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로잡혔다가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과 자기 땅에 사는 이방 사람의 더러운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구별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속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다 먹고
에스라 6:2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편 1:1
‘복 있는 사람’으로 산다는 일은 확실히 그 가운데 즐거움이 있다. 회복하고 고치시는 라파 하나님의 손길을 묵상한다.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출 15:26).” 복 있는 사람은 구별된 손길의 현장을 경험한다. 아무런 변화도 소득도 나아짐도 없는 것 같지만 그러는 중에도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2).”
아이와 성탄 예배를 드리며 그런 생각을 하였다. 잘 자란 나무 세 그루가 있었다. 저들의 꿈은 야무져서 하나는 화려한 솔로몬의 성전의 기둥이 되길 꿈꿨고, 하나는 왕의 보좌가 되기를 꿈꿨고, 하나는 너른 바다를 마음껏 항해하는 유람선을 꿈꿨다. 그런데 하나는 잘려가서 구유의 여물통이 되었고, 하나는 십자가 형틀이 되었고, 하나는 작은 고기잡이 목선이 되었다. 참으로 보잘것없고 어처구니없는 결과이다. 이렇게 이야기가 끝난다면 말이다. 훗날에 아기 예수가 여물통에 누이셨고, 자라서 작은 목선에 올라 말씀을 전하였으며, 십자가에 달려 우리의 죄를 사하셨다.
형이나 엄마는 자고 있는데 아이는 아침도 먹지 못하고 혼자 나와 성탄 예배를 드렸다. 못난 나무가 산을 지키는 것처럼 아이의 오늘은 그러했다. 주가 아니시면 돌이켜 낫게 하실 이가 없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 6:1).” 아이가 돌아가고 아내와 둘이 올라와 책을 보다 돌아왔다. 어딜 좀 가고 싶었지만 사람들이 몰려다니는 날이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 나의 진노가 그에게서 떠났음이니라(14:4).”
오늘 말씀에서 나는 주의 치료와 회복을 묵상한다. “사로잡혔다가 돌아온 이스라엘 자손과 자기 땅에 사는 이방 사람의 더러운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구별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속하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는 자들이 다 먹고” 회복되는 것을 상상한다. 엄마나 형에 대해 물으면 다들 피곤하다는 것을 아이는 안다. 내 안에 어떤 안타까움이 아이를 더욱 보듬게 한다. 내가 할 수 없는 일에 대하여는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내가 너희의 배역함을 고치리라 하시니라 보소서 우리가 주께 왔사오니 주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이심이니이다(렘 3:22).”
다들 저마다의 의지가 있다. 생각이 있고 생활이 있어 뭐라 한들 들을 수 있는 여력이 없다. 그저 사느라 죽을 맛이다. 그럼에도 아이는 같이 식사를 하고 엄마나 형이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즐겁다. 배웅을 하며 먼 발치께 서서 멀어져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며 짠하였다.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시 6:2).” 주께서 우리를 고치소서.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나를 고치소서 하였나이다(41:4).” 아니면 우리가 무엇으로 나음을 입을까? 결국은 하나님만이 하신다.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103:3).” 또한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107:20).”
내 안에 두시는 말씀뿐이라. 저마다의 고통 중에서 무엇으로 치료를 얻을 것인지. “여호와여 주는 나의 찬송이시오니 나를 고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으리이다(렘 17:4).” 말씀 구절을 메모하며 찾아보다 그가 말씀을 보내어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 것을 본다. 누구를 생각하다 어떤 일을 두고 오래 머물다, 말씀밖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그러므로 나는 전할 뿐이라. “진실한 입술은 영원히 보존되거니와 거짓 혀는 잠시 동안만 있을 뿐이니라(잠 12:19).” 오늘 새로 묵상하는 시편의 첫 수가 항상 새롭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 1:1).” 어? 이게 아닌데! 싶은 어떤 것이 있다. 곧 그러할 때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2).” 나는 종종 아이가 안타깝다가도 아이의 안타까움이 교회를 지키고 말씀을 의지하게 하는 것이 복임을. 나의 이런저런 처지가 이 자리를 지키고 말씀을 붙들게 하는 힘인 것을.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그래서 저는 부득불 자랑해야 한다면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고 하였구나. “내가 부득불 자랑할진대 내가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11:30).”
전날에 통화에서 ‘그리스도인은 잘나야 한다.’는 말로 압축되는 누구의 주장을 듣고 잠시 위축되던 마음이 다시 분명하여졌다.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완전하여 짐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8-10).” 비록 짐승의 여물통이 된 하찮은 신세 같으나 그 안에 아기 예수가 누이시는 영광이 있고, 가난한 이의 생계형 고깃배로 온갖 비린내와 고단한 손때로 얼룩졌으나 천국 복음이 전하여지는 예수님의 강단이 되고, 가장 끔찍한 십자가 형틀로 오만 흉악범의 괴성과 피범벅이 밴 것 같은데 예수의 보혈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교회의 상징이 되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고 끝나도 끝난 게 아닌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 모든 게 다 때가 있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 1:15).” 나는 늘 신중하지 못하고 조급하여 혼자 징징거리는 위인이라 감히 이와 같은 말씀 앞에서 송구할 따름이다. 좀 더 진득하니 주만 바라고 말씀만 붙들고 갈 일인데, 수시로 마음은 요동하고 저 혼자 찔찔거리며 보채는 마음이라, 혼자 뚱하다 혼자 시무룩하여 혼자서 말없이 실의에 빠지곤 하는데, 그래서 아내는 종종 말씀만 잘 전하면 뭐하냐며 핀잔을 준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은연중에 나를 휘두는 감정이라니!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히 2:10).” 주가 이루신다. 주가 행하신다. 주가 치료자 구원자 회복자 되신다. 내가 하는 게 아니다.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이 나의 처지에 따른 이입인지는 알 수 없으나 말씀을 나를 붙들어 앉히신다.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고전 7:29-31).” 오늘 오늘의 이 모든 현상은 다 지나갈 뿐이다.
큰 교회를 이루고 수많은 사람들의 왕래가 있고 저마다의 보람과 그 가운데 있는 영광에 영광을 더한다 한들, 하나님은 다만 우리를 증인으로 세우신다. 나의 계획에 의한 게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잠 19:21).” 그때마다 주가 필요를 채우시는 것이다. “그는 때와 계절을 바꾸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총명한 자에게 지식을 주시는도다(단 2:21).” 이는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전 3:1, 8).” 그러니 어쩌겠나?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7-8).”
우리가 그 때를 정하고 기일을 나눠 그 마음에 온갖 계획을 세운다고 한들, 우리는 다만 세월을 아껴야 한다. “여호와여 주의 기이한 일을 하늘이 찬양할 것이요 주의 성실도 거룩한 자들의 모임 가운데에서 찬양하리이다(시 89:5).” 누가 오든, 어떠하든 우리는 다만 우리에게 맡기신 날을 채울 뿐이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90:12).” 마치 다들 천년만년 살 것처럼 굴지만 인생의 흉년이 오고 그 영혼에 가뭄이 들 때에야 비로소 깨달을 것이다.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고전 7:30-31).” 곧 오늘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이란 지나감에 따른 온전한 붙들림이었다.
그리하여 자족을 배운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1-12).” 주가 주신 날의 축복이란,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3).” 그러므로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4).” 같이 요동하고 들끓고 죽을 것처럼 신음하나 저들은 사라졌고 우리는 남았으니,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라! “그러므로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들이 의인들의 모임에 들지 못하리로다(5).” 이와 같은 말씀 앞에서 복 있는 자로 사는 삶의 끝을 묵상한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6).” 아멘.
'[묵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이시니이다 (0) | 2019.12.28 |
---|---|
너희가 가르치라 (0) | 2019.12.27 |
그의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0) | 2019.12.25 |
그들의 손에는 두 날 가진 칼이 있도다 (0) | 2019.12.24 |
그를 찬양할지어다 (0) | 2019.1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