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영원히 주 앞에 세우시나이다

전봉석 2025. 2. 23. 04:54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삿 6:24

 

주께서 나를 온전한 중에 붙드시고 영원히 주 앞에 세우시나이다

시 41:12

 

 

여선지 사사인 드보라의 활약으로 40년간 평안하였다. 드보라 이후 다시 우상 숭배에 빠져든다. 이 일은 반복적이다. 그 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징계의 채찍을 받는다. 이번에는 미디안 족속들의 침략으로 7년째 고통을 당하고 있다. 그럼 우리는 다시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이에 하나님은 사사를 세우신다. 이번에는 기드온을 부르셨다.

 

이처럼 죄의 연속성과 그럼에도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필연적인 사랑이 징계로 나타난다. 구약의 구조는 이스라엘의 죄로 징계가 임하고, 그와 같은 하나님의 공의로 저들은 회개한다. 하나님은 이를 다시 회복시키고 평안을 주신다. 이와 같은 ‘신명기적 원칙’이 오늘 본문에서도 나타난다. 이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거룩한 역사이다. 그러는 동안 그들 가운데 주의 참 자녀들이 걸러진다. 즉 불완전한 우리는 구원자 곧 사사나 왕을 통해 그때마다 평안을 맛본다. 이와 같은 역사는 영원한 메시아의 도래를 향해 발전해간다.

 

오늘 소명을 받은 기드온은 누구보다 연약한 태도를 보인다. 부르심에 선뜻 응하지 못하고, 자신의 소명에 대해 거듭 의구심을 갖고 세 번씩이나 하나님께 표징을 구한다. 이는 늘 나의 모습과 같다. 연약함으로 의연하지 못하다. 섣부르며 어줍어 다시 되묻고도 망설이기 일쑤다. 그러면서 툭, 하면 불안과 원망으로 마음이 어지럽다.

 

늘 보면 우리는 지속적으로 죄를 따른다. 이에 지혜자는 “선을 행하고 전혀 죄를 범하지 아니하는 의인은 세상에 없기 때문이로다(전 7:20).” 이는 동일하게 바울의 설교에서도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그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24).” 그게 아니면 오늘의 나는 구제불능이다.

 

죄의 때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남겨두고 사는 ‘가나안 족속’을 일으켜 가시가 되고 올무가 되게 하신다. 그러할 때 나는 주의 이름을 부른다. 어떤 고통이 또는 어려움이 나로 하여금 주를 찾게 한다. “여호와께서 성읍을 향하여 외쳐 부르시나니 지혜는 주의 이름을 경외함이니라 너희는 매가 예비되었나니 그것을 정하신 이가 누구인지 들을지니라(미 6:9).” 이에,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히 12:5).”

 

곧 우리가 겪는 오늘의 어떤 어려움으로 우리를 돌이켜 주의 자녀인 것을 알게 하신다. 곧 하나님은 우리로 우리 자신이 자녀인 것을 알게 하시려 징계하실 때 무한정 그 괴로움이 끝이 없는 게 아니다. 우리에게 징계는 기한이 있다. 곧 “이에 토지가 황폐하여 땅이 안식년을 누림 같이 안식하여 칠십 년을 지냈으니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더라(대하 36:21).”

 

 

“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습 3:20).”

 

상대적으로 범죄자는 주를 피하여 유리한다. 오늘 2절에서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삿 6:2).” 이는 숨어 사는 신세로 도피처를 구하듯 죄의식에 쫓긴다. 가인이 그렇듯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창 4:12).” 하신 저주에서 괴로워하며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14).” 하고 그 심정을 아뢴 것과 같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시 1:4).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을 멀리하게 된다. 세상을 가까이 하고 살면서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지는 않는다. 우리 안의 죄의식은 이와 같이 우리로 떠돌게 하지만 동시에 아버지에게로 나아가게도 한다. 이때 자신을 돌아보며 주의 긍휼하심을 구하게 한다.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눅 15:21).” 그러나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22).”

 

이와 같은 은총과 그에 따른 환대가 더욱 주의 은혜를 사무치게 한다. 고로 하나님이 없이 사는 동안은 지옥이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미래가 없다. 아무 소망이 없다. 오늘 이어지는 말씀이 이를 역설한다. “블레셋의 다섯 군주들과 모든 가나안 족속과 시돈 족속과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입구까지 레바논 산에 거주하는 히위 족속이라 남겨 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삿 3:3-4).”

 

이는,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따라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신 8:19).”

 

그럼에도 이를 가벼이 여겨 경솔할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20).”

 

이에 우리는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죄의식을 무조건 외면할 게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진실로 그는 거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 지혜로운 자는 영광을 기업으로 받거니와 미련한 자의 영달함은 수치가 되느니라(잠 3:34-35).” 그 차이는 언제나 같아서,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약 4:6-7).”

 

이와 같은 공식이 우리 삶의 곧은길이다. 자신을 높이며 낮추시고 낮추면 주가 높이신다. 그러므로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 5:5).”

 

그래서도 바울은 이를 강조하듯 간증하였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9).”

 

오늘 본문은 미디안 족속이 7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혔다. 이스라엘은 저들을 피하여 구멍과 굴을 파서 피해 살았다. 하나님을 떠나 살 때 우리는 약하다. 우리의 연약함이 우리로 주를 바라며 각성하게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신다.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신 31:6).”

 

이와 같은 말씀으로가 아니면 우리는 무엇으로 사는가?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수 1:6).” 하신 것을 붙들고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강하고 담대하라 너희가 맞서서 싸우는 모든 대적에게 여호와께서 다 이와 같이 하시리라(10:25).”

 

이를 붙들 때 새 힘을 얻는다. 그러는 데 있어 우리의 연약함은 의심하고 회의한다. 의구심이 들고 나태해진다. 하여,

 

각기 물러가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 없으니 한 사람도 없도다

(시 53:5).

 

때론 이해가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게 나 자신이다. 그만큼 주의 은혜로 살고 누구보다 주의 강권하심의 은총을 맛보고도 툭하면 의심하고 불안해한다. 오늘 기드온은 그렇게 하나님을 시험하였다.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가져다가 그 양털에서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삿 6:37-38).”

 

누구도 감히 이렇듯 시험하여 하나님께 구하지 않을 것인데, 저는 또 달리 해서 시험하여 본다.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되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그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39-40).”

 

그때도 하나님은 저의 어처구니없는 요구를 들어주신다. 마치 어린아이를 상대하시듯 주의 인자하심과 긍휼하심은 참고 또 참으심으로,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 3:16).” 어찌 그렇게까지 나 같은 자를 사랑하시는지, 나는 가끔 그것이 또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주는 자비하심으로 나로 그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기까지 기쁨으로 참으신다.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의 편이심을 알게 하신다.

 

천만인이 나를 에워싸 진 친다 하여도

나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이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3:6, 27:3, 118:6).

 

결국 우리로 하나님을 인정함으로 두려워하지 않을 것으로 하나님의 기쁨을 삼으신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사 12:2).” 하는 찬송이 온 땅에 넘쳐 흐르기까지,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합 2:14).”

 

하여 우리의 입에서 결국 ‘여호와 살롬’ 하는 찬송이 터져 나오게 하신다. ‘여호와 살롬’은 ‘여호와는 평강이시다.’ 하는 뜻이다. 평강의 여호와가 되심은 세상 일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우리를 안심하게 하신다. 살롬은 곧 평강으로, 하나님과의 화목으로 얻는 기쁨이다.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욥 22:21).”

 

이는,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10).”

 

즉 우리의 오늘 이 여호와 살롬은 저절로 거저 얻는 게 아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은 아들을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고후 5:20).” 곧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 2:16-18).”

 

이 놀라운 은혜를 오늘 기드온의 맹랑함에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다시 확신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살롬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예수는 우리에게 평강의 왕이시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

 

오늘 이 모든 정국이 불안하고 어지러우나 우리가 그런 가운데서도 평안한 것은, “우리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갈 1:3).” 곧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시 29:11).

 

이로써 오늘도 주 안에서 우리는,

 

내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나를 고치소서 하였나이다

(41:4).

 

할 때에,

 

내 원수가 나를 이기지 못하오니

주께서 나를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주께서 나를 온전한 중에 붙드시고

영원히 주 앞에 세우시나이다

(11-12).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