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노예가 되겠나이다
창세기 44:16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이스라엘아 내 도를 따르라
시편 81:13
‘하나님이 죄악을 찾아내셨다.’ ‘내 도를 따르라.’ 하시는 두 구절의 말씀이 어떤 여운처럼 마음에 남는다.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진실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에게 방패시로다(삼하 22:31).” 주께 피할 수 있다는 것, 죄악 됨을 고하고 용서를 바라며 주 앞에 나아가는 일. 곧 하나님은 거룩하심이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삼상 2:2).”
말씀이 이끄는 자리였다. 근본적으로 성경이 말씀하시지만 우리의 소소한 사연과 상황과 여러 이야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이야기는 이어지고 있었다. 딸애 친구 이야기다. 목회자 가정의 두 딸 중 큰 딸이 일찍부터 어그러져 술, 담배를 다하고 제멋대로 살았던가보다. 늙으신 사모는 차라리 그 딸이 병들어서라도 주 앞에 돌아오기를 기도하였다고 하니. 결국 위암에 걸려 주를 바라고 있다는 소리에 나는 지나가는 말처럼 듣다 두려움이 일었다.
흔히 말이 씨가 된다는 말처럼 “유다가 말하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정직함을 나타내리이까” 그저 답답할 따름이다. 이는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더는 숨길 수 없는 자리에 서서 주를 바랄 때,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이스라엘아 내 도를 따르라.” 곧 “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순수하니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시 18:30).”
함부로 아뢰고 구하여 고할 수 없는 게 기도이다. 딸아이 친구 이야기를 들으며 새삼 그리 여겨졌다. 내 안에 두려워할 줄 아는 마음도 귀하였다. 내내 그 말이 마음에 남아 나를 돌아보고 무심코 내뱉은 말까지도 주께서 용서하여 주시기를 구하였다. 성경은 우리를 함부로 여기지 않으신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5).” 왜냐하면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16).”
어찌 우리 스스로 이룰 수 있는 것이겠나. 그럴 수 없어 더욱 주 앞에 고개를 조아릴 따름이다. 우리를 부르신 이가 우리로 주의 거룩하심을 바라게 하는 것이다. 성탄절 예배를 드리고 들어와 종일 늘어져 쉬었다. 어딜 좀 갈까 하다가도 와글거리는 사람들로 나갈 수 없었다. 그러다 딸애의 그 이야기를 듣고 내내 마음이 쓰였다. 항암치료를 하고 1차 수술을 했는데 재발하여 고통 중에 있다는 얘기였다. 사모는 자신의 기도로 그리 된 것이라며 더더욱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는데.
먹먹하여서 말할 수 없는 저들 이야기가 나를 돌아보게 하는 것 같다. 오늘의 나는 그야말로 은혜와 은총의 날들이라. 아무리 생각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다. 벌써 죽어 마땅한 위인인데도 이처럼 주 앞에 세우시고 주의 일을 감당하게 하시는 것이었으니, 비록 보잘것없는 처지이고 교회이나 주가 이루시는 구원 사역이 있었으니. “대저 여호와는 우리 재판장이시요 여호와는 우리에게 율법을 세우신 이요 여호와는 우리의 왕이시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실 것임이라(사 33:22).”
더욱 주 앞에 겸손할밖에. 모처럼 아이가 성탄절 인사 문자를 보냈다. 여전히 바쁘다 하며 새해 둘째 주일에나 올 수 있다고 답을 하였다. 서로 기억하고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게 복되었다. 때론 잊히고 비껴 서는 게 나을 듯하여 더는 연락을 않는 경우도 있다. 같은 말을 되풀이 하고 했던 말을 또 해야 하는 것보다 그냥 내버려두는 것으로 하나님이 다루시고 이루시는 것을 바라는 것이다. 같이 시작했던 아이들이 유난히 생각나는 계절이다.
누구처럼 위대하지도 않았고 여느 교회처럼 대단하지도 않았다. 그저 얼떨결에 어쩌다 교회가 이뤄지고 함께 그리 시작할 수 있었는지. 나는 돌아보면 놀랍기만 하다. 그러했던 아이들이 이제 어디에서 무얼 하고 사는지, 결코 저들은 잃어버린바 되지 않을 것을 믿고 구한다. 그렇게들 어른이 되고 어디서 무얼 하며 살든 주께서 그 바탕을 이루시며 다스리실 것을 믿는다. 나에게 이루셨던 주의 뜻을 나는 신뢰한다. 한참 때 행여 지금은 외면하고 각기 다른 길로 갔다고 해도.
다만 나는 지금 내 곁에 두시는 한 영혼을 붙들고 주께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시나니 여호와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신 7:9-10).” 그 보응은 고쳐서 수리하는 의미의 것으로 낫게 하시려는 의이다.
곧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 1:9).” 결론은 하나님의 미쁘심이다. 비록 위암에 걸려 돌아와 지금은 온전히 주의 긍휼하심을 바라고 그 앞에 자복하고 있으나, 그것을 보며 그릇된 딸자식을 두고 그리 기도하였던 자신을 원망한다고 하지만, 그 모든 게 우리로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일이었으니. 그것으로 또한 주의 이름을 부를 수 있는 게 귀한 것이었다.
그 심정이 어떨까 생각하다 생각하기를 멈추고 주의 뜻을 구한다. ‘하나님이 종들의 죄악을 찾아내셨으니’ 주 앞에 엎드릴 따름이다. 돌이켜 지금 그럴 수 있는 게 더는 그럴 수 없는 자리에까지 빠지지 않게 하려 하심이었다. 곧 오늘의 책망은 장차 세상과 함께 멸망하는 것을 막으시려는 주의 은총이었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 그 차이가 귀한 것이다.
마음이 좋지 않아 어지러웠다. 이를 그러려니 하고 주워 넘기지 않아 감사하였다. 이에 대한 확실한 보증이 말씀이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 1:4).” 하나님의 놀라운 주권을 어찌 이루 감사할 수 있겠나.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5-6).”
그 어떤 처지에서도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시려고! 이는 우리가 원하고 그리 바라서가 아니었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 9:16).” 그러므로 주 앞에 엎드릴 수 있는 게 귀하다. 용서를 빌고 누구를 생각하고 저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것까지도, 내게 두시는 일이라. 하나님의 도이다. 우리는 그렇게 지으심을 받은 것이다.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계 4:11).”
성탄절에도 출근을 해야 했던 아이와 오후께 카톡을 하고 위로를 하고 격려를 하면서, 그처럼 마음이 쓰이는 게 사뭇 신기할 따름이었다. 우리에게 두시는 하나님의 마음이겠다. 내가 그리 여기고 바라서가 아니었다.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라는 말씀 앞에 오히려 안도한다.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다는 말씀에서 다행이란 생각을 한다. 내가 내 수고와 마음으로 바라고 위할 수 있는 게 아니어서 말이다.
나는 아무 말도 않는데 아내는 그리 격려하였다. 우리 교회에 두시는 하나님의 의다. 그 애 하나, 그 한 사람으로 일구고 가꾸어 가는 것이다. 곧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1-12).” 이 모든 게 이미 예정하시고 택정하신 바에 따른 것이어서 감사하였다. 부디 저들의 마음을 위로하시고 붙들어주시기를.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하나님이 이루시는 구원 사역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그러므로 “우리의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기쁘게 노래하며 야곱의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이 소리칠지어다(시 81:1).” 오늘 말씀 앞에 아멘 한다. “이르시되 내가 그의 어깨에서 짐을 벗기고 그의 손에서 광주리를 놓게 하였도다(6).” 나의 수고와 짐을 대신 지시는 주님께서 “내 백성아 내 말을 들으라 이스라엘아 내 도를 따르라(13).” 말씀하신다.
“또 내가 기름진 밀을 그들에게 먹이며 반석에서 나오는 꿀로 너를 만족하게 하리라 하셨도다(1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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