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엡 5:8-9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시 46:10
어떤 일을 두고 마음을 다스릴 때 주께 의뢰하는 것이 가장 쉽다. 내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 가운데 믿음이 가장 쉽다. 믿기지 않는데 믿어지는 것에 대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주께 아뢰고 맡겨두는 일. 이 모든 것에서 주를 인정하는 것으로,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10).” 하시는 오늘 말씀의 실천이 될까?
늘 느끼는 일이지만 주가 하신다. 에어컨 문제로 어찌할까 하고 마음이 어려웠는데 주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옆 사무실에서 같이 쓰는 것을 싫다던 이가 그리하겠다고 하고, 작년에 자신이 비용을 지불한 에어컨 수리비의 반을 요구했는데 주인이 이를 대신 내주겠다고 하였다. 이게 늘 보면, 교회가 걸린 일이고 한 영혼을 두고 씨름하는 일이면 하나님의 개입이 눈에 띄게 티가 난다. 아이엄마는 아이가 글을 안 쓰려고 해서 그만두겠다고 했다. 그러자고 하려는데, 아이는 그냥 두고 자신이 글을 쓰시라 하니까 그러겠다고 하였다. 화, 목으로 통화를 하며 글쓰기를 가르치기로 했다.
일련의 일이 내 의지와는 상관없다. 믿는 일도 내가 가진 믿음으로가 아니다. 어떻게 믿지? 하는 부분에서 이미 믿어지는 일을 두고 여러 생각이 많아진다. 점심 때 친구와의 성경공부에서 성경 어느 부분이 이해가 안 된다고 하여 저에게 설명하려고 준비한 원고가 서너 장이었다. 카톡으로 그 또한 보내달라고 하여 그리하였다. 저와 나눈 이야기가 그것이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8-9).”
오늘 우리는 우리 스스로도 설명할 수 없는 자신으로 산다. 우리 스스로가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1-2).” 이 놀라운 사랑의 관계 속에 있음을 알게 된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요일 3:1).”
우리가 신앙을 고백할 때 ‘어떠한 사랑’을 빼고 어찌 설명이 가능하겠나? 친구와 가끔 이야기 할 때도 서로가 하나님을 등지고 살 때의 일을 두고, 나는 아찔해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지? 싶을 정도로 ‘어둠이었던 나’에 대하여 더는 돌아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렇듯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 4:11).” 그러므로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12).” 하심을 우리가 어찌 알 수 있을까?
본 사람이 없는 하나님을 두고 저를 믿으며 나의 아버지라 할 때에 이를 어찌 타당한 이해와 논리로 설명할 수 있을까? 어제 친구에게도 말씀을 설명하면 그리 되물었다. 본 적도 없고, 아직 있지도 않았던 일을 놓고 무엇을 믿는다고 할 때 자신은 이를 어찌 이해하고 믿을 수 있는가? 나는 이처럼 주께서 개입하시는 것을 직접 보고 느낄 때 확신한다. 어쩌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말이 안 된다. 싫다고 거절하러 온 이가 그러겠다고 하고 돌아갔다. 그에 따른 가용될 돈을 주인이 대신 보내겠다고 한다. 그러는 게 맞네, 어쩌네, 하는 문제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라… 사람이 그 마음을 바꾼다고 하는 게 어디 내 맘 같은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사랑이 제일 쉬운 줄 알았는데 제일 어렵다. 제일 어렵다고 여겨 주께 아뢰었더니 제일 쉬운 일이 되었다.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일, 저를 이해하고 설득시켜야 하는 일은 주님이 그리하실 때 저절로 그리 되었다. 그러므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이보다 더 놀라운 사랑을 나는 알지 못한다. 한데 이 일이 창세전에 곧 만세전에 있었을 하나님의 뜻이었다는 것이 더욱 놀라게 한다. 그러니까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전 2:7).” 오늘 나의 이 모든 일이 어쩌다 그리 된 것은 없다. 온 인류의 역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루어졌다. 설령 그것이 아주 끔찍한 전쟁이었고 참혹한 역사의 한 장이었다 해도 그때 그리 행하였던 이들을 통하여 하나님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고 계신 것이다.
가령 천사의 타락에서 저로 사탄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로, 마귀 곧 ‘파괴자, 분리자’로 저를 내버려두신 것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을 위함이었다. 그리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네 길을 그에게서 멀리 하라 그의 집 문에도 가까이 가지 말라(잠 5:8).” 곧 오늘의 여러 모양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본다. 그러면서 “너희는 떠날지어다 떠날지어다 거기서 나오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지어다 그 가운데에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들이여 스스로 정결하게 할지어다(사 52:11).”
예전에 하나님을 등지고 살았던 나로부터, 나로 하여금 세상을 사랑하게 하였던 여러 이유와 상황에 대해서도 더는 주저할 것도 없이 멀리하게 하심은,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 20:10).” 이를 보이신다. 곧 도래할 심판에 있어,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11-12).”
그러므로 내 곁의 나를 대적하던 자들까지도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13).” 저들의 결국을 알면 알수록 내가 나를 더욱 조심하게 하는 일이었으니,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14).” 이 확연한 차이와 사실 앞에서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더라(15).” 두려워할 줄 아는 게 축복이었다.
어떤 일에서 더는 왈가왈부하지 않고 주께 아뢰는 것도, 특히 나는 교회를 이루고 믿음 안에 살려는 데서 아닌 게 아니라 배짱도 생기는 것 같다.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하는, ‘죽이시든가 살리시든가 주의 뜻대로 하시라.’는 마음으로 주를 신뢰하는 것은,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골 2:6-7).”
누구를 사랑하는 데 있어서도 나의 안달이 혹은 몹쓸 염려가 나를 괴롭히는 것 같으나 그것으로도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신다. 특히 다 늦게 아이엄마가 문자를 했을 때, 차라리 잘 됐다 하고 안 했으면 했는데 하나님이 다시 연결하시는 걸 보면… 누구를 사랑하고 또는 멀리하는 데 있어,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 50:23).
그렇게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딤전 4:4-5).”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은 게 나로 하여금 말씀으로, 기도로 주를 더 가까이 하는 게 우선이란 생각을 한다. 그러니까 온 우주만물이 이를 위해 공존하였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엡 5:6-7).” 우리 곁에 두신 저들로 우리가 예민하고 신중해진다.
인생은 나그네 같아서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 당장의 욕구와 불만을 제어하는 일이 중요하였다. 누구와 대화할 때, 어떤 일을 두고 어찌할 바를 모르겠을 때, 나로 하여금 주를 더욱 바라게 하심을 느낀다. 일련의 사태를 두고 안 그럼 도로 이사를 할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신기한 것은 하나님의 개입이 기이하다. 먼저 왜 주인이 수리비를 대신 내준다 그럴까? 또한 안 하겠다고 거절하러 온 이가 서로 좋게 합의하고 돌아간 것일까? 며칠 마음을 어렵게 하던 일들이 일거에 해결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하시면 다 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이 놀라운 사실이 더러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로 다가올 때,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하심을 알겠다(엡 5:8). 그리고 이르시기를 “주를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10).” 하심으로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9).” 그와 같이 가는 길에 어떤 열매들이 열리는가 알 게 하신다. 그럴 때 나는 더욱 확연히 나의 지나온 날들을 본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롬 7:11).” 고로,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골 2:13-15).”
이미 이기신 싸움에서 우린 공연히 힘을 뺄 필요가 없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그러므로 어떤 어려움 또는 육신의 연약함으로 골골하는 것 같은데도 이른 새벽 서둘러 교회로 올라올 수 있는 능력도 주시는 것이었으니… 이게 보면, 내가 하는 게 아닌 게 분명하다. 내가 누굴 설득하겠으며 누굴 돌이켜 주를 만나게 할 수 있을까?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벧후 3:3-5).”
현실은 그렇듯 나를 쥐고 흔들려할 때, 우리로 더욱 주를 의뢰하게 하는 힘은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살전 5:5-6).” 나는 친구와 성경공부를 하면서 내게 더 깊이 알게 하심을 느낀다. 내가 누구를 위로하고 격려하려 할 때 내가 더 위로하심으로 견고하여진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결론은 이 모든 게 나로 하여금 주의 자녀답게, 어느 훗날 하나님의 나라에서 누리게 하실 영광을 위하여 오늘을 통해 연마하고 연단하시는 것임을 알겠다.
그래도 계속 할래? 하고 마귀가 속삭이듯 내 마음을 쥐고 흔들 때가 기회였다. 그럴 때면 이제 죽이 되든지 밥이 되든지, 나는 주의 뜻을 구한다.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빌 2:15-16).” 이와 같은 말씀으로 그 증거를 삼으면서,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롬 6:22).”
그렇지, 그런 것이었어! 하고 드는 확신으로,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살전 4:1).” 그러므로 ‘날자, 우울한 영혼이여!’ 세상의 이 꼴 저 꼴 다 보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참 사랑을 알게 하심이니,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서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딛 2:15).”
그런 거였다. 주가 함께 하심이란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때에 주가 이루시는 일이 있었고,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엡 5:14).” 그리하여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19-21).” 오늘도 이와 같은 말씀으로 주신 이 날을 사는 것이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32).”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 46:1).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1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