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 11:3
주께서 내가 아는 자를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고 나를 그들에게 가증한 것이 되게 하셨사오니 나는 갇혀서 나갈 수 없게 되었나이다 곤란으로 말미암아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
시 88:8-9
믿음과 기다림은 하나다. 모든 의미는 비교에서 나온다. 이 일이 맞나? 이 길로 가면 되는 것인가? 하는 마음이 수시로 내 안을 들락거릴 때도 묵묵히 ‘한 길 가는 순례자’로 살아내는 일, 하여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 11:1-2).” 앞선 믿음의 사람들을 열거하며 오늘 말씀은 이를 증거 한다. 믿음보다 말도 안 되는 게 또 있을까? 내가 어찌 믿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오직 하나님에 의해 하나님으로 하여금 내 안에 주어졌고 나로 이 길을 걷게 하셨다. 앞서 나는 누구보다 믿음을 거부하며 나름은 이성과 논리로 합리적인 선택을 좇으며 살았다. 그런데 결국은 믿음으로였으니, 믿음의 실제적인 주체는 나의 의지가 아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시 62:1-2).
하여 오늘 시편의 감정으로,
주께서 내가 아는 자를
내게서 멀리 떠나게 하시고
나를 그들에게
가증한 것이 되게 하셨사오니
나는 갇혀서 나갈 수 없게 되었나이다
곤란으로 말미암아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
(88:8-9).
이에 심령이 가난한 자로, 애통한 자로, 온유한 자로 주 앞에 서게 하심이다. 내 안에 두시는 어떤 약속,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 23:19).” 그러므로 나를 끝까지 찾으시고 붙드시고 오늘 여기에 두신 이가 주의 뜻을 따라 그 쓰임을 다하게 하실 것이다.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사 25:9).”
이에,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롬 4:20-22).”
하여,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오늘 말씀은 우리로 성경 전체의 의미를 알게 하신다. 누군 믿음으로 나음을 받았고 누구는 믿음이 없어서 광야로 흩어졌다. 그러므로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너희 각 사람이 동일한 부지런함을 나타내어 끝까지 소망의 풍성함에 이르러 게으르지 아니하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말미암아 약속들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 자 되게 하려는 것이니라(히 6:11-12).” 그렇게 해서 믿음으로 우리 삶은 변하였다.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으로 내가 붙들린 확신으로 현재는 달라졌다. 믿음은 확고하고 확신은 단단한 인생을 허물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한다. 믿음은 곧 현재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17-20).”
단지 허상이나 꿈이 아니라 실제다. 하여,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나도 이 일이 어찌 가능하지, 혹은 내가 이를 감당할 수 있는지 자신할 수 없음에도 그렇게 오늘도 이 자리에 있다. 이 길을 간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 그에 따른 나의 수고와 애씀은 다음 일이다. 믿음은 미지의 영역이고 선택은 현재의 일이다. 말도 안 되는, 어떻게 이 같은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설명할 수 없다 해도 “이로 말미암아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
요즘 같이 당장 혹은 분명하게 어떤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에서 믿음보다 막연하고 뜬구름 잡는 일 같은 게 또 있을까? 저마다 자신의 삶에 가치를 두고 산다고 살지만 또한 저마다는 말할 수 없는 슬픔을 안고 산다. 하여 또한 저마다의 의미는 서로 비교하며 그런 가운데서 자신이 찾은 것으로 가치를 둔다. 그러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나는 나에게 일어난 이 일을 어찌 설명할 수 없지만 그리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오히려 신기할 따름인데… 아이와 오전 8시에 줌으로 성경공부를 위해 7시 반부터 앉아 아이가 미리 질문한 성경구절을 두고 전할 내용을 정리한다. 점심때면 친구는 어찌 그 시간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12시가 되면서부터 앞서 기다리며 오늘은 무슨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서로가 나눌 수 있을까? 하고 앞서가는 나의 마음이 신기하다. 그런 점에서 나는 지나는 길에, 무얼 하다, 겸사겸사 하는 식의 어떤 만남이나 대화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럴까, 점점 나의 곁에는 사람이 없다. 굳이 만나야 하고, 필히 전해야 할 이야기가 아니면 모든 게 부질없음을 안다.
그렇게 하나님은 내 곁의 사람들을 떨어지게 하셨는가? 예전에는 참 빈말을 좋아하고 귀히 여겼다. 속에 없는 말이라도 겉치레로나마 필요하다고 여기며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대화나 만남을 꺼린다. 피곤할 뿐이고 그렇게 지나가면 또 한참을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도 되는 사이에 대하여 별 의미를 두지 않는다. 그렇게 털어내듯 끊어진 사이가 때로는 그리울 때도 있으나 그런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고후 3:5).” 그러므로 “자기의 마음을 믿는 자는 미련한 자요 지혜롭게 행하는 자는 구원을 얻을 자니라(잠 28:26).”
이 나이쯤 살다보니 죽고 못 살 것 같은 친구도, 사랑한다며 죽음까지도 불사할 것 같던 사이도 부질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 11:3).” 나의 맹랑한 생각에 이와 같은 말씀을 연관 지어도 될지 모르겠으나, ‘믿음의 세계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지어졌다.’ 그렇게 성경을 살펴볼 때 모든 믿음의 선진들이 이 길을 갔다.
아벨로부터 시작하여 에녹도 다를 바 없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6).” 오늘 이 말씀은 나의 감정과 의지도 믿음으로 붙들릴 때 가치가 있음을 말해준다. 결국 믿음이란 보지도 못한 것을 본 것처럼 확신하는 일이다. 들어도 믿기지 않는 일에 마음을 두고 사는 일이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고후 5:7).” 보는 것을 굳이 믿을 게 뭐 있으며, 알고 있는 것을 뭐 그토록 확신을 더해가며 바투로 다잡을 게 뭐 있겠나?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8-9).”
친구는 어린아이처럼 예수를 한 번만 볼 수 있다면, 하나님이 한 번만 목소리를 들려주었으면 좋겠다며 자신의 막연함을 두고 갈등하였다. 나는 그와 같은 갈등이 주의 것이고, 주가 주신 게 아니면 그런 갈등도 하지 않고 살 것이라고 말하였다. 원함이 있는 것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을 수 없는 중에 믿는 것과 같다. 이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약 1:6-7).”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이 놀라운 증거,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요 1:12-13).”
이에 “믿음으로 노아는…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히 11:7-8, 11).” 전혀 말도 안 되는 것에 대하여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13). 믿음은 자기 자신에게조차 납득이 안 가는 일이지만 “그들이 이같이 말하는 것은 자기들이 본향 찾는 자임을 나타냄이라(14).”
아, 우리의 본향. 그 약속의 나라.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16).” 그렇게 해서 저들은 모두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이 길을 갔다. 믿음으로, 믿음으로,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33-38).”
그리하여,
“이 사람들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를 받았으나 약속된 것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39-40).”
하나님이 우릴 위해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다는 것을 믿음으로 오늘도 묵묵히 이 자릴 지킨다. 이 길을 간다. 모두를 잃는다 해도 이 또한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할 수 없는 이 일을 행함으로,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살후 1:11-12).”
하여,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야로 주 앞에서 부르짖었사오니
나의 기도가 주 앞에 이르게 하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기울여 주소서
(88:1-2).
어떠하든지,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
(1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