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

전봉석 2019. 3. 15. 07:10

 

 

 

자기의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

민수기 6:8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시편 8:4

 

 

나는 자주 하나님께 골난 아이처럼 군다. 이렇게 저렇게 바라고 있던 마음은 뜻대로 이뤄지지 않고. 입술을 삐쭉 내밀고, 주님은 항상 내 뜻과 상관없이 일하셔! 하고 볼멘소리를 한다. 그 투정은 늘 어린아이 같아서, 그럼 너의 생각은 무어냐? 하고 물으시면, 여쭙기가 민망할 정도이다. 그냥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아들애가 내 곁에 같이 살았으면 좋겠고, 동생네가 이젠 한국에 들어와 서로 만나곤 하였으면 좋겠다고. 말해놓고 보면 어쩜 그리 철딱서니가 없는지.

 

하나님의 섭리를 읽는다는 게 얼마나 지난한 일인지. 오전에 모처럼 필리핀 동생이 전화를 주었다. 6월엔 들어올 줄 알았는데 좀 더 그곳에서 하나님이 하시려는가, 전혀 생각지도 않게 일이 그리로 흘렀고 저들 가족은 가만히 파도에 몸을 맡기듯 그리 하기로 한 것 같았다. 문득 전도서의 말씀이 떠올랐다.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11:5).”

 

그니까.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이 어찌 다음 일을 이어가실지 때로 우린 알 수 없다. 그래서 다양하게 길을 열어놓고 종종 무얼 모색하기도 하지만,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8:28).” 그 몫이 때론 내 생각과 맞지 않아 주춤하거나 망설이거나 다른 길을 찾아보기도 하지만.

 

우리가 어떤 자인가, 오늘 말씀은 일갈한다. “자기의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6:8).” 그러게, 하나님이 또 어찌 이루어 가시려하나 우리도 잘 모르지만, 하고 동생은 여러 설명을 길게 하였다. 이에 오늘 말씀은 겸허히 주 앞에 앉는 자세를 일깨운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8:4).” 내가 뭐라고 내 삶을 운운하고 내 것을 주장하려 드는지!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18:13).”

 

과연 내 안에 이와 같은 절규가 이끄는가! 그래서 지혜자는 자세를 바르게 교정한다.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11:6).” 다만 주어진 날 동안에 열심을 다하는 일이다. 나의 영혼은 그저 투정부리는 어린아이 같아서, 아들애가 막상 주 헝가리 대사관에 지원을 했다는 소리에 입을 씰룩거렸다.

 

옆에 끼고 살고 싶은데, 하는 생각을 놓지 않고 있다 불현듯 하나님의 마음을 읽었다. 내 안에 두시는 이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은 아닐까? 하는! 그 좋고 좋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옆에 끼고 살고 싶은데, 하나님처럼 완전한 자로 흠 없이 주와 같이 거룩한 자가 되게 하시려고 오늘 우리로 이 땅의 여정을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오게 하신 것이었으니. 하나님이 오늘 일을 어디에 쓰실지,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못하게 하심이었다.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폐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노라(살전 2:9).” 우리는 구별된 자다. 그리 세우셨다.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1:29).” 바울 사도의 설명이, 오전 내내 동생이 들려주었던 말과 통한다. 하나님이 쓰시는 데 있어 힘을 다하여 수고하는 게 우리에게 두신 사명일 거였다.

 

이에 하나님의 뜻, 그의 섭리를 보고 무던히 앞으로 나아가는 삶이 얼마나 귀한가! “빛은 실로 아름다운 것이라 눈으로 해를 보는 것이 즐거운 일이로다(11:7).” 종종 하나님이 일부러 내 말에는 귀 기울이지 않으시는 것 같고 번번이 그 뜻을 달리시는 것 같아 마음이 어렵기 그지없지만, 생각해보면 아브라함은 안 그랬을까? 노아인들 한 번도 회의하지 않고 갈등하지 않았겠나? 그런 우리 같은 사람이 뭐라고 이처럼 존귀히 여기시는지!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30:5).” 마음이 어렵고 심란하였다. 며칠 전 아내와 한바탕 싸웠던 것도 왜 내 속을 몰라주느냐는 투정 때문이었다. 필리핀에 가서 아들 졸업식에도 참석하고 며칠 저들은 보고 왔지만 난 그러지 못했다. 그래도 한 달 정도 뒤에 비자 문제로 잠깐이나마 왔다 간다고 했던 게 안 그래도 될 것 같다며 아들애가 취소하자 나는 화딱지가 났는데 아내는 아무렇지 않게 구는 것이다.

 

그래도 이제 두어 달 뒤면 귀국하려니 하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헝가리로 갈 수도 있다고 하니, 나의 서운함은 서러움으로. 나의 서글픔은 노여움으로 바뀌어 누구에게 말도 못하고 혼자 토라져서 말도 않고 며칠씩 입을 꾹 다물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하나님은 일부러 내 생각과 늘 반대로 하시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러는 동안 얼마나 내 안에 억눌린 어린아이가 있는지, 그가 속상해하며 투정부리고 심통을 낼 때 성숙하고 보다 의연한 줄 알았던 나의 어른아이는 속수무책이었다.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11:17).” 같이 참여하지 못한다는 것, 공유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소외감은 영혼을 우울하게 하였다. 급기야 하나님도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으신다는 엉뚱한 자격지심에 시달리면서 의기소침해지는 가운데, “사람이 여러 해를 살면 항상 즐거워할지로다 그러나 캄캄한 날들이 많으리니 그 날들을 생각할지로다 다가올 일은 다 헛되도다(11:8).” 그게 어찌 내 맘대로 되는가?

 

좋은데 싫은, 밝은데 어두운, 나야말로 우울해할 게 무언가? 싶을 정도로 모든 게 은혜인 것을 알면서도 퉁퉁거리는 영혼은 입을 삐쭉 내밀고 있는 것이다. 그럼 또 영락없이 아이들이라. 어쩜 그리 열악하고 황폐한 영혼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그렇게 아이들이 내 곁에 있다! '가짜 아빠' 때문에 '진짜 아빠'에게 미안해하고, 미안함은 그리움으로 아이를 짓누르는데, 안 그래도 된다고 해도 수업 후에 녀석은 뒷정리를 철저히 한다. 다른 아이들이 보던 책도 심지어 저들 공책도 하나하나 챙겨주고 정돈한다. 슬그머니 비스킷을 하나를 주고 웃으면 아이도 멋쩍어하며 감사합니다, 하고 수줍어한다.

 

중딩 아이들 둘과 수업을 할 때도 아이의 글에서 억눌린 감정은 내재된 수치심으로 비틀려 있는 게 크게 보인다. 이번 주제는 학부모 총회였다. 부모들이 학교에 와서 선생과 상담을 하는 날이어서 단축수업들을 하고 일찍 왔다. 유독 자기 부모는 학교 행사에 한 번도 온 적이 없어서 아이들은 행여 학교에서의 일을 엄마가 알까봐 저녁에들 혼날까봐 걱정을 하는데 이 아이는 되레, 그래봤으면 좋겠다! 하고 빈정거리듯 입 꼬리를 씰룩거렸다. 혼자 키우다보니 늘 바쁜 탓에 그렇겠지만, 아이는 내심 소외를 느끼고 무시당한다는 수치심이 내면화된 것이다. 다른 애들은 좋겠다, 하고 오히려 속도 모르는 소릴 하자 아이는 금세라도 울 것처럼 눈을 깔았다.

 

우리는 우리에게 더하시는 삶을 살아드리는 게 선이다. 좋은 날을 기약하고 남과 같이, 누구처럼 견주어 바동거리는 게 아니라 그리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묵묵히 이행하는 삶이라면 그것이 선이다. 비록 아직 저 아이가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나는 대신 저를 위해 아뢴다. 은연중에 교회로 이어 연결 짓고 이야기를 이어가기도 한다. 그렇듯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6:9).”

 

아직 끝나지 않았다. 좋은 게 좋은 것만은 아니다. 당장의 소득과 이익과 성과가 끝이 아니다.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11:9).” 주신 바 그 날을 즐거워하고 감사함으로 이뤄 살되 모든 것은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다만 우리는 예외라. 주께서 변호하시고 감당하셨다.

 

그러니 또한 너는 청년의 정욕을 피하고 주를 깨끗한 마음으로 부르는 자들과 함께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딤후 2:22).” 피할 것은 정욕이라. 온 나라가 관음증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이 때에,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우리가 붙들고 놓지 말아야 할 것은 그저 지나가는 것에 대하여는 미련을 두지 말자. 우리에겐 영생이 있다. 지금이 다가 아니다.

 

그런즉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니라(11:10).” 이쯤 나이가 됐으면 보다 의연하고 진득하면 참 좋겠는데, 남들은 내가 목사라고 어찌 보는가 모르겠으나 나야말로 안달부리고 조바심 내며 혼자 토라지기 일쑤이니, 이와 같은 말씀이 그저 내게 들려주시는 소리라. 언제쯤 되면 나는 과연 의연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90:12).”

 

나이는 어른인데 여전히 자라지 못한 아이여서 나의 지혜란 게 참으로 보잘것없을 따름이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5:15-16).” 꽁하니 말도 않고 그래서 곁에 아내와 자식을 불편하게 하고, 그러니 나는 언제쯤 철들까? 내 영혼은 아이라. 초라하기 그지없을 따름이다. 시무룩해 있는 내게 오늘도 말씀으로 다가오신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65:4).” 그럼에도 나 같은 걸 여기에 세우시고 거룩하다 하시니,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따르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딤전 6:11-12).” 말씀으로 내 손을 이끄신다.

 

결국 자기의 몸을 구별하는 모든 날 동안 그는 여호와께 거룩한 자니라(6:8).” 이것이 귀한 까닭은 오늘이 전부가 아니고 비교도 안 될 영원한 삶이 우리에게는 있는 것이었으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8:4).” 고작 나 같은 것을! 그럼에도,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24-2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