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에 이르러 나를 매우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에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
에스겔 40:2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시편 133:1
37장에 이어 오늘 40장에도 성전을 환상으로 보여주신다. 그렇게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겔 37:27).” 하시는 의중이다. 성전의 절정은 하나님이 임하시는 것이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는 것과 같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요한은 이에 하나님이 얼마나 나를 사랑하셨는가를 보여준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지금은 연약하고 불완전한 몸으로 입었으나 미래에는 완전할 것이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고전 15:42).” 현재는 그럼, 이를 거룩히 한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3:17).” 그러므로 거룩이란, 개념이나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하시며 성경은 이를 엄연하게 밝혀준다(살전 4:3-8).“ 이는 구체적이다.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대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3-5).” 하는 것이 우선이었고, 이는 우리가 삶으로 살아서 현재를 채워가는 일이었다.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언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라(6).” 신원하여 주신다는 것은 풀어주신다는 의미다. 원통한 일을 풀고 부끄러운 일을 씻어주신다는 것이다. 그러할 때의 목적은 하나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7-8).”
즉 그러할 때 거룩의 의미는 더욱 더 분명해진다(엡 4:24-32). 곧 새 사람을 입는 일이다.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24).” 그것이 그럼 어떤 것일까?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는 것이고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하는 분명한 이유가 따른다(25). 그러할 때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26).” 살면서 사람으로 분이 나지 않을 수는 없으나 그것을 오래 끌지 말라는 것은,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27).” 그것으로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이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28).” 남의 것으로 거저 얻으려 해서는 안 된다. 내가 할 수 있는 한 내 손으로 일하고 얻은 것으로 구제하는 것이다. 또한 말에 대한 것으로,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29).” 늘 보면 말이 앞서 모든 것을 흐리게 한다. 그것 때문에 우리 속의 성령을 근심하게도 한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30).” 말에 은사는 하루아침에 이뤄질 문제는 아니다. 그러자면 구체적인 실천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매우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계신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31-32).”
성전에 대한 구체적인 너비와 길이와 높이 등에 대하여는 그렇게 보이심이다. “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에 이르러 나를 매우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에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겔 40:2).” 이는 오늘 시편의 호흡으로 이해하면,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오늘 우리에게 맡기신 ‘너와 나’이다. 우리 가정에 허락하신 교회를 중심으로 가족 개개인이 서로 연결되어 한 구성원을 이루어 주의 지체로 세워져 가는 일이었다. 그러할 때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오늘이 아무리 노엽게 한다 해도 다 이기신 것이라. 내 안에 그리스도의 평안이 있다. 그렇게 나를 인도하신다. “주는 나의 반석과 산성이시니 그러므로 주의 이름을 생각하셔서 나를 인도하시고 지도하소서(시 31:3).” 이는 궁극적으로 주의 이름에 대한 헌신이다.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143:1).” 그러할 때,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하지 마소서 주의 눈 앞에는 의로운 인생이 하나도 없나이다(2).” 스스로 의를 이뤄 거룩한 성전이 되어갈 수는 없다. 그러므로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살리시고 주의 의로 내 영혼을 환난에서 끌어내소서(11).”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이는 곧 영광과 존귀를 위하심이다. 그렇게 우리를 겸비하게 하시심으로, “이에 이스라엘 방백들과 왕이 스스로 겸비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의로우시다 하매(대하 12:6).” 하나님의 공의를 듣지 않는 우리들로 일깨우시는 것으로 환난을 놓으시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 재앙을 간직하여 두셨다가 우리에게 내리게 하셨사오니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이 공의로우시나 우리가 그 목소리를 듣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단 9:14).” 이를 깨달아 알게 하시는 것이 주의 은총이고 긍휼하심이었다.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심판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 때문이니이다(시 119:75).” 더러 기도 응답으로 우리는 좋은 것만을 바라지만 더 어렵고 곤란하게 두시는 까닭은 분명한 목적과 이유를 가지고 계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로 재앙 중에 기도하게 하신다. “의인이 나를 칠지라도 은혜로 여기며 책망할지라도 머리의 기름 같이 여겨서 내 머리가 이를 거절하지 아니할지라 그들의 재난 중에도 내가 항상 기도하리로다(141:5).” 기도를 통해 주의 정직하심과 진실하심을 알게 된다. “여호와의 말씀은 정직하며 그가 행하시는 일은 다 진실하시도다. 그는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33:4-5).”
그리고 참 두려움의 의미를 알게 하신다. “내가 어릴 적부터 고난을 당하여 죽게 되었사오며 주께서 두렵게 하실 때에 당황하였나이다(88:15).” 이는 결국 주의 존귀와 엄위하심을 알게 하였다. “그의 행하시는 일이 존귀하고 엄위하며 그의 의가 영원히 서 있도다(111:3).” 그렇게 주를 경외하는 자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셨다. 그리고 그의 언약이 영원하신 것을 알게 하였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양식을 주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기억하시리로다(5).” 이 모든 게 주의 거룩하신 이름과 그 지존하심을 영원히 세우시기 위한 것이다.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속량하시며 그의 언약을 영원히 세우셨으니 그의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19).” 이처럼 말씀을 따라가다 보면 오늘 나에게 두시는 여러 모양의 형편과 사정이 모두 주의 것이라. 주의 의도하심은 분명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즐겁게 외칠 것을, 어제 아침 묵상에서도 알게 하셨다. “주의 제사장들은 의를 옷 입고 주의 성도들은 즐거이 외칠지어다(132:9).” 이는 오늘 나의 이야기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어져 자자손손 영원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후손들에게도 이어지는 이야기이다. “네 자손이 내 언약과 그들에게 교훈하는 내 증거를 지킬진대 그들의 후손도 영원히 네 왕위에 앉으리라 하셨도다(12).” 그렇게 하나님은 공의로우셨다. “여호와께서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억압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심판하시는도다(103:6).” 그리고 이 땅에서 우리가 억압당하는 것에 대한 심판을 실현하시는 것이다. 단순히 언약을 이행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도 이루실 것이다. “그 때에야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 내가 이런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겠다 한 말이 헛되지 아니하니라(겔 6:10).”
오늘의 평안은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시 133:2).” 그렇게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1).” 이는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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