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원고]

이사야 25장 /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전봉석 2024. 12. 5. 10:29

241208 주일

 

이사야 25장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사 25:1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

사 25:9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사 25:12 네 성벽의 높은 요새를 헐어 땅에 내리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시리라

 

 

들어가는 말

 

구원에 이른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기뻐하며 기다린다. 오늘 말씀 첫 구절도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1).” 하는 것과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9).” 이는 주의 공의와 심판을 바란다.

 

그날에는 우리뿐 아니라 모든 세상이 그러할 것이다.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14).” 곧 구원의 때에 열방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 복음이 온 세상에 널리 전파되었음’을 인정할 것이다.

 

이에, “주는 포학자의 기세가 성벽을 치는 폭풍과 같을 때에 빈궁한 자의 요새이시며 환난 당한 가난한 자의 요새이시며 폭풍 중의 피난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4).” 우리는 환난 중에 주가 돌보셨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하여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곧 장차 우리가 들어갈 하나님의 나라는 그 영광에 참여하는 우리의 특권이다. “천국은 마치 자기 아들을 위하여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과 같으니(마 22:2).” ‘이를 싫어하는 자들의 이유’를 이사야서에서는 ‘화 있을진저’ 하며 다음과 같이 열거하고 있다.

 

1) 이 땅의 재산이 늘려가는 즐거움 때문이다.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5:8).”

 

2) 이 땅의 쾌락을 즐기느라 그렇다.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11).”

 

3) 자신들의 거짓말로 살기 때문이다.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 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18).”

 

4) 악과 선을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쓴 것으로 단 것을 삼으며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20).”

 

5) 스스로의 지혜를 자부하여서이다.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21).”

 

6) 향락을 따라 사느라 그렇다.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잘 빚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22).”

 

7) 남의 것을 약탈하고 탈취하느라 그렇다. “가난한 자를 불공평하게 판결하여 가난한 내 백성의 권리를 박탈하며 과부에게 토색하고 고아의 것을 약탈하는 자는 화 있을진저(10:2).”

 

8) 자신의 강한 능력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앗수르 사람은 화 있을진저 그는 내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내 분노라(5).”

 

9) 교만하기 때문이다.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은 화 있을진저 술에 빠진 자의 성 곧 영화로운 관 같이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세운 성이여 쇠잔해 가는 꽃 같으니 화 있을진저(28:1).”

 

10) 자기 꾀 즉 교만에 빠져서 그렇다. “자기의 계획을 여호와께 깊이 숨기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의 일을 어두운 데에서 행하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 하니(29:15).”

 

11) 패악하고 계교를 부리느라 그렇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패역한 자식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이 계교를 베푸나 나로 말미암지 아니하며 맹약을 맺으나 나의 영으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죄에 죄를 더하도다(30:1).”

 

12) 도움 받을 구석이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그들은 말을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심히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앙모하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구하지 아니하나니(31:1).”

 

13) 남을 학대하느라 그렇다. “너 학대를 당하지 아니하고도 학대하며 속이고도 속임을 당하지 아니하는 자여 화 있을진저 네가 학대하기를 그치면 네가 학대를 당할 것이며 네가 속이기를 그치면 사람이 너를 속이리라(33:1).”

 

14) 창조주를 대항하느라 그렇다.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45:9).”

 

15)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못하고 남을 탓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에게는 무엇을 낳았소 하고 묻고 어머니에게는 무엇을 낳으려고 해산의 수고를 하였소 하고 묻는 자는 화 있을진저(45:10).”

 

이런 자들에 대하여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정의하셨다.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눅 6:24).” 자기만족으로 이미 위로를 얻은 자들, 저들은 이미 배가 부르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25).” 하여 저들의 대상이 되는 즉 핍박과 환난의 대상인 우리 믿는 자들의 소망은 저 천국을 사모하고 이에 곧 임하실 주의 심판을 기다린다. 이에 예수님은 위로하시길,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마 5:11-12).”

 

본문이해

 

오늘 말씀은 세상에 대한 심판과 종말의 말씀이다. 이를 정리하면, 타락한 성읍을 멸망시킨 하나님에 대하여 찬송하고(1-5),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풍성한 잔치에 대해 묘사하며(6-8),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방해하는 ‘모압’의 멸망을 예언한다(9-12). 이와 같이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통치를 서술한다(24-27장).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사 25:6-7).”

 

본서의 핵심은 ‘시온산과 예루살렘’에 있다. 이는 ‘하나님 나라의 영광’된 모습을 예표 한다. 하여 예루살렘과 시온 산에 대한 관심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자손이 예물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여호와의 집에 드림 같이… 내가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는 것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66:20-22).” 하는 이사야서의 핵심으로 종말론적인 하나님의 영광을 시온 산에 두고 있다. 이에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설명하고 있는 ‘다섯 가지의 이유’로 찬양하게 된다.

 

첫째,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1).”

 

둘째, 심판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성읍)이 드러날 것이다.

“주께서 성읍을 돌무더기로 만드시며 견고한 성읍을 황폐하게 하시며 외인의 궁성을 성읍이 되지 못하게 하사 영원히 건설되지 못하게 하셨으므로 강한 민족이 주를 영화롭게 하며 포학한 나라들의 성읍이 주를 경외하리이다(2-3).”

 

셋째, 하나님의 심판은 사랑과 긍휼의 결과이다.

“주는 포학자의 기세가 성벽을 치는 폭풍과 같을 때에 빈궁한 자의 요새이시며 환난 당한 가난한 자의 요새이시며 폭풍 중의 피난처시며 폭양을 피하는 그늘이 되셨사오니 마른 땅에 폭양을 제함 같이 주께서 이방인의 소란을 그치게 하시며 폭양을 구름으로 가림 같이 포학한 자의 노래를 낮추시리이다(4-5).”

 

넷째, 우리는 하나님의 천국 잔치에 참여할 것이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 산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시리니 곧 골수가 가득한 기름진 것과 오래 저장하였던 맑은 포도주로 하실 것이며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얼굴을 가린 가리개와 열방 위에 덮인 덮개를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자기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6-8).”

 

다섯째, 최종적인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의 영원한 평안이다.

 

1)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을 찬양한다.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9).”

 

2) ‘모압’에 대한 심판은 우리로 찬양의 대상이다.

“여호와의 손이 이 산에 나타나시리니 모압이 거름물 속에서 초개가 밟힘 같이 자기 처소에서 밟힐 것인즉… 그가 헤엄치는 자가 헤엄치려고 손을 폄 같이 그 속에서 그의 손을 펼 것이나 여호와께서 그의 교만으로 인하여 그 손이 능숙함에도 불구하고 그를 누르실 것이라(10-11).”

 

곧 <여호와의 날>에 우리는 믿는 자들로서 찬양한다(9). ‘모압’은 개인적으로든지 사회적으로든지, 고통과 핍박에 억눌렸던 것이다. 이에 놓여나서 기뻐하게 되고 비로소 평안을 얻는다. ‘모압’은 반드시 멸망할 것이다. “네 성벽의 높은 요새를 헐어 땅에 내리시되 진토에 미치게 하시리라(12).”

 

나오는 말

 

이상과 같이 오늘 우리로 하나님의 때를 기리게 한다. 곧 <여호와의 날>을 소망하게 한다. 바울은 이르길,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하였는데, 우리는 저마다의 <모압>에도 즐거워하며 인내하고 소망할 수 있다. 이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5-6).”

 

그럴 수 있는 이유는,

 

첫째, 믿음으로 가능하다.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롬 1:17).”

 

둘째, 사랑으로 가능하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

 

그러므로 하나님은 반드시 공의로 세상을 판단하실 것이다. 그때에 우리는 고통에서 벗어난다. 이에 우리는 위로를 받는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이와 같은 위로는 주의 심판으로 완성된다. 곧 ‘여호와의 손이 이 산에 나타나시리니’ 여기, 시온산에 나타나신 여호와의 손은 구속함을 입은 우리들에게 ‘은혜와 축복의 손’이다.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여호와의 손이 이 산에 나타나시리니 모압이 거름물 속에서 초개가 밟힘 같이 자기 처소에서 밟힐 것인즉(8-9).” 우리는 오늘도 이를 기다리며 소망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