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이 날에 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노래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의 영솔자들이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삿 5:1-2
주를 찾는 자는 다 주 안에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시며 주의 구원을 사랑하는 자는 항상 말하기를 여호와는 위대하시다 하게 하소서
시 40:16
우리가 주를 사랑한다는 것은 주를 범사에 인정하는 일이다. 사람의 관심이 말끝마다 자신도 모르게 그걸 말하게 되고, 저절로 손이 가고 마음이 기우는 것과 같다. 사랑은 숨길 수가 없어서 “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노래”한다. 일명 드보라의 노래다. “너희 왕들아 들으라 통치자들아 귀를 기울이라 나 곧 내가 여호와를 노래할 것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이스라엘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쳤으니 나 드보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그쳤도다(3, 7).”
드보라는 야빈 왕과의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바락은 물론이고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미하는 일에 동참하였다. 히브리 노래의 한 유형은 화답송이다. 성경에는 여인들이 지은 노래가 몇 곡 소개된다. 미리암의 노래로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하였더라(출 15:21).” 그리고 한나의 노래로 “한나가 기도하여 이르되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삼상 2:1, 7).”
물론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노래도 있다. “마리아가 이르되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눅 1:46-48).” 하고 이어지는 내용이 아름답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으니
그 이름이 거룩하시며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그의 팔로 힘을 보이사
마음의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고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불리셨으며
부자는 빈 손으로 보내셨도다
(49-53).
오늘은 여선지 드보라의 노래로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백성들이 지도자의 말을 따라 기꺼이 헌신하여 전투에 참가하였다. 바락이 군사를 모집하자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에서 일만 명이 지원하였다. “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를 게데스로 부르니 만 명이 그를 따라 올라가고 드보라도 그와 함께 올라가니라(삿 4:10).” 그 외 여러 지파도 조력하였다. “잇사갈의 방백들이 드보라와 함께 하니 잇사갈과 같이 바락도 그의 뒤를 따라 골짜기로 달려 내려가니 르우벤 시냇가에서 큰 결심이 있었도다(5:15).”
이에 따라 저는 노래한다. 찬송은 선포다. 말씀은 선포된다. “여호와를 찬송하라.” 전쟁에 참여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헌신과 용기와 연합에 대해 노래하나 이는 하나님의 능력을 찬양하는 것이다. “활 쏘는 자들의 소리로부터 멀리 떨어진 물 긷는 곳에서도 여호와의 공의로우신 일을 전하라 이스라엘에서 마을 사람들을 위한 의로우신 일을 노래하라 그 때에 여호와의 백성이 성문에 내려갔도다… 그 때에 남은 귀인과 백성이 내려왔고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용사를 치시려고 내려오셨도다(11, 13).”
먼저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다음은 전쟁에 헌신한 지파들을 축복한다. “네가 양의 우리 가운데에 앉아서 목자의 피리 부는 소리를 들음은 어찌 됨이냐 르우벤 시냇가에서 큰 결심이 있었도다 길르앗은 요단 강 저쪽에 거주하며 단은 배에 머무름이 어찌 됨이냐 아셀은 해변에 앉으며 자기 항만에 거주하도다(16-17).” 마지막으로 이 전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야엘의 업적을 노래한다.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들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있는 여인들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24).”
우리가 드리는 찬송은 같은 성도들의 고백이며 노래다. 드보라의 노래는 암울하고 비참했던 사사시대에 하나님의 역사와 권능을 찬송함으로 모두가 하나 되게 한다. 모두가 공동체의 존립을 와해하듯 반목하고 무심하며, 심지어는 전쟁을 수수방관하고 자기들의 이기적인 생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를 드보라는 자신의 시에 담아냈다.
“네가 양의 우리 가운데에 앉아서 목자의 피리 부는 소리를 들음은 어찌 됨이냐 르우벤 시냇가에서 큰 결심이 있었도다 길르앗은 요단 강 저쪽에 거주하며 단은 배에 머무름이 어찌 됨이냐 아셀은 해변에 앉으며 자기 항만에 거주하도다(16-17).”
뿐만 아니라 우상 숭배의 고질적인 죄악이 만연하고,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이 사사들의 치리 기간을 제외하고는 떠날 날이 없었던 것도 언급하였다.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그 때에 전쟁이 성문에 이르렀으나 이스라엘의 사만 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가(8).” 이러한 상황에서 분명 드보라의 노래가 드보라 이후의 세대에도 널리 불렸더라면 타락해 가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 신앙을 일깨우는 교육의 효과를 더하였을 것이다.
오늘 우리가 듣는 부르는 찬송과 새로운 세대의 CCM을 들으면서 느끼는 것은 그와 같은 찬송과 경배가 서로를 잇고 위로를 더하여 새 힘을 주는 것을 안다. 왕이 없던 당시의 이스라엘에서 여호와만이 참 왕이시며, 구원자가 되심을 이와 같은 찬송으로 알고 느끼고 같이 할 수 있다. 오늘도 우리의 하나님은 친히 우리 삶을 압제하는 것을 치시고 우리를 위로하신다. “그 때에 남은 귀인과 백성이 내려왔고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용사를 치시려고 내려오셨도다(13).”
우리의 영원한 노래는 구원의 찬송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그렇지 않았으면 나의 일생에서도 여전히 주를 멀리하며 사느라 급급한 생에서 사는 게 지옥인 나날을 한탄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참 기쁨을 알고 그것에 동참하게 한다.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 같이 주 여호와께서 공의와 찬송을 모든 나라 앞에 솟아나게 하시리라(사 61:10-11).”
오늘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가 주를 찬송하는 것도,
날마다 우리 짐을 지시는 주 곧
우리의 구원이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셀라)
…
내가 측량할 수 없는 주의 공의와 구원을
내 입으로 종일 전하리이다
…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 노래하며
우리의 구원의 반석을 향하여 즐거이 외치자
(시 68:19, 71:15, 95:1).
우리가 주 앞에 예배드리며 함께 올리는 찬송은 앞서간 많은 믿음의 사람들의 눈물과 찬양의 결과다. 누구는 노예선의 선장으로 지내다 돌이켜 자신이 씻을 수 없는 죄인임을 고백하고, 누구는 늘 우울한 영혼으로 자살 충동을 느끼는 가운데서 주를 붙들고 샘물과 같은 은혜를 바라고, 누구는 졸지에 아내와 두 딸을 잃고 슬픔에 빠졌다가 그 마음의 평안함을 찬송한다. 우리가 오늘을 살면서 저들의 찬송과 같이 각자의 찬송과 경배가 드려진다. 나의 이 보잘것없는 글쓰기도 주를 전하고 나타내는 데 주목하게 된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 5:19-21).”
우리는 살면서 사는 동안에 저마다의 하나님을 체험한다. 그것은 참으로 다양하고 다채로워서 각자의 지문 같이 다를지 모르지만 이를 서로 고백하고 나눌 때에 화음이 되듯 하나의 곡조가 된다. 곧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6-17).” 곧 우리가 아는 것과 이를 마음으로 느끼는 것과 이를 삶에서 살아드리는 일은 각각의 영역이 다른 것 같다.
이처럼 평안히 앉아 묵상을 하고 글을 쓰면서도 무슨 이유 때문인지 몸이 조이고 마음이 어려워서 나는 안정제를 먹는다. 아내와 나란히 걸으며 산책을 하다 어느 카페에 들러 차를 한 잔 하는 동안에도 전혀 그럴 게 없는 상황인데도 무엇으로 불안한지 마음이 어려워져 안정제를 먹는다. 그것이 단지 느낌이나 마음의 일이 아니라 몸에 증상으로 나타나서 숨이 답답하고 가슴이 조이는가 하면, 갑자기 작은 소리에도 아이가 경기를 하듯 화들짝 놀라며 소름이 돋기도 한다. 기껏 멀쩡하다 숨이 턱 막히면서 어떤 불안이 몸을 경직시킬 때 알 수 없는 두려움은 공포로 다가온다. 나는 이제 그러려니 하고 더는 왜? 하는 질문을 던지지 않고 나의 나 된 것으로 주의 이름을 부른다. 이것으로 찬송이 된다.
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여호와께 노래하여 그의 이름을 송축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전파할지어다
그의 영광을 백성들 가운데에,
그의 기이한 행적을 만민 가운데에
선포할지어다
(96:1-3).
곧 찬송은 나의 하나님을 자랑하는 송축이다. 구원을 전파하는 선포이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 그 자체로 찬송이 되고 선포가 되는 것이 성도의 날들이다.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 18:19).” 이런 날은 이런 일로, 저런 날은 저런 일로 서로 말하고 들려주어 듣고 화답하는 것으로 나의 묵상글이 되기를. 너의 보고 듣는 것이 나의 노래가 되기를.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빌 1:27-28).”
하여 나는 이른 새벽에 턱을 괴고 앉아 말씀을 되새김한다. 나의 하루를 돌아본다. 현실의 이런저런 일을 두고 생각한다. 생각하다 주의 이름을 부른다. 혹은 누가 그때 연결되면 저에게 들려주거나 저의 보고 말하는 것을 듣는다. 우리의 기쁨은 헌신에 있다. 헌신은 서로를 향한 마음으로 감사가 되게 한다. 감사는 찬송이 되어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백성들은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기뻐하였으니 곧 그들이 성심으로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다윗 왕도 심히 기뻐하니라(대상 29:9).”
나는 나이 많은 장모 곁에 앉아 찬송을 하고 성경을 읽고 이를 설명한다. 장모는 그때마다 자신도 예전 일을 떠올리며 뭐라 하고 싶은 말이 많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저 앞을 본다. 지나간 날을 회생하는 것은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 하나님이 우리로 어떻게 주의 자녀로, 오늘 여기에 있게 하셨는지를… 그때마다 눈치껏 장모의 말을 끊고 어려웠고, 고단했던 지난날의 회상이 찬송이 되어 천국을 사모하게 말씀을 전한다. 늙으신 나의 장모는 아쉬운 듯 더 하고 싶은 말을 우물거리다 우리 같이 찬송을 한다.
그렇듯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 1:26-29).”
당시에는 숫자에도 들지 못하던 여자이나 여선지로 당당히 주를 찬송하는 드보라의 노래를 듣는다. 결국 그 숫자가 많은 남자라고 해서, 또는 대부분의 권세가 남자들에게 있었다 해도,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셈할 가치가 어디 있느냐(사 2:22).” 다 헛되고 헛된 것을… 오늘의 일련의 시국을 지켜보며 각양의 주장과 그 생각이 다른 데서 자신들의 아집과 기회주의적인 얄팍한 수를 보면서….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이 나를 구원하지 못하리이다
오직 주께서 우리를
우리 원수들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하게 하셨나이다
(44:6-7).
그러나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40:1-2).
이는 살면서 삶으로 노래하는 것이 복되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하여
여호와를 의지하리로다
(3).
하면,
그 때에 내가 말하기를 내가 왔나이다
나를 가리켜 기록한 것이
두루마리 책에 있나이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7-8).
그러므로
여호와여 주의 긍휼을 내게서 거두지 마시고
주의 인자와 진리로 나를 항상 보호하소서
여호와여 은총을 베푸사 나를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11, 13).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