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전봉석 2017. 1. 28. 07:28

 

 

 

부자는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나 가난해도 명철한 자는 자기를 살펴 아느니라 항상 경외하는 자는 복되거니와 마음을 완악하게 하는 자는 재앙에 빠지리라

잠언 28:11, 14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시편 146:1-4

 

 

 

뭔가 믿는 구석이 있으면 이를 지혜롭게 여겨 자신을 겸손히 할 수 없게 만든다. 의지하는 것으로 마음은 기울어,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눅 1:47-48).” 내가 주를 기뻐할 수 있음은 주께서 나의 비천함을 돌아보셨음이라. 주가 그리하심이 만세에 복이 된다. 그리하여 보물이 있는 데 마음을 둔다. 비록 가난하여도 명철함으로 자신을 살펴 안다. 이는 항상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마음을 완악한 데에 두지 않는 것이다.

 

늘 마음에 들지 않는 나를 마주하는 일은 어렵다. 의연하고 온유하고 성실함으로 인자하였으면 좋겠는데 이게 어찌 그리 내게는 불가능한 것인지. 내가 나를 쩔쩔매는 것이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 2:18).” 주님은 어떠셨을까? 안 믿는 형제들 사이에서 생활하신다는 게 과연 어떠하셨을까? 목수의 아들로 어느 가난한 가정에서 평범한 일상에서의 그 30년 시간이 말이다. 다들 저마다의 생각과 고집이 한데 버무려지는 게 명절이다.

 

그럼에도 내가 참 복에 복을 받은 자로구나, 하는 걸 느낀다. 같은 델 바라보고 한 주를 섬기며 그 마음에 소원하는 일이 같을 수 있다는 데 말이다. 늙으신 부모와 다들 늙어가는 형제들을 보면서 그럼에도 우리가 바라는 것이 하나인 게 감사하였다. 오후께 먼 길을 걸어 청평읍내까지 나갔다 오면서, 당구를 한 게임 치고 그 길에서 모처럼 아버지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꽤 먼 길이었다 싶은데 그저 한때였다.

 

나의 생전에 주를 찬양하며 내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던 것이 복에 복을 더하신 주의 은혜라. 어느 부모를 만나느냐, 어떤 가정에서 자랐느냐 하는 게 선택의 문제는 아니어서 오롯이 내게 더하신 주의 사랑을 마주하게 한다. “그들이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 6:28-29).” 그리할 수 있게 하신 이가 또한 하나님이셨다.

 

말없이 아버지와 걸으며 생각하였다. 아버지의 하나님을 물려받은 것이 복이구나. 어떤 이는 무엇을 상속할까를 두고 평생 일가를 이뤄 모진 삶을 살다가도 그 자손이 다시 맨땅을 일궈야 하고, 더 피폐하고 황량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게 허다한데… 나의 아버지의 복이 나의 것이 되어서 감사하였다. 비록 외양간에 소가 없고 포도나무의 소출이 없다 해도, 우리는 여호와로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데 있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합 3:17-19).”

 

그러므로 “할렐루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찬양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기뻐하라.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러할 수 있는 가정에서 자라나게 하시고 그런 부모의 신앙을 물려받을 수 있어서 복되었다. 그러니 이제와 내가 누구를 의지할까?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렇듯 헛된 것에 마음을 두고 살았던 날의 고단함에 대하여는 이루 할 말이 없다. 곧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이를 허망하다 여길 수 있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귀한 유산이 또 있을까?

 

‘어떠하든 감사하다’는 표현이 어떻게 가능한지 조금은 알겠다. 늘 두려움에 떨고 어떤 공포에 사로잡히기 일쑤지만, 난 여호와로 즐거워하리. 내 구원의 하나님으로 기뻐하리라. 이와 같은 고백이 찬송이었다. 내가 보잘것없음을 느끼면 느낄수록 나의 구원의 하나님뿐이다. 곧 우리의 육신은 점점 쇠하여가나 우리의 영혼은 주를 바람으로 새롭게 되는 것이다. “기록된 바 내가 믿었으므로 말하였다 한 것 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었으므로 또한 말하노라(고후 4:13).” 이보다 더 복된 가족이 있을까?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16).” 그것으로 서로를 응원하며 자랑하는 것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18).” 이를 알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더불어 나의 부모와 형제에게 감사를. 그러니 나의 남은 생이 더욱 주만 바라며 살았으면.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11).”

 

예수를 위하여 나를 죽음에 넘겨주지 못하는 게 여전히 화요, 혈기요, 불안과 공포였다. 언제쯤 돼야 예수의 생명이 나의 죽을 육신에 나타는 삶으로 살아드릴 수 있을까? 여전히 어리석고 미련하여 나는 나를 다스리기는커녕 점점 더 악만 도드라지는 것 같으니.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나는 또 아뢰기를 주의 긍휼하심이었다. 그러므로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146:5).” 다른 그 어떤 데 도움을 바라는 건 어리석었다.

 

비록 나는 한심하고 처량할 따름이지만 “여호와는 천지와 바다와 그 중의 만물을 지으시며 영원히 진실함을 지키시며 억눌린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 심판하시며 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이시로다 여호와께서는 갇힌 자들에게 자유를 주시는도다(6-7).” 이에 복되다. 복되다. “여호와께서 맹인들의 눈을 여시며 여호와께서 비굴한 자들을 일으키시며 여호와께서 의인들을 사랑하시며 여호와께서 나그네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붙드시고 악인들의 길은 굽게 하시는도다(8-9).” 나의 눈을 뜨게 하시고 나를 일으키신다.

 

주가 다스리시는 가정에서 나고 자라 주의 통치를 받으며 살아온 날들이 감사하였다. 돌아오는 길, 눈이 시리게 석양은 붉었다. 복잡한 장터를 지나 개울가 얼음축제를 벌이는 다리 위를 건너 고즈넉한 마을에 다다라서야 생각하였다. 이곳에 아버지가 사셨으니 이 마을에도 다녀가는구나! 나의 인생에 지나온 곳마다 때론 하나님을 멀리하고 돌아서 가고 있을 때도 굽이굽이마다 나의 부모와 형제가 앞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살아주었었구나. 내가 참 복이 많다. 감사하다 생각하였다.


“시온아 여호와는 영원히 다스리시고 네 하나님은 대대로 통치하시리로다 할렐루야(1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