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전봉석 2024. 5. 14. 04:00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

딤전 2:5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시 65:4, 10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시 65:2).

 

기도는 우리의 의무이고 특권이다. 더욱이 중보에 대하여는 “그러므로 내가 첫째로 권하노니 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임금들과 높은 지위에 있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하라 이는 우리가 모든 경건과 단정함으로 고요하고 평안한 생활을 하려 함이라(딤전 2:1-2).” 우리가 주를 기쁘시고 하고 영화롭게 하는 제일 가까운 일로써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 앞에 선하고 받으실 만한 것이니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3-4).”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는 주님이시다. 중보란 대신 구하고 아뢰는, 중개인 같다. 더욱이 기도할 수 없거나 기도를 알지 못하는 자를 위하여 하나님께 저를 아뢸 때 저를 지으신 하나님으로서 기뻐하심은 당연하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리라 하셨으나 그가 택하신 모세가

그 어려움 가운데에서 그의 앞에 서서

그의 노를 돌이켜

멸하시지 아니하게 하였도다

(106:23).

 

어쩌면 하나님은 이를 즐기시고 기다리신다. 우리로 오늘 이 자리에 있게 하심도,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롬 10:1).” 이와 같은 마음의 변화는 주가 더하신다. 가령 친구는 ‘아픈 모녀’를 두고 아내와 같이 저들을 살핀다. 쉬는 날이면 같이 백화점에를 가고 식사를 한다. 아이는 역시 '종이비행기'를 접지 못했다! 친구는 곁에서 금방 알려주고 같이 접었는데 이를 혼자서는 못 접는 아이의 상태를 보면서 비로소 지적장애를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를 위해 아이엄마의 교회 참여를 지지하고 응원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엡 6:18).”

 

우리가 곁의 한 영혼, 홀로 설 수 없는 이의 손을 잡아주는 것이 중보기도이다. 이 기도는 곁을 나란히 하고 같이 하며 권하는 일이다. 더러는 우리를 곤경에 처하게 한 자를 위해서도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렘 29:7).” 할 때 우리가 실제 이 땅의 위정자가 되고 고위층이 되어 심령을 두고 나라와 민족을 위한다.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창 47:10).”

 

우리의 권위가 크다. 그러므로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3-34).” 더러는 저들이 이를 알지 못해 우리를 위협하고 어지럽히는 것일 테니, 우린 어른이 되어 저들의 어린 심령을 위해 기도한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한 영혼을 사랑하는 일은 하나님의 전부를 이해하고 섬기는 일이다. 곧 주의 사랑이 ‘발단’이 되어 천지를 창조하셨고 사람을 지으셨다. 이에 따른 ‘전개’는 구원이다. 천사와 사람이 교만하여 타락함으로 ‘위기’를 맞은 것 같으나 앞서 이 모든 것 전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은 ‘절정’이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을 죄 없게 하심으로 하나님과 같이 동등됨을 취하게 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과 같이 누리고 쉼을 얻게 하심으로 ‘결말’이다.

 

“나는 시온의 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사 62:1-3).”

 

그렇게 우린 서로에게 영향을 끼친다. 의외로 아픈 영혼이 우리 곁에 많다. 상한 심령으로 교회를 출입하는 이들이 말이다. 전에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던 상대가 마음에 들어왔다. 저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저의 마음을 헤아려 조금은 더 나은 자로 주를 섬길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하게 된다. 기도하게 되면서 저의 친구가 되어주고 저의 관심에 마음을 기울이게 된다. 친구들 입에서 조현이나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는 상대를 두고 이런저런 소식을 듣거나 저에 대한 관심을 들을 때 나는 놀란다. 우리의 중보는 전파력이 있다. 다소 더딜 뿐 저들을 예수께서 위하시고 사랑하셨던 것을 우리는 안다. 어린아이와 여자와 과부와 온갖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을 두고,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이를 따라 베드로도,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벧전 1:22).”

 

곧,

 

“이로 말미암아 그는 새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히 9:15).”

 

한 친구는 격주로 월요일에 와서 아이에게 기타를 가르친다. 유난히 노래를 즐기고 찬양을 좋아하는 아이라 오고 가고 왕복 두 시간을 마다하지 않고 그리한다. 그때면 아이는 흥이 오른 얼굴로 집중하고 즐거워한다. 조금만 더하면 예배 가운데 특송도 할 수 있겠다고 칭찬하였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내 양을 먹이라.’ 하심은 이와 같은 작은 섬김으로 같이 하는 것이다. 일방적인 구제나 동정으로가 아니다. 주의 사랑으로,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9).” 우리 같이 그리로 들어간다.

 

중보란 저마다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는 일이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출 19:6).” 이는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 사람들이 너희를 우리 하나님의 봉사자라 할 것이며 너희가 이방 나라들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니라(사 61:6).”

 

내가 환자인 것을 인정하고 죄인 됨을 받아들이면서 동시에 내 곁의 환자나 죄 됨을 주목하게 된다. 모든 질병의 원인은 죄 때문이다. 아픈 것은 죄다. 슬프면 사랑이 아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말 1:11).”

 

다만 우린 주의 이름으로, 주의 사랑을 가지고, 주의 권능 안에서 이 일은 가능하였다. 솔직히 나는 한 친구가 ‘그런 일’에 마음을 기울이는 게 신기하다. 저가 이기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자신은 늘 최선을 다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한때 저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경멸하였다. 책임감 없고 무모한 사람들로 ‘기도나 하면서’ 허송세월을 보내는 것이라 생각하였다. 단지 마음의 위안 정도로 종교를 가지고 남은 책임은 스스로 열심을 다해 사는 것이 저에게 있어서는 최선이었다. 본인도 장애를 가지고 한 사회의 일원이 되려고 무던히 노력하였다. 여러 친구들 가운데 저는 늘 성실하였음을 인정한다.

 

그러던 그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주를 사랑하면서 주의 사랑이 자신의 노력으로 받은 게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즉 오늘 바울의 증거가 저로 가슴 저미게 한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대속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러 주신 증거니라(딤전 2:5-6).” 이에 저는 곁에 있는 한 사람, 그 영혼을 사랑하고 있다. 아픈 아이와 그 아이의 엄마의 아픔을 이해하며 저들과 보내는 아내의 시간에 동참한다. 전에 같으면 혼자 골프를 가든지 낚시를 갔을 텐데….

 

중보는 단지 기도로 그치지 않는다. 돈이 들고 시간이 필요하다. 마음이 기울고 생각을 어지럽힌다. “이를 위하여 내가 전파하는 자와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참말이요 거짓말이 아니니 믿음과 진리 안에서 내가 이방인의 스승이 되었노라(딤전 2:7).” 나는 기꺼이 나의 어줍고 옹색한 노력을 숨기지 않는다. 번번이 실패하고 하나마나 한 결과로 끝나는 것 같았는데, 곁의 친구들이 저마다의 관심으로 미처 관심이 없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시간과 마음을 기울이고 있었다.

 

우리의 직분이란 선이 그어진 게 아니다. ‘여기서부터 여기까지’가 아니다. 그 구분은 주가 더하시고 혹은 덜어 가시면서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8).” 그렇게 한 뼘 정도에 ‘아픈 영혼’의 상한 심령들이 우리 곁에 있었다.

 

일찍 잠이 깨서 주 앞에 올라와 나는 말씀 앞에서 작은 변화나 어떤 현상을 본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 4:14).” 친구 중 누가 말하길 내가 예수를 믿지 않으면 당하지 않아도 될 일을… 굳이 기독교 대안학교를 세워 주의 나라를 확장하는 데 쓰임으로 당하지 않아도 될 인생의 고역을 견디고 간다. 적당히 저들 가족과 가정이나 잘 사는 일로 한 생을 정리하자면 적당한 학벌과 재산으로 나른한 오후 같은 한 생을 살다 갈 수도 있을 텐데.

 

그럴 수 없는, 어쩌자고 주의 사랑에 뛰어든 것일까? 약한 몸으로 주의 일을 감당하는 아내와 이를 묵묵히 견디며 자기 몫의 이상을 감당하느라 고단하고 힘에 겨운 날들이지만… 이로써 주의 사랑이 저들 삶에 가득하여서,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었으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이 놀라운 말씀 앞에 여럿이 승복한다.

 

누군 자신들 쓰던 차를 선교사로 있다 들어온 이에게 내주고, 누군 방황하는 청년들의 버릇없고 무례함을 감수하면서도 집으로 초대하여 식사를 대접하고 저들의 진로를 놓고 함께 힘겨워하기도 한다. 그렇게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엡 4:2-4).” 그저 다만 할 수 있는 최선으로 우리가 무던할 때 “주는 미쁘사 너희를 굳건하게 하시고 악한 자에게서 지키시리라(살후 3:3).”

 

주가 행하심이다. 중보는 기도로 시작하여 일상으로 받아내는 일로서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딤전 2:8).” 이는 우리가 알건대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잠 31:30).” 하심을 묵상하며.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사 61:10).”

 

그리할 때에,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65:1-2).

 

이와 같은 확신을 가지고,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9).

 

그러할 때에 부족함이 없음은,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에 있는 자가 의지할

주께서 의를 따라 엄위하신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

(4-5).

 

하여,

 

주의 은택으로 한 해를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 방울이 떨어지며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초장은 양 떼로 옷 입었고

골짜기는 곡식으로 덮였으매

그들이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

(11-1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