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글]

때가 가까움이라

전봉석 2018. 10. 22. 07:0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요한계시록 1:3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시편 18:30

 

 

모든 것은 변한다. 낡고 쇠하여 소멸하는 것은 어줍다. 오직 말씀뿐이다. 하나님은 동일하시다. 이와 같은 진리 앞에 안도한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 4:24).” 주일을 지나며 새삼 이와 같은 진리 앞에 감사하였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6:63).” 아버지는 뵐 때마다 한 뼘씩은 더 노인이 되었고 그 말씀은 깊어져 생의 나침반이 무엇인지 확신하게 하였다.

 

새삼 나의 하나님과 아버지의 하나님과 형제들의 하나님과 아이들의 하나님을 묵상하였다. 이는 인격적인 관계에서이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3).” 우리는 얼마나 잦은, 많은, 덧없는 신들을 두고 사는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9:12).” 저의 본명은 여호와시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시 8:1).”

 

살아서 내가 사는 날 동안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라 너희가 크게 오해하였도다 하시니라(막 12:27).” 아이는 새로운 일에 앞서 그 긴장함이 역력하였고, 이를 전해들은 아버지는 예배를 마치고 축복하여주셨다. 아이의 하나님이 그 가는 길을 함께 하여 주시기를. 우리는 그저 염려나 근심뿐이라. 어찌 다음 일을 알 수 없으나, 확신하기는 아이의 하나님이 함께 하여 주실 것을 붙든다.

 

이러할 때 말씀이 있어 얼마나 감사한지.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 늘 그 때는 한 뼘 간격이라. 누구는 멀다하고 누구는 더디다 하나 홀연히 낡고 병들어 쇠약해진 부모 앞에서는 겸허해진다. 살아서 아직 산 자의 소망은 아직도 구원을 이룰 수 있다는 데 있다. 더는 구원을 이룰 수 없는 죽은 자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룰 게 없다.

 

모든 존재는 구원을 필요로 한다. 이에 “나 여호와는 변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말 3:6).” 괜한 말씀이란 없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 23:19).” 이를 바로 알 수 있는 게 우리의 연약함이 아니겠나. 오히려 우리의 나약함이 주 앞에 바로 서게 한다.

 

아이를 두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우리가 교회에서 어떤 가내수공업을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생각하기에 이르렀으니. 나는 주께 묻고 그 생각은 여전하여서 주의 선하심으로 인도하시기를 바랐다. 되도 않는 일에 아이를 내몰아 사회성이 어떻고 책임감이 어떻고 하면서 등 떠미는 것보다, 우리의 연약함으로 주를 바라고 의지하는 게 더 낫지 않겠나? 혼자 가만히 주 앞에 내어놓는 생각이었다. 일명 부업이라고 하는 것을 가져다가 아이가 그것을 할 수 있게! 혼자 생각이었다.

 

내 안에 이는 안쓰러움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보다 앞서지 않기를 기도한다. 나의 하나님은 처음과 끝이시다. 시작이고 나중이시다. “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 1:8).” 오늘 말씀은 이를 분명히 하신다. 무엇을 붙들 것인가? 우리의 이상도 목표도 모두가 헛되고 헛된 것을 말씀은 알게 하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시 18:30).” 내가 무엇을 의지할 것인가? 몸은 쇠하고 마음은 늘 요동하는 것이어서 내가 나를 의지하는 것보다 어리석은 것은 없겠다. 나는 나의 늙음에는 무덤덤한데 부모님의 늙어감에는 가슴이 저리다. 문득 한 노인이 앉아 주 앞에 아뢴다.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눅 2:28-29).”

 

저는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34-35).” 예수를 구주로 안고 사는 삶이라니. 나의 하나님은 소유격 조사 ‘의’를 통해 나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알게 한다. 이를 알게 하시는 것이 말씀이라.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7).”

 

나의 하나님, 너의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에 대하여 묵상하였다. “어리석고 지혜 없는 백성아 여호와께 이같이 보답하느냐 그는 네 아버지시요 너를 지으신 이가 아니시냐 그가 너를 만드시고 너를 세우셨도다(신 32:6).” 한 생은 가고 다시 또 한 생은 오나니,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전 1:4).” 때론 두렵고 때론 경이롭다. 이 땅, 그 영원함에 대하여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 내가 주 앞에 서는 땅이다.

 

이래저래 마음이 어지럽고 생각이 많은 날이었다. 모두가 돌아가고 일찍 들어와 허리를 끙, 하고 비틀며 돌아누웠다. “여호와 외에 누가 하나님이며 우리 하나님 외에 누가 반석이냐(시 18:31).” 내가 의지할 이, 나의 구원자. “나를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고 나를 기뻐하시므로 나를 구원하셨도다(19).” 곧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1).”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