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27장 / 아름다운 포도원- 하나님의 자녀들
241229 주일
이사야 27장
아름다운 포도원- 하나님의 자녀들
사 27:1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사 27:2 그 날에 너희는 아름다운 포도원을 두고 노래를 부를지어다
사 27:3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 때때로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이를 해치지 못하게 하리로다
사 27:4 나는 포도원에 대하여 노함이 없나니 찔레와 가시가 나를 대적하여 싸운다 하자 내가 그것을 밟고 모아 불사르리라
사 27:5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와 화친할 것이니라
사 27:6 후일에는 야곱의 뿌리가 박히며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필 것이라 그들이 그 결실로 지면을 채우리로다
들어가는 말
오늘 우리 사회는 갈등하고 반목하고 대립한다. 하나님은 이를 통해 들추시고자 하시는 바,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신 4:24).” 하심인데 곧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은 천사였다. 자신들의 자유의지로 타락하여 ‘악한 영들’이 되어 이 땅에 두루 권세 잡은 영이 되었다. 각 나라마다 뿌리 깊은 미신과 사술, 온갖 잡신의 토속신앙도 그 이유다.
하나님은 분명히 “땅 위에 있는 어떤 짐승의 형상이든지, 하늘을 나는 날개 가진 어떤 새의 형상이든지, 땅 위에 기는 어떤 곤충의 형상이든지,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어족의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17-18).” 하여 그 어떤 피조물도 신격화하는 것을 금하셨다. “또 그리하여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해와 달과 별들, 하늘 위의 모든 천체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배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기지 말라(19).”
우리가 이처럼 <신을 찾는 늑대>가 된 것은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창 3:24).” 곧 에덴에서 우리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가장 안전하고 평안하고 풍요롭고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다. 이후 죄가 들어와 에덴에서 쫓겨난 뒤 ‘스스로의 하나님’을 찾고자 온갖 미신적인 삶에 깊숙이 관여하여야 했다.
다들 오늘 날을 과학시대니, 최첨단의 문명시대니 하는데, 어느 AI 연구소 한편에서 어떤 실험에 앞서 고사를 지내는 장면을 보았다. 수백억을 들여 최첨단으로 영화를 찍네, 신기술을 개발하네, 하다못해 친목을 다지는 일에서도 그때마다 사람들은 나름의 ‘고사(告祀)’를 지내며 액운을 막아주길, 풍요와 행운을 가져다주길 기원한다. 저마다 으레 그러려니 하지만 우리 삶에 이처럼 깊숙이 귀신과 사술의 늪이 얽혀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이르시되,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마 25:41).” 여기서 ‘외편에 있는 자들’로 분류되는 자들은 의지적으로 ‘하나님의 영’을 거부하며, 자신들의 ‘신들’을 섬긴다. 요한은 계시록에서,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 20:10).” 하고 저들의 최후를 경고하였다.
일련의 사태로 사람들의 속내와 민낯이 거짓으로 드러난다. 동시에 그 배경에는 주술과 역술, 신접한 자들이 무속신앙으로 우리 생활의 전방위적으로 깊숙이 활동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저들은 세상을 미혹하고 교회를 공격한다. ‘교회를 공격한다’는 것은 믿는 사람들조차 ‘이런 일’에 개의치 않는 듯 익숙하여서 소위 식자층들이라 하는 고위공직들과 위정자들이 마치 악마에게 자신들의 영혼을 팔아서라도 지킬 것이 많은 듯 서로 뒤엉겨있다! 저들은 반드시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질 것이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우리 주 예수의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롬 16:20).” 하고 성경은 우리 믿는 자들을 위로한다. 인류는 항상 사탄과 악령들의 지배 아래 살아왔다. 성경은 경고하길,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벧전 5:8-9).”
본문이해
오늘 이사야 27장은 두 단락으로 나누었다. 첫째, 사탄 마귀를 죽이심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복시키실 것이다(1-6). 둘째, 하나님의 백성들도 징계를 당하나 아주 정죄하심은 아니라는 사실이다(7-13).
첫째, 영원히 사탄을 벌하실 때 하나님의 백성들은 회복시키실 것이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그의 견고하고 크고 강한 칼로 날랜 뱀 리워야단 곧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을 벌하시며 바다에 있는 용을 죽이시리라 그 날에 너희는 <아름다운 포도원>을 두고 노래를 부를지어다(1-2).”
여기서 ‘뱀 리워야단’은 사탄 곧 악한 영을 의미한다. 그 표현이 세 가지로 나타나는데,
① 날랜 뱀 리워야단: 물살이 급하고 빠른 티그리스 강에 위치한 앗수르를 가리킨다. ② 꼬불꼬불한 뱀 리워야단: 구부러진 곳이 많은 유브라데 강에 위치한 바벨론을 가리킨다. ③ 바다에 있는 용: 홍해를 사이에 둔 애굽을 가리킨다. 즉 저들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는 악한 세력들을 상징한다. 중요한 것은 이 세 종류 모두가 하나님의 원수이다. 심판의 ‘그 날에’는 저들을 죽이시리라, 하신다.
‘리워야단’의 어원은 ‘뒤틀어진 것, 둘둘 말린 것’이다. 흔히 문제를 야기하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을 두고 ‘속이 배배꼬였다’고 하는데, 큰 속에 뱀과 같은 죄의 속성이 똬리를 틀고 있거나, 수면 아래 가만히 숨은 악어를 뜻한다(욥 41:1, 시 74:14). 또는 바다에 사는 큰 괴물을 지칭한다(욥 3:8, 시 104:26). ‘바다에 있는 용’은 애굽을 상징하여,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옛날 옛시대에 깨신 것 같이 하소서 라합을 저미시고 용을 찌르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며 바다를, 넓고 깊은 물을 말리시고 바다 깊은 곳에 길을 내어 구속 받은 자들을 건너게 하신 이가 어찌 주가 아니시니이까(사 51:9-10).” 결국 우리의 옛 생활을 의미한다.
저들을 죽이실 때 우리는 노래할 것이다. 오늘 본문 2절, “그 날에 너희는 아름다운 포도원을 두고 노래를 부를지어다.” 할 때, 여기 ‘아름다운 포도원’은 이스라엘 곧 하나님의 백성을 비유한다. 이에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 때때로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이를 해치지 못하게 하리로다(3).” 이는 우리가 잘 알듯이 ‘포도원지기’는 ‘나, 여호와’이시다. 그 포도원을 가꾸며 돌보는 데는 많은 손질과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 그와 같이 하나님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시고 돌보신다.
<포도원지기가 하는 두 가지 일>
1) 정기적으로 물을 주고 거름을 주어 가꾸는 일.
2) 밤낮으로 잘 간수하여 상해를 입지 않도록 지키는 일.
이에 예수님은 말씀하시길,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곧 우리는 주의 자녀, 주의 것으로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 14:8).” 하는 말씀으로 서로 연결된다. 그렇게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시 121:4-6).” 하실 때,
“나는 포도원에 대하여 노함이 없나니 찔레와 가시가 나를 대적하여 싸운다 하자 내가 그것을 밟고 모아 불사르리라(사 27:4).”
하고 우리 하나님은 결국 하나님의 백성들 곧 교회를 대적하는 것들을 하나님께서 대적하실 것이다. 하여 “후일에는 야곱의 뿌리가 박히며 이스라엘의 움이 돋고 꽃이 필 것이라 그들이 그 결실로 지면을 채우리로다(6).” 즉 우리가 주 안에서 ‘뿌리가 박힘’으로 ‘움이 돋음’ 같이 ‘꽃이 피고’ 이에 ‘결실’이 이루어,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
이에 “유다 족속 중에 피하여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박고 위로 열매를 맺으리니(사 37:31).” 이는 결국 오늘의 복음에서 배제된 듯한 이스라엘이나 이방국가들이라 해도,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 및 앗수르와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 주시며 이르시되 내 백성 애굽이여, 내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지어다 하실 것임이라(19:24-25).” 하여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그 척박한 환경에서도 ‘남은 자들’ 곧 하나님의 백성들은 회복될 것을 밝히신다.
둘째, 하나님은 그 자녀들에 대한 사랑이 남다르시다.
“주께서 그 백성을 치셨던들 그 백성을 친 자들을 치심과 같았겠으며 백성이 죽임을 당하였던들 백성을 죽인 자가 죽임을 당함과 같았겠느냐 주께서 백성을 적당하게 견책하사 쫓아내실 때에 동풍 부는 날에 폭풍으로 그들을 옮기셨느니라(사 27:7-8).”
그런 가운데 백성들의 죄와 그에 따른 징벌을 “주께서 그 백성을 치셨던들” 악한 사탄과 마귀와 같겠냐고 반문하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징계 가운데서도 확증된다. 매번 그때마다 ‘남은 자들’을 숨겨두셨고, 백성들을 위하여 예외적인 자비를 베푸셨다. “여호와여 나를 징계하옵시되 너그러이 하시고 진노로 하지 마옵소서 주께서 내가 없어지게 하실까 두려워하나이다(렘 10:24).”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으로 우리는 우리 죄를 끔찍하게 여긴다.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자비하심에 대하여 저마다의 간증을 가지고 있다. 이를 오늘 말씀은 ‘적당하게 견책하사’ 하고 표현하였다. 이를 바울은,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하신 데 대해 우리 믿는 자들은 다 안다.
마치 ‘동풍 부는 날에, 옮기’시는 것 같았다. 모세는 광야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인도하면서 느낀 바, ‘아버지가 아들을 품에 안은 것 같이’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 긴 세월을 함께 하셨다는 것을 고백했다. 오늘 본문에서도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의 죄 없이함을 받을 결과는 이로 말미암나니 곧 그가 제단의 모든 돌을 부서진 횟돌 같게 하며 아세라와 태양상이 다시 서지 못하게 함에 있는 것이라(9).” 하심으로 우리의 더러운 죄와 우상 숭배를 제거하기 위하여, “너희 이스라엘 자손들아 그 날에 여호와께서 창일하는 하수에서부터 애굽 시내에까지 과실을 떠는 것 같이 너희를 하나하나 모으시리라(12).” 그렇게 하여, “그 날에 큰 나팔을 불리니 앗수르 땅에서 멸망하는 자들과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들이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예배하리라(13).”
바로 곧 ‘그날에, 여호와께 예배하리라.’ 우리 하나님의 저녀들은 이내 ‘나팔소리’를 듣고, 하나님을 인정하며 모여들 것이다.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14).” 그렇게 하여 ‘잃어버린 자’들이 곧 “앗수르 땅에서 ‘멸망하는 자’들과 애굽 땅으로 ‘쫓겨난 자’들이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여호와께 예배하리라.” 하고 선포하신다. 그리하여 오늘 시대가 아무리 어지럽고 혼탁하다 해도, 어느 시대나… 앗수르의 때나 바벨론의 때나 애굽의 때에도, 우리는 반드시 <여호와께 예배하리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