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명기 8:3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시편 46:10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고 바랄 수 있는 것이 복되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간구한다는 그 말, 이는 우리를 위한 주의 사역이시기도 하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히 7:25).” 실은 내가 무얼 구하여야 할 지 모를 때 주께서 날 위해 간구하신다.
이를 여실히 느낄 수 있는 하루였다. 행여 나는 부담이 된다 해서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엄마는 물론 형까지 와서 축하하고 같이 예배하였다. 그럴 수도 있었다는 게 놀랍다. 전혀 예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나는 그저 어눌하기 짝이 없어 버벅거리고 있을 뿐인데 주께서 이루어가고 계셨다. 마음이 참 좋았다. 돌아보면 4년을 기다리다 아이를 만났고 아이와 같이 보낸 일 년의 시간이 내게 우선 유익이었다. 아이 형에게도 그리 말해주었다. 기도할 것이고 언젠가 같이 할 것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주께서 다루시고 함께 하심을 설명해주고 싶었다. 곧 그 기간 동안에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3).” 그리하심은 우리가 무엇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알게 하려 하심이었다.
결국은 하나님이 승리하신다.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골 2:15).” 이번 부활의 주일은 그의 이김을 맛보아 알게 하신 날이다. 아무리 어떠하다 해도 아이로 인해 아이엄마가 주께 매달리고 그 온 가족이 주의 선하심을 알게 되는 것이다. 곧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시 46:10).”
이와 같이 말씀 하나하나가 말씀으로 이루어지었다. 나는 가만히 있어 한 것이 없는 사람인데 그로 인하여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어렵고 힘들었을 텐데, 가만히 돌아보면 모든 게 은혜일 따름이다.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신 8:4).” 신기하지? 사람은 그 행위로 절단이 나고 폐허가 되는데 우리의 행동을 들어 주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어 놓으시는 것이다.
서로의 반목과 배신과 이혼으로 가정이 파탄나고 아이 상태가 그러한가하였더니, 그러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가장 선한 길로 우리를 이끄시고 계신 것이다.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5-6).” 우리들로 하여금 비로소 주를 경외하게 하시려고, 이 모든 여정 가운데서도 우리를 돌보시고 함께 하시었다.
내가 나여서 나의 나됨으로 일구어진 일들을 돌아보며 감사하게 되었다. 그토록 원망스럽고 어렵고 힘들기만 하였던 세월인 것 같은데 나의 부모에게 나는, 나의 자식들에게 나는, 비로소 나에게도 나는 주의 은혜였다. 어릴 적 내 아버지의 고백이 오늘에 이르러 나의 나 된 것이 은혜라는 것을 마주하기까지.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 15:10).”
이와 같은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함께 목격하고 증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었는가를, 아이엄마와 그 형의 출석은 놀라운 감회였다. 그리하여 이제는 십자가 외에 다른 것을 알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말,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그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구구한 말과 말보다 울컥, 하며 뜨거운 것이 내 안에 이는 이 놀라운 증거를 나는 이제 사랑한다. 어찌 설명할 길 없고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그 자체로 이미 고백이 되는 삶이라니!
그러는 중에도 아무 연관도 없이 누굴 생각하였고,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가하고 생각을 하다 저를 위해 가만히 기도하게 되는 일이었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 5:20).” 우리로 저들과 하나님 사이에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게 그리스도의 사신이 되게 하시는 일이었다. 이를 위해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21).”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신다니! 십자가의 날에 그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어째서 어떻게 왜 무엇을 이룩하고 계시는가를 엿보았다. 어찌 말로 다 형용할 수 없으나 그저 우연처럼 또는 말도 안 되게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하시었다. 이렇듯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고전 4:1).” 나는 주의 전을 지킬 뿐이다.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다. 내가 한 건 없다. 그리고 아이 형에게 끌리게 하시는 마음을 주시는 데 놀라웠다.
십자가만이 사람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하신 날이다. 십자가는 내가 저지른 일이 아니다. 하나님이 일으키신, 예정하사 그 뜻대로 이룩하신 일이다. 그리하여 주의 부활은 기정사실이 되었다. 어쩌다 나로 인해 내가 저지른 역사가 아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행 2:23-24).”
우리의 죄까지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가장 선하신 뜻으로 바꾸어놓으신 가장 엄연한 사실이고 사건인 것이다. 내가 알지도 못하던 때에,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눅 23:34).” 그러는 중에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은 멈추지 않고 행동하고 계셨던 것이다. 나는 그 역사의 현장을 목격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저 어쩌다 아이를 만났고 아이엄마와 형까지 오게 된 사소함이 아니다.
이를 위해 말 그대로 전우주적인 역사가 이루어졌다는 데 나는 이제 의심하지 않는다. 곧 아이의 형이 처음 교회로 오게 되기까지, 그 안에 미움과 증오가 가득하여 스스로 단단해지고 완고하여지기까지, 그러그런 엄마와 부실한 동생을 부정하며 홀로 견뎌왔을 시간에 대하여, 오늘 말씀은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계신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신 8:2).”
원인이 무엇이고, 누구 때문이고, 어쩌다 그리 된 것인지를 추론하는 일은 부질없는 일이다. 급기야 우리가 엎질러버린 물까지도 하나님은 주의 선하심으로 그대로 사용하시었다. 이에 우리의 죄가 그래서 괜찮았다는 것이 아니라, 그 결과를, 죄의 삯은 사망인 것에 대해, 기어이 주의 사랑의 십자가는 우리의 결말을 해피엔딩이 될 수밖에 없게 하시는 것이다. 그러는 동안 저마다의 광야 사십년은 어쩌겠나? 저마다 제 고집에 겨워 먼 길을 돌고 돌았던 것이었으니.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17).”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라는 게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12).” 그러할 때면 영락없이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하는 것이니, 죽기까지는 자기의 교만을 무거운 껍질로 이고 사는 보리새우인지 소라나 고둥인지. 제 집에 겨워 힘에 부치는 걸음이야 어쩔 것인가!
이내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3).” 나는 오늘 말씀을 가만히 머금고 아이와 아이 가족을 생각하다, 나와 나의 부모를 생각하다,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4).” 그러는 중에도 주의 은혜가 얼마나 값지고 소중한지를 깨닫는다.
곧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5-6).” 그리하여 우리로 주의 길을 따라가며 주를 경외하게 하시려고! 그리하여 고백되어지는 말,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 46:1).” 이를 누가 가르쳐 설명해서 알게 할 수 있겠나!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10).”
고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니 야곱의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1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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