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더라

전봉석 2019. 2. 6. 07:09

 

 

 

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더라

출애굽기 36:7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시편 121:3

 

 

 

늘 모자랄 것 같아 염려를 더하지만 그때마다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찌 인도하시는가, 이를 더욱 알게 하실 따름이다. 병약한 나의 됨됨이에 대하여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일이지만 하나님이 나로 실족하지 않게 하시려고, 나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도 않으심을 경험한다. 운전을 하고 돌아오면서도 그처럼 마음 졸이고 힘겨워했던 일에 있어 하나님이 어찌 관여하시고 다스리시는가를 직접 체험하는 일.

 

고로 오늘 말씀은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하다. “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더라(출 36:7).” 모자랄 줄 알았는데 남음이 있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다. 곧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시 121:3).” 이를 목격하고 실감하고 곁에서 늘 느끼며 살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축복이다.

 

저마다의 결핍이 주를 바라는 간절함이 되고, 담고 사는 간절함에 의해 주의 놀라우신 도우심을 붙들고 사는 것이다. 설날 아침, 아버지의 설교는 그런 점에서 감사를 회고하는 내용이었다. 사무엘이나 다윗 왕이나 솔로몬 왕이나, 저들은 각각 주 앞에서 큰 인물이요 귀한 사역을 감당하는 생이었다. 사무엘 선지자는 그 생의 허물을 남기지 않을 정도로 귀히 쓰임을 받았으나 자식 농사에서는 실패하였다(삼상 8:1-7).

 

심지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살아간 다윗도 그의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자식을 잃고 쫓기는 신세가 되었고(삼하 13장), 솔로몬은 이내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을 떠나는 일도 초래하였으니(왕상 11:6-13), 이것이 또한 우리의 교훈이 되고 터를 이루어 주를 바로 바라게 하는 초석이 되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엡 2:20).” 곧 오늘 우리 사남매 자녀들이 아버지에게는 주의 영광이라.

 

곁에서 그와 같은 회고에 젖는 아버지의 감사를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더하여 자자손손 하나님 경외하기를 그 대를 이어 복을 계승하기를 당부하시는 것이었으니. 우리의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고전 3:11).” 서로에게 본이 되는 삶이란 참으로 귀한 사역이고 사명이란 생각을 하였다.

 

세상 그 어떤 유산보다 값지고 귀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 이는 결코 자신의 됨됨이나 어떤 성과에 대한 부분이 아니라, 하나님을 먼저 하는 마음의 결실이 아니겠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4:16).” 곧 저의 자랑은 주를 사랑하는 일이고, 그 일에 매진하였던 지난날의 수고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에 대하여!

 

유년에 종종 느끼던 나의 외로움이 또는 어떤 결핍이 우리들로 하여금 주를 바라고 그 마음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성장하게 하실 줄이야! 우리 형제들의 마음이 모두 그러하지 않았을까? 늘 하나님을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였던 부모님의 전심(全心)이 이제는 우리의 일심(一心)이 되어 그리 살고자 하는 마음의 기틀을 마련한 것은 아닐까?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그리고 너희가 우리를 본받은 것처럼 그와 같이 행하는 자들을 눈여겨 보라(빌 3:17).”

 

허락하신 한 생을 사는 동안 이처럼 같은 길을 갈 수 있고 한곳을 바라보며 합심(合心)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은혜와 축복이 또 있을까? 아버지가 곧 당신의 족적을 따라 본을 삼으라 하는 것은 그에 따른 근거였다. 의당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이되기를. 먼저는 자신을 낮추어 본이 되신 예수. 그러므로 선한 양심을 가지라는 것,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16).”

 

곧 이 마음을 품으라는 것,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그리하여 우리에게 당부하신 내용이 가르치는 스승이 되려하기보다 양육하는 어버이가 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4:15-16).” 하긴 참으로 선생이 많은 세상에서 한 영혼을 붙들고 저를 영적으로 돌보며 양육하는 일이라니!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약 3:1-2).” 스스로 굴레를 씌워 주의하고 또 조신해야 하는 일이어서,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마 23:8).”

 

그러므로 군림하는 존재이기보다 섬기는 사람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9).” 곧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이와 같은 사명을 우리에게 맡기셨음을 상기하며, 각자 그 맡기신 자리에서 목회를 담당하는 자식들에게 권하는 새해 설날의 말씀으로 값진 것이었다.

 

이는 우리의 수고와 노력이 무익하여 허사가 될 수도 있고, 참으로 귀하여 영적으로 살리는 생명이 될 수도 있는 것이었으니,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자신을 추구하고 그 육신의 자랑을 좇지 말라는 것이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롬 8:8).” 그러니 우리의 길은 성령을 좇아 행함이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이 지식이 가장 고상한 것을 앎이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빌 3:8).” 이와 같은 앎이 곧 영생이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그러므로 푯대를 향해 나아가라.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4).”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하라.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16).” 이처럼 설날 아침, 증거 하신 설교를 갈무리하며 되새김으로 그 품이 넉넉한 것을 느낀다. 살면서 사는 날 동안 얼마나 우리는 도움을 구하며 사는가.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시 121:1).” 성전을 향해 올라가는 두 번째 노래로써 오늘 말씀이 이번 설을 함께 보내며 내게 더하신 마음을 그대로 함축하고 계신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2).” 나는 늘 전전긍긍하며 안절부절 못하며 살고 있지만,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3).”

 

그러므로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6).” 곧 우리의 남은 날 동안,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