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에베소서 4:27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
시편 104:33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사건 사고들이 우리들로 하여금 더욱 주를 바라게 한다. 그런 가운데서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엡 4:23-25).” 세상을 달리하는 게 아니라 내가 새로워지는 일이었다.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곧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않는 삶이겠다.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27).” 이 말씀은 ‘새 사람을 입으라.’는 말씀으로 이어져, ‘선한 일을 하라.’는 데로 귀결된다.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28).” 그리하여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29).” 은혜를 끼치는 삶이 되라고 하시는데, 그렇지 못할 때 성령은 우리로 인해 근심하신다는 소리다.
나아가 “누구든지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영원한 죄가 되느니라 하시니(막 3:29).” 이는 내 안에 두시는 마음과 생각을 세상의 근심으로 제쳐두는 데 있었다. 이는 궁극적으로 ‘성령을 소멸하는 일’이 된다.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살전 5:19).” 그 증거는 먼저 말씀을 멸시하는 자리에 드는 것이다.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20).” 그리고 무분별하게 행한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21).” 그래서 어떤 경우에라도 저들처럼 굴면 안 된다.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22).”
새 사람을 입지 않을 때 우린 종당에 마귀에게 틈을 주는 삶을 살게 된다. 교회가 분열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미움과 반목이 가득하며 서로의 이익을 즐기느라 성령 하나님은 허울뿐인 게 된다. 그래서 우리의 사명은 자라가는 일이다.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 4:15).” 자라감이 참됨이다. 그 정도는 어디까지냐 하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13).”
이는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히 5:8).” 이루시는 일이다. 결국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9).” 그리하여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른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느니라(10).” 그리하시기까지 ‘고난으로 순종을 배우셨다.’는 말씀에 숙연해진다. 안 그래도 되실 분이 그리하심은 우리로서 그런 가운데서도 주를 바라게 하시려는 게 아니었겠나? 그러므로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엡 4:14).”
세상이 참 교묘하여서 즐거운 게 대부분 하나님을 조롱한다. 온갖 잡신을 따라 숭배하고 이를 본떠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기도 하고, 사람들의 관심은 언제든 돈벌이가 되기 마련이어서 서로가 주목받는 생이기를 애쓴다. 관심과 이목을 끌려하니 저들의 기호를 살피고 이를 빌미로 돈을 버는 데 목적을 두게 된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열거하고 있다. 먼저는 허망함에 대하여,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언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17).”
그럼에도 그리할 때 총명을 잃는다.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18).” 총명은 하나님을 아는 힘이다. 주를 경외하는 마음이다. 두려워할 줄 아는 자세다. 그런데 이를 그저 그러려니 하고 마는 데서 ‘마음이 굳어짐으로’ 우리는 예사롭게 다들 그러고 산다는 쪽으로 무게 중심을 이동시키는 것이다. 보편적이고 그저 일반적인 삶으로의 사는 일에 급급해하면서 말이다. 그러다 어느새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다! 무지함이다.
성도로서의 감각을 잃은 것이다.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19).” 방탕과 더러운 것이 교묘하게 문화의 자리를 독차지하고 있다. 흥얼거리는 노랫말 속에 또는 아무렇지 않게 따라서 흔드는 몸동작 가운데서 우리는 본래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더는 개의치 않는 자리에까지 놓이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세상이 다 그렇다 해도, 교회마다 이젠 대수롭지 않게 구가하는 현실적인 기호 앞에서 맥을 못추는 게 그 때문이다.
젊은이들을 교회로 오게 하려고 점점 더 교회를 공연장처럼 꾸며본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20).” 그러니 우리는 무엇으로 조명을 받아야 할까?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시 119:18).” 다른 방도가 없다. 말씀 외에 길은 없다. 곧 오늘 본문으로 와서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엡 4:21).” 그리하는 것만이 살 길이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서는 안 된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22).” 그러자니 더러는 얼마나 고독하고 외로운 길인가.
종종 느끼는 일이지만 내게 두시는 육체가 또 환경이 나를 더욱 주께로만 나아가게 한다. 때론 이와 같은 생활이 자유롭지 못한 것 같으나,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 3:17).” 누구처럼 어떤 은사를 좇지 않고, 성령을 받으려고 어디로 기웃거리지 않으며, 무던히 주신 날 가운데서 주신 형편에 따라 할 수 있게 하신 일을 묵묵히 맡아서 준행하는 게 복이었다. 이는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18).”
지금은 이 말이 맞다 저 말이 맞다, 이리 몰리고 저리 몰리기 일쑤지만 관건은 주시는 이의 뜻으로써 이를 헤아려 알 수 있는 게 총명함이겠다. 이러한 순종이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는 오늘 말씀과 만난다. 곧 “내가 평생토록 여호와께 노래하며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내 하나님을 찬양하리로다(시 104:33).” 이것으로 기뻐하고 이로써 즐거워할 수 있는 영혼이 훌륭한 것이다. “나의 기도를 기쁘게 여기시기를 바라나니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34).”
그러므로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2-3).” 힘써 지켜야 하는 게 분명해진다. 이 땅에 팽배한 구호,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쓴다.’는 말이 얼마나 구역질나는지를 알아야 한다. 개처럼 벌면 개처럼 쓰게 돼 있다. 개는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다.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 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잠 26:11).” 그러면서 늘 신세한탄이라. 죽기까지 이어질 요량인가보다.
이는 불을 본 듯 빤한 일인데,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히 3:19).” 다른 이유 없다. 믿지 않음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제 살 궁리에만 열을 올린다. 남들처럼 사는 게 최고의 목표다. 그러나 우린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16).” 그리하여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26).” 다시 또 주 앞에 서는 일.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32).”
그리하면 “주의 영을 보내어 그들을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시 104:30).” 아멘.
'[묵상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0) | 2018.08.18 |
---|---|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0) | 2018.08.17 |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0) | 2018.08.15 |
살리셨도다 (0) | 2018.08.14 |
내 집 안에서 행하리이다 (0) | 2018.08.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