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529 주일
시편 93편
하나님의 통치와 우리의 신앙고백
시 93:1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능력의 옷을 입으시며 띠를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아니하는도다
시 93:2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
시 93:3 여호와여 큰 물이 소리를 높였고 큰 물이 그 소리를 높였으니 큰 물이 그 물결을 높이나이다
시 93:4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 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크니이다
시 93:5 여호와여 주의 증거들이 매우 확실하고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니 여호와는 영원무궁하시리이다
오늘 시편은 신앙고백이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이거나 다윗이 예루살렘으로 언약궤를 가져올 때이거나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의 포로에서 귀환 때이거나… 우리는 직접적인 시적배경은 알 수 없다. 1-2절에서는 하나님의 견고하신 통치를 설명한다. 3-4절에서는 만물이 주를 찬양하는 것을 묘사한다. 마지막 5절에서는 하나님의 통치의 영원성을 진술한다. 곧 설명, 묘사, 진술이라는 시적구조로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와 그의 견고하시고 영원하신 능력을 재확인할 수 있다.
1. 하나님의 통치에 따른 설명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여호와께서 능력의 옷을 입으시며 띠를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아니하는도다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1-2).”
‘하나님은 천하 만물을 다스리시고, 스스로 권위를 입으신다. 누구에 의한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 스스로의 능력의 옷을 입으심이다. 그 능력의 옷, 능력의 띠를 띠심으로 우주와 자연의 질서는 견고하다. 곧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서있다. 주는 영원부터 계신 존재이시다.’ 이와 같은 사실을 믿는 자는 보고, 듣고, 느낀다. 상대적으로 사람은 지겨울 정도로 죄를 거듭 행한다. 선민으로 택하신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죄악과 징계’, ‘징계와 회개’, ‘회개와 용서’가 거듭 반복된다.
예수님은 이를 일컬어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요 12:43).” 곧 사람 스스로 하나님의 영광을 차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하고 강권하였다. 곧 우리의 연약함은 죄상으로 인한 악행으로 드러난다. 지난 주일에도 언급하였듯이 우리의 속성은 세상을 더 사랑한다. 점점 세상은 사람 중심의 구조로 매우 편리하고 매혹적이다. 그럼에도 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하고 우리를 돌려세운다. 왜냐하면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요일 2:15).”다는 것이다.
요한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16).” 결국 우리가 육을 입고 사는 동안에는 피치 못할 것들이다. 누구나 편하고 더 안락한 삶을 추구하길 원한다. 그러느라 육신의 정욕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눈에 보이는 것이 온통 다 유혹적이다. 저마다 보란듯 살고 싶은, 자랑스러운 삶을 희망한다. 이를 우린 마다할 수가 없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좋은 게 좋은 건 인지상정이다. 이를 우리 스스로 분간하여 마다할 능력은 없다. 하나,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3).” 어떻게 말인가? 오늘 시편이 답을 제시한다. 다시 1, 2절을 보면,
첫째, 하나님의 다스리심으로 가능하다.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스스로 권위를 입으셨도다.” 곧 우리 자신을 다스림이 주께 달려있다.
둘째, 저의 능력을 덧입으면 가능하다. “여호와께서 능력의 옷을 입으시며 띠를 띠셨으므로 세계도 견고히 서서 흔들리지 아니하는도다.” 곧 주의 진리의 띠를 띠고, 복음의 신을 신으면 된다.
셋째, 주의 영원한 나라, 그 보좌의 영광을 붙들면 가능하다.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 이는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주의 섭리 가운데 세우신 영원한 나라다.
2.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여러 증거와 사실적 묘사
“여호와여 큰 물이 소리를 높였고 큰 물이 그 소리를 높였으니 큰 물이 그 물결을 높이나이다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 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크니이다(3-4).”
앞서 바울은 과감하게 선포하였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2).” 즉 우리의 믿음은 환경과 여건에 지배당하지 않을 수 있다. 그 비결의 비밀을 오늘 시인은 자연에서 알려준다.
첫째, 하나님의 능력은 많은 물소리보다 크시다. 이는 주의 긍휼하심으로 우리의 극악한 죄를 능가한다. 이사야도 자연을 통해 이 사실을 묘사한다.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셨은즉, ‘그의 고난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사 49:13).” 주의 긍휼하심이 큰 물보다 높고 높고 높으시다.
둘째, 주가 나로 인하여 즐거워하신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습 3:17).” 이를 우리 하나님의 자녀 된 자들은 알고 확신한다!
셋째,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나와 함께 계신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시느냐 사면으로 너희에게 평온함을 주지 아니하셨느냐 … 이제 너희는 마음과 뜻을 바쳐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구하라 …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성전에 들이게 하라 하였더라(대상 22:18-19).” 주가 나와 함께 계심을 알 때, 우리는 평온할 수 있고, 마음과 뜻을 다해 구하고, 담대함으로 주의 성전에 들어갈 수 있다.
넷째, 하나님이 영원토록 다스리신다. “여호와께서 영원무궁하도록 다스리시도다(출 15:18).” 또한 “여호와께서 그의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 왕권으로 만유를 다스리시도다(시 103:19).” 단지 일시적으로 그치는 역사속의 사실이 아니다. 그 통치는 영원하시다.
다섯째, 마음이 겸비한 자와 함께 하신다. “지극히 존귀하며 영원히 거하시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이가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사 57:17).” 죽은 줄 알았던 영혼을 다시 살리심이다.
여섯째,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시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위에서 주지 아니하셨더라면 나를 해할 권한이 없었으리니 그러므로 나를 네게 넘겨 준 자의 죄는 더 크다 하시니라(요 19:11).” 예수님의 죽으심도, 부활도 그러하였듯 우리의 죽음도 부활도 그렇다.
일곱째, 하나님과 능히 맞설 자가 없다. “이르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하늘에서 하나님이 아니시니이까 이방 사람들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시나이까 주의 손에 권세와 능력이 있사오니 능히 주와 맞설 사람이 없나이다(대하 20:6).” 세상 그 무엇도 하나님의 능력과 맞설 수 있는 것은 없다.
여덟째, 기어이 주를 인정하게 하신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 3:6).” 믿는 자는 말할 것도 없고 안 믿는 자들 또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게 된다. 가장 두려운 것은 이를 살아서는 알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이다.
아홉째, 우리는 구원의 증거를 가졌다.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빌 1:28).” 때론 우리로 좌절하게 하는 것들이 실은 모두 일시적일 뿐이다. 정작 두려운 것은 영원성이다.
열 번째, 하나님은 만물을 통치하고 다스리신다. “여호와여 큰 물이 소리를 높였고 큰 물이 그 소리를 높였으니 큰 물이 그 물결을 높이나이다 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 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크니이다(3-4).” 오늘 시편은 자연을 빗대어 시적 운율을 살림으로 우리의 묵상의 깊이를 더한다. 물소리와 바다는 함의적인 언어로 세상 세파와 동시에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내포한다.
3. 하나님의 거룩은 영원무궁하시다는 진술
“여호와여 주의 증거들이 매우 확실하고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니 여호와는 영원무궁하시리이다(5).”
이 땅의 모든 생명은 일시적이다. 영원한 것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풀과 나무는 물론 산과 바닷물도 사라지고 새로 생겨난다. 하물며 우리의 근심도 슬픔도 일시적이고, 기쁨도 행복도 영원한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다 수명을 다한다. 하지만 우리의 영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자 하는 마음은 영원하여서,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고후 7:11).” 곧 우리에게 부정적인 것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될 때 그 역사하는 힘은 역동적으로 나타난다.
유일하게 우리는 거룩하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5).” 그럴 수 있음으로 그러라고 하시는 것인데, 이는 우리를 부르신 이의 거룩하심으로다. 이를 위해 두려움도 근심도 역동적으로 건설적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을까? 오늘 시편은 확고한 증거 세 가지를 진술하고 있다.
첫째, 주의 말씀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있다는 진술. “여호와여 주의 증거들이 매우 확실하고” 이를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생을 다하는 우리는 복되다.
둘째, 우리는 영원히 주의 집에 거하기에 합당하다는 진술.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니” 주가 거룩하심으로 우리도 거룩하다. 주의 능력 안에서 우리도 능치 못함이 없듯이 주를 나의 구주로 영접함으로 우리는 동시에 거룩하여 주의 집,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존재가 되었다.
셋째, 하나님의 통치와 능력이 영원무궁하심을 아는 우리도 그와 함께 영원무궁한 존재임을 진술한다. “여호와는 영원무궁하시리이다.” 영원무궁하신 주를 앞에 모시고도 일시적이고 단회적으로 몸과 마음에 기울이며 산다면 이보다 어리석은 삶은 없을 것이다.
나오는 말
“주의 보좌는 예로부터 견고히 섰으며 주는 영원부터 계셨나이다(2).”
어쩌다 오늘이 아니다. ‘어쩌다 어른’도 없고, ‘어쩌다 저런 인간을 만나서’ 하는 경우도 없다. 우리의 모든 상황과 여건은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 가운데서 창세전부터 예정하고 구별된 것이다. 이를 붙들면, 주의 보좌가 견고히 서고, 영원하셨음을 안다. ‘어쩌다 창조’하신 세계가 아니다. ‘어쩌다 사람의 죄’가 생겨난 것도 아니다.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으나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의 타락까지도 하나님의 구원 섭리 가운데 역사하신 것이다.
고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이것이 주의 영광이다.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죄인을 주의 긍휼하심으로, 자신을 직접 내어주심을 사랑하시기까지의 그 사랑이 긍휼의 최고봉이다. 지금은 희미하나 곧 확실히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무엇을 말인가?
“여호와여 주의 증거들이 매우 확실하고 거룩함이 주의 집에 합당하니 여호와는 영원무궁하시리이다(5).” 하는 신앙고백이 오늘 우리의 것이 되기를 기도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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