이 기독교의 교리를 정립하였다. 당시에는 물론 오늘에도 거짓 선생들은 난무하고 ‘내가 복음’이 만연하여 교리의 중요성이 다시금 강조된다. 특히 바울은 자신의 사도권에 대한 자부심을 잃지 않았다. 이를 율법주의와 맞서 싸워야 하는 자신의 필연적인 숙명으로 생각하였다.

 

스스로 자신이 옳다고 여길 때 자행하였던 일을 두고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하여 스스로 자평하였다.

 

오직 이와 같은 직분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다.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5-7).” 곧 오늘의 나로서도 이를 부인할 수 없는 것은 나 또한 그리스도의 강권하심으로 이 길을 간다고 확신한다. 그만큼 멀리 도망친다고 생각했고, 안 하겠다고 하며 등을 지고 살았던 날 동안 얼마나 죄악 중에 거하였는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는 동안 하나님은 끝까지 나를 찾으셨고 붙드셨고 이끌어서 오늘에 두셨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11-12).”

 

하여 하나님이 맡기신 일임을 인정할 때 여러 어려움도 혹은 마음의 짐도 물리치게 된다. 더러는 어떤 이에 대하여 내게 더는 할 수 없는 거리를 두시는 이도 하나님의 마음이다. 혹은 저로 이끌려 마음을 두고 계속 내 속이 어렵게 하시는 이도 주가 그리하심을 안다. 이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13-14).” 나로 혹은 저로, 우리로 그리스도의 장성하신 분량에까지 자라기를 성령은 이끌어 가신다.

 

이를 안다는 것, 어떤 이를 두고 마음으로 씨름할 때가 있고 어느 순간 더는 그러지 않아도 되는 때를 두시는 것을 느낀다. 속상하고 답답하던 마음이 더는 들들 볶지 않을 때가 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6-27).” 누구를 강요하지 않고 강제할 수 없다는 데서 안도할 때도 있다. 어떻게 강제로라도 해야 한다면 그 씨름이 끝도 없을 텐데, 어느 순간이 이르러 더는 마음의 짐이 느껴지지 않을 때….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빌 1:25-26).”

 

이 모든 게 사람을 위한 게 아니라는 데서 답을 찾았다. 누구를 안타까워하고 연민으로 사랑할 수 없다. 사랑한다 한들 그 사랑이 온전하지 못한 것은 자명하다. 내가 도우심을 받을 때도 사람의 것으로 여겨 저에게 고마워하느라 그 마음의 빚을 지고 살아야 한다면 그것으로 고역일 텐데, 저 또한 주의 이름으로 주께 드리는 것이어서 나는 이에 고마움을 표할 뿐 저에게 감사하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이를 어찌 갚으려 하나, 하고 생각이 많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를 생각하고 사랑함은 하나님으로 인한 하나님에 의한 하나님의 마음으로다.

 

가령 한 아이를 두고 마음이 어려울 때 그 엄마나 주변 여러 일을 두고 같이 씨름하는 것도 내가 어찌 해보려는 게 아니다. 그것으로 나의 보람을 얻고자 하는 일도 아니다. 다만 주의 사랑으로, 주의 뜻을 따랄 수 있기를. 그리하여 상한 영혼으로 다시금 바로 서서 주를 온전히 섬길 수 있기를.

 

여호와 하나님은 해요 방패이시라

여호와께서 은혜와 영화를 주시며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아끼지 아니하실 것임이니이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

(시 84:11-12).

 

그러므로 더욱 더 주를 의지하게 하시려고, 어떤 일은 의도적으로 실패하게 하셨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떤 일은 상대적으로 내가 한 일이 아닌데도 보람과 감사를 돌리게도 하신다. 대부분은 보통 바람과 같이 스쳐지나가기 일쑤이나 그것 또한 부질없거나 하나마나한 일이 아니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나의 인생에서 어떤 이가 그때 그렇게 날 위해 기도하며 곁을 지키고 함께 하였으나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내 길로 가느라 저를 잊고 살았던 것 같은데, 이제 와 감사한 것은 저의 기도와 숨은 노력으로 오늘의 내가 있다는 것을 감격할 때가 있다. 곧

 

“어떻게 하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내가 너희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누어 주어 너희를 견고하게 하려 함이니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롬 1:10-12).”

 

이 길이 열리고 서로 같이 동행하는 시점이 있고 길이 갈리어 다른 길로 간듯하나 가다보면 또 어느 순간에 어느 계기로 인하여 다시 만나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같은 길을 향해 갈 때 더러는 다른 지점에서 안부를 듣기도 하면서 반가움은 여전하여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한다. 그러는 동안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그 날에 그가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받으시고 모든 믿는 자들에게서 놀랍게 여김을 얻으시리니 이는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살후 1:8-10).”

 

의도적인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일, 어떤 사람을 향한 마음도 그 행하던 일도 더는 할 게 없는 듯 내 안에서 불씨가 꺼진 줄 알았는데 다시금 살아나 저를 위해 기도하며 주의 이름을 부르기도 하는 일이었으니,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벧후 3:7).” 그때마다 내게 맡기신 일, 그 순간을 사랑하는 것뿐이다.

 

더는 아니라 하실 때 가만히 멈추어 더는 그 일에 마음을 두지 않는 것도 훈련이 필요한가보다. 가령 누구에게 더는 연락하지 않기. 그냥 두기. 더는 어쩔 수 없는 시점에서 저를 그저 응원하고 더러는 기도할 뿐 더는 나서지 않는 일도 일이다. 마음이 그리 식은 듯 고요할 때도 있고 끓는대도 더는 힘을 쓰지 않고 식을 동안을 그냥 내버려두는 일도 일이어서, 구원은 내가 어찌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밖에는 달리 더할 수 없다는 사실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요 14:6-7).”

 

내가 주를 사랑한다는 일은 주가 나를 사랑하시는 동안 그리하여 내버려두실 때가 있었고, 적극적으로 관여하여 강권하실 때도 있었던 것처럼. 내가 누구를 사랑하는 일에 있어서 그 한 영혼으로 씨름할 때가 있고 잠시 멈춤, 더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지점에서 ‘기다려!’ 하시는 주의 명령을 따라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실은 누구에 대해 ‘그게 아닌데…’ 하는 마음으로 안타까움이 큰데도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그 할 수 없음을 견디는 것도 일이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뭔가 하려 억지를 부리는 게 욕이었고 주의 뜻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더욱 굳건하여지는 것은,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 4:12).”

 

이에 오늘 바울은 주후 55-56년 경 고린도 어디 혹 북 갈라디아에서 갈리디아에 있는 안디옥과 이고디온과 루스드라와 더베의 성도들을 향하여 편지를 쓴다. 안디옥이나 에베소에서 쓴 글일 텐데, 그 목적은 신앙과 믿음의 방종을 기회로 삼으려는 율법주의를 경계하며 복음이 준 자유를 지켜 복음의 정당성을 훼손하지 말라고 한다. 앞서 기도하면서,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갈 1:4-5).”

 

자기 몸을 주신 데 따른 복음의 시초는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창 3:21).” 비록 저들이 죄의 결과로 그 부끄러움을 일회적인 나뭇가지로 가리고 있을 때 구원의 언약을 예표로 가죽 옷을 지어 입히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7).” 이는 주의 보혈의 피로 얻은 값어치의 엄청난 대가가 따랐다. 이에 우리에게는 ‘다른 복음’은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하게 여기노라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교란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게 하려 함이라(갈 1:6-7).”

 

오늘 바울의 이와 같은 기초적인 교리를 바탕으로, 우리가 저들로 눈이 밝아져 새삼 죄에 물들지 않기를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창 3:7).” 곧 스스로 옳다 여기면서 어찌 해보려는 동안에 지혜로 일곱이 아니라, 해도 스스로 옳다 여겨 듣지 않는 게으른 자와 같아서 “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느니라(잠 26:16).” 그러니 뭐라 백날 말해도 저는 자신들이 옳다 여기는 일을 한다.

 

더는 복음이 아닌 일을 두고 씨름할 게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9).” 이 일을 하는 데 있어 그 절대적인 기준은 하나님의 기쁨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10).” 곧

 

“악한 자의 나타남은 사탄의 활동을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있으리니 이는 그들이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받지 못함이라(살후 2:9-10).”

 

받지 않는 데는 더 이상 쏟을 게 없다. 버려져 마를 뿐 엎어놓은 종지그릇에 어찌 무엇인들 담을 수 있을까?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 20:10).” 더는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사람을 위해 사람을 위한 노력은 허사였다. 사람 중심의 사회에서 우리는 홀로 하나님 중심으로의 삶을 살아간다. 다니엘과 그 친구들의 단호한 신앙과 같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6-18).”

 

아무리 어떠하다 해도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 그때에,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갈 1:12).” 그러므로

 

악인의 죄가 그의 마음속으로

이르기를 그의 눈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빛이 없다 하니

그가 스스로 자랑하기를

자기의 죄악은 드러나지 아니하고

미워함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함이로다

(36:1-2).

 

이를 보면서 오히려 내 안의 진실을 돌아보게 되면서,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시나이다

(5-6).

 

오직 주를 의지함으로,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7, 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