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
사도행전 19:20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누구냐 그가 택할 길을 그에게 가르치시리로다 그의 영혼은 평안히 살고 그의 자손은 땅을 상속하리로다
시편 25:12-13
말씀이 우리 안에서 흥왕하여 간다고 할 때 이는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것 같다. 어떤 때는 기적과 표적으로 드러나기도 하고(행 19:11-19), 어떤 때에는 자신들의 밥벌이에 위협을 느끼게 하기도 하고(23-29), 이를 또한 논리적으로 대응하게도 하는 것 같다(35-41). 어떤 이의 글에서 본 것인데 하나님도 어쩔 수 없는 것이, ‘과식으로 인한 위장염과 과로로 인한 피로함와 과욕으로 인한 탐심’이다. 이는 자업자득으로 인한 것이다. 하긴 ‘사람은 재물로 인해 죽고 새는 먹이로 인해 죽는다’는 말이 있다. 우리 안에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하여 사람으로 사는 동안에는 아무리 신앙이 좋아도 별 수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위로가 필요한 게 또한 인생이지 않겠나? 일찍이 성경은 인생을 들의 풀과 같고 한 날에 피고 지는 꽃과 같다고 비유하였다.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벧전 1:24-25).”
그 끝 지점에 이르러 죽음은 모두를 난감하게 한다. 알면서도 모두가 직면하면 속수무책인 것이다. 어느 특정한 부류의 사람만이 아니다. 신앙이 좋았다고 피해가는 길도 아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은 모든 학대로부터 시달리다 끝나는 것이 전부이다. 어릴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자하는 것들로부터 학대당한다. 어른스럽게 행동하라는 교육과 함께 매 학년마다 진급을 강요당하였다. 그래서 좋은 대학을 나오면 될 줄 알았는데, 사회로 진출하면서부터 여러 학대는 더욱 노골적이 된다. 그 모두는 밥벌이를 위한 것이고 아무리 고상을 떨지만 돈벌이를 위한 게 태반이다. 믿는 자로서 영적인 학대는 또 어떨까? 늘 시달리는 정욕과 악한 세력들과 마주해야 하는 것은 물론 자신에 대한 자책으로 더해지는 학대도 끝이 없다. 이에 우리는 무엇으로 위로를 삼을까? “너희의 하나님이 이르시되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사 40:1).” 앞으로 있을 바벨론의 침공과 함락으로 이어질 70여 년의 노예 생활과 그 후에 풀려날 일에 대한 예언이다.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2).” 이는 당대의 일로 끝난 게 아니라 오늘에 이어지는 삶과도 무관하지 않다.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3).” 주의 길을 평탄하게 함이란 나의 굴곡진 면이 평평해져야 한다.
나의 의지, 나의 노력, 내가 어찌 해볼 수 있다고 여기던 모든 것들로부터 버림을 당할 때에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4-5).” 그런 거 보면 실제 어리거나 젊을 때보다 나이 들어 더는 운신이 어려울 때, 부자일 때보다 가난할 때, 성공할 때보다 실패할 때, 우리는 어쩔 수 없는 불도저에 밀려나가는 마른 땅 같이 평평해진다.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6-7).” 이보다 더 슬프면서 아름답고 복된 소식이 또 있을까?
우리는 한 해 살이 풀만 못하다. 아침에 피었다 저녁에 지는 꽃과 같이 인생이란 그렇듯 허망하게 진다. 실제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8).” 하시는 이와 같은 말씀 앞에 붙들리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처자식도 나의 남은 날들도 아무런 희망이 없다. 어울려 함께 하던 벗들도 막상 꿈꾸고 소원하던 일들도 모두…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니! 좋을 때나 좋았을 뿐이어서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10-11).” 어제는 이와 같은 말씀을 묵상하며 하루를 끼적거렸다.
하나님의 길을 평탄하게 하라는 말씀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3).”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하고 기도하였던 다윗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시 39:5).” 돌아보면 온통 그림자 같이 다녔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6).” 오늘 사도행전의 정황이 그러하지 않나?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자 여러 형태의 모습들이 들춰지듯 드러나는 것이다. 아,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뜨거워서 작은 소리로 읊조릴 때에 불이 붙으니 나의 혀로 말하기를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3-4).”
주를 바람이란, 주가 아니시면 할 수가 없다는 것들로 우리의 남은 길을 다지는 일이었다. 지난 날 어리석었던 일들에 대하여는 “여호와여 내 젊은 시절의 죄와 허물을 기억하지 마시고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주께서 나를 기억하시되 주의 선하심으로 하옵소서(25:7).” 나는 주께 아무 것도 드릴 것이 없고, 한 것도 없는데…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사 40:31).” 오늘 나에게 더하시는 이 마음은 송구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그는 목자 같이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11).” 나를 이와 같이 위로 하시니 무엇으로 보답할까.
우리가 위로를 얻지 못함은 주의 길을 평탄하게 하지 않음이고,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3).” 실은 모든 인생과 풀과 같이 꽃과 같이 허망할 따름이었다.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6-7).” 그런 걸 그리도 악착같이 사느라 산다고 하나님을 저버리고 멀리하며 살았으니…. 나는 요즘 아들애를 마음을 두고 씨름하면서 나의 지난날들을 회고하며 나의 아버지가 겪어야 했을 나의 나 됨으로 인한 고초를 새삼 이해하게 된다. 어떻게 한 마디도 못하고 그저 묵묵히 지켜만 보고 계셨을까? 그 성미에 뭐라 나무라고 역정을 낼만도 하셨을 텐데, 그때마다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께 내어놓았을 때 아버지의 굴곡진 마음을 생각하였다. 누구네 가정사의 이런저런 사연을 생각하다, 평생을 안 믿는 부모로 인해 고달파하다 혼자 무장하였을 그 굴곡진 영혼의 상처를 생각하였다. 내남없이 모든 인생은 학대뿐이다.
저녁에 한 여자아이가 꾸벅하고 인사를 하는데 나는 누군지 분간하지 못해 어줍었다. 저 누구예요! 하고 이름을 밝히고도 한참을 생각하여서 그 이름과 얼굴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4, 5학년 때 글방으로 오던 아이가 어느새 중2가 되었다. 그런데 눈가를 수술하고 화장을 하고 마스크까지 써서 나는 너무 성숙하여 어리둥절하였다. 아내에게 물어보니 이런저런 말이 더해지는데, 요는 그게 다 학대로 인한 것이다. 스스로 못 생겼다는 자학으로부터 공부를 못한다고 생기는 열등감과 한동안 미용을 배우겠다며 학업을 놓고 있던 시간들이 더해져 아이를 더 나이 들어 보이게 하였다. 어떤 슬픈 마음 때문에 혹시 전에 아이들 중에 원한다면 시간을 만들어서 글방에 오게 할까? 하고 아내에게 언질을 놓았다. 한 녀석은 꼭 나 어릴 적 모습과 똑같다. 공부는 안 되고, 해야 한다는 학대로부터 시달리며 그 스트레스로 탐식에 시달리니 몸은 거구가 되었다. 어떤 애는 여자아이가 남장을 하고 남자처럼 굴며 남자라 자칭하며 자란다. 성정체성에 혼란이 오지 않을까 우려될 지경이다. 내 곁의 아이들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이처럼 끝도 없다.
하물며 속내를 다 숨기고 사는 듯 내색을 하지 않는, 어른으로 사는 인생들이야 오죽할까? 낮아지고 낮아지며 메워지고 솎아져서 평평해지기까지 우리 인생은 끝끝내 발목을 잡는 것만 같다. 그러고도 아무나 주의 길을 평탄하게 하나? 열에 아홉은 노욕(老慾)이 더 탐욕스러워서 음흉하고 표독하며 괴팍하고 완고하기가 이루 말할 길이 없다. 저도 저 스스로를 어찌할 수 없어 술이 아니면 살 수가 없어 눈을 뜨면 도로 술에 취하는 것이니,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잘 빚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사 5:22).” 어쩌겠나? 그 자식들이 짊어지는 무게가 너무 가혹할 따름이다. 그런 생의 한복판에서 우리는 무엇으로 위로를 얻을까?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40:5).” 끝내 이루어질 일이다. 누구에게는 상급으로 누구에게는 보응으로,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의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의 앞에 있으며(10).” 한 날의 수고 만큼이니 한 생의 지난함도 순간일 뿐이다.
새 중에 가장 작은 새, 벌새는 초당 90번의 날갯짓을 하고 분당 1800번의 날갯짓으로 난다. 그 몸은 다 자라도 5센티미터가 전부라 단 10초만 날갯짓을 못해도 바닥으로 떨어진다. 벌새의 그런 특성을 읽다 우리네 인생이 그러하지 않나, 한참을 백과사전의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우리 모든 인생의 가장 어려운 문제는 죽음이라. 이를 피할 수 있는 자는 없는데, 모두는 저는 아닐 거라 여기며 하루라도 늦추려 갖은 애를 쓴다. 아, “말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외치라 대답하되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 하니 이르되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사 40:6-8).” 우리는 다만 여호와의 기운으로 살다 지는 것뿐이니, 말씀으로밖에 새 힘을 얻을 수가 없다.
오늘 시인은 노래한다. “여호와의 친밀하심이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있음이여 그의 언약을 그들에게 보이시리로다(시 25:14).” 나의 한 날이 있는 듯 없는 것과 다를 게 없었으나 “내 눈이 항상 여호와를 바라봄은 내 발을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실 것임이로다(15).” 나의 날을 돌아볼 때마다 나로 하여금 모든 학대로부터 보호하시고 그때마다 그물에서 벗어나게 하셨다. 그러므로 주께 아뢴다.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로우니 내게 돌이키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16)” 천하의 어떤 사람이 아니 그렇겠나만, “내 마음의 근심이 많사오니 나를 고난에서 끌어내소서(17).” 나는 주가 아니면 살 수가 없다. “나의 곤고와 환난을 보시고 내 모든 죄를 사하소서(18).” 그러므로 “내 영혼을 지켜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께 피하오니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소서(20).” 이렇듯 “내가 주를 바라오니 성실과 정직으로 나를 보호하소서(2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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