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누가복음 19:10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시편 145:8
물 한 그릇이라도 내어주는 마음이 필요하였다.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막 9:41).” 시험 때라 아이가 오지 않을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아이는 오고 싶어 했고 보고 싶어 하는 게 느껴질 정도로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며 제 시간에 왔다. 의아하여 나는 그 마음을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였다. 그럼에도 주일에 교회로 나오는 것에 대해서는 말을 돌리고 부담스러워하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서로를 보는 기대나 관심 또는 좋은 마음은 금세 질린다. 그런데 서로가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곳을 향해 가는 일이면 때론 실망하고 또는 미움이 일 때도 묵묵히 함께 갈 수 있다. 나는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그리 말해주었다. 강요한다고 될 일이 아니고, 설득한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거였다. 은근 자기 고집이 세고 막연하여서 전형적인 내 모습이었다. 늘 보면 참 신기하다. 어쩜 그렇게 ‘나 같은 아이들’만 곁에 붙이시는 것일까?
그럼에도 내 안에 자꾸 아이를 향한 마음을 두시는 이가 있었으니,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빌 1:6).” 주가 하실 것을 믿는다. 다만 그러는 중에 나는 곁을 함께 할 뿐이다. 서로에 대한 관심으로 그 시선은 금세 질리게 돼 있다. 아이의 입에서 나를 ‘아빠 같다’는 말로 표현해주는 것이 고맙기는 한데, 사람 사이 다 좋을 때나 좋은 것임을 아이에게 어찌 설명할 길이 없어 나는 자꾸 같은 곳을 향해 나란히 가자고 말해주었다.
아이들이 쓰는 책상이 너무 오래 돼서 흔들거리는 게 더욱 심해졌다. 그 틈새로 못을 끼워 넣었는데 여전하여서 아예 내 책상에 붙들어 묶어버렸다. 마음도 그와 같아서 안이하고 막연한 것은 좀 더 강하게 붙들어 맬 필요가 있다. “ 또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막 12:33).” 먼저는 주를 향한 것이고 다음이 아이를 돌보는 일이었다.
딸애와 사귀는 아이가 와서 같이 잠깐 대화를 하고 점심을 먹었다. 그 부친이 대장암치료를 받고 있었다. 사역에 좀 더 전념하기를 말하였다. 될 수 있다면 교단도 그렇고, 말씀에 착념할 수 있는 환경으로 바꿀 수 있나 하고. 나는 딸애의 마음을 다시 묻고 그 아이를 대하는 데 조금은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려 하였다. 어쩜 이렇게 ‘나 같은 애들’만 붙이시는 것일까? 나는 말은 못하고 속으로 애간장을 끓였다. 아내는 말 안 해도 다 안다는 듯, 그러니 자기 엄마가 그 속이 어땠겠어? 하고 염장을 질렀다. 뭐라 할 말이 없게 만드는 것이다. 같이 점심을 먹고 자주 찾아뵙겠다는 말에 그러라고 하고 돌려보냈다.
여기에 나를 두시는 것과 주께서 오신 일의 상관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말씀이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아이가 한껏 준비를 하고 제 시간에 맞춰 글방에 온 것을 두고, 나는 성가시기보다 고마웠다. 안 올 줄 알았고 안 와도 되는 날이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도 어쩜 그렇게 나 같은지. 그 고집에 막연하고 터무니없는 몽상에 어쩌지 못하는 실력과 무기력과 게으름까지도. 오죽하니 아이가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그게 다 내 이야기여서 놀라웠다.
나를 찾으러 오셨던 이가 이젠 나와 닮은 저 아이를 곁에다 보내시는구나. 내가 어쩌지 못해 할 때,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9:8).” 주의 은혜가 오히려 넘친다는 것을 느낀다. 함께 하심이란 곁에 놓아둠으로 더욱 주를 바라게 하시는 데 있었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마치 연애하는 아이처럼 주를 바라고 또 바라지 않을 수 없게끔.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시 145:8).” 그 은혜가 내게 큼이다. 아내는 아이들 시험 보충 때문에 다시 집으로 올라가 공부를 가르쳐야 했고 딸애는 나가서 나 혼자였다. 토요일 오후, 어떤 쓸쓸함 같기도 하고 또한 답답함 같기도 한데 그것으로 다시 준비해둔 설교원고를 읽고 밑줄을 긋다, 마음이 서러운가 하였는데 이 모든 게 은혜였다. 나야말로 하나님의 진노하심 앞에 쓸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어야 마땅할 위인인데, 나 같은 걸 들어 오늘에 이 마음을 받들어 섬기게 하시다니.
솔로몬의 기도는 그런 거였다.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듣는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왕상 3:9).” 그리하여 부어주신 주의 넘치는 은혜를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을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아, 그래서 두려워할 줄 아는 것이 복이구나.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기껏 그 좋고 풍성한 은혜를 소진하여 버려두는 바 없기를.
그러기 위해서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 6:38).” 내가 저 아이에게 냉수 한 그릇이 되어야 하는 일이다.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막 9:41).” 이런저런 마음이 뒤엉겨 때론 연민이 또는 허풍스러움이 나를 엄습하려 해도, ‘몸을 쳐 복종시켜야 할 일’이었다.
우리가 말씀에 전념해야 하는 이유였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5-16).” 다른 걸 바라기보다 이를 부탁하는 게 옳았다. 별 볼 일 없는 거야 누군들 나만할까? 그러니 내가 누굴 판단하고 뭐라 불평할 수 있겠나? 그런 나를 기꺼이 받으신 이가 나 같은 애들만 골라서 곁에 붙이시는 것이니, 이제 더욱 알만하여 그 은혜가 풍성하였다. 행여 내가 내 위로를 구하는 일이 없기를. 어떤 불만이 나를 위로치 못하는 것에 대한 엉뚱한 마음이 아니기를.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눅 6:24).”
하여 주의 위로가 아니면 무엇으로 남은 생을 다할까?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시 145:9).” 부디 나로 하여금 ‘듣는 마음’을 주사 주의 백성의 소리를 듣는 것은 물론 주의 말씀을 들어 바로 알 수 있는 귀를 열어주시기를. 주께서 허락하신 날들을 주 안에서 잘 감당하여 살아갈 수 있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것들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들이 주를 송축하리이다(10).”
마음이 어렵고 힘들다가도 그래서 주를 바랄 수 있는 것에 집중한다, 혼자 있어서 외롭다가도 그래서 말씀 붙들고 내 안에 들락거리는 아이를 두고 주께 기도할 수 있는 것을. “여호와께서는 그 모든 행위에 의로우시며 그 모든 일에 은혜로우시도다(17).” 주가 은혜로우시다. 나는 그 은혜로 여기에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주를 간구한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18).” 주가 아니시면 어찌 저 아이를 위할 수 있을까? 내게 두신 한 날의 삶을 감당할 수 있을까?
그러므로 “그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의 소원을 이루시며 또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사 구원하시리로다(19).” 내 안에 두시는 작은 한 가지 소원, 곁에 두시는 아이들과 함께 주를 향해 같은 곳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시기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은 다 보호하시고 악인들은 다 멸하시리로다(20).” 저들이 싫어하고 때론 괄시한다 해도 그래서 더욱 주를 바라며, “내 입이 여호와의 영예를 말하며 모든 육체가 그의 거룩하신 이름을 영원히 송축할지로다(2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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