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위탁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
민수기 27:18, 23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시편 29:11
이웃집에서 달래와 봄철 나물을 한 봉지 가져왔다. 언 땅에서 겨울을 견딘 나물은 거칠었고 향이 짙어 금세 집안 가득 풀냄새로 가득하였다. 이를 된장에 풀어 아내는 정체불명의 된장국을 끓였다. 거칠고 빳빳하던 잎들은 숨이 죽어 유들거렸고 입안에서는 흙냄새가 번졌다. 국물까지 다 비우니 창자에도 봄이 온 것 같았다. 아내는 저녁께 계절을 초월하는 하우스 딸기를 두 팩 사서 하나는 이웃집에 주고 하나는 우리 집 밥상에 올렸다. 나는 점심에 먹은 봄나물 된장 국물로 모처럼 종일 평강하였다.
사람 사는 이야기는 봄나물처럼 여러 겹이다. 상큼했다가 구수하였고, 진동을 하였다가 풀어져 숨이 죽었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여러모로 기운이 빠지는 게 싫지 않다. 생각보다 마음은 평온하여서 이런저런 사연이 목가적으로 느껴지기도 하다. 이는 나의 인품이기보다 기력이 떨어지면서 오래 물고 있을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늙는다는 게 가끔은 기다려지기도 한다. 그럼 지금보다 덜 뻣뻣하고 안달하며 살 수 있지 않겠나.
초딩 아이들은 수학여행을 가서 중딩 아이들만 수업을 왔다. 얘들이야말로 봄나물처럼 싱그럽기 그지없다. 별 것도 아닌 걸 갖고 죽일 것처럼 따지고 든다. 가령 십여 분 늦기에 뭐라 나무랐더니 두 번씩이나 전화를 했는데 내가 받지 않았다며 거칠게 대들었다. 그 아이 핸드폰에는 전화를 건 통화 기록이 남았고 내 핸드폰에는 전화가 온 통화기록이 없었다. 별 것도 아닌 일로 옥신각신하며 서로 상대의 핸드폰을 가지고 확인하다 나는 풋, 하고 웃었다.
한참 친구를 부모 대신으로 찾고 정을 주고 기대는 아이의 핸드폰에 같이 다니는 저 둘 아이의 사진이 나란히 꽂혀 있었다. 파르르 좋았다가 또 금세 시들 것을 알면서도 나는 그런 풋풋함이 고맙고 소중하였다. 우정의 증표로 서로의 증명사진을 주고받았는지 모르겠으나 머리 모양도 입술 색깔도 같아서 나는 안경을 머리에 걸치고 한참을 번갈아가며 보고 아이들 얼굴을 확인하며 웃었다. 좋을 때다. 나도 모르게 탄성이 나왔다. 점심 때 먹은 봄나물 된장국은 그렇게 아이들 덕분에 내 속을 편히 달래주었는지 모른다.
그렇듯 한 세대는 가고 또 한 세대는 오나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그 안에 영이 머무는 자니 너는 데려다가 그에게 안수하고, 그에게 안수하여 위탁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였더라(민 27:18, 23).” 이와 같이 오고 감의 과정은 여호와의 명령이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스침도 머묾도 모두 다 때가 있는 것이어서,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전 3:2).”
때와 때를 따라 오고 가는 모든 생명의 속절없음으로 나는 올해도 새봄을 맞았다. 그리하여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4).” 우리들 사는 이야기는 여기서 저기로, 이것에서 저것으로 옮겨가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8).” 이와 같은 흐름에 순응하고 순종하는 것이 복되었다. 딸애는 자정이 다 돼서야 돌아왔고, 대학 때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며 위로를 받은 것인지. 아내는 애가 들어왔으니 그만 자라고 눈치껏 문을 닫아주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좋아하고 기대며 의지하다 밀어내고 멀어져서 더는 기억도 없는 단계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숨어 있는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후 6:1).” 나는 설교원고 작성을 하느라 정신을 쏟았고 하루를 먼저 손을 놓으며 마지막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이 모든 게 은혜라. 만남도 은혜이고 헤어짐도 은혜이다. 부디 한 마디 더 성숙하여져서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깊어지기를.
나는 딸애에게 봄나물 된장국을 끓여 출근 전 아침상에 올려주고 옆에다 딸기도 씻어서 놓아주었다. 그리고 시치미 떼고 나는 지금 묵상 글을 쓴다. 서로의 마음을 어찌 알 수 있을까! 나는 아이의 복잡한 감정이 너무도 까마득하여 종잡을 수 없었다. 뭐라고 말을 붙이고 싶은데, 차려준 아침상으로 대신하였다. 오물거리며 조용히 봄나물을 씹는 아이의 입에서도 흙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모두 같은 하나님의 은혜로 산다. 서로 지나는 세대가 달라 각각의 계절이 다를 수는 있으나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우리는 주신 바 그 생을 다한다.
결국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시 29:11).” 모처럼 나의 속이 평강하였던 어제 한 날의 느낌으로, 주께서 내게 힘을 주심이다. 자기 백성이기 때문이다. 내 자식이니까 아무렇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하건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민 27:16-17).”
저는 끝내 들어갈 수 없는 땅을 눈앞에 두고, 모세의 숨이 죽은 평강한 호흡을 느낄 수 있는 기도이다.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모세가 언제 어디서 저의 오경을 썼는지는 알 수 없으나 겨울의 언 땅을 견디어 거칠고 냄새 짙던 저의 계절은 가고 주 앞에 서서 순응으로 숨을 죽여 주의 백성을 두고 기도하는 저의 호흡이 평강하였다. 드세고 거칠던 애굽 생활에서 광야로 들어 순종을 배우던 시절과 백성을 이끌고 여기까지 오는 저의 일생을 돌아보면 고스란히 사계절을 담고 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20).” 오늘 나에게 두신 계절이 가을쯤인지 겨울쯤인지 나는 나의 계절을 분간할 수 없고, 분간할 수 없는 나의 후각은 아이들의 풋풋한 짓거리에서 톡, 쏘는 봄 냄새를 맡는다. 아이가 영어를 가르쳐준다고 하니 같이 이렇게들 와서 주일에 예배드리고 저렇게들 하면 어떨까? 하고. 안 믿는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일은 종잡을 수 없어 어지럽다.
다만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신다는 말씀 앞에서 나의 속은 평강하다. 온순해진 봄나물을 씹으며 흙냄새를 맡듯이 어떻게 하면 아이들을 주 앞으로 오게 할까 하는, 나의 분간 없는 말은 말들은 속절없었으나,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히 2:15-16).” 나는 어눌하여도 주가 이루실 것을 의지하였다.
고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시 29:11).” 그러므로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1).” 아직도 뻣뻣하기 이를 데 없는 나의 마음이 말씀 앞에 숨을 죽인다.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2).”
“여호와의 소리가 물 위에 있도다
영광의 하나님이 우렛소리를 내시니
여호와는 많은 물 위에 계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힘 있음이여
여호와의 소리가 위엄차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백향목을 꺾으심이여
여호와께서 레바논 백향목을 꺾어 부수시도다
그 나무를 송아지 같이 뛰게 하심이여
레바논과 시룐으로 들송아지 같이 뛰게 하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화염을 가르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광야를 진동하심이여
여호와께서 가데스 광야를 진동시키시도다
여호와의 소리가 암사슴을 낙태하게 하시고
삼림을 말갛게 벗기시니
그의 성전에서 그의 모든 것들이 말하기를
영광이라 하도다(3-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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