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입은 심히 달콤하니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예루살렘 딸들아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로다
아 5:8, 16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 18:1
살면서 주를 의지한다는 것은 이를 전하여 모두에게 알리고자 함이다. 운동 삼아 늘 점심께 같은 시간에 산책을 한다. 같은 길을 따라 걷다보면 보던 사람을 늘 같은 자리에서 자주 본다. 그들 가운데 전도를 위해 다가오거나 광고전단지를 돌리는 이들이 항상 일정하다. 특히 전도를 위해 오는 이들은 한결같이 상냥하고 친절하다. 물론 그런 가운데 이단들도 있고 기존의 교회들도 있다. 저들은 누가 지나면서 싫은 소리로 핀잔을 해도 이를 훈장처럼 간직한다.
이를 오늘 본문으로 보면 “예루살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8).” 하는 고백이 그와 같지 않을까? 이를 전하는 이의 “입은 심히 달콤하니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예루살렘 딸들아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로다(16).” 누가 내게 물으면 나는 전도를 ‘사랑에 빠진 자의 고백 또는 자발적인 충성’이라고 대답한다. 누가 묻지 않아도 말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열심이다.
하여,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 18:1).
하는 다윗의 고백과 같이,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29-30).
하는 진술이 이를 뒷받침한다. 오늘 본문 앞장(4장)에서 ‘나의 사랑하는 자가 자기 동산에 들어가기를 원하노라’ 하고 고백하였던 것을 비추어볼 때,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4:16).” 이는 때로 고난이 우리를 힘들게 하여 쓰러지고 넘어질 때도 있지만 그렇게 또 빨리 항해할 수 있는 것도 고난이고 세파이기도 하다. 분명 그에 따른 우리의 기도에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응답하신다.
우리는 그의 부르심을 듣고 이 초대에 응하였다는 것이 복인 줄을 잘 안다. 거친 세파에 따라 난파하거나 다른 곳으로 흘러갈 수도 있지만 동시에 그와 같은 어려움이 우리로 주를 더욱 부르게도 한다. 가령 풍랑 위로 걸어오시던 주님을 향해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마 14:28-29).” 하였을 때 이 얼마나 대단하고 황홀한 체험인가? 물론 곧이어 저는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30).” 우리가 또 사람이니 그럴 수도 있는 것이겠다. 이에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31).”
더러 의심이 또는 불안과 염려가 우리로 더 큰 어려움이 되게 하지만 그것까지도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주가 책임지신다. 그렇다면 우리가 게을러서 자주 기도하지 못하고 금세 또 넘어지고 쓰러지기 잘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즉각적으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손을 내미신다는 사실에는 의심에 여지가 없다. 즉 저마다 전도를 받고도 주저하고 미루고 자기 판단으로 결정을 못할 때도, 하나님은 사람이 되기까지 자신을 낮추시고 우리에게 오시기까지 즉각적이셨다. 오늘 본문은 이러한 요청을 주목하게 한다.
“내 누이, 내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나의 몰약과 향 재료를 거두고 나의 꿀송이와 꿀을 먹고 내 포도주와 내 우유를 마셨으니 나의 친구들아 먹으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아 많이 마시라(5:1).”
우리를 향해 ‘나의 사랑하는 자’라 부르시고, 초대하였다. 또한 이 동산을 우리의 것, ‘그의 것’이라 하신다. 곧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출 32:7).” 그렇게 우리의 심령은 상하고 부정하여서,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사 1:14).” 그렇기로서니 ‘너희는 내 것이라’ 하신다. “무릇 아버지께 있는 것은 다 내 것이라 그러므로 내가 말하기를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요 16:15).”
하여 이르시되,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그리하여 “애굽 땅이 사막과 황무지가 되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그들이 알리라 네가 스스로 이르기를 이 강은 내 것이라 내가 만들었다 하도다(겔 29:9).” 곧 세상이 어지럽고도 점점 더 흉포(凶暴)해져 간다 해도 “그가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하였노라(요 16:15).” 하시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오늘 본문으로 새삼 묵상하게 되는 것은 그런 가운데서도 이뤄지는 초청이다. “내 누이, 내 신부야 내가 내 동산에 들어와서… 일어나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 때(1, 4).” 즉 우리가 주께 부르짖어 아뢸 때,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사 58:9).” 이는 우리를 향한 주의 사랑의 다짐이다. 그 사랑의 다짐은 즉각적이고 확실하시다.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전으로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고(대하 7:2)” 그러할 때, “여호와의 영광이 그 성전에 가득하니(1).” 이와 같은 사실에서 우리는 주의 사랑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는 내가 이미 이 성전을 택하고 거룩하게 하여 내 이름을 여기에 영원히 있게 하였음이라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여기에 있으리라(16).”
이에 자기 영혼의 문을 활짝 열어 그리스도를 맞이할 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안에 들어오시며 기뻐하신다.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출 20:24). 여기서 교회의 사명을 본다. 오늘 “일어나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몰약의 즙이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떨어지는구나(아 5:5).” 하여 이를 4절 하반절과 연결시켜, “내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움직여서” 곧 우리의 사랑과 헌신은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아무리 열악한 상황이라 해도 사랑하는 이의 뜻에 부합함을 보여 준다. 그렇게 문을 열 때, ‘몰약이 내 손에서, 내 손가락에서 문빗장에 떨어지는구나’
이 몰약이 누구의 손에서 나온 것인가? 이는 술람미 여인, 곧 우리 성도가 문을 열어주려 할 때 그 손에서 떨어진 몰약이다. 나는 저 춥거나 덥거나 거리에 나와 오가는 사람에게 예수를 전하기 위해, 교회 주보를 건네주면서 다가오는 그 수고와 노력이 몰약이라 생각한다. 더 나아가 목숨을 걸고 이 땅에 복음을 들고 들어왔던 많은 선교사들로도 연상한다. 그렇게 ‘말할 때에 내 혼(魂)이 나갔구나’ 즉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 왕의 교제 요구에 지체하고 안일하게 행함으로 그가 떠나버린 것을 알았을 때, 후회가 또 화가 저를 엄습하여 혼이 나갔을 정도이다. 하나님의 복음이 전하여질 때 누구는 이에 응하고 누구는 끝내 거절하는데 곧 지나보면 다 안다.
그때에 “성 안을 순찰하는 자들이 나를 만나매 나를 쳐서 상하게 하였고 성벽을 파수하는 자들이 나의 겉옷을 벗겨 가졌도다(7).” 곧 뒤늦게 찾아 나설 때 어떤 어려움, 더 큰 무게의 짐이 짓누르는 것을 의미한다. 가령 내가 어릴 때 서원하고 그 서원을 따라 말씀으로 순종하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한다. 그러나 대학에 가면서 주를 멀리하였고, 세상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피하였다. 어느새 긴 세월이 지나고 주의 강권하심으로 주가 나를 찾으셨을 때, 나를 치고 상하게 하였던 현실에서 나는 지쳐 있었다.
여러 어려움을 가로질러,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을 찾아 온 성안을 헤매다 심야의 통행도 아랑곳하지 않고 실성한 사람처럼 굴었을 모습을 상상하면서, 오늘의 내가 외톨이인 게 아니라 주를 더 가까이 함으로 다행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하여 부탁한다. “예루살렘 딸들아 너희에게 내가 부탁한다 너희가 내 사랑하는 자를 만나거든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8).” 곧 내가 내 의지와 노력으로 찾다가 못 찾고, 이제는 나에 대해 듣고 찾아와 주시기를. 그렇게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났다고 하려무나.’ 이 놀라운 갈망을 나는 사랑한다.
그렇게 어제는 도서관에 가서 설교원고 초안을 작성하고, 오늘 새벽에 혹시 늦을까 하여 묵상 본문도 미리 메모하여 작성하였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게 있나, 싶을 때 ‘나의 사랑으로 내가 병이 났다’ 하는 오늘 본문의 심정이 이해가 간다. 내 생일이라고 딸애가 결혼할 아이와 같이 저녁에 퇴근하고 집으로 왔다. 같이 저녁을 먹고 축복하였다.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면서 딸애를 문득 볼 때면 괜히 낯설고 이상하기도 했다. 내가 어느덧 머리가 성긴 노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른 초저녁에 잠 드는 습관 탓에 나의 눈에는 졸음이 가득했다. 결국 집에서 잠들었다가 새벽에 일찍 눈을 뜨고 이처럼 교회로 나왔다.
“너희는 건포도로 내 힘을 돕고 사과로 나를 시원하게 하라 내가 사랑하므로 병이 생겼음이라(2:5).” 즉 사랑의 초기에 솔로몬 왕이 그녀를 극진히 사랑해줄 때 그 사랑에 겨워 그 사랑하는 사람을 한시라도 빨리 만나고 싶은 애타는 마음에서 행복하였던, 이를 사랑의 병이라 하겠다.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잃어본 사람은 안다. 그때의 그 번민과 고뇌를 아는 사람은 안다. 나는 그렇듯 세상이 좋을 때,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으로 생의 즐거움인 줄 알았다. 더 많은 사람들과 더 친밀하게 지내는 것으로 삶의 의미를 두고 살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찾아온 혐오감은 동시에 내가 잃었던 사랑,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더 갈망하게 하였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우나 죽고 싶을 정도로 외로움을 느낄 때, 내 곁에는 물론 가까웠던 친구도 가족도 다들 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를 우울증이라고도 하고 외로움이라고 한다면, 신기한 경험 가운데 하나는 그리하여 내가 힘들어할 때 오히려 손을 내밀어 도움을 청할 수가 없었다. 가족은 가족이어서, 친구는 친구여서, 소중한 사람일수록 소중하여서 그러지 못했다. 그러다 용기를 내어 털어놓기라도 하면 거짓말처럼 저들은 슬그머니 나를 어려워하다 떠났다. 본인들은 책임이 없다며, 뭐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거리를 두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증발하듯 사라졌다. 그렇게 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기어이 실행하는 것이겠다. 그러나 나의 복은 주의 이름을 부른 것이다. 그렇게 하여 나의 귀한 은총은 비로소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여 들이는 것이다.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시 36:8, 65:4).
곧 우리가 누구의 은덕으로 살아왔는지. 혹은 자신의 수고와 공로로 얻은 기쁨으로는 이 만족을 누릴 수 없었다는 것을. 이 사랑과 기쁨의 노래에서 우리는 매우 ‘우울한 장면’을 가지고 여기서 주의 이름을 찾았다는 것. 역설적으로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더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곧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겪어야 했을 슬픈 이야기를 이제는 간증할 수 있다. 나의 허물과 실수가 주를 더욱 간절하게 사모하게 한다. 하나님의 은총을 바로 받지 못하여 생기는 슬픈 결과는 동시에 참 기쁨을 찾을 수 있도록 이끌어간다. 하나님의 사랑에서 이탈했을 때 더 간절한 그 사랑을,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어 있다’고 오늘 본문은 함축하고 있다.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2).”
곧 내가 세상을 사랑하며 저들 속에서 만족함을 누리려하였으나 오히려 더 커지는 괴리감은 괴로웠을 뿐이다.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오셨을 때 잠자고 있으면 당장은 그것이 현실에 아무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것 같으나, 곧 우리 영혼은 슬픔과 수치심으로 ‘영적 침체’에 빠진다. ‘심신의 불안’을 느끼게 된다. 누구는 지금 그렇게 주일을 지키지 않는다. 교회에도 안 가고 예배를 참석하지 않은지 꽤 됐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을 믿고, 사랑한다고 자부한다. 안 믿는 자들과 주일에 산에 가고, 해외여행을 가느라, 세월을 탕진한다. 남들이 볼 때 갱년기를 활기차고 잘 지내는 것 같다. 스스로도 느끼기를 혼자되고 지금처럼 자유로울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숨길 수 없는 불안은 영적 혼란을 가져왔고, 우울증 약을 먹으면서 간신히 살게 하고 있다.
우리 안에 ‘잘못된 것을 슬퍼할 줄 아는 능력’을 상실하면 역으로 삶이 활기차고 보람 있는 것 같아도 그 영혼의 문제는 어떤 형태로든지 드러난다. 곧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딤전 5:6).” 하는 말씀처럼 괜찮은 듯하나, 중독은 서서히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고 우리 영혼을 침체하게 한다. 그리하여 마음은 생각이 의지와 다르다. 영혼은 나의 의지로 이끌어갈 수 없다. 영혼의 언짢음이 지속되면서 우리를 부르시는 소리는 점점 강렬해진다. “내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움직여서… 내가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문을 열었으나 그는 벌써 물러갔네 그가 말할 때에 내 혼이 나갔구나 내가 그를 찾아도 못 만났고 불러도 응답이 없었노라(아 5:4, 6).” 결국 주와 멀리 떨어졌다고 느낄 때의 공포감은 어찌 설명하기가 어렵다.
그런 가운데 주님은 강제로 우리 마음의 문을 열지 않으신다. 그렇게 하실 수 있으나 그럼에도 ‘들어가게 해달라’ 애원하신다. 문을 부술 수도 있지만 두드리고 문 밖에 서서 기다리신다. 그리고 부르신다.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하시면서 우리로 돌아볼 때까지 참고 또 기다리시며 부르신다. 그리하여,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
(시 110:3).
그렇게 주님은 루디아의 ‘마음을 여셨다.’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행 16:14).” 그렇게 예수님은 제자들의 마음을 열어 깨닫게 하셨다.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눅 24:45).” 우리 주님은 인내심으로 우릴 구원하신다. 주의 참고 기다리심을 이길 수 있는 자는 없다. 나는 그러한 주의 사랑 앞에 두 손 들었다. 이미 버려져 쓸모없을 죄인인데도 나를 향해 참고 기다리신 주님은 결정적인 순간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게 하셨다.
“이르되 큰 은총을 받은 사람이여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하라 강건하라 강건하라 그가 이같이 내게 말하매 내가 곧 힘이 나서 이르되 내 주께서 나를 강건하게 하셨사오니 말씀하옵소서(단 10:19).” 이를 오늘 본문에서 강하게 느끼며, “입은 심히 달콤하니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 예루살렘 딸들아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로다(아 5:16).” 곧 오늘 나의 고백으로 주의 사랑은 더욱 달콤하다. 그 전체가 사랑스럽다. 나의 모든 게 은혜뿐이다. 나는 아무 것도 한 게 없는데 어느새 아이들이 자라서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나의 친구로다’ 하시는 듯 주의 사랑의 증거가 된다. 할 때에,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 18:1).
하는 오늘 시편의 고백으로 내가 산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2).
이를 누가 어찌 알 수 있겠나? 끝 간 데 없이 가야 한다면 갈 데까지 가보는 수밖에… 그 인생은 고로하였고 지치고 외로웠다. 그러나 그곳에서 짙은 백합화의 향기를 맡을 수 있었으니, 주의 은혜의 냄새다. 어느새 나의 생은 시들어 볼품없는 것 같으나,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6).
하여 주 앞에 아뢰는 것은,
나를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나를 구원하셨도다
…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내 의를 따라 갚으시되
그의 목전에서
내 손이 깨끗한 만큼 내게 갚으셨도다
(19, 24).
하여,
주께서 나의 등불을 켜심이여
여호와 내 하나님이 내 흑암을 밝히시리이다
(28).
할 때에,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30).
그러므로
여호와는 살아 계시니 나의 반석을 찬송하며
내 구원의 하나님을 높일지로다
이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보복해 주시고
민족들이 내게 복종하게 해 주시도다
(46-47).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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