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전봉석 2018. 8. 6. 07:11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고린도후서 13:5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

시편 94:18-19

 

 

주님께 나의 의지를 돌려드리는 것.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어떤 불안도 또 긴장도 주를 바라며 씻어 내리는 일. 안 그러면 갈 수 없는 길이었다. 전날에 아이가 약을 안 먹고 잤다. 눈을 깜빡거리며 더더욱 피곤해하였다. 말은 더 어눌하였으며 시선을 놓치기 일쑤였다. 내 안에 이는 어떤 불안은 단지 안타까움의 것이 아니었다. 이런 아이를 내가 어찌할까? 싶을 때, 사느라 부딪치는 어떤 일들이 모두 그러하지 않은 게 있던가.

 

“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고후 2:9).” 말씀이 되짚으신다. 오늘 말씀은 스스로 시험하라는 것인데,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13:5).” 이를 입증해 가는 게 삶이겠다. 같이 식사를 하고 어디를 가면 그렇게 신경이 쓰인다. 나 하나 건사하는 데도 주제넘은 사람인데 어쩌자고 내게 이 일을 두시는 것일까?

 

그래서 주를 더욱 붙들고 주의 위안으로 영혼의 즐거움을 삼게 하려 하시는 것이구나!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시 94:18-19).” 싫은데 그 싫은 것들이 그래서 주를 의지하게 하는 거였다. 함께 주를 바라고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게 귀한 현실이었다. 예배를 마칠 때쯤 새로 들어올 저쪽 업소를 치워주느라 그런가 주인네 식구들이 나와 청소를 하였다. 그 댁 며느님은 교회를 가지 못한 것일가?

 

예배를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나가면서 마주친 것이라, 그럼에도 내내 마음에 걸리는 모습이었다. 결국 마나님 혼자 예배에 간 것이고, 부친과 아들내외가 나와 사무실을 비워주느라 애쓴 것인지. 한 영혼이 안 믿는 가족들로 인해 눌리는 심경이 우울증으로 엄습하고 곡기를 끓을 정도인데 저들은 어찌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일까? 며느님도 같은 점철을 밟는 셈인데, 뭐라 말해줄 수 없는 말들이 내 안에서 저 혼자 시끄러웠다. 믿는 가정에서 자라 믿음을 지키지 못했을 때 그 짊어지고 사는 삶의 무게가 고약하기 그지없으니, 일흔이 다 된 나이에 우울증을 앓는 어미의 마음을 저들은 기어이 모른다.

 

집을 넓히고 재산을 불려 사느라 산다고 사는데 그 삶이 고약할 따름이니. 여전히 저들 눈엔 그러는 우리 형편이 안 된 것이고 믿는다는 이들의 고통이 사서 고생이라 한심할 따름이겠다. 뭐라 한들, 그러니 귀에 들릴 소리이겠나. 저의 부친이 건너와 이런저런 말을 하는데 있어 그 피로감은 모자란 아이가 와서 함께 말씀을 읽고 했던 말 또 하고 성경을 필사하는 일보다 어렵다. 안 믿는 이와 멍에를 같이 할 수 없다는 게 이런 일이었겠다. 덩달아 하나님을 버리고 사는 삶이라니.

 

두려워할 줄 알 때 참으로 인자하심도 안다. “그가 너희 모든 사람들이 두려움과 떪으로 자기를 영접하여 순종한 것을 생각하고 너희를 향하여 그의 심정이 더욱 깊었으니 내가 범사에 너희를 신뢰하게 된 것을 기뻐하노라(고후 7:15-16).” 두려워한다는 건 단지 무서운 일이 아니다. 경외란 그 존엄 앞에 엄숙해지는 경건이다. 이를 성경은 지혜라고 했다. “또 사람에게 말씀하셨도다 보라 주를 경외함이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니라(욥 28:28).”

 

그래서 우리 믿는 자의 삶은 달라도 다른 것이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시 5:7).” 이를 가장 소중히 여기며 감사할 수 있는 게 복이었다. 아이뿐 아니라 우리가 주를 기억하여 주 앞에 설 수 있는 게 은혜였다. 그럼에도 어려운 것은 너무 오랫동안 자신의 의지를 의지해온 까닭이겠다. 그런 거 보면 사람의 본성이 좋을 땐 포기하지 못한다. 어려움에 처할 때 되돌아보며 자신을 회의할 수 있는 은혜가 따른다.

 

우리가 좋다고 여길 때 속삭이시고, 양심 가운데서 말씀하시다 고통 중에 있을 때 큰소리로 부르신다. 곧 오늘의 나의 한 날 한 날이 주를 더욱 바라게 하시는 거였다. 아이를 대하는 일에서 차 한 대를 구입하는 일에서도, 그리 일이 되어지는 것을 보면서 더는 내 의지를 내세우지 못하게 하시는 것을 느낀다. 내 판단과 기준은 하나님뿐이다. 그러니 세상 가운데 혼미한 마음으로 살아가던 일을 떠올리면 저들의 오늘이 이해가 되기는 한다. 주 없이 산다는 일, 그 고단함에 대하여 부러워할 것이 없다.

 

이게 맞나? 싶을 때의 난감함은 도리어 주를 더욱 의지하게 하는 기회가 된다. 그래서 누가 어떻게 살아냈다는 말이 교훈일 수는 없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 3:18).” 우리는 서로 막연하여서 주를 바라는 일에 있어 주의 영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일이다. 사람을 보며 누구처럼 살겠다고 할 때 영락없이 찾아오는 실망과 혼동은 각오해야 한다. 해 아래 완전한 자는 예수님뿐이시다. 저는 율법의 완성이 되셨고, 그 율법의 요구가 되셨다. 그리하여 저를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신다.

 

이 모든 게 괜한 일이 아닌 것은,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 우리는 어제 말씀으로 그 의미를 마음에 새겼다. 미리 정하신 바 된 자로서의 삶이라니! 얼마나 든든한가? 오늘의 나의 부르심은 ‘어쩌다 어른’이 아닌 것이다. 미리 정하셨고, 그 뜻에 따라 부르셨으며, 부르신 이를 의롭다 하셨다. 그렇다면 의롭다 하신 우리를 영화롭게 하신다. 결코 우리를 그냥 그렇게 놓아두시지 않는 일이다.

 

저 아이를 우리에게 보내신 일이며, 저들 삶을 우리에게 노출시키시는 일이며, 그런 가운데 서로 말하고 말한 것을 놓고 주의 이름을 부르게 하시는 이 모든 여정에 있어서!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 감히 뭐라 할 수는 없으나 왜 저들의 오늘이 저러한지 우리의 삶은 이러한지, 이제는 모르고 당하는 일이 아닌 것이다. 그것으로 주의 이름을 더욱 신뢰하게 하심이었고 그래서 더욱 사모하게 하는 마음이 간절하여지는 것이었으니!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이제 그 차이는 엄연하여서 내 안에 이는 여러 생각과 생각이, 누구를 향한 마음과 마음이 서로 부대끼며 단련되어 일체의 깨끗함으로 주를 더욱 의지하게 하는 것이었다.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11).”

 

여러 번 되뇌어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일이 그래서 귀하였다. 이제 내 안의 얼마나 나로 하여금 간절하게 하는지. 주를 더욱 의지하게 하는지. 이를 변증하고 분하게 여겨 두려워할 줄 알게 하는지. 더욱 열심으로 주를 사모하게 하는 것으로 자신을 돌이키고 깨끗함을 나타내게 하는지. 그렇지! “이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증거를 너희가 구함이니 그는 너희에게 대하여 약하지 않고 도리어 너희 안에서 강하시니라(13:3).”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게 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4).” 그러니 내게 두시는 이 믿음이 얼마나 귀한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붙들고 의지하게 하시는 이 일이 얼마나 값진가. 오늘 말씀은 그런 자신을 돌아보게 하신다.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5).”

 

그리하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1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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