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히브리서 2:8
열국의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
시편 135:15
적게 가지고 편안하게 사는 것이 복이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이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음을 보았나니 이는 그것이 그의 몫이기 때문이라 아, 그의 뒤에 일어날 일이 무엇인지를 보게 하려고 그를 도로 데리고 올 자가 누구이랴(전 3:22).” 자기 일에 즐거워하는 것보다 나은 게 없다. “사람마다 먹고 마시는 것과 수고함으로 낙을 누리는 그것이 하나님의 선물인 줄도 또한 알았도다(13).” 이는 다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죽어라 하고 일만 하는 것도 미련한 일이다. 두 손에 다 가득하여 수고가 끊이지 않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여 평온함이 낫다. “두 손에 가득하고 수고하며 바람을 잡는 것보다 한 손에만 가득하고 평온함이 더 나으니라(4:6).” 모자란 듯 어려워도 그래서 돌아보며 사는 것이 은총이다. 먹고 마시고 수고하는 일이 하나님의 손에서 나온다. “이러므로 내가 사는 것을 미워하였노니 이는 해 아래에서 하는 일이 내게 괴로움이요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로다(2:17).”
새삼 전도서의 말씀이 명징하게 읽힌다. 사는 게 얼마나 정갈한가. 그런데 이를 혼탁하게 하고 어지럽혀 늘 바쁘다는 소릴 입에 달고 살고 실제로도 일에 치여 사는 꼴이 답답하다. 마치 선물로 거저 받은 것들을 비싼 값을 주고 되팔려고 하는 것 같다. 은사를 자신이 가진 특별한 재능으로 삼는 데서 이런 오류가 발생한다. 은연중에 자신의 특별함을 다른 사람과 구별하는 것으로 삼아 마치 그 수고의 공로가 자신에게 있다는 데 시선을 두기 때문이다.
시날 평야에 모였던 사람들이 그랬다. 바벨의 사람들은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 11:3-4).” 오늘에도 여지없이 드러나는 일이다. 내 안에 이는 마음도 이와 같지 않던가. 누구에 대한 마음이 어떤 수고가 결국은 거기서 오는 즐거움을 하나님의 선물로 여지기 못하고 나의 결실로 삼으려고 하는 것이 말이다.
물론 그 은혜를 추구해야 하는 게 우리의 책임이다. 일하지 않고 얻는 만족은 평온하지 못하고 오래가지 않는다. 한 손의 평온함이 두 손의 부유함보다 낫다. 말씀을 되씹으며 공감하였다. “우매자는 팔짱을 끼고 있으면서 자기의 몸만 축내는도다(전 4:5).” 게으름이 주는 고단함이다. 하는 일도 없이 피로한 사람이다. 맡기신 일을 소홀히 하며 지내는 이가 오히려 몸만 축낸다. 적게 가지고 평온한 것이 많이 가지고 수고를 더하는 것보다 낫다.
정상적이지 못한 관계로 사는 게 보편화되었다. “어떤 사람은 아들도 없고 형제도 없이 홀로 있으나 그의 모든 수고에는 끝이 없도다 또 비록 그의 눈은 부요를 족하게 여기지 아니하면서 이르기를 내가 누구를 위하여는 이같이 수고하고 나를 위하여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게 하는가 하여도 이것도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8).” 혼자 사는 게 홀가분하고 좋은 것 같은데 실은 ‘헛되어 불행한 노고로다.’ 시날 땅에 모인 사람들이 보여주는 교훈이었다.
고생하여 이만큼 일구어 놓은 것을 포기할 수 없어 더 보태고 더욱 보태어 포기할 수 없는 고생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 ‘흩어짐을 면하자.’ 하여 서로 열심을 다해 모이기도 하고 함께 무엇을 도모하기도 하는데,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 11:4).” 하나님은 이를 보신다(5). 그리고 하나님의 방식,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이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7).”
말이 많은데 서로 다른 말을 한다. 열심히 떠드는데 알아들을 수 없거나 돌아서면 흩어지는 말뿐이라. 웃자고 드는 말에 죽자고 덤비고, 죽자고 드는 말에 웃자고 덤비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그 도시를 건설하기를 그쳤더라(8).” 여전히 우리는 짓다만 도시에 산다. 결과는 분열이고 결실은 허무뿐이다. 속을 달래며 말씀을 되새겼다. 좀 더 큰 병원으로 가서 진료를 받고 약을 탔다. 금요일에 초음파검사로 간이나 담낭을 좀 보잖다. 단지 신경성인지 어디에 문제가 있는 것인지.
몸은 힘든데 마음은 간결하였다. 중3 아이는 시험을 앞두고 글방에 오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이 마구잡이로 휘저었다. 행여 나의 애씀이 짓다만 바벨탑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누구에 대해 어떤 일에 있어서 괜한 노력이 나를 먼저 지치게 하는 꼴이다. 종일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진통제를 먹기 겁나서 참았다. 내 몸 하나 건사하는 게 일이라. 마침 아이가 오지 않아 다행이었다. 몸이 고달파서 서럽다가도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히 2:8).” 주가 아신다는 말씀으로 선다.
추석이 가까워져서 그런가, 사람들의 분주함이 눈에 띈다. 나는 나의 수고와 열심이 나를 삼키지 않기를 바라듯, 나의 아들이 겪어야 할 앞으로의 날들이 명치끝에 걸린 듯 자꾸 아프다. 그만큼 수고해야 하고 애써야 하는 일들에 대하여, 두 손 가득한데 그 수고가 끝이 없어 고단할 것이 분명한데 뭐라 한들 들으려하질 않으니. 보면 그게 다들 그러고 산다. 다들 그런 세상에서 굳이 너는 그러면 안 된다는 소리가 들릴 리 있겠나. “열국의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시 135:15).”
부디 말씀에 귀 기울이는 삶이기를. 어쩌면 내 속을 들들볶는 게 나 자신이지 싶다. 어디에 있든 뭘 하든,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사 61:1-3).”
궁극적으로 주가 이루어 가실 일에 대하여 나의 안달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것으로 기도하는 수밖에. 주를 바라며 더욱 주의 도우심을 의지하는 수밖에. 내게 두시는 오늘의 고달픔이 이를 알게 하시려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히 2:1).” 오늘 말씀은 이를 일깨워 주 앞에 앉게 한다. 결국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11).”
나를 형제 삼으시는 데 따른 여정이겠다. 곧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18).” 그러므로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 “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시 135:1).” 명료한 말씀 앞에 두 손을 모은다. 쥔 걸 놓아야 손을 모을 수 있다.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3).” 금세 추워지는 가을 날씨 앞에 나의 연약함은 속수무책이다. 그것으로 그래서 주를 더욱 바란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이 영원하시니이다 여호와여 주를 기념함이 대대에 이르리이다(13).” 곧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판단하시며 그의 종들로 말미암아 위로를 받으시리로다(14).”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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