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전봉석 2024. 5. 24. 04:4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딛 2:11-14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시 75:7

 

 

거짓에 대한 바른 가르침을 강조한다. 디도에게 일러 바울은 거짓 교사들과 달리 그레데인들에게 모범을 보임으로 올바른 길로 인도하라 한다. “오직 너는 바른 교훈에 합당한 것을 말하여(딛 2:1)” 할 때 바른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과 사도의 가르침을 의미한다. “미쁜 말씀의 가르침을 그대로 지켜야 하리니 이는 능히 바른 교훈으로 권면하고 거슬러 말하는 자들을 책망하게 하려 함이라(1:9).”

 

말씀으로 외에 바른 교훈은 없다. 거짓 교사들의 ‘자기 가르침’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고 다양한 시절이다. 저마다 유튜브를 찾아 누구의 어떤 방송을 보는 것으로, 자신이 읽고 쓰고 묵상하기를 자주적을 하지 못한다. 이는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깊은 대면의 시간을 빼앗는다. 가령 참고서나 문제지를 위주로 공부하는 아이와 같다. 교과서를 중심으로 스스로 읽고 그 의미를 파악할 기회를 잃는다. ‘길라잡이’ 해놓은 내용을 따라 사고하고 파악하여 그리 안다. 이렇게 아는 것은 힘이 없다. 같은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을 낼 힘이 없다.

 

같은 의미에서 나는 성경공부를 할 때 누구의 일방적인 교재나 판서된 글을 따라 마치 간추린 내용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에 주의한다. 스스로 읽기를 강조한다. 그럼 대부분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반응인데, 그때부터 이미 성령의 역사는 이루어지고 있다. 가르침의 오류나 배움의 잘못된 자세는 요약본으로 접근하기 십상이다. 실제 접하지 않고 아는, 지도로 그 지역을 알고 해설과 그 사실을 파악하는 일은 위험하다. 결국 성경은 삶으로, 살아서 삶의 양태를 가르치고 계신다.

 

그에 따라 “합당한 것을 말하며” 즉 ‘합당하게 말하는 게 아니라, 합당한 것을 말함이다.’ 저마다 합당하게 해설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합당한 것’을 말함인데, “늙은 남자로는 절제하며 경건하며 신중하며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하게 하고, 우선은 ‘절제와 경건과 신중함’이다. 늙은 남자의 특징으로 자신의 경험을 바탕을 하는 완고함을 우선 떠올리게 된다. 이에 ‘절제’를 앞에 두는 것은 노년기에 범하기 쉬운 ‘술 취함’ 곧 무엇에 대해 인 박힌 생활을 가리킨다. 이는 ‘삶 전체의 절제’로 노인은 생의 끝자락에서 언행심사가 살아온 방식을 따를 때가 많다.

 

그러므로 절제를 앞에 두는 것은 ‘경건’을 이루려 함이다. 경건은 ‘위엄이나 품위를 드러내는 것이다.’ 경건은 단정하고 일관되다. 일구이언하지 않고, 술에 인박히지 않고, 이익을 추구하려 탐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 일구이언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히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딤전 3:8).” 여자들도 마찬가지로 경건은 수다스럽지 않고 남의 말을 옮기지 않으며 떠벌이지 않는다.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11).”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이 자신을 감찰하고 계심을 안다.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 8:27).” 그렇게 우리가 경건을 연습하고 날마다 쌓고 사는 것은 ‘영원한 세계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 11:13-16).”

 

이를 위하여 우린 근신한다. 근신은 따로 떨어져 신중하고, 분별력이 있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어떤 일을 두고 사려 깊게 생각하고 성숙한 마음으로 이에 임하여 판단한다. 오늘 본문은 우리의 실제적인 삶을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믿음과 사랑과 인내함에 온전하게 한다.’ 그러므로 ‘늙은 남자’가 갖추어야 할 세 가지 덕목은 믿음과 사랑과 인내라는 사실이다. 여기서 인내는 ‘소망’을 향하는 바르고 실질적인 생활로 얻어진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

 

이에 우리로 온전하게 하는 것은 건전하고 바른 것으로 거짓을 삼가 주의하게 한다. 거짓이 난무하다는 것을 사람들도 다 안다. 그러면서도 열에 아홉은 유튜브를 비롯하여 각종 유언비어에 쓸려다닌다. 거짓이 진짜 같아서 그런가? 하고 마음에 균열을 준다. ‘늙은 남자’로 지목하여 구별한 것은 자신의 삶으로 단단해진 교만을 깨고 성경의 바른 교훈을 알기 바라서이다.

 

또한 “늙은 여자로는 이와 같이 행실이 거룩하며 모함하지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아니하며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이 되고 그들로 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3-5).” 하며 이어지는 말씀으로도 알 수 있다. 우리가 살면서 그 행실이 거룩하다는 게 너무 막연하고 성스러운 것 같으나 알맞다, 합당하다는 것으로 이해가 가능하다. 즉 ‘거룩한 생활에 합당하도록 자신을 절제하고 근신하는 생활이 필요하다.’

 

이 또한 ‘늙은 여자’로 지목하여 강조하는 것은,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딤전 5:3-6).” 하는 말씀으로 의미를 구체적으로 살필 수 있겠다. 이 모든 게 ‘향락’을 좋아하는 데 있어 그릇 행하기 쉽기 때문이다.

 

‘향락’이란 쾌락을 찾는 것이다. 쾌락은 즐거운 일이다. 감정이 만족하는 일이다. 욕망을 충족시키고 욕구를 채움으로 즐거운 감정을 얻는 것이다. 이에 ‘참소치 말며 많은 술의 종이 되지 말라고 하신다.’ 여자들의 특징은 수다와 자아도취다. 바울은 이를 부정적으로 두고 교육하라고 한다. 수다 떨다 참소한다. 참소는 남을 헐뜯고 모함하며 말을 더하여 보태진 말만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하는 일이다. 역시나 술 취함으로 이 일은 가중되는데, 술은 정신을 흐트러지게 하고 감정을 격앙시켜 평정을 잃게 한다.

 

당시 그레데의 늙은 여자들이 음료처럼 마시는 포도주로 ‘술에 취해’ 좋지 않은 언행을 자주 보였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오늘날도 다를 게 없지만 술은 성적으로도 문란하게 한다. 이에 우리는 ‘선한 것을 가르치는 자’들로 그리스도인이란 이런 자리를 마다하고 근신함으로 선을 보여야 한다.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실을 봄이라(벧전 3:1-2).”

 

요즘은 워낙에 여자고 남자고 할 거 없이 표현에 거침이 없다. 그렇다 보니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있어 ‘가정의 중요성’을 돌아보게 한다. 이에 ‘젊은 여자들을 교훈해야 한다.’ 이를 강조하는 것은 딸이나 며느리나 ‘젊은 여자들’이 가정에 충실할 때 올바른 삶의 바탕을 이룬다. “르무엘 왕이 말씀한 바 곧 그의 어머니가 그를 훈계한 잠언이라(잠 31:1).” 하는 부분에서 어머니의 사명이 얼마나 귀한가를 알 수 있다.

 

“내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 내 태에서 난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 서원대로 얻은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 네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며 왕들을 멸망시키는 일을 행하지 말지어다(2-3).”

 

하며 이어지는 잠언의 마지막 장은 앞장의 여러 교훈을 한데 정리하며 결론짓는다. 그러므로 “고운 것도 거짓되고 아름다운 것도 헛되나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자는 칭찬을 받을 것이라(30).” 이는 “그 손의 열매가 그에게로 돌아갈 것이요 그 행한 일로 말미암아 성문에서 칭찬을 받으리라(31).” 곧 ‘남편과 자녀를 주의 사랑으로 바로 잡는 일이 여자의 사명이다.’ 이에 기본은 ‘순전하다’는 것이다. 순수하고 완전하다는 의미로 ‘순결한 생활’을 의미한다. 이는 특히 ‘젊은 여자’의 가장 귀한 덕목이다. 그러므로 남자들은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딤전 5:2).”

 

남자로 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앞뒤를 가리는 데 있어 단순하고 모순된 게 남자다. 일련의 어떤 결정을 내릴 때 나름 다방면으로 알아보고 파악했다고 하나 아내의 ‘어떤 지적’ 하나로 그 모든 게 허술하였음을 자주 경험한다. 여자들이 ‘집안 일’을 하는 게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 남자의 단순무식한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것은 여자의 지혜이다. 이것이 선이다. 이는 친절함으로 연결된다. 예수님의 말씀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마 20:15).”

 

그렇게 해서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신중하며 순전하며 집안 일을 하며 선하며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게 하라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딛 2:4-5).” 우리의 궁극적인 근신도 절제도 바른 행실과 올바른 삶도 모두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말씀이 비방 받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7-8).”

 

오늘 말씀으로 실제의 생활에서 나의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돌아본다. 직업에 있어서도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종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벧전 2:18).” 우리가 서로 복종하는 것은 참 자유에 대한 해방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게 ‘하나님의 말씀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려 함이라는 사실’에서 매우 중요한 믿음 생활의 덕목인 것을 알 수 있다. 근신하고, 신중하게 자기를 통제할 수 있는 삶이 절제하는 삶이다.

 

특히 성적인 타락에는 대책이 없다. 얼마 전 친구 교회의 남녀 집사의 외도로 교회가 어지러웠던 일과 같이 “너희 중에 심지어 음행이 있다 함을 들으니 그런 음행은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것이라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고전 5:1).” 더욱이 교회 안에서의 이와 같은 사실은 여러 부분에서 서로의 시험이 된다. 바울은 오늘 디도에게 또는 우리에게 각계각층의 사람을 양육하는 데 있어 여러 덕목을 설명하고, 그 행위와 가르침이 일치하는 교사 즉 그리스도인이 될 것을 강조하고 있다.

 

나는 누구보다 오늘의 나를 참 다행이라 여기며 감사한다. 이런저런 연약함으로 예전 같으면 나서거나 나다니며 내가 어찌 해볼 요량으로 별의 별 것에서 유혹이 많았을 텐데, 하나님은 나를 ‘꼼짝 마라.’ 하고 묶어두심으로 이처럼 말씀 앞으로 이끄시는 강권하심으로 감사하다는 것이다. 나로 이제 범사에 ‘네 자신으로 선한 일의 본을 보여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우신다. 나로서는 어쩔 수 없이라도 이 일에 순종하게 하심이 귀하고 감사하다는 의미다. 그리하여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시려고, “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 교훈에 부패하지 아니함과 단정함과 책망할 것이 없는 바른 말을 하게 하라 이는 대적하는 자로 하여금 부끄러워 우리를 악하다 할 것이 없게 하려 함이라(딛 2:7-8).”

 

하여,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11-14).” 말씀이 구구절절 나를 위한 것으로,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서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15).” 하시는 말씀 앞에서 그 은혜가 귀하다.

 

하나님이여 우리가 주께 감사하고

감사함은 주의 이름이 가까움이라

사람들이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파하나이다

(시 75:1).

 

이에,

 

무릇 높이는 일이

동쪽에서나 서쪽에서 말미암지 아니하며

남쪽에서도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

(6-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